• 제목/요약/키워드: 역사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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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Theistic Evolution: between Creationism and Evolutionism)

  • 제해종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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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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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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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으로 인간 탐구의 중심 주제 중 하나였다. 기원에 관한 문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닌 인간 정체성에 관한 것이자 인간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인간의 기원과 관련하여 제시된 전통적인 모델은 크게 만물이 창조주에게서 기인하였다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하여 하등에서 점점 고등동물로 진화하였다는 진화론, 그리고 기원에 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 있다. 본 연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결합인 유신진화론을 다루고 있다. 유신진화론이란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기원하긴 했지만 즉각적 창조가 아닌,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통한 창조를 통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기원에 관한 두 상충하는 이론을 기독교적으로 결합하여 제시한 것이 유신진화론인데, 이는 여러 가지 본질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성경의 하나님이 전능한 창조주가 아닌 자연의 법칙에 국한된 모습으로 축소된다. 둘째, 성경의 사건을 상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역사성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유신진화론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이나 창조론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중국 마임에 대한 역사적 고찰 (A Historical Study on the Mime in Chinese Theater)

  • 안상복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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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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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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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중국 마임에 대해 역사적 고찰을 진행한 글이다. 중국 전통극에서의 마임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하는 문제는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나, 고대 배우들의 행위를 통해서 대략적이나마 초기의 자취가 발견된다. 필자는 사기(史記) "골계(滑稽)열전"에 수록된 초(楚)나라 장왕(莊王: B.C.613-591) 때의 배우 우맹(優孟) 이야기 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 제시할 수 있었고, 이를 근거로 중국의 마임은 최소 2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것으로 판단하였다. 중국의 마임은 전통극 중에서도 제의극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 발전은 각색행당제(脚色行當制)와 긴밀히 연계되어 진행되었다. 주(做)나 타(打)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정식동작(程式動作)들은 최근 몇 세기에 걸쳐 구체화되었지만 그것들의 좀 더 먼 기원은 고대의 무(舞)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대의 무는 다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나뉘어 전개되었으니, 현재의 주나 타에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문무와 무무라 할 수 있다.

대타두문화에 대한 일고찰 (A study in the Datuotou Culture)

  • 복기대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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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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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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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필자는 이 글에서 대타두문화에 관한 소개와 동시에 몇 가지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이 문화는 어느 문화의 한 유형이 아니라 독립된 문화로 볼 수 있다. 즉 경진지구와 장가구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발전한 문화로 당지의 후기 신석기문화의 전통을 이어받는 동시에 주변지역 문화영향을 흡수 발전시키면서 발전한 문화이다. 연대는 기원전 22세기 시작하여, 기원전 14세기 전후하여 결속된 문화이다. 이 문화의 전체적인 문화 요소를 볼 때 매우 복잡성을 띠고 있어 연구자들의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복잡한 문화 요소들이 이 문화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혼란을 주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 요소의 복잡성은 이 문화 요소가 처음 발견되면서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고학의 기본 이론과 인류학적인 이론에 대입해볼 때 하나의 독립문화로 보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전체적인 문화 성격을 볼 때 이 문화는 지역적으로 태행산이동쪽에서 발전하면서, 그 동북으로는 요서지역의 청동기문화와, 서쪽으로는 중원문화권과의 중간에 위치하여, 두 지역간의 교차역할을 하고 있음과 동시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화현상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켜볼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역사에 있어서 당시 중원세력이었던 상나라가 현재의 북경지역까지 세력권이었다는 것으로 인식을 하는데, 이는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 시기에는 중원세력은 아직 경진지구까지는 세력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주지역 고대사와 결부시켜 볼 때 더욱 중요하다. 즉 당시 만주지역에 어떠한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으며, 그 문화는 어떠한 민족의 문화였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당시 대타두문화의 이웃 지역인 요서지역에서 이 시기에 발달한 청동기시대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이다. 이 하가점하층문화는 지역적으로 요서지역에서 발전한 문화이지만, 이 문화는 주변 지역의 동시대 청동기 문화에 큰 영향을 준 문화이다. 대타두문화에서도 이 문화의 영향은 매우 컷던 것을 본문에서 밝힌 바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복공은 대타두문화를 당지의 전통적인 신석기문화를 계승하면서 요서쪽의 하가점하층문화인 동이계통 문화, 그리고 중원지역의 문화가 결합된 문화로 보았다. 이는 전체적인 문화 요소와 그 성격을 볼 때 매우 타당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 관계를 고려해볼 때, 이 문화는 단순한 선사 고고문화로 이해할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볼 때 더더욱 중요한 지역의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타두문화의 이해는 전체 동북아시아의 고대문화와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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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의 역사와 변증법적 유물론 (A History of Calculus and the Dialectical Materialism)

  • 조윤동
    • 대한수학교육학회지:학교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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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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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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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수학이 발달해 온 과정과 그 결과물은 언제나 역사적 한계 속에서 역사적 필연성에 의해 그 한계를 돌파해 온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미적분학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려 한 것이 이 글이다 이 글을 전개하는데 밑바탕에 전제로 두고 있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이것은 변화와 발전을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인 물적 조건을 일차적인 것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유물변증법은 기원전 4세기 무렵의 아르키메데스 시대 이후 한동안의 공백기를 지나 17세기에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된 미적분을 설명하는데 적격이다. 또한 그것은 미적분의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번의 동시 발견과 같은 것들을 설명하는데도 적격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수학이 단순히 기호의 형식논리학적 전개나 주관에 의한 발명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산물임을 보이려 한다 이를 통해서 수학 교수-학습을 현실 세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논의에 철학적 바탕을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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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항 고지도 분석을 통한 부산 항로표지의 기원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Beginning of Busan Aids to Navigation through the Analysis of Old Pictorial Maps on Choryang Harbour)

