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근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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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환경 보존을 위한 마을단위 방재 활동 연구: 대전 소제동 관사촌을 중심으로 (A Study on Disaster Prevention Activities at the Village Level to Preserve the Historical Environment: Focusing on Employee Residence Area in Soje-dong, Daejeon)

  • 이상희
    • 사물인터넷융복합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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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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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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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에서는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집합적 건축유산 중 현재 지역사회의 관심과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근대건축을 중심으로 재난대응 현황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는 집합적 건축군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역사와 문화적, 건축적 가치에 대한 평가와 보존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현재 제도적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비지정 문화유산이다. 관사는 집합적 건축군으로서 보존에 의미가 있지만 주요구조부가 목구조로 형성되어 있어 화재나 재난에 소실 우려가 크고, 방재 대책도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철도관사의 배치 및 건축적 특징 등 구조적·비구조적 상태를 조사하고, 주요 구조부가 목구조로 형성된 관사건축군의 방재시스템구축 및 주민참여 방안을 고찰하였다. 집합적 건축유산으로 조성된 도심지 역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관사촌의 특성을 고려한 효과적인 방재시스템구축 및 주민참여 방재역량 강화, 지역사회의 공식적·비공식적 거버넌 구축 등 마을 자체의 방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갑곶돈 일대 문화재 지역의 경관특징에 관한 기초연구 (A Basic Study on the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Cultural Heritage Area at the Gapgot Fortification in Ganghwa island)

  • 현상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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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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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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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해안에 분포한 갑곶돈 일대 문화재 지역의 경관 특성을 살펴보기 위한 연구로 고문헌, 고지도, 근대의 사진자료를 분석하고 항공사진 촬영을 통해 현재 갑곶돈 일대의 경관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갑곶돈은 강화도를 진입하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강화도의 상징적 또는 실제적 관문요소로써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일대의 역사문화자원 또한 통과교통으로서의 장치 및 군사시설 등이 분포하였다. 둘째, 문헌 및 도상자료에 나타나는 갑곶돈 일대는 고려시대부터 군사시설 및 마을이 형성되어왔으며, 조선시대 강화외성의 축성 이후 갑곶돈의 진해루를 중심으로 마을이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셋째, 현재 갑곶돈 일대는 강화대교 진입에 따라 연속되는 해안경관이 조망되나 강화대교 인근의 경관저해요소는 개선사항으로 제시되었다.

함라마을 부농주거의 건축특성 연구 (The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Wealthy Farmhouses in Ham-Ra)

  • 유은미;홍승재
    • 한국주거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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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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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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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Ham-ra is a village that belongs to Ham-yuel Ri, Ik-san city and also known as the village where 4 millionaire modem age rich farmer households are residing in the center of the village. Originally, central point of the village was Gaeksa and Hyanggyo that is in Suodong, but early 1900s, rich farmers found new Places beside Suodong and built large-scale houses and around it, houses of tenant and commercial places were formed and became the new center of the village. Therefore, Ham-ra village shows well about the changes of the traditional village in the end of Chosun Dynasty aspect that of existent village space according to rich farmer's growth. Especially, the large scaled Korean traditional houses which were built newly in the year between 1917 to 1939 shows main road and Natural stream surrounding the village which are not found in any other village. 3 rich farmers (Lee Bae-won, Jo Hae-young, Kim An-gyun house) and Lee Jib-cheon's houses built a large scaled Sarang-chae and An-chae to compete and to show off there wealth. This residing imitated High-classe house yet accommodated social changes and through a voluntary experiment, is expressing modernity of Han-ok very well. Similarity and creativity in residing form appears well in buildings similar time and village. This research analyzed space composition change of the village and characteristic of Architecture who appear at modern process of typical farmer houses which make a strong resolution to Ham-ra hereupon.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새마을 운동 경험의 공유 (Community Development Movement and Sharing Experiences)

