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단은 명나라 황제인 태조, 신종, 의종의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황단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설은 1704년에 처음으로 건설되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신종에 대한 보은의 뜻으로 건립된 것이다.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은 이미 화양동에 신종을 위한 건물을 짓고 제례를 지냈었는데 이것이 국가적인 의례로 확대된 것이다. 당시의 대보단 건립은 창덕궁 후원 영역을 크게 바꿔 놓았으며, 후원 서북쪽으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보단의 건축과정만을 살펴본다면 대보단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입지선정 과정에서 공간적으로나, 의례적으로 가장 적합한 곳은 후원의 내빙고터였다. 그럼에도 빙고를 옮길 방안이 마련되지 않자 궁궐 담장 바깥에 위치한 별대영터에 건립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단을 건립하기 위한 석재는 새로 채석하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변통한 것을 재활용했다. 별대영의 행각은 커다란 변경 없이 그대로 대보단 행각으로 전용했다. 건축공사의 규모만을 따지자면 그리 대단한 공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숙종은 대보단 건립 후 몇 차례 제례를 치른 다음에는 대보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보단이 다시 역사에 크게 등장한 것은 영조에 의해서였다. 영조도 재임 초기에는 대보단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740년대 들어 대보단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수차례에 걸친 대보단 중수가 진행됐다. 1739년에는 제기고를 중건했다. 또 1745년에는 재실을 건립하면서 대보단 의식 전날에 들러 하룻밤을 보내도록 의례를 정비했다. 1749년에는 대보단에 의종과 태조를 봉안하면서 대대적인 대보단 증수가 이루어졌고, 기존의 대보단과 전혀 다르게 형태가 변경되었다. 이때 조성된 단은 새롭게 채석한 석재를 사용해서 쌓은 것이었다. 또 전사청, 재생청, 악공청 등 새로운 건물을 추가로 건립하기도 했다. 1762년에는 대보단에 공신을 종향하면서 지속적으로 대보단이 창덕궁 후원에서 중요한 곳이 되었다. 정조 재위 기간에도 대보단은 창덕궁 후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보단에서 건축적으로 커다란 중수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다만 1799년 창경궁에 위치했던 경봉각을 대보단 내부로 이건한 일이 있었다. 이후 대보단 제례는 계속되었지만 커다란 건축적 변화는 없었고, 1908년에 제향이 중지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본 연구는 고문헌 및 도상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조선 후기 정치사에 큰 비중을 점유하고 있는 창덕궁 대보단의 시대별 공간구성을 조명하고 단제(壇制) 형성에 이입된 요소를 고찰할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대보단에는 병자호란 이후 지배질서의 위기를 느낀 조선의 지배층이 타개책으로 내세운 존명의리의 이념적 장치가 녹아들어 있으며, 조선중화의식의 자부심과 역대 임금에게 내재된 제천의 욕구가 맞물려 있는 등 복합적 요인이 한데 얽혀 조적(組積)되어 있었다. 표면적으로 대보단은 사직단의 구성요소와 부속건물의 배치를 그대로 가져오되 지형의 제약과 후원의 출입 제한으로 인해 변통한 배치를 보이고 있었으나, 입면적 구조에서 9급의 계단, 5척의 단고(壇高), 단유(壇?)에 나타난 2성(成)의 정황 그리고 황장방 내부의 형태 등 황명제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수용되었다. 또한 "예기 교특생"에서 따왔다는 단명(壇名)은 다분히 교천(郊天)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중국과 조선의 사직단의 제도를 적절히 조합하여 참례(僭禮)의 혐의를 피하여 건립되었다. 이러한 점은 대보단의 단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으로서 중화계승의식과 역대 임금에게 내재된 제천의 욕구가 제단의 구조와 형식을 통해 표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에서는 대보단의 창건, 확장, 쇠퇴, 훼철의 과정을 편년적 방법으로 살펴보았는데, 각 변천의 기점에서 당대의 정치 문화적 배경에 따른 조선 통치엘리트 집단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제단의 공간형식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도상자료에 나타난 대보단에 조응되는 위치를 찾아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창덕궁 천연기념물 다래나무 주변에서 대보단의 석재, 전돌과 와편 등의 유구가 발견되어 향후 발굴조사를 통한 확인이 요구된다.
