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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colonial Media Piracy Studies and Intellectual Property Regime as Global Control System

  • Yoon, Sangkil (Dept. of Media & Communication, Shinhan University) ;
  • Kim, Sanghyun (Rinascita College of Liberal Arts and Sciences, Shinhan University)
  • Received : 2022.08.05
  • Accepted : 2022.08.29
  • Published : 2022.09.30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ritically review the global intellectual property regime, which has been in full swing since the mid-1990s, from the perspective of postcolonialism. More specifically, by looking at issues which were raised by the Postcolonial Piracy Studies, it attempted to relativize the global IP system. This paper confirmed the postcolonialist view that universal concepts could never be completely universal or pure, and confirmed the non-state legalities view of media piracy as a conduit for participation in the global network through 'porous legalities' concept of Lawrence Liang. Finally, this paper raised the need to understand various relationships between the informal media economy and the formal media economy in a balanced perspective, rather than relying only on the neat dichotomy logic of illegality/legal.

본 연구의 목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글로벌 지식재산권 체제를 포스트식민주의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디어 콘텐츠를 '복제하는' 미디어적 실천인 '미디어 해적 행위'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던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가 글로벌 IP체제에 대해 어떠한 논점의 문제제기를 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21세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표준'으로 자리 매김한 글로벌 IP체제를 '상대화'시키고자 했다. 로렌스 량(Lawrence Liang)이 제기한 바 있는 '다공적 합법성'(Porous Legalities) 개념을 통해 미디어 해적 행위를 글로벌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통로로 재사유하고자 했던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의 관점이 글로벌 IP체제를 인권과 같은 비국가적 합법성의 견지에서 파악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의 결과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미디어 해적 행위를 비공식적 미디어경제의 한 축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이를 공식적 미디어경제와의 연관관계 속에서 균형 있게 파악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기했다.

Keywords

I. Introduction

최근 세계화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관심사 중 하나는 글로벌 시스템의 파워, 즉 글로벌 차원의 통제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센(Sassen)이 설명한 바처럼, 글로벌 통제의 새로운 체계는 서로 다른 국민국가의 시민들이 새로운 글로벌 질서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글로벌과 국민국가 간의 공생(共生)에 바탕을 둔 것이다[1]. 이러한 글로벌 통제체계가 상업적 문화 활동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글로벌 IP체제’(Global Intellectual Property Regime)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적 세계화로 인해 미디어산업들이 현재 글로벌화되었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사실 저작권(copyright)은 국민국가의 창안물이었거나 아직도 여전히 국민국가의 창안물인 상태로 남아있으며 국제 저작권은 국가 간 무역의 대상이다[2].

이러한 글로벌과 국민국가 간의 법률적 공생에 바탕을 둔 글로벌 IP체제 구축의 역사적 과정은 다분히 글로벌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는 지난 5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아날로그/디지털혁명의 결과로서 융합된 미디어기술들이 등장하는 상황적 조건 속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디오기기, 비디오 기기, 비디오테이프, 디지털카메라 등의 소비자용 매체기술의 탄생은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공간을 확장·이동시켜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가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것을 촉진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공간의 자본화를 가속화시켰다[3].

