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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감리교의 강화도 전래와 문화변동 (Implantation of Protestant Methodist in Gangwha Islands and Cultural Change)

  • 옥한석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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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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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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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강화 지역에 감리교 개신교가 1903년 선교사에 의하여 전래되어 10년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 내 교인과 교회의 수가 급증하여 순조로운 정착을 보였다. 초기에는 해상루트를 따라 이주 전파가, 중기에는 계층에 따른 내륙에의 계층전파가, 후기에는 부근 지역으로의 접촉전파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전파는 초기에 서양 선교사의 직접적인 선교와 유학자에 의한 자연스러운 채택이었기 때문에 하곡 양명학과의 문화접변(acculturation)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하곡학과 감리교는 문화요소 중 교육, 사회적 관계, 사상, 정신적 목표, 실천분야가 서로 일치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어 하곡학자들은 감리교 수용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활동장소나 전수전략이 달랐지만 이들 요소는 오히려 감리교의 수용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전래된 감리교는 초기에는 저항이 있었지만 하곡학의 선택적 메카니즘에 의하여 재해석되어 지위와 역할의 변화가 있은 다음 강화지역의 우세종교로 자리 잡았다. 강화지역의 대다수의 법정리에 감리교 교회당이 들어서고 25개 법정리에는 2개 이상의 교회당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는 특정 씨족 중심의 교회가 많아 가족관계를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동하였음을 말해준다. 100세대 정도의 마을마다 교회당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은 전래된 감리교가 특정 성씨 중심의 가족관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가 서로 다른 성씨 집단을 통합하기 보다는 이질성을 심화시키는 기능이 컸다고 보겠다. 강화지역은 가법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통을 타파하지 못하고 혼합주의(syncretism) 양상을 띠어 완전히 동화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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