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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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시가지계획령에 고시된 부산 소재 도시공원의 변천 (Transitions of Urban Parks in Busan noticed by the Chosun Planning Ordinance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김영하;윤국빈;강영조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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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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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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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계획된 부산 도시공원 32개소를 대상으로 도시의 성장과 발전에 따른 공원의 변화과정을 고찰했다. 특히, 도시공원의 변화과정을 도시계획적 관점에서 검토하기 위해 부산시에서 편찬된 도시계획사 관련 서적, 부산시보 고시공고, 도시공원 유원지 녹지현황 내부 자료, 결재문서 등을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일본 거류지역 일본인에 의해 조성된 대정공원, 고관공원, 용두산공원은 시가지 공원계획 이전부터 공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이러한 공원을 포함한 1944년 법적으로 명시한 32개소의 공원은 방재기능을 고려하여 계획되었다. 해방이후, 한국전쟁의 혼란한 시기와 도시계획 재정비로 인해 공원부지는 무허가 건축물 난립, 주택건설, 상업지, 공공청사 및 학교 건립 등으로 이용되었으며, 그에 반해 도심지에 위치한 도로공원과 대부분의 소공원은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린부산 정책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당시 도심 외곽에 계획된 미집행 공원은 도시 성장으로 도심지에 위치한 주요 공원으로 자리 잡아, 쾌적한 도시형성을 위한 공원사업으로 연지공원, 양정공원, 당곡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계획된 32개소의 공원은 부산 도시형성 과정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폐지 또는 조성되었다. 폐지된 공원은 개발압력에 토지매입 효율성이 낮다고 판단된 공원이며, 조성되고 있는 공원은 개발이 용이하지 못했던 위치에 입지한 공원이다. 따라서, 공원이 사회공통자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원 부지의 토지매입 여건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 한지선호식물의 분포와 고환경 (Present Distribution of Cryophilous Plants and Palaeoenvironment in the Korean Peninsula)

  • Kong, Woo-seok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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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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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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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본 연구는 한반도 내에서 한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극지-고산식물과 고산식물의 분포를 고환경과 관련시켜 고찰하여, 이러한 식물들의 기원, 이동 그리고 도피과정을 밝히고, 아울러 한반도의 식생변천사를 파악함을 목표로 한다. 현재 한반도에는 75종의 극지-고산식물과 239종의 고산식물 그리고 105종의 한국 특산 고산식물등 약 419종의 한지선호식물이 생육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식물들은 주로 고산을 중심으로 격리 분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플라이스토세에 빙기가 다가오면서 극지와 그 주위에서 살던 식물들이 혹독한 추위와 건조를 피해 보다 양호한 생육 적지를 찾아 하산하거나 남하하여 이동하던 중, 한반도가 이들에게 일차 도피처가 되었던 것으로 본다. 그 후 빙기가 끝나고 간빙기나 후빙기에 들어서면서 기후가 온난해져 이러한 식물들은 기온 상승에 따라 발생되는 생육환경변화와 난지선호식물들에 밀려 고산이나 북방으로 이동하여 현재 격리되어 분포하는 곳에 이차 도피처를 마련한 것으로 간주된다 : 둘째, 특히 후빙기에 들어서 기후 온난화에 의한 저지와 산록지의 삼림발달은 빙기중에는 넓은 지역에 걸쳐 광분포하던 한지선호식물들을 격리시킨 것으로 사료된다 : 세째, 후빙기에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사라지거나 축소된 한지선호식물 서식처도 이들이 격리되어 분포하는데 작용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한반도 북부지방에 국한해서 139종의 고산식물이 출현하는 요인은 첫째, 이 지역과 동아시아 지역 사이에 고산식물의 교류가 용이했고 : 둘째, 북부지방에 산재하는 고산이 후빙기에 한지선호식물들이 도피해 생존할 장소를 제공해 주었으며 ; 세째, 산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필요할 때 식물들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었으며 ; 네째, 북부 산지에 다양한 환경과 서식처가 마련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기온 온난화 추세가 계속되면 한반도를 전세계적으로 혹은 동아시아에서 분포상 남한계로 삼는 많은 식물들이 멸종할 위기를 맞게될 것으로 사료되어 보존을 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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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학적 분석을 통한 한국 고대수리시설의 농업생산력 연구 - 영천 청제 (A Study on the agricultural productivity of ancient reservoir through hydrological analysis - Cheong reservoir located Yeongcheon, southeastern part of Korea)

