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광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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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이당 대감 음택터는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일까 ? (Is it one of $8^{th}$ Propitious Sites for the Grave of Lee, Dang originated from Gwangju Lee's Family in Chosun Dynasty)

  • 김성원
    • 한국수자원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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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수자원학회 2011년도 학술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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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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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에서는 광주이씨 시조이신 이당 대감 (?-1369) 음택터의 공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정성적 및 정량적인 평가를 시도하였다. 이당 대감은 고려말에 국자감 생원시에 합격되고 조선시대에 들어서 자헌대부 (資憲大夫) 이조판서 (吏曹判書)겸 지의금부사 (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으며, 이당 대감 음택터의 경우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정승 5명, 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공신 11명을 배출한 명문집안이다. 따라서 이당 대감 음택터의 혈장을 비롯하여 각 사격을 검토하여 광주이씨 문중의 발복을 음택터의 영향으로 평가내릴 수 있는 공학적인 분석의 정성적 및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과연 조선시대 8대 명당 중 하나에 해당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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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편지에 나타난 해남윤씨가 8대 종부 광주이씨의 가문경영 (The Haenam Yoon's the 8th jonbu(종부) Gwangju Lee's family management in Korean letter of Joseon era)

  • 이현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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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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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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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에서는 유교적 종법질서에 변화가 일어난 19세기 격변기에 가문 경영의 주체로서의 여성. 특히 문중에서 종부로서의 지위를 가진 여성의 구체적인 삶의 여정을 한글편지를 통해 재구성해 보았다. 해남윤씨가 8대 종부 광주이씨는 혼인 초부터 남편의 부재로 전통사회의 일반적인 환경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학습 받은 남성중심의 사회적 질서가 아닌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광주이씨는 종부로서의 지위를 자신이 찾고 자신이 지킬 수밖에 없는 독립적인 주체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다. 광주이씨가 종부가 되어 해남윤씨가로 왔을 때 종가의 가세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그 당시 사회적 흐름인 노비제도의 변화로 인한 노주(奴主) 관계의 갈등과 수세의 감소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숙들의 간섭은 종가의 경제적 형편을 더욱 어렵게 했다. 광주이씨는 종가에서 종부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피폐해진 종가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지친들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으로 종부의 입후권을 이용하였다. 그 때까지 해남윤씨가에서 이루어진 입양은 모두 지친간에 이루어졌는데 광주이씨는 시숙들의 간섭에서 자유롭고 종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장치로 입양문제를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시숙들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오히려 멀리 있는 일가 중에서 양자를 골랐다. 광주이씨는 또한 종부로서의 권위를 확고히 하는 데는 종가의 경제권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당시 가정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노비노동을 자신을 중심으로 결속시키기 위해서도 자신이 종가의 경제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물론 자신의 피붙이 하나 없는 종가에서 광주이씨는 19세기라는 사회적 격변기에 종가를 바로 세우고 이름뿐인 종부가 아닌 명실상부한 종가의 안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