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비정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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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科學者)의 정보생산(情報生産) 계속성(繼續性)과 정보유통(情報流通)(2)

  • Garvey, W.D.
    • Journal of Information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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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6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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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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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
  • 본고(本稿)시리이즈의 제1보(第一報)에서 우리는 물리(物理), 사회과학(社會科學) 및 공학분야(工學分野)의 12,442명(名)의 과학자(科學者)와 기술자(技術者)에 대한 정보교환활동(情報交換活動)의 78례(例)에 있어서 일반과정(一般過程)과 몇 가지 결과(結果)를 기술(記述)한 바 있다. 4년반(年半) 이상(以上)의 기간(其間)($1966{\sim}1971$)에서 수행(遂行)된 이 연구(硏究)는 현재(現在)의 과학지식(科學知識)의 집성체(集成體)로 과학자(科學者)들이 연구(硏究)를 시작(始作)한 때부터 기록상(記錄上)으로 연구결과(硏究結果)가 취합(聚合)될 때까지 각종(各種) 정형(定形), 비정형(非定形) 매체(媒體)를 통한 유통정보(流通情報)의 전파(傳播)와 동화(同化)에 대한 포괄적(包括的)인 도식(圖式)으로 표시(表示)할 수 있도록 설정(設定)하고 또 시행(施行)되었다. 2보(二報), 3보(三報), 4보(四報)에서는 데이터 뱅크에 수집(蒐集) 및 축적(蓄積)된 데이터의 일반적(一般的)인 기술(記述)을 적시(摘示)하였다. (1)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의 정보유통(情報流通)에 있어서 국가적(國家的) 회합(會合)의 역할(役割)(Garvey; 4보(報)) 국가적(國家的) 회합(會合)은 투고(投稿)와 이로 인한 잡지중(雜誌中) 게재간(揭載間)의 상대적(相對的)인 오랜 기간(期間)동안 이러한 연구(硏究)가 공개매체(公開媒體)로 인하여 일시적(一時的)이나마 게재여부(揭載如否)의 불명료성(不明瞭性)을 초래(招來)하기 전(前)에 과학연구(科學硏究)의 초기전파(初期傳播)를 위하여 먼저 행한 주요(主要) 사례(事例)와 마지막의 비정형매체(非定形媒體)의 양자(兩者)를 항상 조직화(組織化)하여 주는 전체적(全體的)인 유통과정(流通過程)에 있어서 명확(明確)하고도 중요(重要)한 기능(機能)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잡지(雜誌)에 게재(揭載)된 정보(情報)의 생산(生産)과 관련(關聯)되는 정보(情報)의 전파과정(傳播過程)(Garvey; 1보(報)). 이 연구(硏究)를 위해서 우리는 정보유통과정(情報流通過程)을 따라 많은 노력(努力)을 하였는데, 여기서 유통과정(流通過程)의 인상적(印象的)인 면목(面目)은 특별(特別)히 연구(硏究)로부터의 정보(情報)는 잡지(雜誌)에 게재(揭載)되기까지 진정으로는 공개적(公開的)이 못된다는 것과 이러한 사실(事實)은 선진연구(先進硏究)가 자주 시대(時代)에 뒤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험(經驗)이 많은 정보(情報)의 수요자(需要者)는 이러한 폐물화(廢物化)에 매우 민감(敏感)하며 자기(自己) 연구(硏究)에 당면한, 진행중(進行中)이거나 최근(最近) 완성(完成)된 연구(硏究)에 대하여 정보(情報)를 얻기 위한 모든 수단(手段)을 발견(發見)코자 하였다. 예를 들어, 이들은 잡지(雜誌)에 보문(報文)을 발표(發表)하기 전(前)에 발생(發生)하는 정보전파과정(情報傳播過程)을 통하여 유루(遺漏)될지도 모르는 정보(情報)를 얻기 위하여 한 잡지(雜誌)나 2차자료(二次資料) 또는 전형적(典型的)으로 이용(利用)되는 다른 잡지류중(雜誌類中)에서 당해정보(當該情報)가 발견(發見)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정보생산 과학자(情報生産 科學者)"에 의한 정보전파(情報傳播)의 계속성(繼續性)(이 연구(硏究) 시리이즈의 결과(結果)는 본고(本稿)의 주내용(主內容)으로 되어 있다.) 1968/1969년(年)부터 1970/1971년(年)의 이년기간(二年期間)동안 보문(報文)을 낸 과학자(科學者)(1968/1969년(年) 잡지중(雜誌中)에 "질이 높은" 보문(報文)을 발표(發表)한)의 약 2/3는 1968/1969의 보문(報文)과 동일(同一)한 대상영역(對象領域)의 연구(硏究)를 계속(繼續) 수행(遂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본연구(本硏究)에 오른 대부분(大部分)의 저자(著者)가 정상적(正常的)인 과학(科學), 즉 연구수행중(硏究遂行中) 의문(疑問)에 대한 완전(完全)한 해답(解答)을 얻게 되는 가장 중요(重要)한 추구(追求)로서 Kuhn(제5보(第5報))에 의하여 기술(技術)된 방법(방법)으로 과학(연구)(科學(硏究))을 실행(實行)하였음을 알았다. 최근(最近)에 연구(硏究)를 마치고 그 결과(結果)를 보문(報文)으로서 발표(發表)한 이들 과학자(科學者)들은 다음 단계(段階)로 해야 할 사항(事項)에 대하여 선행(先行)된 동일견해(同一見解)를 가진 다른 연구자(硏究자)들의 연구(硏究)와 대상(對象)에 밀접(密接)하게 관련(關聯)되고 있다. 이 계속성(繼續性)의 효과(效果)에 대한 지표(指標)는 보문(報文)과 동일(同一)한 영역(領域)에서 연구(硏究)를 계속(繼續)한 저자(著者)들의 약 3/4은 선행(先行) 보문(報文)에 기술(技術)된 연구결과(硏究結果)에서 직접적(直接的)으로 새로운 연구(硏究)가 유도(誘導)되었음을 보고(報告)한 사항(事項)에 반영(反映)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데이터는 다음 영역(領域)으로 기대(期待)하지 않은 전환(轉換)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同一) 대상(對象)에서 연구(硏究)를 속행(續行)하였던 저자(著者)들의 1/5 이상(以上)은 뒤에 새로운 영역(領域)으로 연구(硏究)를 전환(轉換)하였고 또한 이 영역(領域)에서 연구(硏究)를 계속(繼續)하였다. 