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소수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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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베트남 따이족 관광마을의 이미지와 관광객의 시선에 관한 연구 (Tourism Images and Tourist Gaze: An Ethnographic Study on the Ethnic Tay Tourism Villages in North Vietnam)

  • 최호림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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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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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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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베트남 호아빙(Hoa Binh)성 마이쩌우(Mai Chau) 현의 대표적인 따이(Tay)족 관광마을에서의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소수종족 관광마을의 이미지와 관광객의 시선에 관하여 고찰한 연구이다. 마이쩌우의 따이족 마을이 단순히 국민국가의 통치 대상으로서 독자적 전통과 고유한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사는 고립된 종족 마을에 머물지 않고 '문화관광 마을'로 변모해 온 과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관광의 대상이자 관광객을 맞이하는 주인으로서 소수종족집단의 역동성을 고찰하고 관광업의 영향에 의한 종족마을의 변화와 지속에 관해 살펴본다. 본 연구는 우선, 마이쩌우 따이족 마을에서 관광을 촉진하고 홍보하기 위해 활용되는 요소와 표현 방식을 살펴보고 관광산업이 관광할 가치가 있는 이국적인 면모를 어떻게 구분하여 재현하는지 해석한다. 둘째로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모습과 마을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관광이 실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해 기술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의 생활과 관광이미지 사이에는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고찰한다. 마을의 일상생활의 실체적 패턴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마을의 보다 정확한 모습이 그려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끝으로 서로 다른 관점과 동기에서 방문하는 다양한 관광객의 시선에 관해 분석하고자 한다.

베트남 라오까이 지역 흐몽족의 전통적 문화가치관에 미친 개신교의 영향 (Influences of Protestantism on some Traditional Cultural Values of Hmong Ethnic People in Lao Cai Province of Vietnam)

  • 응웬 반 히에우;조 꾸앙 선
    • 수완나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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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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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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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베트남 소수민족 공동체 중 Hmong족은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여겨져 왔다. 타지에서 베트남으로 이민 와서 다른 민족들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 왔지만 Hmong족은 자기의 민족문화 특색을 잘 지켜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전통적인 종교와 달리 새로운 종교를 믿게 되는 방향으로 Hmong족의 심령의 종교는 많이 변하고 있다. 그 중에 특히 주목받은 것은 개신교의 유입이다. 개신교는 직접적, 간접적 선교 방법으로 Lao Cai에 있는 Hmong족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Lao Cai의 많은 지방에서 사람들이 개신교를 믿게 되었고 그 중에는 가족이나 종족 환경에서 강제적 선교도 일어났다. 개신교는 Hmong족의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Hmong족의 전통 종교, 신앙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 글에서는 Hmong족이 살고 있는 Lao Cai 지방을 선택하여 고찰하며 Hmong족의 전통문화가치에 대한 개신교의 영향 및 원인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Hmong사람들은 전통신앙을 버리고 개신교를 믿게 되는 원인을 살펴보자. 주 원인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고 본다. -경제와 관련된 원인 -성별 불평등과 관련된 원인 -학문 수준과 정보 습득 희망과 관련된 원인 -전통문화, 심리와 민속의식과 관련된 원인 그리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각도에서 전통문화 가치에 대한 영향을 알아보았다. 첫째는 개신교가 Hmong사람의 전통사회체제에 큰 영향을 준 점, 둘째는 개신교가 Hmong사람의 풍속습관 및 전통 신앙에 영향을 준 점이다. 개신교가 Hmong사람의 전통사회체제에 큰 영향을 준 점은 여러 방면에서 보인다. 전통적인 가치와 개신교의 새로운 규정 사이의 충돌도 있고 가족 안에서 부부의 위치상 충돌도 있다. 또한 Hmong사람들에게 전통 종족의 역할, 위치를 약화시키는 영향도 주었고 산골 마을에서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새로운 충돌도 있다 개신교와 개신교의 교리는 역시 풍속습관과 전통신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첫째는 예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조상 숭배나 "집에 있는 귀신 숭배"같은 것보다 강력한 것이다. 그래서 Hmong사람의 신앙, 종교는 원시적 다신교부터 일신교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Hmong족의 전통 민속축제를 점차 멀리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들이 자기 민족의 전통문화 환경을 떠나 버리는 일도 있었다. 셋째는 개신교의 교리가 Hmong족의 풍속 규정을 바꾸게 하였고 Hmong사람들이 새로운 종교의 교리를 집행시켰다. 넷째는 인간 인생 주기에 관한 풍속습관 및 민속의례들은 의례 대상보다 의례 주제를 중심으로 삼는 것으로 점차 변화했다. 대체로 개신교가 Hmong족 공동체에 유입하여 이 민족의 전통문화 가치는 변화했다. Hmong족 공동체에 오래 존재해 왔던 낙후한 습관을 개선하는 점에서 개신교는 적극적 역할을 했다. 현재 문제점은 어떻게 전통문화가치를 유지하고 새로운 종교와 같이 존재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다음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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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흰나비 후뇌에 대한 전자현미경적 연구: 1. 신경세포의 종류와 그 미세구조

