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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곳체(C. Gottsche)의 조선 기행과 그 지리적 의미 (C. Gottsche's Journey through Korea in 1884 and Its Geographic Implications)

  • 손일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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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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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9-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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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독일인 지질학자 카를 곳체(C. Gottsche)는 1884년 당시 조선의 통리아문 협판이던 묄렌도르프의 초청을 받아 한반도 내륙을 조사하였다. 그는 138일에 걸쳐 2,550km의 거리를 주파했는데, 귀국 후 당시 답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의 지리와 지질에 관한 3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들은 근대 지리학과 지질학을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야외과학자가 한반도 전역을 실제로 답사하고 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지구과학 논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가 쓴 3편의 논문 중에서 특히 "조선의 지리(${\ddot{U}}ber$ Land und Leute in Korea)"(1886)는 조선의 지질과 광물에 주목한 다른 2편의 논문과는 달리, 야외과학자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 논문이 지닌 사료적 가치도 높다. 이 논문은 아직 국내 학술논문에 소개된 바 없어 19세기 말 서구인들의 조선 인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지리학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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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노르 논쟁과 신쟝 생산건설병단 - 중국 서북지역 사막화의 사회적 과정- (Lop-Nor Debates and the Xinjiang Production-Construction Army Corps: A Social Process of Desertification in Northwest China)

  • 이강원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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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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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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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신쟝의 타림분지에 있는 롭노르 호수의 위치와 성격은 19세기 말 이래 내륙아시아에 관심을 가진 많은 학자들(프르제발스키, 리히트호펜, 코즐로프, 헤딘, 헌팅톤, 스타인, 천쫑치 등)의 논쟁 사안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중국과학원 고찰대에 의해 롭노르의 위치와 성격이 해명되었다. 롭노르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성격 역시 변함 없이 염호였지만, 그간 위치와 성격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은 하천수의 유입방향과 수량에 변화가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하천의 변화는 역사시기와 현재 모두에 있어서 롭노르 상류부의 물 사용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상류부의 물 사용이 급격히 증가한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롭노르에 물을 공급하는 하천들의 수량이 감소하여 롭노르가 고갈되었고, 하천의 길이마저 축소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에 작용한 인위적 작용의 주요 내용이 신쟝 생산건설병단이라는 대규모 조직에 의한 외부 인구의 유입과 이들에 의한 인공 오아시스의 건설이었다. 이러한 토지형질의 변화와 수자원의 고갈은 사막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균열마저 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롭노르와 유사한 변화가 중국 서부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