연구영역(硏究領域)의 이러한 변화(變化)는 연구자(硏究者)의 일반(一般) 정보유통(情報流通) 패턴에 크게 변화(變化)를 보이지는 않는다. 즉 새로운 지적(知的) 문제(問題)에 대한 변화(變化)에서 야기(惹起)되는 패턴에 있어서 저자(著者)들은 오래된 문제(問題)의 방법(方法)과 기술(技術)을 새로운 문제(問題)로 맞추려 한다. 과학사(科學史)의 최근(最近) 해석(解釋)(Hanson: 6보(報))에서 예기(豫期)되었던 바와 같이 정상적(正常的)인 과학(科學)의 계속성(繼續性)은 항상 절대적(絶對的)이 아니며 "과학지식(科學知識)"의 첫발자욱은 예전 연구영역(硏究領域)의 대상(對象)에 관계(關係)없이 나타나는 다른 영역(領域)으로 내딛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연구(硏究)에서 저자(著者)의 1/3은 동일(同一) 영역(領域)의 대상(對象)에서 속계적(續繼的)인 연구(硏究)를 수행(遂行)치 않고 새로운 영역(領域)으로 옮아갔다. 우리는 이와 같은 데이터를 (a) 저자(著者)가 각개과학자(各個科學者)의 활동(活動)을 통하여 집중적(集中的)인 과학적(科學的) 노력(努力)을 시험(試驗)할 때 각자(各自)의 연구(硏究)에 대한 많은 양(量)의 계속성(繼續性)이 어떤 진보중(進步中)의 과학분야(科學分野)에서도 나타난다는 것과 (b) 이 계속성(繼續性)은 과학(科學)에 대한 집중적(集中的) 진보(進步)의 필요적(必要的) 특질(特質)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이 계속성(繼續性)과 관련(關聯)되는 유통문제(流通問題)라는 새로운 대상영역(對象領域)으로 전환(轉換)할 때 연구(硏究)의 각단계(各段階)의 진보(進步)와 새로운 목적(目的)으로 전환시(轉換時) 양자(兩者)가 다 필요(必要)로 하는 각개(各個) 과학자(科學者)의 정보수요(情報需要)를 위한 시간(時間) 소비(消費)라는 것을 탐지(探知)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觀察)은 정보(情報)의 선택제공(選擇提供)시스팀이 현재(現在) 필요(必要)로 하는 정보(情報)의 만족(滿足)을 위하여는 효과적(效果的)으로 매우 융통성(融通性)을 띠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暗示)하는 것이다. 본고(本稿)의 시리이즈에 기술(記述)된 전정보유통(全情報流通) 과정(過程)의 재검토(再檢討) 결과(結果)는 과학자(科學者)들이 항상 그들의 요구(要求)를 조화(調和)시키는 신축성(伸縮性)있는 유통체제(流通體制)를 발전(發展)시켜 왔다는 것을 시사(示唆)해 주고 있다. 이 시스팀은 정보전파(情報傳播) 사항(事項)을 중심(中心)으로 이루어 지며 또한 이 사항(事項)의 대부분(大部分)의 참여자(參與者)는 자기자신(自己自身)이 과학정보(科學情報) 전파자(傳播者)라는 기본적(基本的)인 정보전파체제(情報傳播體制)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過程)의 유통행위(流通行爲)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대부분(大部分)의 정보전파자(情報傳播者)가 역시 정보(情報)의 동화자(同化者)-다시 말해서 과학정보(科學情報)의 생산자(生産者)는 정보(情報)의 이용자(利用者)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구(硏究)에서 전형적(典型的)인 과학자((科學者)는 과학정보(科學情報)의 생산(生産)이나 전파(傳播)의 양자(兩者)에 연속적(連續的)으로 관계(關係)하고 있음을 보았다. 만일(萬一) 연구자(硏究者)가 한 편(編)의 연구(硏究)를 완료(完了)한다면 이 연구자(硏究者)는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관념(觀念)을 갖게 되고 따라서 "완료(完了)된" 연구(硏究)에 관한 정보(情報)를 이용(利用)하여 동시(同時)에 새로운 일을 시작(始作)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과학자(科學者)가 동일(同一) 영역(領域)의 다른 동료연구자(同僚硏究者)에게 완전(完全)하며 이의(異議)에 방어(防禦)할 수 있는 보고서(報告書)를 제공(提供)할 수 있는 단계(段階)에 도달(到達)하였다면 우리는 이 과학자(科學者)가 정보유통과정(情報流通過程)에서 많은 역할(役割)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이 과학자(科學者)는 다른 과학자(科學者)들에게 최신(最新)의 과학적(科學的) 결과(結果)를 제공(提供)할 때 하나의 과학정보(科學情報) 전파자(傳播者)가 되며, 이 연구(硏究)의 의의(意義)와 타당성(妥當性)에 관한 논평(論評)이나 비평(批評)을 동료(同僚)로부터 구(求)하는 관점(觀點)에서 보면 이 과학자(科學者)는 하나의 정보탐색자(情報探索者)가 된다. 또한 장래(將來)의 이용(利用)을 위하여 증정(贈呈)이나 동화(同化)한 이 정보(情報)로부터 피이드백을 받아 드렸을 때의 범주(範疇)에서 보면 (잡지(雜誌)에 투고(投稿)하기 위하여 원고(原稿)를 작성(作成)하는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과학자(科學者)는 하나의 정보이용자(情報利用者)가 되고 이러한 모든 가능성(可能性)에서 정보생산자(情報生産者)는 다음 정보생산(情報生産)에 이미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저자(著者)들의 2/3는 보문(報文)이 게재(揭載)되기 전(前)에 이미 새로운 연구(硏究)를 시작(始作)하였다). 과학자(科學者)가 자기연구(自己硏究)를 마치고 예비보고서(豫備報告書)를 만든 후(後) 자기연구(自己硏究)에 관한 정보(情報)의 전파(傳播)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와 관계(關係)되는 일반적(一般的)인 패턴을 보면 소수(少數)의 동료(同僚)그룹에 출석(出席)하는 경우 (예로 지역집담회)(地域集談會))와 대중(大衆) 앞에서 행(行)하는 경우(예로 국가적 회합(國家的 會合)) 등이 있다. 그러는 동안에 다양성(多樣性) 있는 성문보고서(成文報告書)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학자(科學者)들이 자기연구(自己硏究)를 위한 주정보전파목표(主情報傳播目標)는 과학잡지중(科學雜誌中)에 게재(揭載)되는 보문(報文)이라는 것이 명확(明確)한 사실(事實)인 것이다. 