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건청궁

Search Result 6, Processing Time 0.02 seconds

학회 50년의 개관

  • 이상효
    • 전기의세계
    • /
    • v.46 no.6
    • /
    • pp.10-14
    • /
    • 1997
  • 1997년은 전기학회 창립 50주년이며, 동시에 이 나라에서 전기가 사용된지 110년이 되는 해이다. 1987년 1월 26일에는 건청궁(현재의 경복궁)에 전등불이 켜짐으로써 한반도에 전기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대한전기학회는 1947년 7월 9일에 창설되었다. 이 기사는 [전기학회 50년사]의 [제 2장 대한전기학회 50년 역사의 개관]의 집필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PDF

근대기 서울 야간경관의 형성 과정

  • Gwon, Yeong-Ran;Bae, Jeong-Han
    • Proceedings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Conference
    • /
    • 2017.10a
    • /
    • pp.45-47
    • /
    • 2017
  • 근대 사회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서양의 근대 문물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다. 그 중 전등은 고종의 필요에 의해 빠르게 도입되면서 서울의 경관을 근대적으로 이행시켰다. 전등으로 인한 야간경관은 도시의 시공간적 변화를 모두 지니는 경관으로 근대도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 연구는 서울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자 했다. 한국에서 전등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은 1887년 경복궁의 건청궁이었다. 하지만 고종이라는 특정 인물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일면 중세적인 성격을 지닌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궁궐에서만 사용되었던 전등이 민간인에게까지 전파된 데에는 전차 부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전차는 부국강병의 지표이자 개화된 사회의 상징이었다. 전차의 이용객이 늘어나게 되면서 운행시간은 22시까지 연장되었다. 이때 전차의 야간운행은 1900년 종로 보신각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계기가 된다. 종로 가로등은 민간이 볼 수 는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이다. 종로 야간경관은 일반 백성들이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당시 백성의 상권을 위하여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이라 할 수 있다.

  • PDF

전기백년 세번 소용돌이친 전력산업구조

  • 대한전기협회
    • JOURNAL OF ELECTRICAL WORLD
    • /
    • s.292
    • /
    • pp.21-26
    • /
    • 2001
  • 올해는 건청궁 시등으로부터 114년, 한성정기회사 설립으로부터 103년이 되는 해이다. 모두 한 세기를 훌쩍 넘어선 이런 때에 통합체제였던 전력사업이 다시 분할 민등화되는 전력사적 대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전력사업은 정치, 경제, 사회의 변혁 그리고 전력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소용돌이쳐 왔다. 사회 경제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는 공익사업이기 때문에 공익을 위해 겪어야만 했던 발자취이다. 한성전기 설립 이후 일정말기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해 정치적, 전FIR적 개편을 강행한 것을 제외하면 순수한 공익목적 달성을 위해 사업의 발전적 해체 및 재정비가 이루어진 전력사적 대 전환점은 세 번 정도 있었다. (1) 초기의 창업과 사업의 난립, (2) 발송전설비의 계획적 배치와 배전권역의 대통합, (3) 통합 한전의 발족 등이 그것이다. 대전환의 도래는 약 35년에서 40년 주기를 보이고 있는데 경제변환주기처럼 순환론적 메커니즘에 의한 변환을 겪은 건 아니지만 ''전력사적 변환''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몇 년씩 들끓다가 의식의 순화과정을 거쳐 새로운 구조로 탈바꿈한 발전단계를 거쳐왔다. 지금 우리 전력산업계가 대전환의 시점에 직면해서 여러 가지 진통을 겪고 있는 것도 새로운 체제가 태어나는 역사적 필연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 PDF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점등과 전차 운행으로 시작된 전기사업

  • 장세원
    • JOURNAL OF ELECTRICAL WORLD
    • /
    • s.280
    • /
    • pp.38-43
    • /
    • 2000
  • 2000년 4월 10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울 종로거리에 전등이 켜진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암흑의 천지를 밝히는 휘황찬란한 이 문명의 불빛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0년 4월 10일, 어두웠던 지금의 서울 종로거리 전차매표소 부근에 3개의 전등이 켜짐으로써 이 나라에도 새로운 문명사회가 열리게 되었음을 알리는 한편, 수 천 년 동안 내려오던 우리 농경사회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13년이나 앞선 1887년에 이미 궁중에서는 전등이 점화되어 구궁심처의 신비경으로만 알려졌던 건청궁(현 경복궁)의 전각이 대낮같이 찬연히 빛나는 불빛에 부각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11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궁중에서의 시등일이 문헌 등에 의해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날을 기념하여 우리나라는 4월 10일은 $\lceil$전기의 날$\rfloor$로 제정하고, 1966년부터 전기산업진흥촉진대회와 함께 격년제로 기념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 PDF

A Study on the Composition Principle of the Gyeongbokgung Drainage Facility - Focused on the review of Gyeongbokgung excavation survey - (경복궁(景福宮) 배수시설(排水施設)의 조성원리(造成原理)에 관한 연구 - 경복궁 발굴조사 자료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

  • Kim, Tae Min;Nam, Ho Hyun
    • Korean Journal of Heritage: History & Science
    • /
    • v.51 no.4
    • /
    • pp.120-145
    • /
    • 2018
  • This study intended to examine the drainage facility of Gyeongbokgung Palace based on the traces of the relic found during the excavation survey. Historical records indicate that various efforts have been made for smooth drainage facility for the palace since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Although there are no drawings showing the image of early appearance of Gyeongbokgung Palace during the foundation, it is possible to estimate it through the drawings prepared after the King Yeongjo's reign. The image of the palace after reconstruction can be seen through the "Bukgwoldohyeong" and other relevant documents. At this present, since the survey intends to determine the image of Gyeongbokgung Palace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based on the standard restoration plan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this study also focused on the drainage facility of Gyeongbokgung Palace during King Gojong's reign, particularly on the collecting wells and culverts of six areas including "Chimjeon Hall", "Taewonjeon Hall", "Geoncheongung Hall", "Sojubang Hall", "Hamhwadang - Jipgyeongdang - Yeonghundang Hall", and "Heungbokjeon Hall". Gyeongbokgung Palace is divided into various zones composed of the central halls and surrounding corridors, and the drains also primarily start from each hall and later join the central drain of the zone. The central drain then leads to the "Eo-gu(御溝)" and the water led to the "Eo-gu" is finally discharged through the water gate. It appears that this series of processes were basically devised to coordinate artificial drain with the natural drain using the natural geographical features of the palace. Research showed that the collecting well where the draining begin was installed in the area where a large amount of household sewage was generated but mostly in the corners where corridors met or corridors and wall met. This appears to be an arrangement to handle the water falling from the roof and household sewage. Also, "Ju(廚)" was installed mainly at the end of the corridor to handle household sewage. The installation of these drainage facilities shows the possibility that the drainage of Gyeongbokgung was very compact under a series of pl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