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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nalysis of Hirata Oriza's Plays based on Lyotard's Postmodern Scientific View

리오타르 포스트모던 과학관에 따른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 분석

  • 이혜정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전공) ;
  • 허재성 (중앙대학교 공연예술학과)
  • Received : 2022.06.09
  • Accepted : 2022.08.09
  • Published : 2022.08.28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Hirata Oriza's three plays, "Scientific Minds," "Monkeys on the Northern Limit Line" and "Balkan Zoo" with Lyotard's postmodern scientific view. Liotar, who claims that science and narratives follow the rules of their own pragmatic use, talks about the incommensurable parallelism between the two. Hirata Oriza points out that humans rely on narratives in the postmodern world. This paper analyzes Hirata Oriza's plays in three aspects. First, in the postmodern world where the master narrative has disappeared, it identifies the point where the boundaries that define the identity of human beings under the lost and developing science technology are fading. Second, we look at the pattern in which the parallelism between scientific knowledge and narrative knowledge is constantly diluted due to the characteristics of humans who understand the world by leaning on narrative. Finally, the aspects of small narratives are idetified, raised by individuals to comfort themselves toward a world where the master narrative disappears and is justified only by maximizing performance.

본고의 목적은 히라타 오리자의 세 희곡, 과학하는 마음, 북방한계선의 원숭이, 발칸동물원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 과학관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과학과 서사가 각기 독자적인 화용법의 규칙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리오타르는 둘 사이의 공약 불가능한 평행성을 이야기한다. 히라타 오리자는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서 인간이 서사에 의지하는 양상을 짚어 낸다. 본고는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첫 번째는 거대 서사가 사라진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서, 방향을 잃고 발달하는 과학 기술 아래 인간이란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점을 확인한다. 두 번째는 서사에 기대어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의 특성으로 인해,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의 평행성이 끊임없이 희석되는 양상을 살펴본다. 끝으로 거대 서사가 사라지고 수행성의 최대화만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세계를 향해, 개인이 스스로의 위로로 제기하는 작은 서사의 양상을 파악한다.

Keywords

l. 서론

서사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유용한 무기였다. 인간은 자연에서 얻은 지식과 삶의 지침을 명제가 아닌 이야기, 서사로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최혜실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이야기의 정의」에서, 인간이 획득한 정보를 서사 형태로 변화시키는 데 따른 이득을 나열하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어려운 명제를 기억하기 좋은 형태로 바꾸어 정보 전달을 용이하게 만들며, 다른 하나는 삶의 제반 문제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역할을 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1]. 서사의 이와 같은 두 가지 기능은 인과라는 기제를 통해 강화 된다. 삽화적인 이야기의 나열보다는 인과관계로 엮인 플롯이 더욱 기억하고 전달하기 좋은 형태이며,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 시뮬레이션이 수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과에 의해 엮인 서사 예술의 이러한 특징에 대해 한스-티즈 레만은 "개념적 필요성'과 분석적으로 파악된 '개연성'이라는 척도"에 따라서 "숨겨진 논리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최종적으로 이러한 서사는 '통제할 수 있고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게 된 시간의 흐름"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2].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 규범을 따르는 서사는 완전한 논리성을 내재한 이야기로서 세상에 대한 하나의 모델로 기능해 왔다.

이렇게 인과라는 강력한 기제에 기반해온 서사 양식은 포스트모던 사조의 도전을 받아 해체된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포스트모던 사조를 열어젖힌 기폭제로 컴퓨터 기술과 텔레마티크가 발전"하여" 지식의 성격이 변화"하였다는 점을 든다[3]. 이어 그러한 기술에 기반한 과학 분야의 다양한 이론들이 제각기예측 불가능한 특성을 갖고 있음을 논하고, 이를 포스트모던 과학이라 칭한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과학의 비 선형성은, 인과성에 의해 맞물린 과학 지식조차 하나의 결정론이 모두를 포괄할 수 없고 제각각의 영역에서 나름의 인과성을 띠고 있는 "결정론들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3]. 그리고 과학 지식의 이러한 비결정적 성질과 함께 기존의 인과적 서사와 시대에 따라 주장된 거대 서사, 모두가 말소돼버렸다. 하지만 서사에 의존하여 세계를 이해하며 진화해온 인간은 서사라는 도구 자체를 버릴 수 없기에, 인과적 서사와 거대 서사가 모두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끈질기게 자신의 서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본고는 포스트모던 과학관에서 출발하여 세계를 그려낸 리오타르의 작업에 기대어, 과학화와 정보화로 인한 세상에서 어떻게 서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히라타 오리자의 일련의 작품들을 분석한다. 특히 본고에서는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북방한계선의 원숭이」, 「발칸동물원」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세 작품이 배경, 인물, 이야기 구조에서연결된 설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 과학으로 인해 제기되는 다양한 형태의 딜레마에 대해 나름의 예술적 해법을 모색한다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이들 작품은 과학의 발달에 따라 희미해져 가는 정체성의 경계를 직접적으로 다루며 그 안에서 개인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나름의 서사적 해법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비춘다. 이러한 특징은 거대 서사를 상실한 포스트모던 시대에, 과학 지식의 규칙과 서사 지식의 규칙 간의 경계를 넘어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 과학관으로 적절하게 검토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본고에서 검토하는 히라타 오리자의 세 편의 희곡에 대한 국내 연구는 아직 미진한 상황이며, 또한 포스트모던 과학관을 희곡 분석에 적용한 사례 역시 본고가첫 시도이다.