  • 장철희;김현준;성정용
    • 한국수자원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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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수자원학회 2018년도 학술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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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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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농업이 기간산업이었던 고대사회에서 수리시설(水利施設)의 축조는 농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인 대규모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수리시설의 축조 시기와 배경, 축조 기술과 운영, 구조, 몽리(蒙利) 효과 및 보수(補修)와 수축(修築) 등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농경(農耕)문화사를 밝히는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 관개(灌漑) 수리시설의 축조와 정비는 수전(水田) 개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제방(堤防)을 축조함으로써 주변의 수전 개발을 촉진하고, 가뭄과 홍수로부터 안전하게 전답을 유지할 수 있어 수확량을 높이게 된다. 농업생산력의 향상은 대내적 체제 정비는 물론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배경이 된다. 이처럼 고대수리시설은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근본이었지만, 과연 우리는 그 역사성과 의미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했던 것일까? 또한, 고대수리시설의 관개 및 치수(治水) 능력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였으며 근대에 비하면 어느 정도였을까? 일부 수리시설에 대해 관개면적을 추정한 경우는 있으나, 그 예도 많지 않을뿐더러 시기적인 변천 양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본 연구는 고대로부터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수리시설 중 경북(慶北) 영천(永川)의 청제(菁堤)를 대상으로 고고학적 역사학적 입장에서 보다는 수문학적(水文學的) 농업수리학적(農業水利學的) 관점에서 저수량(貯水量) 및 관개(灌漑) 면적에 따른 농업생산력을 살펴보았다. 지형 및 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정보를 이용하여 저수지의 규모 및 관개 면적을 추정하였으며 수문학적 해석 모형(模型)인 CAT(Catchment hydrologic cycle Assessment Tool)(김현준 등, 2012)을 이용하여 저수량 및 관개 가능량을 분석하였다. CAT은 공간 단위별로 침투(浸透), 증발(蒸發), 지하수(地下水)흐름 등의 모의(模擬)가 가능하도록 개발된 모형이다. 특히, 농업용 저수지 및 홍수방재용(洪水防災用) 저류(貯留)시설 등의 저류량(貯留量) 및 방류(放流量)에 대한 모의가 가능하다(장철희 등, 2012). 고대수리시설의 저수량 및 관개 면적에 따른 농업생산력을 공학적 수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는 과거물 관리 및 생산력의 실태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며, 역사학적 자료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고대수리시설의 역사성 및 우수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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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원읍성(南原邑城)의 축성변천(築城變遷)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the Change of Construction of Namwoneupseong Fortress in the Joseon Dynasty)

  • 오준영;김영모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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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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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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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조선시대 남원(南原)의 도시발달사와 관방사 측면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였던 사적 제298호 남원읍성의 축성에 관한 연구이다. 관련 사료를 통해 볼 때 남원읍성은 조선시대 성종 연간에 처음 축성되었으나, 이후 증축 논의과정에서 유인궤성(劉仁軌城)의 유지(遺址)가 증축범위의 중요한 준거(準據)가 되었다. 즉, 남원읍성의 초축은 현 남원읍성의 시원적 형태였으며, 유인궤성은 남원읍성 증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되었다. 지금까지 남원읍성에 대해서는 축성과정을 개괄적으로 논한 연구는 있었지만, 남원읍성의 초축 그리고 유인궤성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없었다. 이에 본 연구는 남원읍성의 축성 전반을 살펴보는 가운데 세부적으로는 남원읍성 초축과 유인궤성의 위치 비정(比定)을 통하여 유인궤성과 남원읍성의 관계, 남원읍성의 증축과정과 범위 등에 관련된 축성사실을 포괄적 실증적으로 확증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660~665년 사이에 유인궤성이 축성되었으며, 조선시대 성종 초기에 축성된 남원읍성이 유인궤성의 유지를 따라 남동 측으로 증축되었다. 이에 따라 완비된 남원읍성의 성벽은 초축 당시의 성벽을 유지한 구간, 새롭게 성벽을 축성한 구간, 유인궤성의 유지를 수용한 구간으로 구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암사지 금탁(琴鐸)의 주조방법과 가공기술 연구 (Study on the Casting Method and Manufacturing Process of Bronze Bells Excavated from the Hoeamsa Temple Site)

