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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민간 빈민구제시설 진민소[賑民所]에 관한 연구 (Study on Jinminso as an Indoor Relief Institution)

  • 양옥경
    • 한국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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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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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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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구한말 민간 빈민구제시설로 보이는 진민소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의 목적은 진민소 관련 사료의 발굴과 발굴된 사료의 객관적인 분석 및 해석이다. 연구를 위해 진민소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사료들을 검색했으며, 관찬사료 11개와 민간사료 40개를 찾았다. 분석결과 진민소는 민간에서 민간의 자본으로 조선사람들이 스스로 설립한 민간 구빈 시설이었다. 전 승지였던 고운정과 교원 윤태진 등 16명이 1898년 6월 25일 서소문 전 선혜청 자리에 설립하였다. 설립비용은 16명이 추렴한 각 2만냥과 시골부인들의 의조금 10만냥으로 총 42만냥의 민간자금이었다. 설립취지는 곤궁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황제의 구휼부담의 분담이었으며, 백성들이 유망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 동포의 의리로 볼 때 빈부가 비록 다르더라도 사랑하고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약 300명에게 밥과 옷을 지급하고, 치료 및 장례를 진행하였다. 그러다 같은 해 10월 27일 고종황제로부터 혁파의 명을 받아 폐쇄되었다. 이후 1899년 3월 20일경 재설치되었는데, 고운정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운영은 정부에서 하였다. 장소는 종로 전 감옥의 자리였다. 진민소는 비록 짧은 기간동안 존재했었지만, 빈민구제가 주로 정부의 역할이었던 때 정부 진휼기관인 진휼청이 폐지된 상태에서 민간이 설립, 운영한 시설이다. 갑오개혁으로 진휼청이 폐쇄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진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민구휼이 문제였던 시점에 세워진 진민소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회복지역사에 있어 큰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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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빈원을 폐하라: 사드와 18세기 말 프랑스의 구빈원에 대한 연구 ("The Burning of Hospitals": Sade's Thoughts on Hospitals from the Ancien Regime to the End of the 18th Century)

  • 이충훈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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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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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9-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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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사드의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리베르탱들은 빈민을 마주할 때 느끼게 마련인 연민과 동정이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며, 이런 취지로 구체제 프랑스 곳곳에 세워진 구빈원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사상가와 행정가들은 구체제 구빈원의 폐해를 다룬 보고서를 출판하면서, 구빈원이 빈민구제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켰음에 주목한 바 있다. 아울러 프랑스혁명 이후 입법의회는 구빈원 시설과 재산의 국유화를 시도했으며, 극단적으로 구빈원과 자선시설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사드의 구빈원에 대한 거부가 동시대 사람들이 구체제 구호체계에 제기한 비판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특히 프랑스혁명기 의회를 장악한 혁명세력은 구빈원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대신, 소규모 구제원이나 가택 치료의 방안을 내세워 행정을 간소화하고 비용을 줄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구제원이나 가택 치료의 구체적인 안이 사드의 소설에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드의 주인공들이 사회의 빈곤 문제를 철학,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입장에서 조망하면서, 새로운 공화국의 이상과 구체적인 사정에 맞는 새로운 구호체제가 필요함을 논리적으로 역설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드는 혁명의 힘이 약화될 때 구체제의 구빈원 제도가 재건될 것임은 물론, 이미 프랑스혁명이 추방했던 종교와 전제주의 역시 구빈원과 함께 복귀할 수 있음을 경계했다. 그리고 적어도 이점에 대한 사드의 우려가 틀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