주제적인 면에서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을 대상으로한 연구는, 주로 공연에 등장하는 로봇의 의미에 집중한 일련의 연구와 한국과 조선의 의미를 검토한 논문들로 대별된다. 전자에 해당하는 논문으로, 한석진은 로봇이 등장하는 퍼포먼스의 사례 연구를 진행하여 로봇의 존재론적 문제를 타진하고 있으며[4], 이예은은 포스트휴머니즘 세계관에 입각하여 비인간인 로봇과 죽음의의미를 검토하고 있고[5], 김영학은 로봇이 가져오는 언캐니 미학을 주장한다[6].

조선과 한국의 의미에 집중한 연구는, 박영산이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을 비교문학적 방법으로 분석하여 작품에 드러난 '한국'의 의미를 밝히고 있으며[7], 성기웅은 「서울시민」4부작에 표상된 조선인의 타자성에 천착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8]. 다만 이러한 논문들은 본고에서 시도한 포스트모던 과학관에 기반한 접근법과는 상이함을 밝혀둔다. 한편 포스트모던 과학관을 예술 일반에 적용한 시도는 원영태의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적 관점에서 본 현대 회화론 연구"[9]가 유일하나, 해당 논문은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성질을 이용하여 미술작품에 있어 재현의 문제에 집중하였기에 본고의 논지와는 떨어져 있다.

Ⅱ. 본론

1. 결정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린 포스트모던 과학관

히라타 오리자는 자신의 연극론을 피력하며, 자신의 작품은 현대적 리얼리즘을 표방하기에 근대적 리얼리즘의 대척점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근대사상의 특징을 '객관성'에 두며 이는 전근대적 사상이 뿌리를 두던 주관성을 대체했다고 본다(그가 생각하는 근대사상이란, "사회의 본질이나 인간 존재의 의의 등이 인간의 이성에 의해 올바르게 인식될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뜻한다[10]). 이러한 근대사상에 기반한 근대예술의 가장큰 특징으로 히라타 오리자는 "창작자가 무언가 전달하고자 하는바, 말하고 싶은 바가 있다"[10]는 점을 든다. 그는 이렇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결국 '테마/주의·주장/이데올로기 불린다고 말한다. 이러한 개념에 의하면 근대예술은 창작품의 양쪽에 창작자와 감상자가 분리되어 있고, 창작품은 창작자의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 내지는 용기가 된다(이러한 근대 예술관에 의한 연극에 반해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은, "세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직접적으로 세상과 인간을 묘사하는 연극"으로서, "행위를 묘사하는 연극"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연극"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11]). 이러한 도식은 세상이 이성과 논리에 의해 명징하게 파악됨을 전제로 한다. 반면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이 기반을 두고 있는 세계는 바로 이런 결정론적 세계관이 지탱하지 못하는 모호한 현실이다(히라타 오리자의 이러한 세계관은 그의 작품이 "극작의 상투적인기승전결이 생략되어 흡사 승의 부분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불연속의 일상이 끝없이 리얼타임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12]).

리오타르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근대 과학과 현대 과학을 구분하며, "메타 담론에 근거해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모종의 거대 서사에 공공연히 호소하는 모든 과학"이 근대적 의미의 과학이며, 이러한 "거대 서사에 대한 회의"를 내재한 것이 포스트모던과 현대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는 근대의 거대서사가 지시적이고 규범적이며 기술적인 언어 요소들의 구름"으로 흩어졌다고 말하며, 각 구름은 고유한 "화용적 결합가들"이 실려있어 "뉴턴적 인간학의 영역에 들어맞는 사회라기보다는 언어 입자들의 화용법이 더 잘 들어맞는 세계"라고 말한다[3]. 이러한 리오타르의 관점이 제시하는 바는, 거대서사가 사라진곳에 개별 문제와 가치를 추구하는 분할된 영역이 발생하였으며, 각 영역이 자신의 독자적인 화용법에 의해 자체의 규칙과 규범을 갖고 다른 영역과 부딪친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이러한 영향이 언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의 개념을 빌려 이를 파악한다. 리오타르는 이 언어게임을 "각각의 발화를 그 범주의 성격과 해당 용도를 상세히 규정하는 규칙들"로 정의하며, 그에 속하는 세가지 특징을 강조한다. 규칙들은 "경기자들 간의 계약 대상"이고, 규칙이 바뀌면 게임의 성격도 바뀌며, 모든 발화는 게임에서 하나의 '수'로 여겨진다는 점이다[3].

