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사상(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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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시문과 회화를 통해 본 연(Nelumbonucifera)의 활용과 애호 행태 (Utility and Care Patterns of Lotus Shown in Classic Poetries and Proses, Painting)

  • 김명희;홍형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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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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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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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옛사람들이 '연'이라는 식물소재를 활용한 방법과 그로부터 취하고자 했던 가치와 의미, 감상 태도 등에 대한 실제적 사례들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를 위한 연구의 방법은 연에 대한 감상과 관념세계가 반영된 시문과 회화를 고찰하고 해석하는 기술(description)적 연구방법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의 관상 가치는 대규모 집단식재와 부지규모의 소규모 식재, 분연(盆蓮)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특히 대규모 면적에 집단적으로 식재된 연은 여타의 초화류와 차별화되는 독특한 경관을 제공하였다. 별서와 후원 등 사적인 공간에 연지를 조성하고, 연을 애호한 여러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소는 연이 개화할 무렵에 아회의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다. 작은 연지조차 조성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분지를 이용하여 연을 즐기기도 하였다. 또 꽃과 잎, 줄기와 연밥 등 세부요소 모두의 관상가치가 뛰어난 점은 연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둘째,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향원익청(香遠益淸)'으로 표현된 향기는 연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이다. 전통정원에 있어서 연은 향기를 제공하는 후각적 요소로 활용되었다. 옛사람들은 연의 향기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 더해 '군자의 품격'에 비유되는 상징물로 여겼으며, 이를 시문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셋째, 연은 청각적 요소로도 활용되었다. 즉, 수면과 넓은 연잎에 빗방울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를 '연당청우(蓮塘廳雨)' 또는 '하당야우(荷塘夜雨)'라 하여 운치 있는 소리로 즐겼다. 넷째, 연꽃을 구경하는 여름놀이를 '세속에 오염된 마음을 씻는다'라는 의미의 세심(洗心)놀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풍류는 일반 서민들로부터 왕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이 즐겼다. 이 밖에 연과 관련된 풍류로 큰 연잎과 속이 빈 줄기의 특징을 이용하여 술을 마시는 방법인 '벽통주(碧筒酒)' 혹은 '하심주(荷心酒)', 상비주(象鼻酒)가 있다. 또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유별이 엄격하던 조선시대에 연밥과 '채련곡'은 남녀 간의 연애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기호(記號)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많은 '채련곡'이 전해지며, 남녀 간의 애정을 묘사한 여러 풍속화에는 연당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연은 고대 이래로 사상과 종교 등 문화적 배경을 초월해 폭 넓은 계층이 애호하여 왔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연이 갖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와 사찰 등 종교시설과 관련된 식재 사례를 다각적으로 고찰하지 못한 점은 본 연구의 한계이며 추후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무언극 <빈손>을 통해 본 진도씻김굿의 연극화 가능성 (The Possibility of Making a Play out of Jindo Ssitgimgut through the Pantomime Empty Hands)

  • 김미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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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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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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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마임하우스에서 펼쳐진 무언극 <빈손>을 보고 진도씻김굿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무언극 <빈손>은 마치 진도씻김굿을 무언극의 형태로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마임이스트 유진규(柳鎭奎 58)가 펼치는 연기적인 요소들은 진도씻김굿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극의 내용 면에서도 무속을 기반으로 하는 굿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필자는 이런 무언극 <빈손>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원형이 가지고 있는 문화콘텐츠 개발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런던마임축제의 예술감독 Helen Lannaghan은 춘천마임축제 컨퍼런스에 참가하여 공연을 보고 한국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미니멀하고 모던한 무언극 <빈손>을 런던마임축제에 초청하였다. 한국적 오브제, 동양 사상과 사물놀이, 서양의 현대마임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2000년 프랑스 미모스 마임축제, 2001년 폴란드 마임축제, 2002년 몽골 마임축제, 2003년 벨기에 국제 마임축제 등 해외 축제 초청 공연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무언극 <빈손>은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런던마임축제 공연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로 발돋움 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을 상징하는 우리의 몸짓을 유감없이 발휘한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필자는 이런 무언극 <빈손>을 통해 앞으로 진도씻김굿 같은 대한민국의 문화원형을 활용한 연극 공연이 세계적인 공연문화 콘텐츠로써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런 견지에서 무언극 <빈손>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진도씻김굿이 공연문화 콘텐츠로 어떤 치밀한 스토리텔링을 활용해야 세계적인 공연 무대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무언극 <빈손>은 다시 한번 세계적으로 발돋움 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다산의 인간관과 효(孝)·제(弟)·자(慈)의 실천 (Tasan's Viewpoint of Human Being and Practice of Xiao (孝)·Ti(弟)·Ci(慈))