  • 이재성;백지혜;전익환;박장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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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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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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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3점의 금탁에 대한 성분조성과 미세조직을 분석하여 조선초기 금탁(琴鐸)을 제작하기 위한 주조방법과 가공처리 기술에 대해 살펴보았다. 분석결과 구리, 주석, 납을 주성분으로 하며, 그 비율은 평균 85 : 8 : 7로 나타났다. 주성분인 구리, 주석, 납을 제외한 10개의 원소가 0.3% 이하의 적은 양으로 검출되어 비교적 잘 정련된 구리소재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검출된 10개의 미량 원소 중 황과 철은 공급된 구리소재의 원광석으로 황동광이나 휘동광 등 황이 포함된 광석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조방법으로 사형주조법이 적용되었으며, 방법은 먼저 주물사로 틀을 만들고, 여기에 거푸집을 종 모양대로 세워놓고 구리-주석-납을 용해시킨 청동 주물을 정수리에서 하륜부 방향으로 부어 본체를 만들었다. 형태가 완성된 뒤에는 표면 가공을 위한 추가적인 열처리 없이 가질 작업을 통해 표면을 정리하였다. 모든 가공처리 공정이 마무리된 뒤에는 정수리 부분에 풍판을 연결시키기 위해 철제 연결고리를 끼우고, 그 부분에만 용해된 청동 주물을 부어 고정시켰다. 금탁의 표면에 음각된 명문의 새김법은 축조각과 모조각 기법이 각각 다르게 사용되었고, 획순과 서체에서 차이가 나는 점에 비추어 명문 조각에는 다수의 장인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제작기술의 변천과정을 입증할 만한 사료나 이와 관련된 연구 성과물이 매우 부족한 현 실정에서 제작 연대와 제작 주체가 명확한 금탁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연구는 향후 청동기 제작기술 체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남헌(南軒)장식(張?)의 수양론 연구 - 호상학과 주자학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 - (A study of Nan xian(南軒) Zhangshi(張?)'s cultivation - Focusing on the mutual influence of Huxiangxue and Zhuzixue)

  • 이연정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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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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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7-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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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학술교류가 활발하던 남송(南宋)시대에 장식은 수양론 형성과정에서 그만의 독자적 사상체계를 정립한다. 수양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사상적 전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 과정에서 장식은 당대 주류와의 학술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사상정립에 상당한 영향을 주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체계화시켜 나간다. 그러나 당대 주류학파에 대한 연구는 상당부분 이루어진 것에 비해, 주류학맥이 이어져 오기까지의 당대의 사상적 흐름과 동향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이에 논자는 장식의 수양 공부론의 형성 과정을 통해 당대의 사상흐름 전반을 이해하고, 아울러 주류학파와의 교류 과정을 수양공부라는 영역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송 대 철학 전반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데 있어서 유의미한 과정이 될 것이다. 본 논고는 장식 공부론의 형성과정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검토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선은 장식사상의 연원에 대한 기술을 시작으로 영향을 주었던 학파의 사상적 영향을 언급하고, 수양 공부론의 변천과정을 검토하여 그의 철학사상적 전향(轉向)을 고찰한다. 이 작업은 장식만의 독자적 사상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고, 사상교류를 이루었던 주희의 사상정립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비영리단체의 운영 실태분석 (An Analysis on Operational Conditions of Non-Profit Organizations for the North Korean Defector)