각 범주가 서로 다른 규칙에 따라서 게임을 하고 있다면, 거대 서사와 체계는 그에 따라 무수히 나누어질 수 밖에 없고 개별 범주는 직접적인 종속 관계가 될 수 없다. 잘게 나누어진 개별 영역의 지식은 고유한 규칙을 가진 게임이며, 각 게임은 다른 게임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종의 동식물을 보고 놀라듯이 담론의 다양한 종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3]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성에 매료된 세계에서, 플롯 규칙을 지키는 고전적 사실주의는 서로 다른 정당화를 주장하는 개별 게임들의 충돌과 연쇄에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리오타르는 한 발 더 나아가 현대 과학이 그 정당성을 보장해주던 거대서사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내재화해 나가던 타당화 담론 역시 상실하여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역설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따른다. 과학 지식은 그 자신을 정당화해주던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후, "타당화 담론을 과학 담론 속에" 내재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헌데 현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미시세계에 대한 발견이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타당화 담론을 부정하는 역설에 처하게 되었다(리오타르는 이에 대해 괴델의 증명, 양자역 학, 원자물리학, 프랙탈 이론 등에서 발견된 모순을 언급하는데, 이러한 모순은 과학 담론이 성립되는 내면의 논리가 붕괴됨을 뜻한다. 특히 해당 절의 마지막에 예시한 르네 통의 작업에서 '통제 변수는 연속적이지만 상태 변수는 불연속적"인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는 결국 안정된 체계 이론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결정론적인 세계는 최초의 상태에서 정상적인 연속함수"에 따라 예측 가능한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상태 변수의 불연속성은 최초 상태에서 수없이 많은 다른 상태로의 불연속적인 변화를 유발하기에, 남는 것은 "결정론들의 섬들"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서 각 섬들'은 각자의 규칙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3]. 곧 과학 서사라는 언어 게임 역시 수많은 작은 언어 게임으로 다시금 나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학 담론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안정화된 체계를 전제로 하는 수행성(연극학의 수행성의 의미와는 다르게 효율성과 같은 의미이며 "투입/산출의 비율에 의해 정의" 된다[3])의 개념 역시 와해되었는데, 이는 결국 과학이 기댈 수 있는 정당화의 논리가 모두 사라졌음을 뜻한다.

결국 리오타르의 관점에서 현대 과학 서사를 살펴본다면, 거대서사의 상실과 내재적 타당화 담론의 와해라는 연속된 두 위기 속에 기계적 세계관, 그리고 그에 기초한 수행성 극대화에 대한 집착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포스트모던 과학관은 기존의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희곡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켜 인과적 완결성이 제거된 현실을 탐구 대상으로하는 희곡이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2. 거대 서사가 사라진 세계의 희곡

히라타 오리자의 세 희곡에는 이러한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 과학관이 드러날 뿐 아니라, 그의 사상에서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인간적 반응 역시 형상화되고 있 다. 여기서 논의하는 「과학하는 마음(力ガクするココロ)」, 「북방한계선의 원숭이(北限の獄), 「발칸동물원 (バルカン 動物園)」의 초연은 각각 1990년, 1992년, 1997년에 이루어졌는데, 해당하는 기간에 각 작품은 과학 지식의 한계 상황 아래 놓인 인간적 반응에 대한 통찰을 조금씩 더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 연구자는 그러한 특징을 세 개 장에 걸쳐 논할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거대서사가 사라진 과학 연구의 미래라는 배경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과학 지식이 개별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과학하는 마음」은 학생들에 의해 '쟈미라'라고 불리는 생물학 교수 모리구치의 대학원 연구실을 배경으로하고 있다(쟈미라'라는 명칭은 극 중 대학원생들에 의한 별칭이고, 본명은 '모리구치'이다[13]). 이들은 이곳에서 생물학, 의학, 농학, 화학, 물리, 영장류 연구를 망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 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신체의 성장을 멈추고 뇌의 성숙 기간을 길게" 만든 후 지식을 가르쳐 "인간한테까지 가"도록 만드는 작업이다[13]. 이들이 수행하는 연구는 과학 내부의 지식만을 가지고 지시적 게임의 규칙을 확장하여 거대 서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기댈만한 외부의 거대 서사가 없다는 말은 과학서사에 방향을 알려 주는 역할이 없다는 뜻이며 이런 상황 아래에서 과학은 금기를 갖지 않게 된다. 또한 윤리위원회와 같은 장치마저 의지할 서사를 찾지 못해 쓸모가 없게 된다("그런 게 있어도 엉터리지"[13]). 이러한 경우에 과학 서사의 발전을 추동하는 유일한 힘은 호기심이 되며 본 희곡에서는 원숭이를 진화시켜 인간을 만들어 내는 상황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특히 '쟈미라' 교수는 "만화 <울트라맨>에 나오는 괴수의 이름"으 로, 거대 서사를 잃고 호기심이라는 추동력만으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힘'을 상징하고 있다.