그렇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1970년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4트랙 테이프 머신이 보급된 것에서부터 80년대와 90년대에 비디오 포맷의 도입, 그리고 컴퓨터 하드웨어의 전 세계적인 보급에 이르기까지, 이들 기술의 공통점이 사용자들로 하여금 비공식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인프라에서 미디어를 소비, 공유 및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의 유통 속도를 가속화시킴으로써 (더 이상 쓸모없지는 않더라도) 미디어 콘텐츠를 제한하거나 유포를 차단하는 시도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4]는 측면에서 보자면, 글로벌 IP체제 구축의 역사적 과정은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것으로도 느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저작권이 서로 다른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협상하는 플랫폼이 되어 매우 불안정한 담론이 될 가능성이 높고, 또 문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저작권의 미래가 문화 보호와 이익 극대화라는 상반된 임무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5]고 예측한 팡(Pang)의 평가는 글로벌 IP체제의 이율배반적 성격을 간파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팡의 평가가 학술적인 관점에서 시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계몽주의적 재산권 논리에 입각하여 성립된 ‘지식재산이라는 서구적사유’에 기반하여 진전되었던 글로벌 IP체제의 보편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시각에 입각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글로벌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이하 IP) 체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트식민주의의 시각을 미디어의 생산, 유통, 수용과정에서 적용하여 미디어 콘텐츠를 ‘복제하는’ 미디어적 실천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던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postcolonial piracy studies)가 글로벌 IP체제에 대해 어떠한 논점의 문제제기를 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21세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표준’(standard)으로 자리매김한 글로벌 IP체제를 ‘상대화’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예비적인 고찰을 통해 글로벌 IP체제의 인식론적 기반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의제기하는 포스트식민주의의 거시적인 인식 틀을 검토한 이후, 그 인식틀에 입각하여 글로벌 IP체제가 구축되는 역사적 과정을 간략히 살펴본다. 그리고 본론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의 대표적인 학자 중의 하나인 로렌스 량(Lawrence Liang) 이 제기한 바 있는 ‘다공적 합법성’(Porous Legalities, 多 空的 合法性) 개념을 중심으로 주요 쟁점을 살펴봄으로써, 그간 글로벌 IP체제의 인식론적 규정에 의해 미디어 해적행위를 ‘미디어 불법복제’라는 말로 그릇되게 번역했던 관행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이를 비공식적 미디어경제의 한축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공식적 미디어경제와의 연관관계 속에서 균형 있게 파악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기하고자 한다.

II. Preliminaries

1. Epistemology of Postcolonialism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은 간단히 말하자면 (마치 비판 언론학의 한 분야인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문화를이미 거기에 존재하며 고유한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여겼던 지적 풍토를 문제화하면서 등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식민화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서구 중심적 지식생산 구조를 문제화한 학문 분야이다. 영어권에서 활동하며 이를 주도한 제3세계 지식인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Spivak), 호미 바바(Homi Bhabha),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다[6].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입장에 선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유하는 인식론적 전제는 보편적 관념들이란 것이 결코 완전히 보편적이거나 순수한 개념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특정한 개념들의 정식화에 사용된 언어와 그 개념들이 정식화될 때의 상황들은 단독적이고 독특한 기존 역사들을 그 개념들 안에 들여 놓았던 게 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포스트식민주의가 핵심적으로 제기했던 것은 특정 개념과 사상이 장소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다. 즉, ‘사상은 기원이 되는 장소들을 초월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장소들은 자신의 각인을 사상에 남겨 순수하게 추상적인 범주들이라는 관념을 의심케 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7]. 예를 들자면, 16세기 이후 서구인들은 식민지 정복과정에서 ‘자연’을 ‘문화’와구별해 인식하는 서구식의 ‘자연’ 개념을 이식하고, ‘자연’ 과 ‘문화’ 사이를 구별하지 않았던 식민지인의 개념을 제외시켰다. 더 나아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럽은 ‘자연’ 을 산업혁명의 기계들에 연료를 보급하는 천연자원의 공급원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함으로써, 식민화된 ‘자연’ 개념을 발전시킨 바 있었다[8].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포스트식민주의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장소의식을 박탈하는 사유양식’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식민지 시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근대성 관념에 내장된 개념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역사주의’이다. 역사주의는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하나의 통일체이자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념이고, 역사적 시간을 ‘발전서 사’(developmental narrative)와 ‘이행서사’(transitional narrative)로 구성해 낸다. 이 역사주의 개념에 의구심을 제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개념이 근대성 또는 자본주의가 글로벌한 것으로 보이도록 할 뿐만 아니라한 장소(유럽)에 기원을 두고 이어서 그 장소 바깥으로 퍼져 가면서 시간을 따라 글로벌하게 된 ‘어떤 것’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사유양식’(思惟樣式)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양식으로 인해, 식민 지배의 불평등한 유산들이 실제로 오늘의 글로벌화 과정들을 어떻게 굴절시켰는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글로벌화가 야기하는 상실들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눈감아버리게 된다는 것이다[9].