  • 안웅희
    • 한국항해항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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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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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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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대한민국 등대의 역사는 일제가 국외 침략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설치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1903년 인천에 처음으로 등대가 설치된 이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적인 항로표지시스템이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제 항구의 도시로서 그리고 초량왜관의 도시로서 부산은 15세기 초 이래로 한일 외교관계의 중심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부산에는 해상 국제교류를 위한 항만시설이 발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해양에 관련된 역사자료가 부족하고 기초연구가 미비하여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최근 들어서 부산해관 고문서의 번역이 마무리 되었고, 초량왜관 관련 고지도들을 집성한 자료가 편찬되면서 보다 객관적인 부산의 역사를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고지도와 문서들을 통하여 오래된 국제 항구도시 부산의 초량항에 초점을 두고 부산 항로표지의 기원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보안산업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Historical Origin of Private Security Industry in Korea)

  • 이창무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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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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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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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보안산업은 급속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보안산업관련 연구 역시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보안산업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국내 보안산업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사료(史料)를 통해 볼 때 국내 보안산업은 그 기원을 장보고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사서(史書)에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와 해적 소탕 등의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소탕과 해상무역 보호라는 보안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해상무역권이라는 이권을 취하고 막대한 경제적 부(富)를 축적했다는 점에서 보안산업 활동을 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즉, 장보고가 당시의 고질적인 사회경제적 문제였던 해적을 퇴치하고 해상무역을 보호하면서 경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 활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장보고의 활동은 보안산업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장보고의 활동과 비슷한 역사적 기록이 장보고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안산업 활동으로 판단된다. 역사적 기록에 나타나는 장보고의 활동은 당시 중국은 물론 이슬람 문화권과 유럽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근대적 성격의 보안산업 형태와 기능을 수행했다고 여겨진다. 세계 보안산업의 역사에 있어서 장보고 활동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장보고의 보안산업활동 및 세계 보안산업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적절한 평가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향후 후속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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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개항기 부산항의 근대식 등대에 관한 연구

  • Ahn, Woonghee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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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5년도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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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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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부산은 18세기말 서양에게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 19세기말 조선이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국제 열강들에게 개항되었을 때에도 중요한 국제적인 개항장이었다. 국제 선박들의 왕래가 늘면서 부산항의 항만시설과 등대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등대의 설치와 관리는 부산 해관원들이 담당하였다. 개항기 해관의 작업들은 봉건사회에서 근대국가로 변천하는 조선의 역사적 기원이 된다. 이처럼 소중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 해관문서들이 상당부분 소실되어 정확한 역사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의 내부문서와 외교문서 그리고 국내외 언론들에 의해 작성된 기록들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최근 출간된 자료들과 수집된 고지도들을 바탕으로 조선말 개항기 부산항에 설치된 근대식 등대를 확인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 근대사의 올바른 정립에 객관적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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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수학 교과서가 다루는 미적분 역사 서술의 비판과 대안 - 17세기까지의 미적분의 역사를 중심으로 - (Criticism and alternatives of calculus history described by secondary school mathematics textbooks - Focusing on the history of calculus until the 17th century -)

  • 김상훈;박제남
    • 한국수학교육학회지시리즈E:수학교육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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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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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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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에서 미적분을 다루는 중등교과서가 미적분 역사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원전 350~기원전 50년에 목성의 위치를 계산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바빌로니아인의 사다리꼴을 사용한 구분구적법 그리고 1000년경 이집트에서 이루어진 이븐 알 하이탐(ibn al-Haytham)의 원판을 이용한 구분구적법 등을 고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미적분 역사에 대한 건설적인 서술 방안을 제시하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중등수학 교과서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창안한 것으로 설명하고 그 뿌리를 고대 그리스에 둔다. 미적분의 창안은 바빌로니아와 파티마 왕조(Faṭimah Dynasty: 909-1171)(이집트)에 있으며 인도에서 멱급수의 발전이 이루어진 후 미적분이 유럽에서 발전된 것으로 교과서에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치가 소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속 과학인물 - 고려말 최초로 수차 보급 제창한 대학자 '백문보(?~1374년)

  • 박성래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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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1호통권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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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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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고려 말 공민왕 때의 백문보는 수치를 만들어 가뭄피해를 줄여야한다고 임금에게 상소한 대학자이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수차의 중요성을 제창한 백문보는 중국에서는 수차를 보급하여 가뭄걱정을 않고 농사를 짓고 있는데 우리는 한길도 안되는 아래 웅덩이의 물을 이용할줄 모른다 한탄했다. 그러나 기술 부족, 지형적 특성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으로 수차가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임금 앞에서 강의도 했던 그는 단군의 기원을 분명하게 계산한 학자로 '홍건적의 난'때 불타버린 국사를 다시 편찬하는 대사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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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국의 대두 재배 현황

  • 이부용
    • 식품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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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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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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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중국은 대두의 원산지로서 기록에 의한 3000여년의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실제적인 재배 역사는 4000~5000년에 이른다. 기원전 5세기 전에 한국으로 전해지고 세계 각국에 전해졌다.대두는 고지방, 고영양 작물로서 인류가 섭취하는 주요 단백질원이다. 세계 각 국은사회 발전과 인류의 영양에 대한 요구에 따라 대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급속한 재배 면적 증가 속도로 1999년 세계 대두 재배 면적은 7205.2만 $hm^2 , 총생산량은 15774.4만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2189.3kg/$hm^2이며 농산물 교역량 중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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