히라타 오리자 연극 작법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무대에 부재하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다. 그는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각자가 가진 정보량의 차이를 중시한다. 정보량의 차이가 대화를 이끌어내며 플롯을 진행시켜 나가는 힘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플롯은 일반적인 극작술에서 플롯이 갖는 의미와는 다르다. 그는 「연극입문」에서 플롯에 대해, "단순하게 등장인물의 출입과, 그 등장인물들이 가져온 정보의 내용만을 말한다"[14]고 규정짓는다. 등퇴장에 의해 무대에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거나 나가게 되면 인간관계가 변하게 되며 이때 특히 무대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부재하는 사람들은 유추와 상상의 대상이 된다(이에 대해야마토 히로유키는 "극적인 장면을 한층 더 무대 밖으로 설정하여 등장인물 간의 거리도 멀어지게 하는 경향"을 만들어 내며 "부재와 관계성의 현재를 리얼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낸다고 평한다[15]). 히라타 오리자는 일본인이 서양인에 비해 대화와 토론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한다고 말한다[16]. 이는 그의 희곡에서, 무언가 내밀한 이야기는 "그 말을 들어서 실례가 될"[13] 사람이 없을 때 이루어지도록 만든다. 이러한 극작법의 가장 극단화된 형태가 처음부터 끝까지 부재하는 쟈미라 교수'가 된다. 쟈미라 교수는 세 편의 희곡 전체에걸쳐 언급되나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기에, 히라타 오리자 극작법에 따르면 등장인물들의 상상력을 최대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된다. 또한 교수가 만들어가는 게임의 규칙은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과 상상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연구실의 과학 서사와 생활 서사에 거대 서사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이 거대서사는 물론 앞서 얘기한바, 호기심을 추동력으로 삼아 지시적 게임 규칙만을 사용하여 과학 지식 안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거대 괴수'와도 같은 서사이다.

거대 서사가 사라진 과학에 지배되는 세계에서는, 금기의 해제뿐 아니라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의 경계마저 흩어진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종래의 근대적 가치인 "국민 국가, 정당, 전문 직업, 제도, 역사적 전통 등이 대표하던 낡은 축들이 유인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3]. 사회적 차원에서 존재의 위치를 설정해주던 가치의 상실과, 금기가 해제된 과학이 만난 자리에 선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에 대해 묻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존재의 경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방한계선의 원숭이」는 그러한 질문을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탐구하며 제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쟈미라 교수는,「과학하는 마음」에서 생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영장류의 뇌를 강제로 발달시켰던 '네안데르탈인 작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는 보노보에게 언어를 가르쳐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갈수있는 환경을 꾸며주는 실험을 한다[13]. 이상황에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는 세 가지 방식으로 흐려진다. 하나는 등장인물인 연구원들이 그 경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다. 그들은 보노보의 성교 행위를 언어의 대신으로 생각하며[13], 보노보의 암컷이 그를 돌봐주는 연구원에게 인간적인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13].

두 번째로는 인간과 동물의 상황을 병치시키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시모키타 반도에서는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온천에 들어가며[13], 원숭이와 야마토 민족은 모두 홋카이도에 건너가지 않았고, 사회 특징과 심지어 얼굴마저 닮았다[13]고 말하는 연구원도 등장한다.

셋째로 대위법적인 플롯의 진행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데, 이는 특히 요시카와의 임신이 쿠보에게 알려진 직후 보노보의 임신 사실이 쿠보에게 전달되는 장면이나, 인간이 보노보로 오인당해 죽을 뻔한 경험으로 묘사된다[13](또한, 이러한 장면들에서 경계가 흐려지는 양상은, 전문적 대사와 일상적 대사의 교차로 효과가 배가된다. 사이토 토모코는 "과학자 연구실 같은 곳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은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거나 전문적인 이야기이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대화는 아니다. 그것을 일상적 대화처럼 연기하는 것의 지향점은[·]] 인간과의 관계 같은 것, 그 지점을 목표로 한 듯"하다고 평한다[17]).

계속해서 「발칸동물원」은,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의 경계에 대해 갖는 질문을 이어 나간다. 이 질문은 세편의 연작에서 시간적 배경을 바꿔가며 다층적으로 제시되는데, 「과학하는 마음」에서는 인간의 미래에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한 진화 가능성을 검토했고, 「북방한계선의 원승이」에서는 과거를 짚어가며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과 동물의 거리를 확인했다면, 「발칸동물원」은 현재 인간의 몸이 처한 자기와 비자기,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1997년 히라타 오리자 연출로 세이넨단에 의해 공연된 「발칸동물원」의 프로그램북에는 "세계는 혼돈(카오스)이다"라고 쓰여 있다[18]). 전쟁 중에 뇌만 남은 알렌을 생물학 연구소로 옮겨오자, 대학원생들은 뇌사한 사람의 뇌에 알렌의 뇌를 이식하게 된다면 그 존재를 무엇으로 부를지 고민스러워하는 것이다[13]. 또한 이들이 만드는 컴퓨터는 생명과 기계를 결합하여 인간적 판단을 내릴수 있는 두뇌형 컴퓨터"이며[13], 생명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바이탈한 기관"에 대한 논의는 인공 지능, 내지는 보조 두뇌에까지 이른다[13].