  • 최희;김영순
    •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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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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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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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지원정책의 변천과정에 따라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비영리단체의 등장배경을 살펴보고 비영리단체의 특성과 역할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북한이탈주민의 증가와 함께 다문화사회의 진입으로 인한 국내사회환경변화 등 다양한 환경요인으로 민간단체들이 급증하였다. 하지만, 단체의 제도적 형식조차 갖추지 않은 단체도 있으며 사업목적과 다른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서울 거주 북한이탈주민 전체의 수는 25.5%에 비해 북한이탈주민관련단체는 서울지역에만 83%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성향이 비슷한 일부 단체들의 과도한 영역경쟁으로 불법과 편법의 온상으로 변질된다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단체의 유형에서는 실질적으로 북한이탈주민에게 필요한 취업이나,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의 통일의식함양을 위한 통일교육 분야는 미미하게 성장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결과는 단체라는 활동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권리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또한 문제 개선을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 건물 유형에 따른 적심 연구 (The Study on Foundation Remains(Jeoksim) According to Types of Buildings of Gyeongbok Palace)

  • 최인화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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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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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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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현재 경복궁에 대한 연구는 건축사 문헌사 미술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연구는 현전(現傳)하는 건물과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음으로 궁궐 전체를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양호한 상태로 잔존해 있는 경복궁 건물지 유구, 특히'적심(積心)'은 이러한 연구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고고(考古)학 자료라 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경복궁의 '적심'에 대하여 분석하여, 형태 규모 재료 축조방식에 따라 그 형식을 분류하고, 이것이 건물 기초로써 상부 건물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궁궐 건물 유형별 사용된 적심을 검토하고, 시기별 변천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복궁 건물지 적심은 총 21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각 건물 유형에 따라 건물의 기초 즉 적심도 달리 축조되며, 시기별로도 적심의 축조방식 및 재료 등이 변화하여,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적심의 형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복궁 적심은 평면 형태에 따라 원형(I), 말각방형(II), 세장방형(III), 방형(IV), 통적심(V)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다시 축조방식과 사용된 재료에 따라 21가지 형식으로 세분된다. 특히 조선전기 14~16세기에는 원형 잡석 적심(I-1), 말각방형 장대석(II-1), 말각방형 잡석+와전(II-2a) 세 가지 형식의 적심만 축조되다가, 조선후기 19세기에 들어 21가지 분류한 모든 적심이 다양하게 축조된다. 19세기 고종연간 내에서도 연대별로 각기 다른 형식의 적심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재료에서 두드러진 차이점이 확인된다. 경복궁을 재건한 고종 2년(1865)~고종 5년(1868)에 축조된 적심 10가지 형식 중 무려 7가지가 와전편을 섞어 넣은 형식인 반면, 고종 10년(1873)과 고종 13년(1876) 혹은 고종 25년(1888)에는 축조된 5가지 형식 중 3가지가 강회를 섞어 넣은 사질토를 사용한 형식으로 대조를 이룬다. 궁궐 건물은 '주인의 신분과 용도'에 따라 건물의 서열이 정해지고, 건물의 이름 뒤에 가장 중요하고 격이 높은 순서대로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 등의 명칭이 붙어 그 유형이 구분되며, 그 격에 맞추어 건축물이 축조된다. 이 건물 유형별 사용된 적심을 검토한 결과, 건물의 유형(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에 따라 그 기초, 즉 적심도 달리 축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 자료의 한계 상'전', '당', '각', '방'등 일부 건물 유형만 확인되었는데, '전'과 '각'의 경우 장대석으로 축조한 방형 적심(IV)이, '당'과 '방'의 경우 기와와 잡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말각방형 적심(II)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기타 건물명을 알 수 없는 경우는 대부분 조선전기 선대(先代) 건물지의 적심임으로, 조선전기에 원형 잡석 적심(I-1)이 많이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주인의 신분이 높고 격이 높은 건물일수록 건축물도 격이 높듯이, 그 기초부, 즉 적심 또한 가장 견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당'과 '방'은 같은 말각방형 적심이 사용되었지만, '당'은 잡석과 와전편을 주재료로 사용한 II-2a(잡석+와전편 말각방형 적심)형식이, '방'은 II-2a형식의 상면에 15~20cm 가량 와전편을 깐 II-2b(와전편+(잡석+와전편 말각방형적심)) 형식이 많아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건물 유형별 적심은 시기별로 축조되는 형식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과 '각'의 경우 모두 14~15세기 조선전기에는 I-1형식(원형 잡석)의 적심을 축조하다가, 19세기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형식의 적심이 축조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방형 적심(IV)이 많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의 경우 조선후기의 변천양상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고종 4년(1867) 축조된 적심은 잡석과 와전편을 섞어 넣은 형식의 적심이 많이 축조되고, 이후 고종 13년(1876) 혹은 고종 25년(1888)에는 다른 건물 유형에서 확인되지 않는 강회사질토 및 탄축 적심이라는 독자적인 형식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전기에 비해 후기에 적심의 다양한 축조방식과 재료가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궁궐건물 기초 축조 기술 수준의 변화가 있었음을 대변해 준다. 또한 건물 유형별로 사용되는 적심의 형식이 다른 것이 확인되어, 건물의 기초를 축조할 때 미리 계산된 건축 공법을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기록원 소장 남산공원 기록물의 현황과 내용 (The Contents of Namsan Park Records at the Seoul Metropolitan Archives)

