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역사상

검색결과 838건 처리시간 0.02초

역사속 과학인물 - 사상 처음 '관성의 법칙' 결론 르네 데카르트(1596~1650)

  • 박성래
    • 과학과기술
    • /
    • 제29권5호통권324호
    • /
    • pp.22-24
    • /
    • 1996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겨 철학자로도 더 유명한 프랑스 태생의 데카르트. 올해로 탄생 4백주년을 맞는 데카르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관성의 법칙에 올바른 결론을 낸 과학자로 빛의 굴절문제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찾아내는데 기여했다.

  • PDF

역사속 과학인물 - 미 유학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자 변수(1861~1891)

  • 박성래
    • 과학과기술
    • /
    • 제29권8호통권327호
    • /
    • pp.93-95
    • /
    • 1996
  •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과학자로 일컫는 변수. 그는 갑신정변 때 김옥균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미국 유학길을 떠나 메릴랜드주립대학 농과대학을 졸업, 한국인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미국 농무부에 취직, '일본의 농업'이란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활약을 하던 중 31세때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과학자로서의 큰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 PDF

역사속 과학인물-토정비결의 창안자 이지함

  • 박성래
    • 과학과기술
    • /
    • 제28권3호통권310호
    • /
    • pp.36-37
    • /
    • 1995
  • 우리나라 역사상 상수학의 대가였던 서화담의 제자 이지함은 1백44개의 괘를 배치해 사람의 운명을 예언한 토정비결을 창안한 자연철학자 이다. 율곡의 가까운 친구였던 이지함은 마포의 흙집에서 살았고 쌀장수로 번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준 기인으로 유명하다.

  • PDF

역사속과학인물 -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대학 졸업자 상호(1879년~?)

  • 박성래
    • 과학과기술
    • /
    • 제29권1호통권320호
    • /
    • pp.18-19
    • /
    • 1996
  • 1906년 7월 동경대학 조선학과를 졸업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일본대학 출신 상호는 귀국 후 경성박람회 고문, 농상공부 공무국장이 되었으나 29세 이후 그의 생애는 기록이 없다. 당시의 선박기술은 첨단기술로서 일본의 영국과 더불어 최고 수준이었는데 귀국 후 상호의 활약을 밝히지 못해 아쉬움만 남는다.

  • PDF

몽골인들의 말 문화

  • Ochir, A.
    • 한국초지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초지조사료학회 2004년도 학술심포지움
    • /
    • pp.1-13
    • /
    • 2004
  • 몽골은 역사상 유목 목축업이 성장 발전한 이래 지금까지 5000년 이상 축산업을 주요 산업으로 삼고 있는 지역이다. 몽골인들에게 가축사육은 가장 익숙한 산업으로서 고대사회부터 모든 생활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가축이 몽골인들의 정치ㆍ사회ㆍ경제 정신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축은 정치사ㆍ사회생활ㆍ문화발전에 이르기까지 몽골인들의 모든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중략)

  • PDF

서기8-9세기 신라와 당과의 해상교통 (A Reserch into the Sea Route Between Silla and Tang from the 8th Cent. A. D. to the CENT A. D.)

  • 선광기;허일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항해항만학회 1996년도 The Korean Institute of Navigation 1996년도 한·중 국제학술 심포지움 및 추계학술발표회 논문집
    • /
    • pp.21-29
    • /
    • 1996
  • 중국과 한반도와의 해상교통은 기나긴 역사의 물줄기의 흘러온다. 일찍이 서기 8-9세기 당과 신라간에 있었던 우호적인 린방항해는 역사상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글은 중국 한반도와 일본의 상관 고대문헌을 고찰한 기초상에서 청해진(오늘의 한국완도) 장보고(Znang Bao-gao) 대사를 대표로한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대한 항해활동 및 그활동이 남겨둔 역사의 자적을 연구함으로서 당시 당과 신라간의 주요한 해상교통선을 논증하였다 본 연구는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1. 장보고는 서기 8-9세기 신라 항해역사상 아주 큰 영향력을 가진 대표인물로서 그는 이시기 동북아시아 항해활동에 역사적 공헌하였다 그가 오늘날 한국완도 및 중국 산동반도 등의 지역에 남긴 유적 들은 중국과 한국 및 전체 한반도 교통연구에 고귀한 문화재로 중시받을 가치를 지닌다. 2. 서기 8-9세기 신라와 당간 해상교통 노선을 쌍방 항해사들이 장기간의 왕래와 합작의 산물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북항로 중항로와 남항로등 세갈래 중요 항로로 나누어진다 그가운데: --- 중국 요령 연해로부터 신라에 도달하는 북항로는 역사가 영구한 전통성 항로인데 항해가 안전하지만 항로가 비교적 길다 --- 중국 산동반도로부터 신라에 이르는 중하로는 당시 쌍방 해상 왕래에 매우 중요한 항로로써 장보고 등 신라 항해사들이 중국과 왕래하던 주요항로이다 ---중국 강소와 절강 연해로부터 신라에 이르는 남항로는 기본적으로 중항로가 남쪽으로서의 영신혹은 추동된 것으로서 그 왕래하던 시기는 당나라 이후 중국 송나라 시기인데 서기 10세기 이후이다.

  • PDF

원로에게서 한국 낙농육우 역사를 만나다

  • 이용일
    • 월간낙농육우
    • /
    • 제29권6호
    • /
    • pp.80-107
    • /
    • 2009
  • 월간 낙농육우는 창간 28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낙농육우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온 역대 협회장들로부터 협회가 걸어온 길에 대해 들어보는 공간을 마련했다. 안타깝게도 작고하신 분이나 건강상 인터뷰가 불가한 경우는 제외 되었고 당초 각 시대 사안별로 심도 있게 다루려 했던 기획의도와는 달리 여건상 실현하지 못해 미진한 부분도 많지만 가급적 인터뷰에 협조하여 주신 고문들로부터 생생한 당시의 회고를 담으려 하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영국의 역사학자 애드가 카는 말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알려면 옛 자취를 고찰하라는 말처럼 자랑스런 순간들을 통해서는 선배 낙농육우인들에 대한 존경과 자긍심 고취의 기회를,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는 자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를 통하여 낙농육우인 모두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낙농육우산업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우리 안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