2. Historical Formation of Global IP Regime

앞서 살펴본 포스트식민주의의 인식 틀에서 보자면, 현 글로벌 IP체제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근대 유럽사회라는 지리적 장소에서 발생하여 ‘근대적’(modern) 표준으로 설정된 지배적인 재산권 논리가 ‘근대성의 어두운 이면’이라 할 수 있는 식민성(즉, 서구 식민주의의 기저에 깔린 논리)에 근거해 비서구사회로 확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라르스 엑스타인(Lars Eckstein)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글로벌 IP체제의 그 ‘표준’은 영국의 공리주의적 법률 모델과 개인 저작에 대한 독일의 이상주의적 관념에 기반을 둔 뚜렷한 지역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복잡한 ‘매스미디어 해적 행위’(mass media piracy) 의 역사에서 진화한 것으로 적어도 1470년대에 영국에서 인쇄기가 도입되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0]. 즉, 글로벌 IP체제는 미디어 해적 행위와 상호작용하면서 성립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애드리안 존스(Adrian Johns)가 보 여주었듯이, 인쇄물에 대한 해적 행위는 서구적 근대성 전반에 걸쳐 이미 만연해 있었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해적 출판업자들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영어 인쇄물의 권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또 19세기 내내새로 건국된 미국은 체계적으로 영국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미디어 해적 행위는 공공 영역의 발전과 더불어 더 많은 사회적 집단과 덜 특권적인 지역 간의 지식 이전(移轉)을 촉진했지만, 동시에 경제적 생산의 지구적 중심지로 하여금 좀 더 강력하게 저작권 통제를 주창하고 정당화하도록 추동했다[11].

특히 산업화의 역사에 있어서 지식재산의 보호는 기술이전(移轉)과 관련된 핵심사항이었다. 16~17세기 동안 경제적으로 보다 앞서 있던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기술 이전은 영국이 배후의 원료 생산자에서 선두 모직 산업 국가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19세기 후반에는 특허권 및 기타 지식재산권의 준수(또는 위반)가 기술 이전 및 일반적인 지식 이전에 핵심 현안이 되었다. 현 선진국들대부분은 1790년에서 1850년 사이에 각자의 특허법을 제정했고, 19세기 후반까지는 (1709년에 영국이 처음으로 도입한) 저작권법과 (1862년에 영국이 처음으로 도입한) 상표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 제도를 확립했다. 점차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법률을 도입하는 나라가 늘어나면서 19 세기 후반부터 국제 지식재산권 제도를 구비하라는 압력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시도가1873년의 비엔나 회의(Vienna Congress)였고 국제 지식재산권 제도에 관한 첫 번째 ‘공식’ 회의가 1878년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1886년에는 저작권법에 관한 ‘베른협약’(Berne Convention)이 국제 사회의 인준을 받았는데, 이 베른협약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 특히 1911년, 1925년, 1934년, 1958년, 그리고 1967년에 – 특허권자의 보호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진 파리조약과 더불어) 1994년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Agreement on Trade Related Aspect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이하 TRIPs)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국제 지식재산권 제도의 기초를 이루었다[12].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현 글로벌 IP체제 구축의 근간이 되는 TRIPs가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 주도로 체결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1980년대 초반 개발도상국들의 국제 지식재산권 제도 개혁 요구에 대해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선진국들이 대응한 결과로서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문제가 국제무역기구 의제에 포함될 수 있었다[13]. 그리고 급기야 1986년 4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 이하 UR) 공식의제로 논의되었 다. UR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지식재산권이 인류의 공동재산이라는 취지의 ‘인류공동유산론’을 주장하며 협정체결에 강력히 반발하였으며,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경우에도 해적 상품의 유통문제에 국한하게 하고 지식재산권 전반에 관한 문제는 세계지식재산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IPO)에서 관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후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과 7년여의 기나긴 협상 끝에, 1995년 1월 1일에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와 함께 새로운 무역관련 지식재산권 보호 체제가 구성될 수 있었다[14].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가장 최근인 1994년 TRIPs 협정체결과 함께 서유럽 인쇄 문화의 ‘지역적 역사’에 기초하여 처음 세워진 글로벌 IP체제는 이제 강력한 세계적 ‘교리’(doctrine)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교리가보편적인 것이 아닌 만큼, 그 교리가 다양한 제국주의적 상상들과 어떻게 얽히게 되었는지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으로부터의 신중한 평가가 요구된다. 즉,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지식이든 아니든)에 대한 근원적 사유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안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사유라는 견지에서 이 교리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15]].