이러한 목표(目標)에 도달(到達)할 때까지의 각(各) 정보전파단계(情報傳播段階)에서 과학자(科學者)들은 목표달성(目標達成)을 위하여 청중(聽衆), 자기동화(自己同化)된 정보(情報) 및 이미 이용(利用)된 정보(情報)로부터 피이드백을 탐색(探索)하게 된다. 우리가 본고(本稿)의 시리이즈중(中)에 표현(表現)하려 했던 바와 같이 이러한 활동(活動)은 조사수임자(調査受任者)의 의견(意見)이 원고(原稿)에 반영(反映)되고 또 그 원고(原稿)가 잡지게재(雜誌揭載)를 위해 수리(受理)될 때까지 계속적(繼續的)으로 정보(情報)를 탐색(探索)하는 과학자(科學者)나 기타(其他)사람들에게 효과적(效果的)이었다. 원고(原稿)가 수리(受理)되면 그 원고(原稿)의 저자(著者)들은 그 보문(報文)의 주내용(主內容)에 대하여 적극적(積極的)인 정보전파자(情報傳播者)로서의 역할(役割)을 종종 중지(中止)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에는 저자(著者)들의 역할(役割)이 변화(變化)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이 저자(著者)들은 일시적(一時的)이긴 하나 새로운 일을 착수(着手)하기 위하여 정보(情報)의 동화자(同化者)를 찾게 된다. 또한 전(前)에 행한 일에 대한 의견(意見)이나 비평(批評)이 새로운 일에 영향(影響)을 끼치게 된다. 동시(同時)에 새로운 과학정보생산(科學情報生産) 과정(過程)에 들어가게 되고 현재(現在) 진행중(進行中)이거나 최근(最近) 완료(完了)한 연구(硏究)에 대한 정보(情報)를 항상 찾게 된다. 활발(活潑)한 연구(硏究)를 하는 과학자(科學者)들에게는, 동화자(同化者)로서의 역할(役割)과 전파자(傳播者)로서의 역할(役割)을 분리(分離)시킨다는 것은 실제적(實際的)은 못된다. 즉 후자(後者)를 완성(完成)하기 위해서는 전자(前者)를 이용(利用)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자(科學者)들은 한 단계(段階)에서 한 전파자(傳播者)로서의 역할(役割)이 뚜렷하나 다른 단계(段階)에서는 정보교환(情報交換)이 기본적(基本的)으로 정보동화(情報同化)에 직결(直結)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전파자(情報傳播者)와 정보동화자간(情報同化者間)의 상호관계(相互關係)(또는 정보생산자(情報生産者)와 정보이용자간(情報利用者間))는 과학(科學)에 있어서 하나의 필수양상(必修樣相)이다. 과학(科學)의 유통구조(流通構造)가 전파자(傳播者)(이용자(利用者)로서의 역할(役割)보다는)의 필요성(必要性)에서 볼 때 복잡(複雜)하고 다이나믹한 시스팀으로 구성(構成)된다는 사실(事實)은 과학(科學)의 발전과정(發展過程)에서 필연적(必然的)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사실(事實)은 과학정보(科學情報)의 전파요원(傳播要員)이 국가적 회합(國家的 會合)에서 자기연구(自己硏究)에 대한 정보(情報)의 전파기회(傳播機會)를 거절(拒絶)하고 따라서 전파정보(電波情報)를 판단(判斷)하고 선별(選別)하는 것을 감소(減少)시키며 결과적(結果的)으로 잡지(雜誌)나 단행본(單行本)에서 비평(批評)을 하고 추고(推敲)하는 것이 배제(排除)될 때는 유형적(有形的) 과학(科學)은 급속(急速)히 비과학성(非科學性)을 띠게 된다는 것을 Lysenko의 생애(生涯)에 대한 Medvedev의 기술중(記述中)[7]에 지적(指摘)한 것과 관계(關係)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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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timum Radiotherapy Schedule for Uterine Cervical Cancer based-on the Detailed Information of Dose Fractionation and Radiotherapy Technique (처방선량 및 치료기법별 치료성적 분석 결과에 기반한 자궁경부암 환자의 최적 방사선치료 스케줄)

  • Cho, Jae-Ho;Kim, Hyun-Chang;Suh, Chang-Ok;Lee, Chang-Geol;Keum, Ki-Chang;Cho, Nam-Hoon;Lee, Ik-Jae;Shim, Su-Jung;Suh, Yang-Kwon;Seong, Jinsil;Kim, Gwi-Eon
    • Radiation Oncolog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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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3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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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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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Background: The best dose-fractionation regimen of the definitive radiotherapy for cervix cancer remains to be clearly determined. It seems to be partially attributed to the complexity of the affecting factors and the lack of detailed information on external and intra-cavitary fractionation. To find optimal practice guidelines, our experiences of the combination of external beam radiotherapy (EBRT) and high-dose-rate intracavitary brachytherapy (HDR-ICBT) were reviewed with detailed information of the various treatment parameters obtained from a large