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식민지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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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수학교육 정책과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 한국수학 교육과정 연구 (Educational policy and curriculums of Korean school mathematics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y)

  • 이상구;노지화;송성렬
    • 한국수학교육학회지시리즈E:수학교육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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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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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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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1895년부터 조선은 초등, 중동교육기관과 근대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며 근대 수학을 받아들이고 전수하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노력은 1897년 8월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1905년(광무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이후 1908년 일제의 사립학교령, 1911년 학부령등을 통하여 조선통감부와 조선총독부가 기존의 고등교육기관을 폐지하고, 조선에서의 교육을 식민지 보통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특히 수학분야의 고등교육은 방기하여 한반도에는 1911년에서 1945년 사이에 수학과는 대학과정의 고등교육기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식민지 수학교육정책의 잔해는 20세기 한국이 세계 수학의 주류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큰 장애물이 된다. 본 연구는 이 시기의 교육정책과 수학 교육환경 그리고 한반도에서 교수된 근대 수학의 내용과 교육과정을 심도있게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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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과 식민지 과학기술 (Eunsa Memorial Science Museum and Colonial Science Technology)

  • 정인경
    • 과학기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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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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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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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이 글은 일제에 의해 이식된 은사기념과학관의 사회적 역할을 살펴보았다. 식민지 과학관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일제는 과학사상을 보급한다는 미명아래 과학관을 식민지 지배에 이용하였던 것이다. 식민지 과학관은 '위대한 과학제국' 일본을 부각시켜 열등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과학관의 전시와 강인 실험, 과학영화 등은 이러한 식민지 지배이데 올로기를 선전하였다. 식민지 과학관의 이식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남았다. 첫째, 과학관이 정치권력의 선전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식민지 과학관의 건축, 전시, 운영의 모든 면이 공공연하게 권력의 정책방향을 선전, 옹호하고 그것이 '개발, '발전'이라는 장미빛 환상을 심었다. 둘째, 식민지 과학관에서 과학기술은 '결과와 '도구'로 취급되었다. 일제는 과학이 사회적 위기를 해결했던 역사적, 문화적 산물임을 부정하고 '도구적 합리성'만을 주입시켰다. 셋째, 식민지 과학관에서 다루었던 과학기술은 매우 수준 낮은 것이었다. 생활의 과학화를 내세우며 교육했던 것은 근대적 규율을 내면화시켜 권력이 요구하는 노동자형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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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을 활용한 『제1차조선교육령』과 『조선교육요람』(1913, 1920)의영어번역본 분석 (Analysis on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First Chosen Educational Ordinance, Manual of Education of Koreans (1913), and Manual of Education in Chosen 1920 (1920) Using Text Mining Analytics)

  • 탁진영;곽은주;진실로;손민주;김동미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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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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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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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논문의 목표는 1911년에 공포된 『제1차 조선교육령』, 1913년에 발행된 『조선교육요람』과 1920년에 발행된 『조선교육요람(1920)』의 영어 텍스트를 비교 분석하고, 이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조선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 식민지 교육정책을 추적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의 전체적인 흐름과 그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기존의 단편적이고 질적인 역사서 연구와는 달리 통시적·양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상위 50개 단어 빈도 순위와 워드 클라우드(Word Cloud)와 CONCOR(CONvergence of iteration CORrelation)의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은 '전체적인 규정'이나 '교육과정 및 운영'에 초점을 두었고 둘째, 1913년의 『조선교육요람』은 '교육 방식 및 매체'와 전반적인 '교육 내용'에 대한 지침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20년 『조선교육요람(1920)』은 교육의 구체적인 '교육 실행 및 교육의 주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10~30년대 여성 미술교육의 젠더화와 전시문화 연구 (A Study on Exhibition Culture and Gendering of Women's Art Education in the 1910s and 30s)

  • 고선정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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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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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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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1910~30년대 여성과 미술교육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젠더화된 미술교육을 통해 어떻게 봉건적 여성관을 허물고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와 사회진출을 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은 근대 교육을 통해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유와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여성은 부덕함양을 위한 수예(手藝) 교육을 받으며 다시 전통적 여성성의 공간으로 회귀하였다. 하지만 일본 유학을 다녀온 소수의 신여성들이 여성의 자립을 위해 수예보급에 앞장선 방법과 수예가 공식적으로 미술공예적 성격을 부여받아 전시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상황을 그 당시의 기록과 인터뷰, 신문기사를 통해 밝혀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를 통해 수예교육과 여성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을 사회적 존재로 성장시키는데 미술교육과 전시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고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한국 근·현대수학 교재 연구 (Mathematics Textbook in Korea (1880-2016))