III. Media Piracy and Porous Legalities

글로벌 IP체제라는 ‘교리’에 대해 대안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해적 행위’(piracy)에 대한 재평가뿐만 아니라, 그 재평가를 지지할 수 있는 개념적 기반의 도출과 함께 현재의 글로벌 미디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 방편으로 새로운 미디어경제학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 Postcolonial Media Piracy

디지털 기술의 출현과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해 저작권침해인 미디어 해적 행위는 미국 저작권 소유 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들에 의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위협 중 하나로 점점 더 많이 확인되고 있다. 국제지식재산 권연맹(International Intellectual Property Alliance, IIPA)은 저작권 보유 산업이 미국의 번영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전 세계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실이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도전’ 중 하나로 제시한다[16].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 정부와 저작권 보유산업은 해적 행위를 범죄 활동으로 규정하는 입법 조치, 경찰 또는 사법 운영, 홍보 캠페인 등 전 세계적인 규모의 해적 행위에 대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해왔다[17].

미디어 해적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주류적 견해에 맞서 그것이 문화적 세계화 과정에 유의미하게 기여한다는 현실적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들이 빈번히 발표되기는 했지만[18-19],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 측면에서 ‘해적 행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II-2에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글로벌 IP체제의 역사적 형성과정에는 ‘미디어 해적 행위’가 중요한 구성 요인이었고, 지식재산권을 위반하는 ‘미디어 해적 행위’는 경제적 생산의 글로벌 중심지인 선진국들이 좀 더 강력한 지식재산권 통제를 주장하고 정당화하도록 추동하는 현실적 증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IP체제라는 ‘교리’에 대해 대안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적 행위’에 대한 재평가가 핵심적으로 요구된다.

우선, 미디어 해적 행위를 포스트식민주의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적인 해적 행위가 기본적으로는 재산, 자본주의, 인격(personhood)에 대한 논쟁과 관련된 기본 범주들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20]고 얘기한 바 있는 라비 순다람 (Ravi Sundaram)의 통찰력과 대체로 그 인식을 같이 한다. 즉, 해적 행위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계몽주의적 정의의 보편적 도달 범위라고 진술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문제기가 그러한 정의의 힘과 타당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정의의 범위가 다른 서발턴적 (subaltern) 인식론 – 포스트식민주의를 주창한 학자인 스피박(Spivak)은 서발턴을 권능화하지 못해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하는, 말할 수 있는 목소리와 표현수단을 갖지 못한‘타자’로 개념화하였다[21] - 에 의해 어떻게 복잡해지고 초과되는지를 조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엑스타인은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 행위’를 ‘재 산, 자본주의, 인격에 대한 글로벌한 설계’와 ‘인간적 존재가 되는 다양한 지역적 방식들 간의 ‘잠정적 타협’을 협상 하는, 더 오래된 기술과 새로운 기술을 통해 매개되는 일련의 실천들로 이해하기도 했다[22]. 쉽게 얘기하자면, 이들은 (미디어) 해적 행위가 일반적으로 (지식재산권의 굴레에 의해) 서구적 근대성의 상상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자신들을 삽입하고자 한 충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견지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의 접근방식은 아시아와 비서구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의 ‘불법복제’에 대한 충동이 서구적 문화에 대한 자의식적인 저항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던, 1980년대 미디어 정치경제학 진영에서 제기한 ‘문화제국주의론’과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23].

이러한 시각을 더 발전시킨 로렌스 량(Lawrence Liang)은 “(사회적 결속과 모든 사회적 갈등의 억제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고 확장되는 재산 형태에 대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선 소유와 통제에 대한 글로벌 체제의 창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근거하여 성립된) 글로벌 IP체제에 대한 여러 형태의 도전들을 이해하는 여러 경로들(avenues)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24].

그에 따르면, “해적 현상에 대한 첫 번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설명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불평등한 접근에 대한 것이다. 그 주장은 가격 차이가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해적판 상품을 구매하도록 강요하는데, 그들은 오리지널상품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이 명제에는 부분적 진실이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경건함(piety)의 모델(‘가난한 제3세계’의 인물)에 의존하며 근본적으로 글로벌한 관계를 ‘발전’과 ‘서구 따라잡기’ 식으로 설명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 있다. 그가 보기엔, “현재의 글로벌은 훨씬 더 복잡하고 세계화 시대에 문화 생산의 복잡한 논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며, “개발도상국의 해적은 경건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하는것은 그 인물이 자신의 경험을 정형화하고 있는 글로벌화의 미디어 정경들을 통해 항해하고자 할 때 그 인물로부터 어떠한 주체적인 역할을 빼앗아 버리는 셈”이다.

