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등소평(鄧小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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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 이데올로기의 출생과 성장 (The Birth and Growth of "Hide Your Strength and Bide Your Time" as a Ideology)

  • 김광일
    • 중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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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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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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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鄧小平의 대외전략 방침으로 알려진 "韜光養晦"는 현재 일개 성어의 지위를 넘어 중국의국력 성장 서사에서 핵심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논문은 "韜光養晦"를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상정하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는지를 밝히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하여 세 가지 측면에서 "韜光養晦"의 성장과정을 고찰한다. 첫째는 언어적⋅의미론적 접근이다. "韜光養晦"라는 성어는 상당히 긴 역사적시간을 거쳐 합성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 맥락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우선 "韜光養晦"를 직조하는 주요한 의미의 가닥을 분해하여 한 올 한 올 살펴본다. 둘째는 고증학적 고찰이다. "韜光養晦"라는 성어가 중국의 대외전략, 나아가 국력성장의 담론을떠받치는 이데올로기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최고지도자[最高領導]" 鄧小 平의 후광이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연설이나 담화에서는 鄧小平이 "韜光養晦"를 말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이 논문에서는 鄧小平이 어떤 계기에서 "韜光養晦"를 강조하였는지를 일차자료를 통해 규명한다. 셋째는 "韜光養晦"를 둘러싼 담론의 분석이다. 鄧小平의 관련성이 확인되더라도 이후에 대대적인 활용이 없었다면, "韜光養晦"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성립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韜光養晦"의 경우, 鄧小平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공식적인 언술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누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鄧小平의 韜光養晦" 를 이데올로기의 지위로 끌어올렸는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과학기술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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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8호통권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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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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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통치자의 과학기술 리더십] 정책조정자형 과학기술 리더십 전환시급, 체계적 보좌기초 목표달성체제 구축해야/ [국내 역대대통령의 과학기술 정책] 박정희대통령 과학기술 초석놓고 전두환 이어 김대중대통령 변화기 진입/[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미국] 역대 대통령 '과학기술은 국력' 인식, 레이건은 '스타워즈'로 소련붕괴 불러와/[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일본] 역대 총리 6명이 과학기술청 장관 출신, '나카소네수상' 원자력 선진국 기틀 마련/[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중국]'모택동' 국방기술 개발에 총력 핵탄 완성, '등소평' 과학기술은 제일의 생산력 강조/[외국 역대대통치자의 과학기술 정책/영ㆍ독ㆍ불ㆍ러]프랑스 - 과학기술 선진국 나폴레옹과 드골 초석, 러시아 - 레닌 이후 모든 통치자 科技 위해 정책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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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미술에서의 판화 매체 확장을 일으킨 쉬빙(徐冰) 작품 연구 (A Study on Xu Bing's artworks Contributed to expansion of printmaking in Contemporary Chinese Art)

  • 송대섭;조예인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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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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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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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논문에서는 중국 문화대혁명 이후 마오쩌둥(모택동(毛澤東), 1893-1976)의 공산당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정치적, 사회적인 배경과 서구 모더니즘의 급속한 유입과 이를 통한 중국 내 전위적인 미술계 움직임 등을 살펴보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 판화 매체 확장에 기여한 쉬빙((徐冰), 1955~)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고자 했다. 특히 1985년을 기점으로 미술계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85신조미술운동(85新潮美術運動)'과 1989년 베이징에서 개최한 <<중국현대예술전(中國現代藝術展)>>은 기존의 중국 미술로부터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슈이다. 역사적인 변혁과 새로움을 지향하고자 했던 '85신조미술운동'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민간 전시회를 주도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펼쳤다. 이러한 미술계 흐름 속에 문화대혁명 이후, 국가미술관인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여 행위예술, 설치미술,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였지만, 대담한 행위예술과 노골적인 설치작업 등으로 정부로부터 두 차례 전시 중단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며, 일부 작가들은 행위예술을 펼치다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판화를 전공한 쉬빙은 초반에 그가 관심을 가졌던 판화가 갖고 있는 제작과정과 반복이라는 특성에 주목한 실험들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다가, 1988년 그의 대표작인 <천서(天書)>(1988)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쉬빙은 직접 글자를 고안하고 나무에 새겨 2000여개의 문자를 만들었고, 그것을 단순히 인쇄 책자 형태를 넘어선 설치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보여줌으로서 그는 서구의 미술 형식을 취하면서도 '한자'라는 중국적인 내용을 결합한 아방가르드 작가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다음 해인 <<중국현대예술전>>에서 <천서>가 가혹한 평가를 받고난 후, 쉬빙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작업인 <담장을 두드리는 귀신(귀타장(鬼打墻))>(1990)을 1990년에 제작만하고 전시는 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 당시 중국 사회는 천안문사태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문화대혁명의 소멸과 덩샤오핑(등소평(鄧小平), 1904-1997)의 개혁기를 맞이하며 혼란한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쉬빙의 초기 판화작업부터 1991년 미국으로 도미하기 전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판화 매체가 지닌 재생산성, 복수성 등의 특성을 활용한 형식적 실험들을 거쳐 어떻게 중국 전통적 요소를 활용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로 될 수 있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