  • 김성수;권도하;이채식;최영창
    • 농촌지도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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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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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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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한국은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심각해진 도 ${\cdot}$ 농격차의 해소를 위해 1970년대 초부터 농촌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였다.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한 잘살기 운동으로 1970년 당시 대통령이 농촌개발에 대한 강한 욕구와 집념을 천명하면서 농촌 새마을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자원이 부족하고 농촌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여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농민의 상당수가 끼니를 걱정해야 했으며, 도 ${\cdot}$ 농간의 격차는 벌어져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고 사회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농촌지역사회의 개발 없이는 나라의 발전도 안정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농촌 개발을 위한 환경개선과 소득증대 사업에 주력했던 새마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있었지만, 새마을 교육을 이수한 새마을 지도자들, 그 지도자들과 함께 근면, 자조, 협동을 실천했던 마을 사람들, 지역사회 주민들의 공동 노력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농촌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도시의 직장, 공장 새마을운동으로 번져 범국민적 운동으로 나라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살펴보고 국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도상국의 농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새마을운동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하여 제언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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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배치 및 평면의 변화를 중심으로 본 재래식 농촌주택의 근대화 과정에 관한 연구 -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삼가 1,3리 마을 주택을 중심으로 -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of the Site Plan and Plan of Conventional Rural Houses - Based on the Houses in SamGa Village, YongIn County Kying-gi Province -)

  • 김성우;이유미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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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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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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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The study is about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of conventional rural houses in Kyung-gi province. It alms to identify the pattern of change, particularly focusing on the changes of the site plan and plan. The site of study is Samga Village, in YongIn County, near Seoul. The study discusses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during the three decades from 1960 to 1980. The basic information was obtained through field research and site analysis, and the study relies predominatly on observational and statistical analysis. Four developmental stages can be clearly identified which are ; (1) Traditional type, (2)Modified-traditional type, (3) Saemaul type, and (4) The type of urban houses. The analysis was done through identification of changing site plan and plan.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changes of these elements show a certain pattern of sequential steps which also can be classified according to the four developmental stages mentioned above. The pattern of site design was consistantly maintained while plan and building system became very different However,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of Korean rural houses was the process of producing a certain type of architecture that is not universal but uniquely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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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 토속경관의 문화유산적 가치 (The Landscape Value of Asan Oeam-ri's Folk Village as Cultural Heritage)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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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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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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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농촌마을은 문화경관적 건전성을 상실한 채 변질이나 해체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충청남도 아산에 위치하는 외암마을(국가지정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은 신전통주의 부흥을 추구하며 지속성을 유지한 채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암마을은 예안이씨 동족마을로 500여년의 긴 역사 동안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성과 건전성을 지켜온 민속마을로서 문화유산적 가치 측면에서 '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토속경관 사례이다. 유교적 문화경관 지표물(종가, 사당과 묘역, 신도비, 정려와 송덕비, 정자 등)과 다양한 민간신앙 요소(장승과 솟대, 당산목, 산신당, 마을숲 등), 그리고 유 무형의 생활문화(활발한 문중활동과 엄정한 조상숭배 의례, 가계계승의식, 공동체 농경문화 및 생태환경의 보존 등)를 지속성있게 전승함으로써 전통시대 양반촌을 상징하는 보편성과 완전성, 그리고 진정성을 유지한 채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의 독특한 환경설계원리인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마을을 자리 잡기하여 환경적으로 건전한 정주공간(nature + economy + environment + community)을 구축함으로서 토속성 짙은 문화경관을 완성한 사례가 되는데, 외암오산(광덕, 설아, 송악, 월라, 면잠)과 외암오수(용추, 인곡, 반계, 역천, 온정)와 같은 광역 생태문화경관의 보전과 같은 자연환경의 절제, 그리고 생태환경의 질서와 문화적 가치를 중시하는 환경관(capacity + healthy + sustain-ability)을 결합하여 지속성과 진정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암마을 토속문화경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기준 IV(인류역사의 발달단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유형의 건축물이나 건조물 집합체 또는 조경유산)와 V(뛰어난 유형의 전통 인간 거주지 또는 급격한 변화로 파괴의 위험에 직면한 문화의 대표적 유산으로서 토지에 기반을 둔 유산)의 범주에 포함되는 우리나라 공동체 사회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소규모 고무 자작농 생계에 관한 비교 연구 (A comparison of rubber smallholder livelihoods in Cambodia and Laos)

