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증원으로 촉발된 의과대학생의 수업 거부와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7개월째 접어들도록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국민건강의 최소 보루인 응급의료 붕괴를 포함하여 의료체계가 위기에 직면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1]. 이는 비정상 의료체계가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의사 인력 증원 이슈는 의료자원의 일개 요소를 변화시키는 정책인데, 세부 정책이슈가 전체 의료체계를 뒤흔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보건의료정책은 전문가 이해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정책갈등이 상존하는 대표적인 정책분야로 꼽히고 있지만, 이번 의‧정 갈등 사태는 기간과 파장효과를 고려할 때 유래가 없을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의‧정 갈등이 진행 되는 과정은, 정책 의사결정과 관련되어 숙고해야 할 여러가지 현안 과제들을 내포하고 있어, 향후 정책 개선에 참고할 만한 몇 가지 이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정책 근거의 중요성과 활용방식에 대한 이슈이다. 의료계는 의사를 연간 2,000명씩 증원하는 것이 세계적으로도 파격적인 규모임을 감안할 때, 정부의 정책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정부는 충분한 근거를 토대로 규모가 책정되었다고 주장한다[2]. 이러한 근거에 대한 입장 차이는, 갈등당사자 양측 모두가 정책결정과정에서 근거에 기반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정책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출발점이라는 전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거기반정책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준거 틀로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정책 근거를 둘러싸고 근거의 미흡함과, 근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이견이 충분하게 해소되지 못한 채, 정책이 집행되다 보니, 근거 기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피하지 못하였다. 이는 정책 근거 제시 못지 않게, 근 거를 놓고 충분한 논의와 의견조율의 과정이 병행되지 못한다면 ‘근거기반정책’의 순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고 하겠다.
둘째, 논의구조의 신뢰성이 정책결정에서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사인력 증원에 대해 꾸준히 논의해 왔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고 주장한 반면[3], 의료계는 의사인력 증원에 대한 협의가 없었고 보정심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4]. 급기야 정책 근거와 결정과정의 적합성을 둘러싼 문제는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고, 법원은 근거와 결정과정의 적합함에 미흡함이 있다고 지적하였다[5]. 법원은 근거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공익의 크기를 고려하여 정책 추진을 결정하였으나, 보정심과 교육부 의과대학 정원 배정심사위원회 회의록 비공개를 둘러싸고 후폭풍이 이어지면서 의사결정에 대한 의혹 공방과 불신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논의형식은 갖추었으나 논의구조의 권위와 신뢰성을 담보하 지 못하였을 때, 논의형식이 정책의 수용도를 높이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는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국민복지에 직결되는 영역이다보니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각종 위원회라는 논의구조 형식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 위원회를 거쳐 정책이 마무리되는 구조로 정착되었다. 외형상으로는 협의기구가 작동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나 이해당사자들을 구색으로 포함시켰을 뿐, 공익대표라는 명칭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주로 작동되고 있고 보정심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체계가 동일한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이 실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들을 수렴하고 현장 에 부합되는 정책으로 조정해가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차제에 필요하다 하겠다.
셋째, 정책신뢰자산의 감소로 치르게 될 비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신뢰자본 수준이 낮은 사회에 속하며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167개국 중 111위로 매우 낮다[6]. 시간이 경과된 자료이기는 하나 의사들의 정부신뢰 점수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7], 11점 만점에 3.76 수준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정부신뢰는 정책수용도를 개선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책 성과를 높이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8]. 정부신뢰가 낮다는 것은 정책실행의 장벽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정책효율성과 효과성을 떨어뜨린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의사인력 증원으로 인한 갈등들이 잘 관리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낮은 의사의 정부신뢰도를 떨어뜨려 향후 다양한 보건의료정 책을 추진해가는 정책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정부신 뢰를 높이는 요소로서 지적되는 정보 및 정책결정의 투명성 확보, 그리고 정책결정의 합리성 제고 등은 이번 의사증원과정에서 제기된 정책결정과정의 당면 과제들과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 서 의사인력 증원규모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못지 않게 이번에 무너진 정부신뢰를 어떻게 회복하고, 민감한 정책이 슈들에 대한 의사결정을 어떻게 관리해 갈 것인지 의사결정시스템을 돌아보고 복원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런 취지에서 2024년 11월 14일에 개최될 보건행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보건의료정책 의사결정: 신뢰와 연대기반의 거버넌스 혁신방안’이라는 대주제로 관련 이슈들에 대한 논의의 장을 기획 하고 있으며, 관련 정책주체들 간 생산적이고 개방적인 논의들이 개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해상충
이선희는 보건행정학회지의 편집위원장이지만 이 연구의 심사위원 선정, 평가, 결정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이 연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이나 이해당사자로부터 재정적, 인적 지원을 포함한 일체의 지원을 받은 바 없으며, 연구윤리와 관련된 제반 이해상충이 없음을 선언한다.
ORCID
Sun-Hee Lee: https://orcid.org/0000-0002-9694-197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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