  • 정상봉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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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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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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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논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형이상학적 설명을 한 주자의 관점을 비판하였던 다산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했는가, 그리고 인간의 윤리실천에 대하여 어떤 주장을 하였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다산에 따르면, 신체와 정신의 결합체인 인간은 신체적 성향과 도덕적 성향을 타고난다. 특히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성향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이것은 상제로서의 하늘이 인간에게만 부여해 준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율적 판단능력과 주체적 실천의지인 자주지권(自主之權)을 갖추고 있다. 향선(向善)의 경향성이 있지만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행실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이에 상제(上帝)는 인간의 동기와 행위의 선악 여부를 언제 어느 때고 감찰한다. 상제의 목소리는 인간의 도심(道心)을 통해 울려나온다. 이것이 윤리실천의 외적 동인(動因)이요, 내적 동인이다. 인간의 제반 실천윤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표상한 개념어가 바로 인(仁)이다. 즉 인간은 부모와 자식 형과 동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친구 등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상에 합당한 도리의 실천을 통하여 인(仁)의 덕을 쌓아간다. 인(仁)의 덕(德)을 이루는 데는 효(孝) 제(弟) 자(慈)가 기본이다. 이 천륜에 관한 윤리에는 유가윤리의 쌍무적 정신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효(孝)를 바탕으로 임금을 섬기고, 제(弟)를 바탕으로 어른을 섬기며, 자(慈)를 바탕으로 백성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이 효(孝) 제(弟) 자(慈)를 토대로 한 윤리실천의 방법이 바로 '서(恕)'다. 서(恕)는 나의 마음을 미루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추서(推恕)로서 신체적 성향에 관한 것과 도덕적 성향에 관한 것을 두루 포괄한다. 전자의 경우, 자기 욕구의 절제나 양보가 필요하다. 후자의 경우는 공동체 사회내의 당위의 구현을 목표로 삼는다. 결론적으로 다산의 윤리학은 도덕적 성향과 자주지권을 갖고 타고난 인간은 상제의 뜻이 투영된 도심(道心), 즉 도덕적 양심에 귀 기울여 효(孝) 제(弟) 자(慈)의 윤리를 서(恕)의 방법에 따라 실천해 나감으로써 인(仁)의 덕(德)을 쌓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요, 또한 상제인 하늘을 섬기는 길인 것이다. 이에 다산은 수사지학(洙泗之學), 즉 공맹철학의 핵심사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경제문감(經濟文鑑)·별집(別集)』에 나타난 주례(周禮) 이념 (Idea of Jurye Shown on GyeongJeMunGam and GyeongJeMunGamByeolJip)

  • 김인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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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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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3-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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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논문 ""경제문감 별집"에 나타난 주례 이념"을 고찰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은 후세의 평가가 어떻든간에 조선의 건국이념을 제시하고 관료 체제의 정비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조선 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정도전은 "주례"를 사회개혁의 이념 모델로 삼아 태조 3년(1394)에 "조선경국전"을 찬진(撰進)하였다.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이 신왕조의 문물제도를 정하는 일환으로 저술한 새로운 법전(法典)의 지침서(指針書)로서, 신왕조의 지배 사상인 유교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경제문감"은 "조선경국전" 치전(治典)의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주로 재상의 직책과 재상의 직무를 비롯해 대간(臺諫)과 감사(監査)는 물론 지방 수령의 직책에 대해 논했다면, "경제문감별집"은 임금의 도리를 논한 "군도(君道)"와 임금의 도리를 역철학(易哲學)의 입장에서 부연한 "의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경제문감"이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재상 제도의 변천과 득실(得失)은 물론 재상의 직책과 진퇴의 자세를 상세히 기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간(臺諫), 위병(衛兵), 감사(監司), 수령(首領)의 직책과 직무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경제문감별집"은 군주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군주수신(君主修身)을 통해 마음을 바로잡고 덕을 닦아 어질고 유능한 재상을 임명해 정치하게 하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하였다.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의 『대학(大學)』 독해(讀解)와 그 특징(特徵) (Seoktan Lee Shin-Ui's the Characteristic and Interpretation of Deahak(大學, The Great Learning))