이렇게 세 편의 희곡에서 반복되는 경계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로 거대 서사가 사라진 이후에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갖게 되는 혼란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의 평행성에 관한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지시적 규칙에 따라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혀나가는 과학 지식은 닫힌 경기장이며 서사적 상상력은 명시적으로 끼어들 수 없다. 하지만 희곡에서 제기하는 질문들은, 실재하지 않는 존재의 형태와 상황을 가정한 철학적 질문이며 과학 지식밖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결국 과학 지식이 비록 지시적 규칙만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규칙의 고안과 축적은 인간이 수행하며, 인간은 그 활동에서 서사 지식을 온전히 배제할 수 없기에,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이 온전히 평행선만을 그리지 않고 섞이는 지점이 발생함을 보인다.

3.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 간 평행성의 침해

리오타르는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의 화용법을 비교한 후, 결론적으로 그 둘이 평행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리오타르는 과학지식이 서사 지식에 비해 다섯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갖는다고 비교한다. 1) 과학 지식은 지시적 게임이다. 2) 사회적 유대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3) 연구 게임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발신자의 지위에만 관계된다. 4) 논증과 증거로 검증되어야 한다. 5) 통시적 시간성에 따라 배열되어야 한다[3]).

그는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을 언어의 관점에서 파악하여 둘 모두 진술의 집합으로 보며, 이 집합은 서로 다른 규칙의 지배를 받기에 "과학 지식의 기반 위에서 서사 지식의 존재나 타당성을 판단할 수는 없으며 그 반대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3]. 다만 이 두 가지 지식은 서로에게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서사 지식의 입장에서 과학 지식은 "서사 문화에 포함된 하나의 변종"으로 보이지만 과학 지식은 서사 지식을 배타적으로 대한다[3]. 리오타르는 곧이어, 과학 지식의 입장에서 서사지식은 "문명화하고 교육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대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부연한다[3]. 하지만 그 자신이 파악한대로 서사 지식은 과학 지식을 자신의 변종으로 대하기에 이 구분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다. 서사 지식이 과학지식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과학하는 마음」에서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진화의 속도를 높여 원숭이를 인간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파악한다("원승일 맘대로 진화시켜버리겠단 거잖아" "사람 만들걸"[13]). 이들은 은연중에 실험실의 원숭이가 진화되면 사람과 같은 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히라타 오리자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원숭이가 진화된 것이 인간'이라는 세간의 오류를 반복하는 수준이 아님은 2년 후에 쓰인「북방한계선의 원숭이」에서 직접 드러난다(`침팬지나 보노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된 게 아니거든요. 영장류하고 인간의 공통되는 조상이 있어서, 그게 각자 환경에 적응해서 가지가 갈라져서 침팬지나 고릴라나 인간이 된 거니까요"[13]). 하지만 그들조차 현재의 원숭이를 진화시키면 진화된 원숭이(원숭이와 다른 종일뿐 아니라 인간과는 무관한종)가 나오는 것이 아닌 인간 내지는 인간이라 부를 만한 종이 나올 것이라는 착각을 은연중에 품고 대화를 나눈다. 이는 과학 지식이 서사 지식에 기대어 받아들여지는 모습, 내지는 적어도 서사 지식의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결국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의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이며 이때 서사의 오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방한계선의 원숭이」역시, 인간과 동물의 경계라는 기본 주제를 풀어나가며, 이렇게 서사 지식이 과학 지식을 침식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인간과 영장류의 경계에 대한 질문은 진화적 역사의 고찰로 이어진다. 대학원생들은 원숭이가 인간과 비슷한 사회 체제를 형성한 이유가, 풍토가 사회를 규정"한 것으로 여긴다. 곧 인간과 영장류가 비슷한 사회 체제를 갖게 된 원인이, 유전자가 비슷한 집단(작품 속 대학원생들은 "사람하고 침팬지라면 DNA 차원에선 1% 정도밖에 안다르니까"라고 말하며 유전적인 유사성을 중시한다[131) 이 비슷한 환경에 처했기 때문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원숭이들 사이에 사회적 위계가 발생하는 원인이 "먹이로 사육하는"지 "야생의 원승이 "인지에따른다고 보며[13], 위계가 없는 야생의 원숭이를 경쟁없는 사회를 이뤘던 죠몬인과, 서열에 따른 사육장 속의 원숭이를 야요이인과 병치시킨다. 또한 원숭이의 영아 살해를 언급하며 인간의 영아 살해를 이해한다[13]. 인간과 원숭이의 진화를 한데 묶어 이해하려는 이들의 상상은, 인간마냥 북방한계선을 넘어 여행하는 원숭이에게까지 미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이들은 원숭이의 진화라는 과학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사 지식을 활용하여 인간이 이해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원숭이를 의인화하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지식의 지시적 게임 규칙만으로 이루어진 경기가 근본적으로 인간이 평상시에 활용하는 서사 지식의 게임 규칙으로 이루어진 경기에 비해 낯설기 때문이다.