  • 이상구;이재화;김영구;이강섭;함윤미
    • 한국수학교육학회지시리즈E:수학교육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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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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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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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우리나라의 근 현대 수학 교재는 19세기말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한 필산(筆算)이 산학전문가들에게 소개되면서 선교사와 서당에서의 서양수학 교육을 시작으로 1894년 6월 28일 갑오교육개혁을 통하여 수학교육이 공교육에 포함된 이후 공식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 조선통감부를 통한 수학교과과정의 소개와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 또 1945년 이후 군정에서의 수학교재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이후 2015년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발간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해방 후 미군 군정청, 대한민국 교육과정의 변화를 거치면서 개발되어 소개된 근 현대수학 교재들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반 디지털 콘텐츠 개발 (The Development of Digital Contents Based on Jeiu Haenyeo's Anti-Japan Resistance)

  • 조은희;임지영;한은미;양혜선;배인숙;홍윤지;윤미혜;김성백;김동전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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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06년도 추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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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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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제주의 해녀는 독특한 인적 문화 자원으로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 특히, 제주 해녀들은 1931년 생존권을 스스로 찾기 위해 해녀항일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식민지 수탈 기관인 관제 조합과 식민지 수탈정책에 대항하여 민족해방운동을 일으켰다. 현재 제주에서는 독특한 제주 해녀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처럼 해녀와 그들이 전개했던 항일운동에 기반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캐릭터, 애니메이션, 게임, 홈페이지 등을 개발하여 유아들에게 해녀들의 정신과 문화를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교육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 점점 사라져 가는 해녀와 관련된 문화 자원을 새롭게 재창출할 수 있는 방안과 항일운동의 정신을 재음미해 볼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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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5년까지 과학 교과서의 발행, 검정 및 사용에 관련된 법적 근거와 사용 승인 실태 (The Use of School Science Textbooks, and Laws and Rules Concerned with Their Publication and Approval from 1895 to 1915 in Korea)

  • 박종석;정병훈;박승재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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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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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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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개항 후 1883년에 원산학사가 설립되고, 1894년에는 갑오개혁으로 여러 가지 교육개혁이 시행되었다. 1895년 한성사범학교 관제를 시작으로 각종학교 관제의 교육과정에 과학 교과가 등장하면서 과학 교과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정부는 필요한 교과서률 편찬하는 한편 여러 가지 학교관련 법령을 통하여 교과서의 사용에 관한 규정을 정하였다. 1895년 소학교령에서는 "교과용서(敎科用書)는 학부(學部)의 편집(編輯)한 외(外)에도 혹학부대신(或學部大臣)의 검정(檢定)을 경(經)한 자(者)를 용(用)함"으로 규정하였고, 1906년 보통학교령에서는 "교과서(敎科書)는 학부(學部)에서 편찬(編贊)한 것과 밋 학부대신(學部大臣)의 인가(認可)를 경(經)한 것으로 함"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각급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는 학부에서 편찬한 것이거나 학부대신의 검정을 받은 것 또는 인가를 받은 것으로 제한되었다. 교과서에 관한 정책은 1906년 일본인이 학부에 참여하면서 1908년부터 본격적으로 수행되었고, 이것은 1910년 한일합방을 위한 식민지 교육정책과 밀접하게 수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08년의 사립 학교령과 교과용도서검정규정, 그리고 1909년의 출판법은 교과서를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한국에서 발행된 62종의 과학 교과서 중 사용금지를 당한 것은 18종인데 2종은 불인가, 13종온 검정무효 그리고 3종은 검정 무효 및 검정불허가 처분을 중복으로 받았다. 이는 과학 교과가 학부나 총독부의 검열로부터 다른 교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일제가 점차 교과서 통제를 강화하면서 과학 교과서에도 통제를 가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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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가사교과서'에 관한 연구: 1930년대를 중심으로 (Analysis of Household Textbooks for MiddleㆍHigh School in Colonial Age)

