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우리나라는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높은 본인 부담률과 제한적 급여 범위로 인한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지속적인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1]. 이러한 높은 본인부담률은 건강보험의 본래 목적인 재정적 위험으로부터 보호기능을 저하시키며 그 영향은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 보건의료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2].
이처럼 건강보험의 재정적 보호기능을 측정하고 더불어 건강보험 보장성을 평가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는 재난적 의료비의 발생이다. 재난적 의료비는 의료비가 소득 또는 가구 지출로 측정되는 지불능력의 일정 비율을 넘어서는 경우로 정의된다[3]. 세계 보건기구는 재난적 의료비 발생을 연간 가구소득의 40% 이상을 의료 비로 지출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 기준은 각국의 보건의료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 될 수 있다[4]. 우리나라는 높은 의료비 본인부 담률과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대적으로 비급여항목이 많고 치료기간이 긴 중증질환에 대하여 본인부담률을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급여항목의 확대를 통해 건강 보험 보장률을 높여 가계부담과 재난적 의료비 경험률을 낮추고자 노력하였으나[5],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로[6], 경제개발협력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의 평균인 80%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7].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가구의 경제적 부담은 가구의 빈곤화 (impoverishment)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나아가 개인의 건강수준과 삶의 질 저하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연구는 우리나라의 2020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의 비율과 연도별 추세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방 법
1. 연구자료
이 연구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의 비율을 산출하고 연도별 추이를 분석하고자 재정패널조사(2011–2020), 한국의료패널(2014– 2018)및 가계동향조사(2006–2016년) 데이터를 사용하였다. 각 데이터별로 연구대상 가구의 연(월)평균 상세소득과 지난 1년의 가계부담 의료비 및 식료품비를 포함한 가계 소비지출 정보를 활용하였다. 설문문항에 대해 무응답한 가구는 분석과정에서 모두 제외하였다.
가계동향조사는 2016년 이후부터 소득과 지출이 별도로 공표되기 때문에 재난적 의료비 경험률을 산출할 수 없다. 한국의료패널은 데이터 발표시기의 차이로 인하여 재정패널조사와 사용한 데이터의 연도가 다르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조사된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비율의 추이를 비교하기 위하여 세 가지 데이터를 분석에 활용하였다. 재정패널조사, 한국의료패널과 가계동향조사에 포함된 연구대상은 각각 12,865가구, 12,519가구와 8,947가구이다[8,9]. 한국의료패널의 경우 매해 조사 착수 전 연구윤리 심의를 조사기관 내 institutional review board를 통해 승인받았으며(제2014-3, 제2015-13호, 제 2016-01호, 제2017-04호, 제2018-01호), 가계동향조사와 재정패널조사의 경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 또는 개인식 별정보를 수집 · 기록하지 않는 연구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13조(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할 수 있는 인간대상 연구)에 속한다.
2. 측정방법
이 연구에서는 세계보건기구의 Xu [10]가 정의한 기준을 사용하여 재난적 의료비를 경험하는 가구비율을 분석하였다. 가계 소비지출, 의료비, 그리고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비를 사용하여 계산한 빈곤선, 기초 생계비, 가구의 지불능력을 값을 이용하여, 소비지출에서 차지 하는 의료비 지출비율을 산출하였다. 빈곤선은 소비지출(생활비) 대 비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비의 비율이 45–55분위 이내인 가구에서 가구원 수가 보정된 식료품비의 가중평균으로 정의하였다. 재난적 의료비의 경우, 세계보건기구에서 정의한 기준에 따라 가계 지불능력 대비 의료비 지출이 40% 이상인 경우 재난적 의료비를 경험한 것으로 보았다. 가구소득은 가구단위의 소득 데이터를 가구원 단위소득으로 전환하여 산출된 균등화 소득으로 분석하였으며, OECD의 제곱근 지수방법을 사용하였다.