  • 신창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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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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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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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고는 석탄 이신의의 "대학차록(大學箚錄)"을 통해, "대학"을 바라보는 그의 독창적 안목을 고찰하는 작업이다. 이신의(李?儀, 1551-1627)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는 경칙(景則)이며 호는 석탄(石灘),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그의 "대학차록"은 "대학장구"를 읽고 체득한 내용을 수시로 적은 기록으로 석탄이 정치지도자로서 기초를 다지는 학문의 초기 과정에서 저술되었다. 석탄은 "대학장구"의 체제인 장(章)과 구(句)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분석적 학문방법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대학장구""서"에서는 대학의 핵심이 경(敬)에 있음을 강조하였고, "대학"이 심(心)과 성(性)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대학(장구)대전"의 경문(經文) 독해에서는 삼강령(三綱領)의 핵심을 명(明)과 신(新)과 지(止)에 달려 있다고 보고, 대학의 '도(道)', '명(明)'과 '덕(德)'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을 비롯한 "대학"의 여러 개념과 의미를 지(知)와 행(行),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읽어내며, 성리학을 한층 발전시켰다. "대학장구" 전문(傳文) 독해의 경우, 전 10장 전체에 걸쳐 50여구 하나하나를 분석적으로 검토하였다. 주자의 격물(格物) 이론이 담겨 있는 전5장의 경우,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해독하면서, 이치의 궁구와 개별 사물에 대한 격물치지(格物致知), 모든 사물에 대한 물격지지(物格知至)로 나누어 '이치-공부-효험'의 순서로 정돈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치사상의 핵심을 보여준 전10장에서는 혈구(?矩)의 길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이 목민관의 제일 덕목임을 일러주고 있다.

유교경전교육(儒敎經典敎育)을 위한 반성적(反省的) 고찰(考察) (A reflection on the education of Confucian classics)

  • 진성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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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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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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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유교경전교육의 올바른 방향설정을 위한 기초적인 작업으로서 유교경전교육의 필요성이 과연 당위적인 것인가, 혹은 자연적인 것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역사적 고찰을 시도하였다. 즉 동아시아에서 경전(經典)의 의미, 중국문화의 경전화(經典化) 과정을 살펴보고, 경전화(經典化)의 문화적 의미를 검토하였다. 또한 한국 유교경전교육의 역사적 전개과정 및 현대사회에서 유교경전교육의 의미와 두 가지 딜레마에 관해 살펴보았다. 끝으로 유교의 핵심윤리인 오륜(五倫)의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야 하는 정당성 및 유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의의, 그리고 유교경전교육의 반성적 고찰의 의미에 관해 살펴보았으며, 아울러 새로운 유교경전교육 컨텐츠 개발을 위해 세 가지 주제에 관한 기존의 접근 방법과 새로운 적용 방안을 제언형식으로 비교 검토하였다. 최초의 유교경전이 선험적(先驗的)으로 결정되지 않았듯이 현대의 유교경전에 대한 이해 역시 철저한 검토 종합 반성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체계로 이해 및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현대사회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교육방법으로서 관련 컨텐츠의 개발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맞는 가치들을 발굴 계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기에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유교경전교육에 대한 유용성[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유교경전교육 컨텐츠에 대한 엄정한 선별작업이 필요하며, 아울러 이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과 현대사회에서 기능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적 요소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 효용과 미래적 전망을 내놓지 못한 어떠한 사상이나 문명은 언제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이 현대 유교경전교육의 반성적 고찰이 필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춘추(春秋)』왕력(王曆)① - 송대(宋代) 이후 춘추력수(春秋曆數)의 개월(改月)·개시(改時) 논의에 대한 소고(小考) (『Chūn-qiū』Wáng-lì(『春秋』王曆)① - A Study on the Discussion of 'the Changes in the Names of Months and a Season(改月改時)' in the calendar of 『Chūn-qiū(春秋)』 since Song(宋) Dynasty)