  • 전미경
    •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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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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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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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식민지 시대 가사교과서는 일제의 가정개량론 정책을 이해하는 핵심이면서 근대가족, 가사노동, 가정주부 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다. 이에 본 연구는 1928년에서 1937턴 사이에 발간된 8권의 가사교과서를 분석하였다. 이 교과서는 고등여학교 '가사'시간에 사용되었다. 연구문제는 크게 교과서의 외형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분석하는 것으로 양적연구와 질적연구를 병행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교과서 저자들이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가사교과서의 편제 방향은 '현대적', '최신식', '실질적', '응용적'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타 교과서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그림과 사진 등의 삽화를 싣고 있었다. 2. 교과서 저자들은 가사과의 목적을 생환개량이라고 하였고, 가사시간에 습득한 지식과 규율을 통해 가정의 생활개량을 이루고자 하였다. 3. 가사교과서의 외형적 특징을 살펴보면, 본문은 일본어 세로쓰기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국판(A5)이며 지질은 비교적 좋은 갱지인 중질지로 되어 있고, 명조체의 서체에 1단구성이며, 철사로 제본되어 있었다. 교과서 구성은 '겉표지-속표지-화보-머리말-목차-본문-부록-판권면-뒤표지'로 되어 있다. 4. 분석한 가사교과서는 모두 상하권으로 구성되었고. 교과내용은 크게 8영역으로 범주화 된다. 상권에는 의, 식, 주 영역이 하권에는 양로, 간호, 육아, 가정경제, 가정관리가 수록되어 있다. 5. 가사교과서는 집안일을 과학적ㆍ효율적ㆍ계획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주부'를 만들고 있었고, 이러한 가사교과서는 근대적 성별역할을 고착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었다.충북에서 심성암의 비율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전북, 강원, 경기도의 순으로 심성암의 점유율이 감소하며 경남과 전남이 12%, 10%로 가장 낮은 점유율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 70∼80%의 심성암 점유율을 보이는 석재자원과는 매우 다른 형태이다. 전남지역은 화산암 골재가 50% 이상이며, 경남은 퇴적암 골재가 50% 이상을 점한다. 또한 변성암의 골재 사용비율은 경기도, 충남에서는 거의 50% 수준에 육박한다. 골재 석산은 경기도, 경북, 경남, 충북에서 거의 비슷한 비율로 분포하며 오히려 전북에서의 골재 석산의 수는 적은 편에 속한다. 강원도가 골재석산의 수가 가장 적은 편이다.지렁이와 토양 미생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토양 중 반감기도 15일 이내로 토양 중에 노출 시 매우 신속하게 분해 소실되어 그 위해성은 매우 낮은 수준인 것으로 판단되며, 작물 재배지에서 밭고랑의 잡초 방제를 위해 비산방지 기구를 이용하여 살포할 경우에는 재배 작물에 안전한 것으로 판단되었다.0.65% 첨가했을 때 WG, SGR, FE, PER이 가장 높았으나, 이전의 실험(Takeuchi, 1980)과 동일한 수준인 n-3와 n-6를 각각 0.5%씩 첨가한 실험구와는 유의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뱀장어 치어의 필수지방산은 LNA (n-3), LA (n-6)이고, 그 적정수준은 각각 0.35-0.5%, 0.5-0.65%임을 보여준다.George W, Bush)가 새로운 지도자로 취임하여 얼마 되지 않은 2001년 9월 11일 사상 초유로 본토에서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 조직에 의해 공격받게 되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2개가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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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도서관의 역사적 고찰과 공공성 역할에 관한 연구 (A Study for Public Role of the Library on Historical Review in Republic of Indonesia)

  • 이정연
    • 한국비블리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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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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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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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연구는 인도네시아의 도서관 생성과정과 현황을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350여년의 서구와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도서관은 정보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고, 독립 후에 국민의 문해 진흥을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도서관을 설립하였지만, 아직도 체계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 대안적인 활동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난 지역별 커뮤니티 도서관이 개인 및 민간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도서관이 시민사회에서 평생교육 및 문화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실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 도서관의 공공성 증진을 위한 정책적 제안을 제시하였다.

전시총동원체제기 여성의 강제동원과 사실 규명의 과제 (Forced Mobilization of Women during the wartime general mobilization system and the task of Finding Facts)

  • 강혜경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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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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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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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일본제국주의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면서 전시총동원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전시총동원체제기에 접어들면서 일제는 여성들의 노동력에 주목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로도 여성들을 동원하였다. 식민지 조선은 물론 국외의 여성들까지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등으로 강제로 동원되었다. 여성들은 가내 노동은 물론 이미 동원된 남성들의 노동을 대신해야 했으며, 동시에 강제로 전쟁을 위해 동원되는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 여자근로정신대의 동원은 관청의 알선, 모집, 자발적인 지원,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취업 사기, 강제나 협박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강제적 여성 동원의 대표적 희생자였던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는 개별적으로 소송이 진행되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전시총동원체제기 여성의 강제동원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관련 기구를 통해 지속적인 연구와 사회적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