cohort of women treated homogeneously at a single institute. Materials and Methods: The subjects were 743 cervical cancer patients (Stage IB 198, IIA 77, IIB 364, IIIA 7, IIIB 89 and IVA 8) treated by radiotherapy alone, between 1990 and 1996. A total external beam radiotherapy (EBRT) dose of $23.4\~59.4$ Gy (Median 45.0) was delivered to the whole pelvis. High-dose-rate intracavitary brachytherapy (HDR-IBT) was also peformed using various fractionation schemes. A Midline block (MLB) was initiated after the delivery of $14.4\~43.2$ Gy (Median 36.0) of EBRT in 495 patients, while In the other 248 patients EBRT could not be used due to slow tumor regression or the huge initial bulk of tumor. The point A, actual bladder & rectal doses were individually assessed in all patients. The biologically effective dose (BED) to the tumor ($\alpha/\beta$=10) and late-responding tissues ($\alpha/\beta$=3) for both EBRT and HDR-ICBT were calculated. The total BED values to point A, the actual bladder and rectal reference points were the summation of the EBRT and HDR-ICBT. In addition to all the details on dose-fractionation, the other factors (i.e. the overall treatment time, physicians preference) that can affect the schedule of the definitive radiotherapy were also thoroughly analyzed. The association between MD-BED $Gy_3$ and the risk of complication was assessed using serial multiple logistic regression models. The associations between R-BED $Gy_3$ and rectal complications and between V-BED $Gy_3$ and bladder complications were assessed using multiple logistic regression models after adjustment for age, stage, tumor size and treatment duration. Serial Coxs proportional hazard regression models were used to estimate the relative risks of recurrence due to MD-BED $Gy_{10}$, and the treatment duration. Results: The overall complication rate for RTOG Grades $1\~4$ toxicities was $33.1\%$. The 5-year actuarial pelvic control rate for ail 743 patients was $83\%$. The midline cumulative BED dose, which is the sum of external midline BED and HDR-ICBT point A BED, ranged from 62.0 to 121.9 $Gy_{10}$ (median 93.0) for tumors and from 93.6 to 187.3 $Gy_3$ (median 137.6) for late responding tissues. The median cumulative values of actual rectal (R-BED $Gy_3$) and bladder Point BED (V-BED $Gy_3$) were 118.7 $Gy_3$ (range $48.8\~265.2$) and 126.1 $Gy_3$ (range: $54.9\~267.5$), respectively. MD-BED $Gy_3$ showed a good correlation with rectal (p=0.003), but not with bladder complications (p=0.095). R-BED $Gy_3$ had a very strong association (p=<0.0001), and was more predictive of rectal complications than A-BED $Gy_3$. B-BED $Gy_3$ also showed significance in the prediction of bladder complications in a trend test (p=0.0298). No statistically significant dose-response relationship for pelvic control was observed. The Sandwich and Continuous techniques, which differ according to when the ICR was inserted during the EBRT and due to the physicians preference, showed no differences in the local control and complication rates; there were also no differences in the 3 vs. 5 Gy fraction size of HDR-ICBT. Conclusion: The main reasons optimal dose-fractionation guidelines are not easily established is due to the absence of a dose-response relationship for tumor control as a result of the high-dose gradient of HDR-ICBT, individual differences