또한 그는 글로벌 IP체제에 대한 여러 형태의 도전들이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등과 같은 문명비평가들이 주장하는) 네트워크 경제의 본질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네트워크 경제 속에서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은 이미 삶의 방식”이고, 또 그들에겐 “재산도 중요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자면,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에서는 글로벌 IP체제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도 인식될 수 있는 미디어 해적 행위를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일종의 ‘참여’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서 잠시 언급했던 바 있는) 미디어 해적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주류적 견해에 맞서 그것이 문화적 세계화 과정에 유의미하게 기여한다는 현실적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들은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에 따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 Porous Legalities of TRIPs

미디어 해적 행위를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일종의 ‘참여’로 재인식하고자 하는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의 시각은 로렌스 량이 제기한 ‘다공적 합법성’(Porous Legalities) 개념으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미디어해적 행위가 합법성(legality)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정을 의문시하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다공적 합법성을 사람들이 새로운 글로벌 경제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파악한다.

사실 그가 제기한 이 개념은 인도의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Raqs Media Collective)가 제시한 ‘누수’(seepage, 漏水)라는 은유적 표현에서 차용하여 발전시킨 개념이기 때문에 다분히 비유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는 현재의 글로벌한 자본 흐름 안에서 일종의 잔여물(residue)로 등장하게 되는 위반자들(해커, 해적, 이주자, 무단 거주자 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누수’라는 강력한 비유를 도입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누수’이라는 것은 많은 유동성 물질의 흐름이 ‘안정된 구조’에 침출되어 구멍들을 통해 들어가 퍼지는 작용을 의미하는데,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누수는 구조물 외부 표면의 구멍들을 통해 구조물 내의 구멍으로스며들어 구조물 자체의 약화를 초래하는 행위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누수는 시간에 걸쳐 축적된 비(非)가시적인 구조적 변화를 유발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비유에 따르자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는 이와 같은 많은 누수 행위가 존재하면서 그 네트워크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이해된다. 가 령, 미디어 해적 행위들은 ‘허가된 복제’와 ‘허가되지 않은 복제’의 차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정보와 문화를 퍼뜨리는 동시에 지식재산을 평가 절하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이와 같은 불 복종(insubordination) 행위들이 그 원천적 경험의 맥락에서 분리되면 안 된다는 것에 있다. 즉, 그 행위들이 어떤 것이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더 넓은 맥락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인데, 이 넓은 맥락은 네트워크의 맥락이며 노드간 끊임없는 이동이 중요한 맥락이라는 것이다[25].

이러한 비유를 바탕으로, 량은 ‘다공적 합법성’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에 의하면, 합법성의 다공적 성격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재료를 통해 만들어지지만, 법률적 지배의 일반적인 규범적 신화 - 주로는 권리, 평등, 정의에 대한 접근 등과 같은 것들 - 에 대한 깊은 불신을 통해 만들어진다.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의 실제적 경험이 얘기해주고 있는 사실은 권력과 벌이는 ‘매일매일의 서로 다른협상 네트워크’가 합법/불법이라는 명확한 이분법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법률 체계가 다공적이라는 관념은, 국가적 합법성로부터 (인권과 같은) ‘비국가적 합법성’(non-state legalities)까지, 그리고 불법의 개별적인 행위에서부터 법을 넘어서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합법성을 고려하는 대안적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26]한다는 것이다.

결국 량이 ‘다공적 합법성’ 개념을 통해 제기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현 네트워크 사회에서 발생하는 미디어 해적 행위와 같은 위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선 (국가적 합법성에 근거한) 기존 ‘합법/불법’의 이분법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인권과 같은 비국가적 합법성 등 다양한 형태의 합법성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디어, 현대성 및 글로벌화의 복합적 세계에 대한 참여의 길을 스스로 창조하고자 하는, ‘적절하지는 않지만 아직 조용하지도 않은’ 시민으로서 이 위반자들이 가지는 위상은 우리가 법률, 합법성, (유무형의) 재산, 그리고 우리가 공공 영역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을 던질 것을 요구한다”[27]는 것이다.

