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삼의당(三宜堂)

검색결과 2건 처리시간 0.016초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의 시경《詩經》에 대한 연구(硏究)

  • 박순철
    • 중국학논총
    • /
    • 제57호
    • /
    • pp.79-97
    • /
    • 2018
  • 三宜堂金氏是生活在朝鮮末期的女性詩人. 她是一個沒落士大夫的後代(金馹孫的後代), 18歲(1786)時與湛樂堂河笠締結婚姻. 她畢生留下的詩文均收錄於《三宜堂金夫人遺稿》之中, 該書於1930年出版. 三宜堂金氏十分善於寫詩, 《韓國漢詩》第3卷女性詩篇中共翻譯并收录了她的詩作59篇, 與黃真伊5篇, 蘭雪軒許氏30篇, 師任堂申氏2篇相比, 這组数字是对其實力的肯定. 甚至在趙東一编纂的《韓國文化通史》卷3中也提及到了三宜堂金氏, 可以說她是一位非常優秀的詩人. 三宜堂金氏作為士大夫閭閻家的詩人, 主要創作詩歌, 所創作的詩文中有不少關於#x300A;詩經》的內容. 她熟讀《詩經》并確立了《詩經》觀及詩觀, 很好地掌握并发挥《詩經》詩的效用性及活用性, 这为她自己詩歌性質和特色的形成, 奠定了基礎. 三宜堂金氏在自己創作的235篇詩中, 活用《詩經》詩句, 展示各種表現手法, 这是非常出色, 达到了其他诗人無法模仿的水平. 她使用的手法有以下几种:引用《詩經》詩語, 對《詩經》詩句進行再調和及化用, 《詩經》詩句的再造合及化用. 其中最高超的表現手法可以說是《詩經》詩句的再造合及化用. 金夫人在創作詩作時, 既有原封不動地引用《詩經》詩語或詩句的情況, 但大部分使用了《詩經》詩句再造合及利用的這種手法, 既類似於《詩經》詩句, 卻換作其它表現來表達自己的想法, 十分巧妙靈活. 這種活用不同與自春秋時代開始流行的《詩經》詩篇的"斷章取義". 金夫人將這種手法運用到自己的詩篇中, 既作爲詩的表現根據, 同時使詩具有含蓄性, 在營造詩歌古樸風格時, 呈現出高水平的境界.

조선 후기 서민(庶民) 여성작가(女性作家)의 시문(詩文)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지향의식 - 김삼의당(金三宜堂)과 강정일당(姜靜一堂)을 중심으로 - (A Recognition on Reality and consciousness of orientation in the poetic literature of the Common female writers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 Focuse on the KimSamuidang and GangJeongildang -)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 /
    • 제4권3호
    • /
    • pp.27-32
    • /
    • 2018
  • 본 연구는 조선 후기 몰락한 양반가의 서민 여성작가를 대표하는 구체적인 예로써 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과 강정일당(姜靜一堂)(1772~1832) 등 2인을 설정하여 이들의 시문(詩文)에 담긴 현실인식과 지향의식이라는 공통적 감성을 탐구하였다. 삼의당(三宜堂)은 가문의 부흥을 위해 남편의 과거 등과 뒷바라지에 헌신하면서 남편과 활발한 시문 교류를 통한 부덕(婦德)을 실현하였으며, 조선 시대 여류작가로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정일당(靜一堂)은 조선 후기의 여성 성리학자(性理學者)이자 시인이다. 그녀 역시 평생을 삯바느질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기울어가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남편의 훈육자(訓育者)로서의 자기 인식을 확고히 하고 학문을 독려하며 적극 지원하였다. 이들은 권면적(勸勉的) 지우(知友)로서의 부부평등 의식을 갖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통한 가문 선양을 지향하였다. 또한 전원적(田園的)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한 주체적 여성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