In tumor responses to radiation therapy and the complexity of affecting factors. Therefore, in our opinion, there is a necessity for individualized tailored therapy, along with general guidelines, in the definitive radiation treatment for cervix cancer. This study also demonstrated the strong predictive value of actual rectal and bladder reference dosing therefore, vaginal gauze packing might be very Important. To maintain the BED dose to less than the threshold resulting in complication, early midline shielding, the HDR-ICBT total dose and fractional dose reduction should be considered.

Broadening the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16세기(十六世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畫) 이해의 확장 : <경포대도(鏡浦臺圖)>, <총석정도(叢石亭圖)>를 중심으로)

  • Lee, Soomi
    • MISULJARYO - National Museum of Korea Ar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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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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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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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he paintings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were recently donated to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unveiled to the public for the first time at the 2019 special exhibition "Through the Eyes of Joseon Painters: Real Scenery Landscapes of Korea." These two paintings carry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understanding Joseon art history. Because the fact that they were components of a folding screen produced after a sightseeing tour of the Gwandong regions in 1557 has led to a broadening of our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landscape painting. This paper explores the art historical meanings of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by examining the contents in the two paintings, dating them, analyzing their stylistic characteristics, and comparing them with other works. The production background of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can be found in the colophon of Chongseokjeong Pavilion. According to this writing, Sangsanilro, who is presumed to be Park Chung-gan (?-1601) in this paper, and Hong Yeon(?~?) went sightseeing around Geumgangsan Mountain (or Pungaksan Mountain) and the Gwandong region in the spring of 1557, wrote a travelogue, and after some time produced a folding screen depicting several famous scenic spots that they visited. Hong Yeon, whose courtesy name was Deokwon, passed the special civil examination in 1551 and has a record of being active until 1584. Park Chung-gan, whose pen name was Namae, reported the treason of Jeong Yeo-rip in 1589. In recognition of this meritorious deed, he was promoted to the position of Deputy Minister of the Ministry of Punishments, rewarded with the title of first-grade pyeongnan gongsin(meritorious subject who resolved difficulties), and raised to Lord of Sangsan. Based on the colophon to Chongseokjeong Pavilion, I suggest that the two paintings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were painted in the late sixteenth century, more specifically after 1557 when Park Chung-gan and Hong Yeon went on their sightseeing trip and after 1571 when