3. 통계분석방법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이 있는 가구의 빈도와 비율은 데이터별로 각각 분석하였으며, 연구대상 가구는 소득 5분위로 분류하여 각 소득 분위별 의료비 발생률을 산출하였다. 연도별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의 추이는 추세분석(trend test)을 사용하여 통계적 유의성을 검정하였으며, 재난적 의료비 지출경험 여부와 관찰연도를 각각 종속변수 와 독립변수로 지정하여 log-binomial model을 통한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산출된 회귀계수에 지수함수를 반영하여 연구대상 기간의 변화율을 산출하여, 연간 발생비율의 변화를 연간비율변화(annual percentage change, APC)로 제시하였다. 모든 자료 분석에는 각 데이터에서 제공하는 가구횡단 가중치를 사용하여 우리나라 인구특성을 반영하였다.
결 과
2020년 재정패널조사 자료를 통해 분석한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의 비율은 1.73%였다(Table 1). 연도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비율을 비교해 보면 재정패널조사에서는 2014년 3.13%, 2016년 2.17%, 2018년 2.08%, 2020년 1.73%의 결과를 보였다. 한국의료패널 자료에서의 재난적 의료비 지출 발생률은 2014년 2.18%, 2016년 2.47%, 2018 년 2.21%였으며, 가계동향조사에서는 2006년 2.33%, 2011년 2.63%, 2014년 2.40%, 2016년 2.92%이다(Figure 1). 최근 연도 기준으로 각 데이터를 소득 5분위 구분하였을 때, 전반적으로 소득이 낮을수록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의 비율이 높았다(Table 1). 연도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가구비율의 증감 추이를 추세 검정한 결과, 재정패널조사에서는 2020년 기준 최근 10년간 APC가 -5.55 (p<0.0001)으로 소폭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에 반해 한국의료패널에서는 2018년 기준 최근 5년간 APC가 0.55 (p<0.0001)으로, 가계동향조사에서는 2016년 기준 최근 11년간 APC가 1.43 (p<0.0001)으로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Figure 1).
고 찰
재정패널조사에서 2020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비율은 1.73%이었다. 2014년을 기점으로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2019년 소폭 상승하였고, 2020년 다시 크게 감소하였다. 반면, 한국의료패널에서는 2016년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2018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비율은 2017년(2.20%)과 비슷한 2.21%였다. 가계동향조사에서도 2016년 2.92%로, 2006년 이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 결과는 우리나라의 재난적 의료비에 대해 분석한 기존의 국내 선행연구들과 유사한 결과이다[11-13].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의 경우 일반적으로 공공 의료비 지출이 비교적 많고 본인부담 의료비 비중이 낮은 국가의 경우에서 낮게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등의 보건의료 문제와 더불어 비급여항목이 많고 급여항목도 이용단계에서 발생하는 본인부담이 높은 편이어서 의료이용 시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본 인부담금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2].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가계소비 중 본인부담 의료비는 5.3%로 OECD 회원국 중 2위 (OECD 평균 3.1%)이며, 경상의료비 중 정부 및 의무가입보험재원 비중은 61.0%로 OECD 평균인 74.1%보다 낮은 수준이다[14].
이러한 의료비의 과도한 지출은 다른 생활수준에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중증질환과 같은 고액의 의료비가 발생할 경우 개인의 의료비 부담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15]. 특히 이 연구의 결과는 이전 선행연구 결과들과 비 슷하였으며[11-13], 이는 소득이 낮은 사회적 취약계층일수록 과도 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부담이 높아 재난적 의료비가 많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재난적 의료비 지출의 주요 원인으로는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며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고 있다[16]. 따라서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수준 을 확대하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일환으로 2005년 제1 차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대책, 2009년 2차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 2014년 제3차 중기보장성 계획을 연이어 시행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의료수가와 비급여항목의 급진적 확대로 인한 풍선효과로 보장 률은 개선되지 않았다[17].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재난적 의료비를 경험한 가구에게 의료비의 일부를 지원함으로써 국민의료비 부담 을 완화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2018. 7. 1)되었다. 이를 통해 소득구간별 의료비 부담수준의 기준이 완화되었으며, 지원범위 또한 확대되었다. 나아가 기존의 4대 중증질환 중심의 제한된 수준에서 4대 중증질환뿐만 아니라 다른 고액 외래의료비가 발생한 경우에도 질환의 특성을 고려하여 개별심사를 통해 선별지원이 된다.