「발간동물원」에서는 전편에 걸쳐 실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질문은 과학지식이 결코 지시적 규칙만으로 발전할 수 없으며 서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함을 보여준다. 과학 철학자 칼구스타프 헴펠은 과학적 가설과 이론에 대해 "관찰된 자료로부터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관찰된 자료를 설명하기 위해 발명"되는 것이라 말하는데[19] 이는 새로운 지시적 규칙의 발견에 있어 상상력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두뇌형 컴퓨터를 둘러싸고 대학원생들이 나누는 대화에 선명히 드러난다. 사사오카는 종래의 기계식 컴퓨터에 비해 새로운 두뇌형 컴퓨터 는, 사용자의 사용 방법에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종래의 컴퓨터는 정해진 동작만을 하기에 사용자가 그에 맞추어 가는 데 비해, 새로운 두뇌형 컴퓨터는 인간에게 중요한 일을 자체적으로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13]. 이는 지시적 규칙의 과학 지식이 극도로 발전한다면 서사적 동작을 할 수도 있음을 희곡적 상상력으로 간파한 것이다. 또한 다른 장면에서 사키타는 두뇌형 컴퓨터와 종래의 기계식 컴퓨터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탐구와 확신 간의 순서를 든다. 종래의 과학이 탐구와 실증을 바탕으로 확신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두뇌형 컴퓨터는 확신을 먼저 하고 이를 설명해 나간다고말하는 것이다[13]. 이는 과학 지식이란 것이, 확보된지시적 규칙을 바탕으로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규칙을 더해 나가는 것이라는 리오타르의 주장이 간과한 면을 말해주고 있다. 더해지는 새로운 규칙의 탐구 방향은 기존의 지시적 규칙 안에서 찾을 수 없으며, 서사적 상상력을 통해 정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뇌형 컴퓨터를 통해 과학 지식과 서사 지식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은 원숭이형 컴퓨터" 정도가 되면 인간의 화용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희곡에서 기존의 인공 지능은 인간의 대화를 논리의 연쇄로만 파악하는 데 반해, 인간과 원숭이형컴퓨터는 언어 논리 외에 "표정이나 목소리 질"까지 고려하여 "아이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문맥을 파악한다는 것이다[13]. 리오타르는 서사 지식의 화용법과 과학 지식의 화용법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밝히는데[3], 그에 따르면 이렇게 과학 지식에 기반하여 동작하는 컴퓨터가 인간의 대화가 가진 화용법을 파악한다는 것은, 결정론에 지배받는 기존 과학관으로 이해 불가능한 현상이 된다(리오타르는 결정론적 과학관의 특징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수행성을 통한 정당화가 기초해 있는 과정"이고, 또 하나는 "산출의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수행성은 위에서 언급한 바, "투입/산출의 비율에 의해 정의"된다. 또한 산출의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체계가 도함수를 포함한 연속함수로 표현"됨을 말한다[3]. 이 두 가지 특징이 의미하는 바는, 결정론적 과학관 아래서는 현상의 변화가 예측 가능하며 효율성에 지배받기 쉽다는 것이다. '결정론'에서 두 번째의 예측 가능한 변화'라는 특징은 불가결하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닌 '효율성'도 강조한 것은 리오타르가 본인의 논의를 현대 사회 체계의 문제점 진단에 집중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세 편의 희곡에서 보인, 인간이 과학 지식을 판단할 때 부단히 서사 지식에 의존하는 모습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의 혼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주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곧 이러한 서사 지식이 연구원들을 과학 지식의 지시적 게임에서 떼어내고, 규범과 평가가 엮이며 상상력을 자극하여 새로운 창조 서사를 만든다는 수행적 게임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4. 거대 서사를 대체하는 개인 서사