  • 김정화;길지혜;서영애;박희성;최혜영;이명준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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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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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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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남산공원은 1954년 대공원으로 지정되어 현재는 1개의 도시자연공원구역과 4개의 근린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넓은 면적의 오래된 도시공원이다. 공원으로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남산공원은 주로 '산' 이나 '도성'이라는 틀 속에서 논의되었다. 본 연구는 공원사(公園史) 관점에서 남산공원 연구를 심화하기 위해 서울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의 공공기록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연구는 서울기록원 소장 남산공원 관련 기록물을 모두 열람하여 공원 사료로 분석할 기록을 1,359건으로 정리하고, 기록별 주요 내용을 검토하였다. 보다 구체적인 연구 내용으로는 첫째, 기록 생산연대, 기록 유형, 공개 유형을 통해 기록물의 개괄적인 특성을 파악하였다. 둘째, 기록물에서 도출한 조직/단체, 인물, 공간/지역, 주제, 업무기능의 주요어를 분석하였다. 셋째, 주요 공간에 대한 기록물을 분석하여 공공기록이 담고 있는 공원에 관한 내용과 특징을 자세히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 남산공원 공공기록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공원 도면, 사진, 식물 현황과 목록, 운영관리상의 주요 논의 및 결정 사항 등과 같은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공공기록이 공원의 역사 전체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공원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중요한 시점의 기록을 담고 있기에 공원사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공원별로 기록을 해석하고 서술하는 연구가 지속하여야 할 것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공원의 공공기록이 불완전성이란 한계가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 향후 다른 기록으로의 확장과 시민, 설계가, 연구자, 관련 기관 등과의 네트워크도 필요하다는 점을 제언하였다.

서울시 도시공원의 장소적 재현 - 기념성, 상징성, 장소기억을 중심으로 - (Urban Parks in Seoul as Place Representation - Focusing on Monumentality, Symbolism & Place Memory -)

  • 한소영;조경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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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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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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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근대에 조성되기 시작한 서울의 도시공원의 조성과 관련한 제 전반의 사항들이 어떤 흐름으로 변화해왔는지를 고찰하기 위함을 주요 목적에 두고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개방 이후 조성된 서울의 대부분 공원들이 다양한 형태의 기념성,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거나 혹은 장소 자체 기억을 재현할 것이라는 가설을 전제하고 연구를 착수하였다. 공원 내 상징성, 기념성, 장소기억의 물리적 혹은 비 물리적 요소들의 재현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원 내 기념성 및 상징성이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 기념비, 동상 등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이는 공원의 조성 목적이 기념공원에 부합하는 경우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기념비적 요소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 이외의 경우는 공원 전체의 개념과는 관계없이 국가에서 임의로 지정한 상징성을 띠는 조각물이나 동상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장소기억의 경우, 과거에는 기념성이나 상징성 구현 방법과 같이 동상이나 일부 건조물 등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일정 시기 장소기억을 공원 전체에 조화시키는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둘째, 비 물리적 재현요소들의 경우 공원 명칭에서 기념성 및 상징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들어서는 명칭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많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공원의 부분 장소 명칭에서 장소기억과 관련하여 지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원 내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의 경우, 탑골공원 등 개방 초기 조성된 공원들에서 일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기념하기 위해 설정된 경우 등이 있었다. 장소기억이 강조되어 최근 조성된 공원들의 경우 이와 관련하기 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시민참여를 유도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에 두고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