  • 최월봉;정진웅;안의태;이봉희;서지은
    • 한국동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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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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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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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
  • 종족발생학적 계통에 따른 소뇌에 대한 전자현미경적 연구의 일환으로서 발생과정이나 기능이 비슷한 무척추동물인 곤충강의 배추흰나비 (Pieris rapae Linne) 후뇌를 택하여 광학 및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 본 실험의 성적에서는 배추흰나비의 후뇌에서 출현하는 세포를 각각의 미세구조, 즉 세포의 크기, 모습, 세포질의 많고 적음, 세포소기관의 발달 정도등을 기준으로 삼아 분류하였던 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배추흰나비의 후뇌에서는 세포층은 구분되지 않았고 각각 다른 6가지의 세포형을 구분하였다. 제I형 세포는 가장 큰 세포이며, 긴 난원형 내지 방추형인데 핵도 긴 난원형이었다. 핵의 염색질은 비교적 적으나 세포질 양은 월등히 많고 세포소기관도 발달되었는데 granular endoplasmic reticulum의 발달은 미약하였다. 제II형 세포는 방추형이나 그 크기는 I형보다 작고 핵의 염색질의 양은 역시 적었다. Granular endoplasmic reticulum을 비롯하여 세포소기관이 발달하였다. 제III형 세포는 둔 삼각형으로서 핵은 구형이며 제I형세포보다 크기가 작고 세포소기관이 비교적 발달하였으며 특히 mitochondria가 많으며 주변세포질에 filaments가 많이 출현하였다. 제IV형 세포는 난원형이며 그 크기나 세포소기관의 발달 정도가 제III형보다 미약하나 다량의 polysome을 포함하고 있었다. 제V형 세포는 대체로 난원형이지만 긴 세포질 돌기를 많이 가져서 불규칙한 모습이며 핵은 난원형으로서 염색질양은 적은 편이었다. 세포질 내의 소기관의 발달은 불량한 편이나 많은 polysome이 세포질 전반에 걸쳐 출현하였다. 제VI형 세포는 방추형이고 핵은 긴 난원형이며 세포 크기는 III형과 IV형의 중간에 해당하였다. 세포소기관의 발달은 대체로 미약하였으며 다수의 polysome과 소수의 granular endoplasmic reticulum 및 mitochondria가 있었고, 세포질 내에 이따금 유모성 물질이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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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는 존재하는가: 지역연구와 지역의 의미 (Does Altai Exist?: Area Studies and the Meaning of "Area")

  • 남영호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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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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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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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알타이라는 명칭은 어족의 이름, 알타이 산맥 일대에 거주하는 민족의 이름 그리고 알타이어족의 사람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이름 등 여러 가지로 쓰이면서도, 그것이 의미있는 단위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이 논문에서는 알타이 어족의 분포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주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데에 이러한 논란의 핵심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알타이 문화권이라고 부를만한 문화적인 공통성과 역사적인 접촉이 있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근대를 겪으면서 의미있는 단위인 민족으로 묶어지지 않았고 또 그러한 의식이 형성되지도 않았기에 문화적 유사성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소비에트적인 근대화를 통한 종족 정체성의 재구성과 러시아,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강력한 개입, 불교, 기독교등 외래 종교의 뒤늦은 전래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타이를 지역 연구의 단위로 설정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이 지역에 특이한 현상만은 아니다. 이는 지역 설정이 물리적 환경에 따른 자연적인 경계 획정이 아니라, 문화정치적 관계에 따라 인위적으로 권력관계가 분배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타이의 사례는 그 지역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지역연구에서 지역을 균일한 "문화"를 지니는 것으로 미리 전제하는 것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함축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