  • Andriesse, Edo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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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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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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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메콩 경제권(GMS)의 다양한 개발 현장 속에서 고무 나무로부터 채취하는 라텍스는 캄보디아, 라오스를 포함한 인도 차이나 반도 국가들 사이에서 주요 농업 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대형 플랜테이션은 여러 부정적인 결과들을 낳고 있다. 토지 점유, 계약 농업을 통한 착취 등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농촌의 빈곤은 증가하고 있고 해외 투자자에 대한 재정적, 기술적 의존이 심화되고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소규모 자작농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무 자작농은 고용을 창출하며 토지 점유를 방지한다. 본 연구는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소규모 고무 자작농들의 생계를 비교하며 고무 호황으로 어떠한 이득을 얻고 어떠한 형태로 생계를 개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본 연구는 캄보디아의 Tboung Khmum 구역과 Somsanouk 마을의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다. 실증적인 분석은 세 가지의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하였다. 미시-생계 연구, 글로벌 가치사슬 그리고 GMS에 대한 연구들이다. 실증 분석의 초점은 생계의 변화상과 결과(고용 창출과 빈곤 탈출)이다. 전체적으로 소규모 고무 자작농은 전망이 밝았으나 앞서 언급 된 문제점들로 인해 농촌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중요한 유사성은 소규모 고무 자작농의 사회경제적 공헌이다. 연구 지역 두 곳에서 자작농들은 고무 농사는 생계를 개선하는 데에 좋은 수단이라고 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교육 수준은 그들의 생계 전략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양쪽 지역에서 응답자들은 다른 주민을 따라 고무 농사를 시작했다고 대답했으며 경제, 환경적인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한 다른 유사점으로 소규모 자작농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금 조달은 고무 농사의 심각한 애로 사항 중 하나였다. 명확한 차이점으로 Tboung Khmum의 자작농들은 중개 상인에게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라텍스를 판매했으며 Somsanouk의 경우에는 고무 가격이 국제 시장의 영향을 받음에도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상인에게 농민 전체가 같이 판매를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GMS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근대적인 경제 현상 에 농촌 공동체들이 다양하게 연결 되고 있음을 재확인한다. 게다가 Somsanouk 마을에서는 사이짓기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이는 투자자들이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작농들에게 사이짓기를 장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Tboung Khmum 마을의 경우 고무와 더불어 고무 이전의 주요 작물이던 카사바를 같이 재배했다. 요약하면, 자작농에 의한 소규모 고무농업은 (비록 농촌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토지점유 등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는 대규모 플렌테이션에 비해 유의미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미래를 위한 보다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촌 생활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7년 간의 고무 생육기간 동안 농가가 감수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을 해결하고 대안적 소득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근대기 서양인들의 조선견문기를 통해 본 19세기 말 조선의 경관 - 경관 관련 어휘와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 (A Landscape of Joseon Dynasty in Late 19th Century through Experience Record of Modern Westerners - Focused on Landscape Vocabulary and Content Analysis -)

  • 김동현;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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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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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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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조선이 근대화되기 시작한 19세기말 조선의 경관을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서양인들의 경관 관련 기록의 역사적 의미를 도출하고 이에 대한 경관의 유형화 및 그들의 인식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조선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개입되거나 오랜 기간 여행을 통해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설명이 여러 저서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점은 그들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경관을 조명하는 과정이 유의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서양인들의 기록에 나타나는 조선의 경관은 소도시 및 마을, 자연환경, 명승 고적, 근대시설, 경작지 등이 주로 언급되었다. 소도시 및 마을은 허름한 뒷골목과 빼곡히 들어선 가옥들이 주로 언급되고 있으며, 자연경관은 산악경관과 해안 및 하천을 따라 펼쳐지는 다양한 지형경관과 주변식생이 확인되었다. 궁궐과 산성, 사찰 등은 명승 고적의 주요 대상으로 기록되었으며 근대화된 시설에는 외국인 공사관 및 거류지, 교회나 학교 등의 서양식 건축이 언급되고 있었다. 경작지는 낙후되고 방치된 모습이 확인되었으나, 조망구도가 넓어질수록 평화롭고 번창한 분위기의 농촌경관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셋째, 조선에 대한 당시 서양인들의 인식은 비위생적이고 낙후된 주거환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빼어난 산수와 수려한 명승고적, 상류층의 주택정원을 대상으로 하는 긍정적 인식이 나타났다. 근대화된 경관에 대해서는 문명화된 경관 개선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인식이 형성되었으며, 전통경관의 훼손 및 이질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한상룡 가옥(현 가회동 백인제 가옥)의 원형과 조영개념 (A Study on the Original Form and Planning Concept of Han, Sang Ryong's Hanok)