「과학하는 마음」의 말미에는 과학 지식이 만들어 내는 맹목적인 창조 서사에 반하여 미래에 대한 개인의 희망에 기댄 서사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비친다. "어머니이자 연인"들인 이들은 유전자 조작의 힘을 빌려동물 스케치를 그린다. 이 그림들은 "식량 문제의 해결" 을 위한 동물이라든가, "점잖고 댄디"한 동물을 거쳐 결국 인간과 "유전자적으로 가까운 것"으로서 원숭이맨" 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진화해오는 원숭이한테 지"지않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는 네 명의 인원들은 모두 여성이다[13]. 반면 생명 탄생의 신비에 감탄하는 인물들은 야스오카를 제외하곤 모두 남성이다. 키모토는"원숭이가 처음 나한테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때의 감격을, 쿠보는 "토마토 덩쿨이 내 다리에 감겨"오는 순간의 감탄을, 타카기는 달걀이 부화하여 "점점 새가 돼가는 게" 보일 때의 경탄을 이야기한다[13]. 이러한 실험 대상에의 감정이입은 인간 존재가 지시적 게임의 순간을 과학 외부의 서사에 의지하여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한편 이 남성들의 감탄은 야스오카의 성게 발생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온 것인데 이 이야기는 엔도와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엔도는 코지마와의 사이에서 임신했을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다[13]. 쟈미라가 수행하는 고삐 풀린 과학은 동물을 진화시켜 인간으로 만드는데, 이와 병렬적으로 제시되는 동일한 의미의 행위가 엔도의 임신이다. 엔도의 아이라는 존재는 히라타 오리자 극작술에 의하면, 언급되지 않은 채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대상이고, 결국 이 존재가 던진 상상력이 진화적 시간에 걸쳐 반복되어 온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조건을 환기시키게 된다. 아이의 임신이라는 테마는,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과학을 배경으로 인간적 차원의 서사를 사랑과 탄생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엔도의 임신 장면은 이별과 자살, 이혼 등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이 과학 지식에 대항하여 창조한 개인적 서사의 힘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결론은 미래의 어머니들이 동물 스케치를 하며 새로운 생명을 상상한다는 밝은 톤으로 그려진다. 사랑의 부질없음을 넘어 생명 잉태라는 본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아이를 낳는 여성과, 그를 통해 자연과 맺어지는 남성이라는 조건을 배경으로 하여 「과학하는 마음」의 마지막에 길잃은 과학을 위한 생명 탄생의 서사가 제안되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인류학적 차원에서 탐구한 「북방한계선의 원숭이」는 그 마지막에 최초의 탄생 설화인 이브 가설을 언급한다. 이는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해 최초의 여인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탄자니아나 르완다 부근 평원"에 살았다고 보는 가설이다[13]. 시미즈는 이브가 정글의 나무에서 떠나 사바나에 내려서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를 들은 요시카와는 사람들이 나간 후, 의자를 사용해서 이브의 흉내를 낸다. 유부남인 쿠보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쿠보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자신의 처지를 태초의 여인인 이브의 모습에 얹어놓는 것이다. 이브 가설에 등장하는 이브는 물론 가상의 인물 이며, 단순히 실존했다고 추정되는 인물이 아니라 과거 존재했던/할 수 있었던 일체의 인물들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요시카와가 따라 한 이 여인의 모습은 실제로 존재했던 수많은 이브들이 행했던 모습이었을 수도, 아니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존재의 움직임'이다. 이렇게 과학 지식이 지시 규칙에 따라 추론한 존재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요시카와의 모습은, 과학 지식이 인간 개개인에게 받아들여지며 개인적 서사의 창출을 자극하는 순간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는 전편 「과학하는마음」의 말미에 보여준 미래 인류의 탄생 서사에 대해 시간적 대칭점으로 기능한다.

한편 「과학하는 마음」에서 미래의 인류를 위한 서사를 고민하고, 「북방한계선의 원승이」에서 과거 인류가가진 서사를 되돌아봤다면, 「발칸동물원」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며 붙잡을 수 있는 서사를 제시한다. 「북방한계선의 원숭이」에서 쿠보의 아이를 임신한 요시카와는 「발칸동물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며 자폐증에 걸린 사내아이 카즈히로를 키우고 있다. 그녀는 자폐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폐증에 걸린 원숭이를 무수히 만들어 사흘에 한 마리" 꼴로 죽여가며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폐증이 가진 커뮤니케이션의 난점을 실험하기엔 원숭이로 충분치 않기에 실험 대상을 침팬지로 바꾸길 희망하고, 그로 인해 영장류 연구소 소속으로 침팬지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안자이와 언쟁을 벌인다[13].