이와 같이 량이 제기한 ‘다공적 합법성’의 견지에서 보자면, 1994년 TRIPs 체결 이후 지식재산권 보호규정이 협정에 가입한 국민국가의 법률에 점차 반영되어 가고 있는 지식재산권 보호의 글로벌 체제는 이미 다공적인 형태로 존재했던 각 국민국가 단위의 지식재산에 대한 법률들을 국제적 차원에서 표준화시켜 강제함으로써 국가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누수’와 다공성(porousness)을 메우려고 한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94년 TRIPs 체결에 이르기까지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자 하는 글로벌 체제의 역사적 움직임은 ‘지식재산권 보호기간의 연장’이라는 이슈에 집중되었고,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각 국민국가 단위에서는 지식재산권 보호기간이 연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저작권의 경우가 매우 과도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886년 성립된 ‘문학⋅예술적 저작물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 제7조에서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저작자의 생존기간과 그의 사망 후 50년”[28]이라고 규정했던 이전 시기의 상황을 보면, 저작권의 보호기간은 국가별로 자국의 사정에 따라 합리적인 보호기간을 제각각 정하고 있었다. 또한 베른협약 이후에도 현재의 선진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관철시키기 전에는 이 협약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영국의 경우, 1709년 ‘앤 여왕법’에 의하여 새로운 저작물에 관하여 14년의 보호기간을 규정하여 이러한 기간이 경과하면 저작물이 사회의 공유에 속하도록 하였고,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저작자의 사후로까지 연장 하였다. 그 후 베른협약 체결 이후 약 70년이 지난 1956년이 되어서야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규정하였다[29]. 한편 역사적으로 미국은 저작권 수입국이면서 해적 국가이었던 시점에서는 저작권 국제조약인 베른협약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국제적 보호기간보다 더 짧은 보호기간을 두고 있었으나, 저작권 산업이 발달하면서 저작권 수출국이 되자 베른협약의 보호기간이저작자 사후 50년보다 20년이 더 긴 저작자 사후 70년을 보호기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또는 국제적 보호기간 규범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30].

그러나 국가적 합법성에 근거하여 강화되고 있는 저작권법의 보호기간이 인권과 같은 비국가적 합법성을 지니는지에 대해선 끊임없이 시민단체와 학계로부터의 이의제기가 있었다. 이에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창작자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가 인권으로서 보호될 뿐만 아니라 창작자 이외의 모든 사람이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도 인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고, 지식재산에 대한 재산권만이 아니라 그 이용자의 보호도 인권의 범위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31]. 이에 따라 “지식재산권의 지나친 보호 강화가 창작물의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하게 되고 시장에서의 경쟁 왜곡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기술혁신의 저해와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초래하게 됨으로써 지식재산권 보호의 취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이나 각 나라별 사정에 따라 지식재산권 보호강화정책은 나라별 사정에 적합하여야 한다”[32]는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다.

3. Relationship between Formal and Informal Media Economy

미디어 해적 행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주류적 견해의 주된 논거 중의 하나는, 지식재산권 보호제도가 창작자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창작물의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관련 산업의 향상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데 있다. 즉, 지식재산권의 강력한 보호야말로 지식 창출과 경제 발전에서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의 연구에서 잘 논증되었던 바와 같이, 지식재산권의 보호와 지식재산의 사유화가 지식 창출과 경제 발전의 인센티브적 요소라는 견해의 현실적 증거는 매우 미약하다. “스위스와 네덜란드에 특허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았던 기간을 연구한 『특허 없는 산업화』(1971)라는 탁월한 저서에서 쉬프(Schiff)는 이 두나라의 경우 특허 제도의 부재로 말미암아 기술 발전에 방해를 받았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은 바 있었다”[33]. 따라서 그간 글로벌 IP체제의 인식론적 규정에 의해 미디어 해적 행위를 ‘미디어 불법복제’라는 말로 그릇되게 번역했던 관행적 사고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미디어해적 행위를 포괄적인 미디어산업의 한 부분으로 파악하는 인식론적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미 살펴본 바 있는 바 있는, 미디어 해적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주류적 견해에 맞서 그것이 문화적 세계화 과정에 유의미하게 기여한다는 현실적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미디어 해적 행위를 복잡한 사회경제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를 커뮤니케이션의 비공식 경제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의 비공식 경제 네트워크가 비서구국가의 문화산업 생산물의 증가된 초국적 유통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둔다[34].