황조인은 조선 중기까지 중국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이다가 영조 대에 와서 명나라 유민으로 조선에 들어와 정착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황조인 개념이 생성된 배경을 보면 양난(兩亂) 이후 국가 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념적 기반으로, 효종 때의 '북벌론(北伐論)'은 이후 '존주론(尊周論)'으로 대체되었고, 숙종 때 대보단 창설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의 정당성이 확보되었다. 영조 때에는 대보단의 확대개편 및 양란에 희생된 충신열사에 대한 현창 작업 등이 이루어졌다. 영조는 존주론과 대명의리론에 대한 자신의 이론화 작업에 힘썼다. 이는 '풍천(風泉)'의식의 유포, 어제서(御製書)의 편찬과 교육, 다수의 영조어제(英祖御製) 저술 등으로 표현되었다. 영조 때의 황조인과 그 후손에 대한 정책은 충량과(忠良科)의 설치, 대보단에 삼황(三皇) 배향, 황단 수직(守直)임무, 관직 제수, 증직(贈職) 등으로 시행되었다. 또 황조인의 명부인 "화인록(華人錄)'을 만들어 향화인과 차별된 우대책을 시행했다. 한편 영조의 '풍천(風泉)'의식이 널리 전파되어, 당대의 지식인들은 그 개념을 작품 속에 썼다. 이규상의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과 송규빈(宋奎斌)의 "풍천유향(風泉遺響)" 등이 그것이다. 황조인에 대한 일반 민의 생각은 황조인의 우대책으로 인해 그들의 처지를 시기하고 부러워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영조 시기 황조인에 대한 인식은 대명의리론과 존주론을 기반으로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드러났고, 황조인에 대한 정책 또한 같았다. 향화인과는 다른, 명의 후손을 보호하고 우대하는 가운데 조선의 위상을 분명히 하려는 정치적 이념이 깔린 것이다.
수암 권상하(1641-1721)는 우암 송시열(1607-1689) 이후 조선 후기의 학계와 정치계를 대표하는 山林이다. 그는 송시열 이후 노론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우암학파의 학문과 사상 및 사업을 전승하였으며, 그 학문과 사상을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권상하의 사상과 학문은 조광조-송시열로 이어지는 한국정통 도학의 '명천리(明天理) 정인심(正人心)' '벽리단(闢異端)' '양이적(攘夷狄)' '존왕도(尊王道)' '천패술(踐覇術)' '상정학(尙正學)' '척리교(斥異敎)' 정신으로 집약할 수 있다. 권상하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평생 사업은 위와 같은 정신에 입각하여 송시열의 학문과 사업을 계승하여 직(直)의 심법(心法)과 춘추의리(春秋義理)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는 스승인 송시열이 생존할 당시에는 그를 도와 주자서를 정리하여 오류 없는 의뢰서(義理書)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송시열의 사후에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짓고 대보단을 쌓는 등 대의를 드러내는 일에 일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권상하는 이러한 사업이 구세(救世)하는 도(道)(세도(世道))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존주자(尊朱子)와 명천리(明天理) 정인심(正人心)의 학문정신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등 그의 문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인물성동리(人物性同異) 논쟁에서 한원진의 인물성 이론을 찬성하여 엄정한 가치 판별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송시열을 옹호하는 변론에 적극 나섰는데, 그 이유는 스승에 대한 사정(私情) 때문만이 아니라 '세도(世道)'와 '사문(斯文)'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권상하는 직(直)의 심법과 춘추사상(春秋思想)으로 자신의 내적 도덕성을 삼았으며, 현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부조리에 대항했다. 적극적으로 불의(不義)에 항거했던 송시열의 직(直)철학이나 북벌(北伐)의지는 권상하를 통하여 기호학파 노론 계열의 상전(相傳) 심법(心法)과 사업(事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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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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