  • 서정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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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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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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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춘추(春秋)" 경문(經文)에서는 기월법(紀月法)으로 '춘왕정월(春王正月)'의 표현 방식을 썼으며, 동짓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고 그때부터 3개월을 춘(春)이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춘추(春秋)"왕력(王曆)에 대해 그것의 월호(月號)와 계절명을 공자가 바꾸어 기록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송대(宋代) 이래로 '공자(孔子)의 개월(改月) 개시(改時)' 설(說), '공자(孔子)의 불개월(不改月) 개시(改時)' 설, '공자(孔子)의 불개월(不改月) 불개시(不改時)' 설 세 가지의 서로 다는 주장들이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설은 호안국(胡安國)과 채침(蔡沈)이, 두 번째 설은 정이(程?)와 주희(朱熹)가 언급한 것이다. 세 번째 설은 그 주창자가 명대(明代) 이후에 두드러지기 시작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로 왕수인(王守仁)을 들 수 있다. 그들 모두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고경(古經)과 유교 전적의 기록들 속에서 찾고 있는데, 동일한 기록을 가지고 서로 다른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경우도 보인다. 공자의 이른바 '춘추필법(春秋筆法)'과 '술이불작(述而不作)'은 존왕사상(尊王思想)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공자가 "춘추"의 저자라고 가정한다 해도, "춘추(春秋)"의 역수(曆數)에서 정말로 공자가 개월(改月)이나 개시(改時)를 감행하였을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공자의 "춘추" 역수 개입과 관련한 설들은, 사실상 당대(唐代)까지는 대립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이다.

조선시대 『노자(老子)』 주석서에서 '인의(仁義)'와 '사(私)' 개념의 전개 (Developing of 'benevolence and justice(仁義)' and 'individual's self desire(私欲)' in Chosŏn commentators of Daodejing (道德經))

  • 김윤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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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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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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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시대 "노자" 주석의 특징은 '유학자의 노자 읽기(이유석노(以儒釋老))'로 대표된다. 그러나 조선사상사 안에서 "노자" 주석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좀 더 미시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본 논문에서는 유학과 대립되는 "노자"의 '인(仁)을 끊고 의(義)를 버린다(절인기의(絶仁棄義))', '성인은 어질지 않다(성인불인(聖人不仁))' 등의 사유가 5종의 "노자" 주석서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를 살피고, 나아가 시대에 따른 해석의 변화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인의(仁義)'는 당대 사회의 윤리적 표지이며, 모두가 따라야 할 공동체의 선이었다. 이이 박세당 홍석주가 "노자" 텍스트 상의 '인의(仁義)' 부정에 대해 유자(儒者)의 입장에서 비판하거나, '인의(仁義)'를 적극 변호한다면, 서명응과 이충익에 이르면 '인의(仁義)'는 '공공선'의 위상에서 벗어나, 판단 주체의 도덕적 자각이 요구되는 도덕률로 언급된다. 또한 율곡과 홍석주가 '천리(天理)의 공(公)'으로서의 '인의(仁義)'의 추구가 '무사(無私)'라고 본다면, 이충익에게서 '무사(無私)'란 개체의 이익을 위해 인의(仁義)를 따르는 것을 반성해야 되는 상태이다. 이 때 반성의 주체는 사회공동체가 아닌 개인이다. 요컨대 조선시대 "노자(老子)" 주석사 안에서 '도덕률'에 대한 인식변화는, 천리(天理)의 당위성이 강조되는 중세시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공동체의 선(善)'이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 안에서 개인은 도덕률의 순종자에서 도덕률의 판단 주체로 변모하였다. 서명응 이충익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는 18세기 정치 이데올로기화 된 정주학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 과정이 투영되어 있다.