한편, 이 연구에서 2020년 재난적 의료비의 경우, 데이터 활용이 가능한 재정패널조사에서만 분석되었다. 그 결과 2020년 재난적 의료비 경험률은 모든 소득수준의 가구에서 전년 대비 감소하였으며, 이에 따라 전체 경험률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의 원인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상황과 그간 문재인 정부 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 이후에도 재난적 의료비 추이는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소득층과 노인가구에서 증가한 것을 비추어볼 때[11,13,18], 코로나19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주된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2020년에 발생한 신종 전염병인 코로나19의 두려움으로 인해 국민들은 의료이용을 기피하였고, 이로 인해 의료예방과 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는데[19], 이러한 결과로 의료 이용 자체가 줄어서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이 감소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적 의료비 감소의 원인이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의료이용 행태변화 때문인지[19] 혹은 문재인 정 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재난적 의료비 해소를 위한 제도 때문인지를 확인하기에는 현 시점의 데이터로는 시간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재난적 의료비 경험률에 대한 지속적인 후속 연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재정패널조사, 한국의료패널 및 가계동향조사의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비율이 다르게 나타난 것은 각 데이터의 모집단과 샘플링 및 조사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8,9]. 한국의료패널 및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조사구 내 일반가구가 관심 연구대상이었지만[9,20], 재정패널조사는 제주도 및 도서지 역을 모집단에서 제외하였고 나아가 가구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복지혜택을 파악하는데도 관심을 갖고 있어, 소득수준 상위 10% 이상 고소득층과 차상위 계층 이하 저소득층을 관심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8]. 또한 한국의료패널과 재정패널조사 데이터는 지난 조사 이후 현 조사 시점까지의 의료이용을 후향적으로 수집하고 있어 의료비 지출액이 부정확하거나 의료이용 자체의 누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사주기 역시 한국의료패널과 재정패널조사는 연 단위, 가계동향조사는 월 단위로 가계동향조사의 지출 기록이 상대적으로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2017년 자료부터 소득과 지출을 구분하여 공표하고 있어 세계보건기구에서 정의한 기준에 따른 재난적 의료비 산출에 제한이 있었다. 이외에도 데이터 별로 모집단에서 샘플링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으며[21], 결과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이 연구에서 데이터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 비율 및 경향성에 차이로 이어졌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데이터는 재난적 의료비 발생과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Xu [10]의 개념에 기반한 기준을 적용하여 분석했다는 점에서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비율의 정확성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2020년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비율은 평균 약 1.73% 이었으며, 전년 대비하여 크게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저소득층에서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취약계층 의 경우 여전히 높은 의료비 본인부담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제적 위기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2020년 재난적 의료비가 큰 폭으로 감소하였지만 재난적 의료비의 경우 재발비율이 높기 때문에[22],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새로운 가구 발생에 대한 조기 발견 및 예방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출 여부가 빈곤화와 빈곤 지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난적 의료비 발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며, 특히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완화를 위한 건강보장체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상충
이 연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이나 이해당사자로부터 재정적, 인적 지원을 포함한 일체의 지원을 받은 바 없으며, 연구윤리와 관련된 제반 이해상충이 없음을 선언한다.
ORCID
Sung Hoon Jeong: https://orcid.org/0000-0002-5581-7929;
Soo Hyun Kang: https://orcid.org/0000-0002-9381-7276;
Eun-Cheol Park: https://orcid.org/0000-0002-2306-5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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