이와 같은 새로운 인식을 미디어경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체계화시킨 레이먼 로바토(Ramon Lobato)와줄리언 토마스(Julian Thosmas)는 “오늘날의 미디어 풍경은 공식적 경제와 비공식적인 경제 간의 깊은 상호관련성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 있”고 심지어 “미디어 역사는 공식적/비공식적 영역들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라고 단언한다[35]. 그리고 그 근거로 애플(Apple Inc.)과 같은거대 글로벌IT 기업의 역사를 제시했다.

이들에 의하면, 현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애플사는 기업 성장과정에서 미디어 생산과 유통의 비전문가적 시스템에 깊이 의존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아이튠즈(iTunes)의 대중성이 ‘공인되지 않은 공유’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 사람들이 아이튠즈를 필요로 했던 주된 이유는 그들이 냅스터(Napster)를 이용하여 확보한 MP3파일을 재생하기 위 해서였다. 이후 애플과 여타 미디어 기업들은 다양한 방법 - 등록된 미디어포맷과 라이센스화된 프로토콜, 폐쇄화된 미디어 환경과 디지털 권리 관리 테크놀로지 등 – 을 통해 비공식적 활동의 범위를 축소하고 봉쇄하였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축적함으로써 거대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디어 기업들은 비공식적 미디어 생산과 소비를 통해 형성된 소비자 습관에 의존하고 있으 며, 아이튠즈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듯이 공식적 미디어와 비공식적 미디어 사이에는 특정 종류의 상호의존성이나 근본적인 긴장이 존재한다[36].

여기서 ‘비공식적 경제’(the informal economy)는 공식적이고 권한을 부여받은 경제 공간 외부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활동들과 과정들을 지칭하는 분석 개념이라고 할수 있는데, 특히 비공식적 미디어 경제는 (이미 애드리안존스가 인쇄물에 대한 해적 행위가 서구적 근대성 전반에 걸쳐 이미 만연해 있었다고 언급했을 때, 해적 행위가 계급적 기반 뿐 만 아니라 특히 ‘시장의 지리적 여백’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던 것처럼) 무역과 여행의 창안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계들과 문화들을 가로질러 작동하기 때문이다[37].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공식적 미디어경제와 비공식적 미디어경제 간의 상호작용적 관계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비공식적 미디어 무역의 지리적 측면과 연관된 영역이다. 특히 1994년에 체결된 TRIPs의 제6조 규정과 이로부터 비롯된 ‘병행수입’(Parallel Import)의 이슈는 ‘시장의 경계’(market border)와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정학적·산업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공식적/비공식적 미디어경제 간 상호작용의 복합적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RIPs 제6조에서는 “본 협정상의 어떤 것도 지식재산권의 소진문제에 관한 본 협정하의 분쟁해결절차를 다루기 위해 이용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각 체약국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권리소진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하고 있다. 여기서 ‘권리소진의 원칙’이란 원(原)권리자가 적법하게 만들어진 복제본(특허물품 포함)을 일단 판매하면 이를 매수한 복제본의 권리자는 원권리자의 독점적인 배포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재판매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즉, 제1의 판매로써 (특허권, 저작권 등의) 원권리자의 권리는 소진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위 ‘병행수입’이라 일컬어지는 ‘문화적 무역’(cultural trade)이 가능해 졌다. 병행수입이란 권리자의 국가 이외의 국가에서 적법하게 제조되거나 복제된 특허상품, 저작물, 상표부착물이 권리자의 국가로 수입되는 것을 말하는데, 협정에서는 선진국에 대해선 병행수입 금지를, 개발도상국에 대해선 인정했다[38].

TRIPs 제6조의 ‘권리소진’ 또는 ‘제1차 판매’(first sale) 규정에 따라 생겨난 병행수입의 문화적 무역은 하나의 지식재산에 대해서 복수의 서로 다른 시장 – 합법성을 기준으로 해서는 합법적 시장, 일종의 비공식적 시장, 그리고 불법적 시장, 그리고 판매 순서를 기준으로 해서는 1 차 시장, 2차 시장 등 – 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지리적 시장 간의 경계들에서 많은 갈등들이 존재할 개연성을 제공하였다.