Park, who wrote the colophon, was in his 50s or over. The painting style used in depicting the landscapes corresponds to that of the late sixteenth century. The colophon further states that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were two paintings of a folding screen. Chongseokjeong Pavilion with its colophon is thought to have been the final panel of this screen. The composition of Gyeongpodae Pavilion recalls the onesided three-layered composition often used in early Joseon landscape paintings in the style of An Gyeon. However, unlike such landscape paintings in the An Gyeon style, Gyeongpodae Pavilion positions and depicts the scenery in a realistic manner. Moreover, diverse perspectives, including a diagonal bird's-eye perspective and frontal perspective, are employed in Gyeongpodae Pavilion to effectively depict the relations among several natural feature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al scenery around Gyeongpodae Pavilion. The shapes of the mountains and the use of moss dots can be also found in Welcoming an Imperial Edict from China and Chinese Envoys at Uisungwan Lodge painted in 1557 and currently housed in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Furthermore, the application of "cloud-head" texture strokes as well as the texture strokes with short lines and dots used in paintings in the An Gyeon style are transformed into a sense of realism. Compared to the composition of Gyeongpodae Pavilion, which recalls that of traditional Joseon early landscape painting, the composition of Chongseokjeong Pavilion is remarkably unconventional. Stone pillars lined up in layers with the tallest in the center form a triangle. A sense of space is created by dividing the painting into three planes(foreground, middle-ground, and background) and placing the stone pillars in the foreground, Saseonbong Peaks in the middle-ground, and Saseonjeong Pavilion on the cliff in the background. The Saseonbong Peaks in the center occupy an overwhelming proportion of the picture plane. However, the vertical stone pillars fail to form an organic relation and are segmented and flat. The painter of Chongseokjeong Pavilion had not yet developed a three-dimensional or natural spatial perception. The white lower and dark upper portions of the stone pillars emphasize their loftiness. The textures and cracks of the dense stone pillars were rendered by first applying light ink to the surfaces and then adding fine lines in dark ink. Here, the tip of the brush is pressed at an oblique angle and pulled down vertically, which shows an early stage of the development of axe-cut texture strokes. The contrast of black and white and use of vertical texture strokes signal the forthcoming trend toward the Zhe School painting style. Each and every contour and crack on the stone pillars is unique, which indicates an effort to accentuate their actual characteristics. The birds sitting above the stone pillars, waves, and the foam of breaking waves are all vividly described, not simply in repeated brushstrokes. The configuration of natural features shown in the above-mentioned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changes in other later paintings of the two scenic spots. In the Gyeongpodae Pavilion, Jukdo Island is depicted in the foreground, Gyeongpoho Lake in the middle-ground, and Gyeongpodae