  • 박상욱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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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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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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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e founder of the 'Paik In - Je House in Ga Hui Dong' in the Bukchon Hanok Village was found as Han Sang- Ryong (1880.11.14. ~ 1947.?) and the time when it was built was by the late June in 1913. Han Sang Ryong was the director of the HanSung Ban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he was the industrialist in the management committee and the economy coordinator in the economic area. The way how he could accumulate the huge amount of money was because his Uncle Lee Yoon Yong and Lee Wan Yong brothers were participating in various concessions under the protection of the colony government such as Chosun colonial government. Through seven years of preparation for building the mansion, the social function he presented to his house was 'the house built for the banquet hall'. He invited many celebrities of politics and economy to this house and built his fundaments for his social activity through interactions. To solve the construction concept, he used the way of 'duplicity and juxtaposition', and his mansion was reborn as a modernized urban Hanok through the reinterpretation by his program out of the old Confucian rules. Han Sang Ryong's mansion is significant and valuable in the period since it was a pioneer in challenging the creative housing in the developing stage of Hanok in early modern era, and the highest social level people were trying to show off through the Hanok as a product.

서울 송현동 일대의 문화 헤게모니와 장소성 변화 분석 (An Analysis of Cultural Hegemony and Placeness Changes in the Area of Songhyeon-dong, Seoul)

  • 최지영;조경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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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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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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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서울 송현동에 역사문화공원과 이건희 기증관이 조성될 예정이다. 송현동의 역사성은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정치적 판도에 영향을 받은 시련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장소성 분석은 역사적 맥락보다는 토지소유자와 용도 변화에 국한해서 다루어졌다. 그래서 본 연구는 현대문화지리학과 비교역사학 관점을 활용하여 송현동의 장소성이 문화 헤게모니에 따라 변화한 맥락을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역사적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중화주의, 대항해, 시민혁명, 제국주의, 민족자결주의, 민족주의, 대중예술, 신자유주의 같은 범세계 차원의 문화 헤게모니는 송현동을 비롯한 북촌 일대에 새로운 지식인층을 만들어냈고, 사회제도와 공간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송현동의 장소성은 다음과 같이 변화했다. 첫째, 송현의 소나무숲은 이상적인 유교 국가를 목표로 했던 조선 건국세력이 왕조의 영속을 기원하며 만든 비보숲이었고, 내사산의 지맥을 보호하는 사산금표제로 관리되었다. 세계적으로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조선 후기에는 연행이 늘며 청나라 문화를 향유하는 경화세족의 정원이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단지개발로 소나무 숲과 정원은 사라졌지만, 인공적인 정원과 외부의 자연을 조화롭게 연결했던 차경의 경관적 미학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가치가 있다. 둘째, 세계의 근대화 물결은 북촌 일대에 신식학교를, 친일파 소유의 송현동에는 하숙집을 만들었다. 송현동 옆의 안국동천길은 시민혁명과 민족자결주의를 접한 사상가들이 교류했던 장소였고, 최대규모의 하숙집이었던 송현동은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며 학생운동문화가 발아한 계기가 되었다. 안국동천길은 옛길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 광화문-북촌-인사동-돈화문로를 연결하는 역사 도심 보행 재생의 한 부분으로 의의를 지닌다. 셋째, 조선총독부의 문화 통치기부터 군사 정권기까지 송현동은 조선식산은행의 서구식 문화주택과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들어서며 서구문화의 통로였다. 주변 지역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며 근현대 미술시장이 형성되었다. 이건희 기증관은 북촌한옥마을, 공예박물관, 현대미술관, 갤러리와 문화벨트를 이루며 시민의 공간으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같이 장소를 이루었던 숲과 정원, 시민탄생의 거리, 근·현대 미술의 진원지로서 의미가 새롭게 조성될 역사문화공원과 미술관 그리고 주변 보행 네트워크와 조화롭게 재창조될 수 있도록 담론과 도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