봉우권태훈(鳳宇權泰勳) 선생(先生)의 조식법(調息法)(용호비결(龍虎秘訣))과 『대학(大學)』·『중용(中庸)』의 상위표리설(相爲表裏說)에 관한 고찰(考察) (Study on the Respiration Control Method(yonghobigyeol) of Bongwoo Gwon Tae-hoon and the Xiangweibiaolishuo (duplicity theory) in Daxue/Zhongyong)

  • 권영훈;봉학근;윤대중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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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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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7-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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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글은 우리 시대 선도(仙道)의 개조(開祖) 이자 유학자(儒學者)인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 선생이 개진(開陳)하고 있는 도가(道家)의 "용호비결(龍虎秘訣)"과 유가(儒家)의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자(兩者)의 표리관계(表裏關係)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선생은 공자문하(孔子門下)의 전수심법(傳受心法)이 담겨있는 유가의 경전을 "대학(大學)" "중용(中庸)"과 더불어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으로 보았는데, 이 가운데 주자(朱子)가 주석(註釋)한 "대학장구(大學章句)" '삼강령(三綱領)'의 해석이 송대(宋代) 당시의 시대 논리에 원용되어 공문(孔門)심법 본래의 요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주자의 의도적 해석이라고 보아, "대학" '삼강령(三綱領)'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가(加)하였고, 더불어 "중용(中庸)" '윤집궐중(允執厥中)'의 '중(中)' 자(字)의 함의를 '일중론(一中論)'으로 밝히는 등의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공문심법의 본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또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기저(基底)에 더하여 공자(孔子)가 "주역계사전(周易繫辭傳)"에서 "역경(易經)"의 주요 요지를 뽑아내어서 지었다고 하는 '원상법(原象法)'을 유가의 형이상학(形而上學) 공부의 정수로 삼아 이를 도가(道家)의 용호비결(龍虎秘訣)과 함께 수련 공부의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제시하여 양자(兩者)의 밀접한 유기성에 주목 하였다. 이와 같은 "대학" '삼강령'의 새로운 해석을 통한 "대학(大學)"의 본지(本旨)규명과 "대학(大學)" "중용(中庸)" "계사전(繫辭傳)" 삼자일관(三者一貫)의 유기성에 대한 심고(審考), 그리고 도가와 유가 양가(兩家)의 원리를 합일시킨 '이교합일(異敎合一)'의 공부론 등은 조선조 청하자(靑霞子) 권극중(權克中)의 '선란호수론(禪丹互修論)' 이래의 일로서 선생이 우리의 사상계에 남겨놓은 새로운 화두라고 할 것이다.

1196년 경원당화(慶元黨禍)의 사상정국에서 주희의 정치적 좌절을 통해서 본 주희의 도학정치고찰 (A Study of Zhuxi's Daoxuezhengzhi(道學政治) through his political frustration in the partisan struggle of 1196 Qingyuandanghuo(慶元黨禍))

  • 이욱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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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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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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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의 목적은 정치상황별로 주희가 제기한 정치적 의견들과 주희의 일관된 정치적 문제의식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그가 추구한 도학정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남송의 문제는 정치였다. 정치의 구조적 모순이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하였다. 주희에게 정치의 시작처는 황제와 조정이었고, 정치의 결과처는 백성이었다. 조정에 대해서 주희는 황제의 측근들이 황제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 중심의 정치세력을 조장함으로서 조정이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정치부패로 전개되었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서 황제권의 약화, 기강의 붕괴와 공론과 공의의 부재가 조정에서 이루어졌고, 조정 밖으로는 정치적 신뢰의 부재, 민생의 피폐와 풍속의 악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남송의 정국은 측근들의 정치적 성격과 정향이 바뀌었을 뿐, 정치부패의 기저인 정치행태와 정치문화는 변화가 없었다. 정치부패의 일상화는 남송 전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주희는 남송의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접근의 우선성을 보여준다. 주희의 정치적 접근은 위로는 황제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황제에게 정심술과 공평한 인사정책을 통한 기강확립의 요구는 정치의 시작처인 조정 정치에 대한 해법이었다. 백성들의 삶과 직결된 지방공무원들 중 친 권신 중심세력들의 제거, 그리고 군전제나 경계법처럼 정치적성격을 갖고 있는 정책에 대한 개혁의 요구는 정치의 결과처인 민생 정치에 대한 해법이었다. 그러나 주희의 정치적 이슈들은 남송 정국의 복잡한 권력구조와 역학관계에 의해 빈번히 좌절되었다. 경원당화는 주희의 그러한 정치적 좌절의 최종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주희의 도학정치의 실패뿐만 아니라 남송 도학정치의 중단을 야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