Pavilion and Odaesan Mountain in the background. This composition differs from the typical configuration of other Gyeongpodae Pavilion paintings from the eighteenth century that place Gyeongpodae Pavilion in the foreground and the sea in the upper section. In Chongseokjeong Pavilion, stone pillars are illustrated using a perspective viewing them from the sea, while other paintings depict them while facing upward toward the sea. These changes resulted from the established patterns of compositions used in Jeong Seon(1676~1759) and Kim Hong-do(1745~ after 1806)'s paintings of Gwandong regions. However, the configuration of the sixteenth-century Gyeongpodae Pavilion, which seemed to have no longer been used, was employed again in late Joseon folk paintings such as Gyeongpodae Pavilion in Gangneung. Famous scenic spots in the Gwandong region were painted from early on.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y were created by several painters, including Kim Saeng(711~?) from the Goryeo Dynasty and An Gyeon(act. 15th C.) from the early Joseon period, either on a single scroll or over several panels of a folding screen or several leaves of an album. Although many records mention the production of paintings depicting sites around the Gwandong region, there are no other extant examples from this era beyond the paintings of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discussed in this paper. These two paintings are thought to be the earliest works depicting the Gwandong regions thus far. Moreover, they hold art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they present information on the tradition of producing folding screens on the Gwandong region. In particular, based on the contents of the colophon written for Chongseokjeong Pavilion, the original folding screen is presumed to have consisted of eight panels. This proves that the convention of painting eight views of Gwangdong had been established by the late sixteenth century. All of the existing works mentioned as examples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show only partial elements of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since they were created as depictions of notable social gatherings or as a documentary painting for practical and/or official purposes. However, a primary objective of the paintings of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was to portray the ever-changing and striking nature of this real scenery. Moreover, Park Chung-gan wrote a colophon and added a poem on his admiration of the scenery he witnessed during his trip and ruminated over the true character of nature. Thus, unlike other previously known real-scenery landscape paintings, these two are of great significance as examples of real-scenery landscape paintings produced for the simple appreciation of nature.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are noteworthy in that they are the earliest remaining examples of the historical tradition of reflecting a sightseeing trip in painting accompanied by poetry. Furthermore, and most importantly, they broaden the understanding of Korean real-scenery landscape painting by presenting varied forms, compositions, and perspectives from sixteenth-century real-scenery landscape paintings that had formerly been unf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