과학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 뇌를 이해하면 인간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요시카와의 희망은 결정론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이 세계관은 극적 공간인 연구실에서 교생 실습의 연습을 하는 아사오카의 입을 통해 두 번에 걸쳐 관객에게 주지된다. 한 번은 물리적 현상과 생명 현상이 "원자와 그 운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말하며[13], 또 한 번은, 뇌 과학이 충분히 발달한다면 철학, 인문, 예술 역시 환원론적으로 파악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최종적으로 "메커니즘이 해명된다면 예술도 과학이" 된다는 결정론적 관점으로 이어진다[13]. 이는 순수하게 요시카와의 희망을 지탱하는 관점이나, 과학적인 의미의 수행성 최대화만을 기하는 이러한 방법은 인도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자폐증의 원인이 복잡"하기에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발칸동물원」은 결말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가능성은 미의식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품의 말미에카즈히로는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엄마 요시카와에게 꽃을 선물한다. 작품의 초입에 나카무라가 초등학생으로부터 받은 꽃의 쓰임에 비추어 볼 때[13], 이작품에서 꽃은 미의식의 대상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쓰인다. 자폐증에 의해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잃은 카즈히로가 꽃을 통해 미의식을 깨닫는 순간, "알았다"라는 외침과 함께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 요시카와는 카즈히로로부터 그 이유를 듣지만 '들어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데[13], 이는 요시카와의 환원론적 세계관이 기초한 게임의 규칙이 카즈히로의 서사 세계의 규칙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서사는 지시적 게임 바깥에서도 충분히 기능하여 요시카와로 하여금 울음을 짓게 만든다. 결국 이 결말은, 결정론적 세계관이 구원하지 못하는 소통의 문제를, 예술의 미의식이 어느 한순간의 자각으로 깨뜨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대 서사가 사라진 세계에 히라타 오리자가 제시한 대안이 미래와 과거의 생명 창조 서사를 거쳐 예술의 소통과 치유에 도달하여 찾아졌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추동하는 근본은 곧, 생명 진화의 기반을 아름다움에서 찾는 시선이라고 생각된다(관련하여 니시타니 오사무는 "온통 과학뿐인 세상에서, 인간이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하게 표현되어있다. 이눈에 보이지 않는 깨달음이, 드라마가 없는 드라마를 분명하게 성립시키고 있으며 거기에서 현대 사회와 연극의 현상에 대한 히라타 오리자의 남다른 비평의식이 느껴진다"고 말한다[20]).

Ⅲ. 결론

리오타르는 수행성의 원칙에 함몰된 과학 지식 전수현장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고등 교육 기관의 존재 의의는 "사회 체계의 최대 수행성"에 기여를 하는 것으로서, 비판적 지식인을 길러내는 기회는 적어지고 점점 "전문 지식인과 기술 지식인"의 양성을 목표로 하게 된다. 특히 팀 작업을 수행성을 증가시키는 방편으로 보기에 학제 간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그는 학제간 연구가 "복잡한 개념적 물질적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 기계의 수행 능력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표현"된다고 보는 데, 이러한 고등 교육 기관에서는 "담론, 제도, 가치에 대한 것은 어떤 실험 일지라도 작동 가치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 되기 마련이다[3]. 이렇게 리오타르가 간파한 현대 고등교육의 현장은 본고에서 다룬 세 편의 희곡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연구원들은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그들 스스로 비인간적이라 보는 실험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생명을 다루는 실험을 수행하면서 비인간성에 괴로워하는 한편 개인적 관심사의 해결 내지는 대처를 모색한다. 수행성 최적화는 금기의 영역을 제거해 버렸고, 그러한 상황에서 이들은인간적 정체성의 경계를 혼란스러워한다. 또한 과학지식의 규칙과 서사 지식의 규칙 사이에 존재하는 평행선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서사 지식을 통해 과학 지식을 받아들이거나 밀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개인적 고민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서사를 창조해 나가는데, 이는 인간이 서사라는 무기를 세상에 대한 이해와 대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담론, 제도, 가치'는 개인적 관심사의 가치로 떨어진다. 분명 희곡 속의 과학 연구소는 "현존 권력에 종속"[3]된 고등 교육 기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탈출구의 모색은 바로 이러한 개인적 관심사에 기반한 담론, 제도, 가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 또한 보여준다.

이렇게 새로이 제기되는 개인적 서사는 분명 기존의 과학적 담론을 변형시킬 힘을 내재하고 있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 말미에서 포스트모던 과학 담론을 정당화해주는 장치는 모두 사라졌으나 "작은 서사는 여전히 상상적 발명의 본질적 형태"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 서사의 귀환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을 그는 '배리'라고 부른다(그는 배리를 체계가 갖는 개방성에 대한 연구, 국부적인 결정론, 방법에 반하는 것등 서사의 귀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들"의 총칭으로 정의한다 [3]). 이러한 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와 현재 인정되는 과학 담론에 균열을 일으켜 패러다임을 바꾸며 과학적 화용론에 새로운 규범을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본고에서는 히라타 오리자의 세 작품에서 이 작은 서사'가 제기되는 양상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배리의 개념은 과학 지식의 화용론 안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담론에 틀을 지우고 방향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개인 서사에도 적용됨을 확인하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과학을 수행하는 인간 개개인이 처한 실존 조건이 인간의 과학 활동을 끊임없이 몰아세워, 지시적 규칙으로 무장된 과학적 화용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개인 서사를 창조하여 과학의 연구 방향을 비틀어 놓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과학관에 직접 기초한 포스트모던 극이 일반적으로 다원성을 중요시하는 형식을 보여주는데 비해, 히라타 오리자는 그 자신의 현대성에 대한 개념과 플롯의 개념을 구축하여 필연성과 개연성을 사용하지만 의지하지 않는 극적 현실을 만들어 냈다. 이곳에서 그는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 존재의 위치를 직접 질문했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포스트모던 과학관이 미처 깨닫지 못한 인간의 실존 상황이 제기하는 서사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삶의 양상과 정체성의 경계가 변화하는 현시점에서 하나의 예술적 대답으로 기능하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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