실제로 2012년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태국 학생이 태국에서 정식 발행된 미국 저작권자의 영어 교재를 태국에서 구매하여 미국 내에서 재판매한 사례는 미국 저작권 분쟁과 관련해 중요한 판례가 되었다. 2013년 미국 대법원 판결은 태국 학생에게 호의적인 방식으로 내려져, 제1차 판매에 의한 권리소진이 그의 병행수입 금지행위보다 우선한다는 판례를 남겼다(Kirtsaeng v. John Wiley & Sons, Inc., 568 U.S. 519). 이처럼 문화적 무역을 둘러싼 (법적·산업적) 논란의 대부분은 내셔널 시장에 대한 접근과 로컬 규제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39].

그렇지만 본고의 연구기획과 관련해, 이 태국 학생의 병행수입을 둘러싼 논란 사례는 현재의 글로벌한 미디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일종의 연속체로 존재하는 미디어 시장들을 모두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서적 시장에는 (오른편의) 신간 서적 위주의 공식적 시장에서부터 (가운데의) 할인 판매점과 중고 서적의 거래 및 대여 시장, 병행수입, 그리고 (왼편의) 해적판 시장에 이르기까지 그 연속적 범위 내에서 합법과 불법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시장 행위와 소비자 행동이 잠재되어 있어, 매우 복합적 양상과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Fig. 1. The Book Market as a Continuum [40]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의 글로벌 미디어 시장은 글로벌 IP체제의 통제시스템에 의존해 지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불법/합법의 이분법적 논리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미디어 해적 행위를 무작정 불법으로 규정해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지식재산권 법률과 주류 미디어경제학이 주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식적 시장이나 1차 시장 이외에도 2차 시장과회색시장 등으로 구획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시장 행위와 소비자 행동을 모두 시야에 넣고, 이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균형 있게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IV. Conclusions

이 연구는 포스트식민주의의 시각에 입각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글로벌 지식재산권 체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가 글로벌 IP체제에 대해 어떠한 논점의 문제제기를 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21세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표준으로 자리 매김한 글로벌 IP체제를 ‘상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 상대화의 첫 번째 단계로서 우선 보편적 관념들이란 것이 결코 완전히 보편적이거나 순수한 개념들일 수 없다는 인식을 제기한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을 확인하였고, 그 관점에 의거하여 글로벌 IP체제가 구축되는 역사적 과정을 간략히 살펴본 결과로서 현 글로벌 IP체제 구축의 근간이 되는 TRIPs가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 주도로 체결되었다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글로벌 IP체제라는 ‘교리’에 대해 대안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적 행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미디어 해적 행위를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일종의 ‘참여’로 보고자 하는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의 관점을 검토하였고, 로렌스량이 제기한 바 있는 ‘다공적 합법성’ 개념을 통해 이러한 관점이 국가적 합법성에 근거한 글로벌 IP체제를 인권과 같은 비국가적 합법성의 견지로 전환하여 파악하고자 한 이론적시도의 결과라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포스트식민주의적 해적연구’의 이론적 관점이 단순한 문제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글로벌 미디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편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공식적 미디어와 비공식적 미디어 사이에는 특정 종류의 상호의존성이나 근본적인 긴장이 존재하고, 이 긴장관계가 글로벌미디어 시장의 기본적인 동력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이 연구에서는 불법/합법의 이분법적 논리에만 의존해 현재의 글로벌 미디어 시장을 파악하기보다는 기존에 ‘불법’으로 규정되었던 미디어 해적 행위를 비공식적 미디어경제의 한 축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이를 공식적 미디어경제와의 연관관계 속에서 균형 있게 파악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기하였다.

현 시점에서 넷플릭스(Netflix)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글로벌 OTT(Over the Top) 사업자가 한국 방송·미디어 시장에 진출했고, 이제 한국은 글로벌 방송·미디어 시장의 중심부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또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 천착했던 식민지적 경험을 공유하고있는 만큼, 그러한 글로벌한 도약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선 서구 주도의 글로벌 통제시스템의 ‘교리’에 일방적으로추종할 것이 아니라 (비록 봉쇄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었다는 한계점은 있으나 비공식적 미디어경제에서 성장의 기회를 포착했던 애플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독자적인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모색에 본 연구가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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