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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Forms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According to Historical Changes

역사적 변천에 따른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와 특성 연구

  • Received : 2021.04.16
  • Accepted : 2021.05.17
  • Published : 2021.05.28

Abstract

Innovative translation circumstances encouraged by scientific technique have become an element that increases realization and possibility of expanding sign language translation and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is facing a new challenge and opportunity. This study raises following questions and search for answers. First, when and how did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appear in the course of the historical changes in Korean sign language? Second, what is the form and characteristic of translation produced as a result of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Third, what is the present condition and prospect of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Accordingly, this study examined how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was formed historically and the form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using integrated literature review method. As a result of the study, first, the form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classified according to the historical transition process into latent phase, formation phase, and expansion phase were revealed. Second, the forms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sign language translation according to the Korean sign language corpus project and machine translation were derived. In addition, it apprehends its present condition and proposes its future prospect.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혁신적인 번역 환경은 수어 번역의 확대 가능성과 실현성을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수어 번역도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본 연구는 첫째, '한국수어 번역은 한국수어의 역사적 변천과정 속에서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가?', 둘째, '한국수어 번역의 결과로 산출된 번역의 형태와 특성은 무엇인가?', 셋째, '한국수어 번역의 현황과 전망은 어떠한가?'라는 연구 질문들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간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통합적 문헌고찰 방법을 사용해 역사적으로 한국수어 번역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와 특성은 어떠한지를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수어번역 잠재기, 형성기, 확장기로 구분되는 역사적 변천과정에 따른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와 특성이 나타났으며, 둘째, 한국수어 말뭉치 사업과 기계번역에 따른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와 특성이 도출되었다. 아울러 한국수어 번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하였다.

Keywords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 목적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청인1이 다수인 사회 속에서 시각언어인 수어를 통해 삶을 영위해가는 소수의 농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권리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자유로운 정보이용이다. 국립국어원이 수행한 「2020년 한국수어 활용조사」 결과, 삶의 여러 영역에서 한국농인은 청인과의 의사소통에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무상에서 청인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청인의 수어 표현이 곤란한 데 따른 것이다. 그에 따라 중요한 업무들과 관공서, 의료, 법률 분야에서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수어통역사에 의존한 의사소통의 비중이 일상생활에서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1].

이는 다수의 청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농인이 포용적 성장과 자립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음 성언어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비주류 언어인 수어로 변환하는 작업이 크게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바로 수어통역과 수어 번역의 확산이 요구된다. 특히 번역이 하나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된 텍스트로 다시 ‘맥락’을 형성하는 ‘언어적인 텍스트 구성 작업의 결과’라고 할 때, 번역은 이미 존재하는 메시지에 독자들이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어가 주류인 한국사회에서 한국수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한국 농인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한국수어의 번역과 통역이다.

이러한 수어 번역과 통역은 수어에 기초한 언어활동일 뿐만 아니라 청인과 농인문화 간의 의사소통 활동2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수어통역은 청인 수어통역사와 청각장애인통역사를 통해 활발하게 수행되어왔으나 수어 번역은 수어통역의 틀 속에서 잠재되거나 보조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음성언어와 달리 수어는 시각언어일 뿐만 아니라 문자로 표기3하기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므로 기록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글이나 문자로 기록되어 출판이라는 과정을 통한 번역성과물의 산출이 충분히 가능한 음성언어에 비해 수어는 현실적으로 번역의 결과를 담아낼 도구가 마땅치 않았으며 번역활동의 유용성4에 대해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 시행된 이후 한국 수어와 관련한 여러 제도들이 안착되고 활성화되게끔 다각적인 접근들이 진행5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어통역의 확대에 있다. 2019년 7월부터 지상파(MBC, KBS, SBS)와 종편(JTBC, TV조선, YTN) 등에서는 스마트 수어방송 상용화가 시작되었다. 스마트 수어방송은 자막과 수어를 동시에 시청할 수 있고, 수어방송의 크기와 위치를 조절하는 등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다[3]. 더욱이 2019년 12월부터 정부는 국민의 생명, 안전, 복지, 문화, 교육 등 각종 정부 발표에 수어통역을 지원하고 있다. 즉, 공공수어통역 지원체계를 구축해 수어사용 환경을 개선한 것이다. 정부 정책 발표나 코로나19 브리핑 등에 수어통역을 제공함으로써 농인들의 알 권리를 향상해 정보 접근성을 높인 것이라 할 수 있다[5].

그런데 역시 수어번역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준우[6]는 수어통역과 수어번역6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으로 ‘즉시성’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즉시성을 통역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보고, 즉시 사용하기 위한 번역 행위로 통역을 간주한다. 즉 통역을 한 번 제시된 출발어 발화를 기반으로 하여 다른 언어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산되는 번역의 한 형태로 정리하면서 수어도 여기에 적용한다. 그 결과 큰 틀에서는 수어 번역의 범주 안에 수어통역이 자리하게 되며 음성언어를 수어로 변환하는 기초가 수어번역이 된다. 그런 면에서 수어통역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수어통역의 토대가 되는 행위가 수어번역인 것이다.

수어번역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게 되면 실제 농인이 사용하는 수어를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한국어를 수지한국어7가 아닌 실제 한국수어로 변환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수어번역의 과정과 방법이 구체적으로 정립되고 이를 기반으로 ‘수어교육 및 수어학습’이 이루어질 때, 수지한국어가 아닌 한국수어로 통역하는 수어통역사들이 늘어나게 된다. 오늘날 한국 수어통역의 가장 큰 문제는 수어통역 서비스가 농인의 기본적인 필요는 최소한 충족시키고 있는 것[1]으로 보이나 통역의 품질 면에서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평가[7-9]되는 데에 있다. 수어통역서비스는 확대되고 있는데 정작 그 수어통역의 내용을 농인들이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수어통역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7][9].

전현주[10]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한국의 번역산업이 새로운 기로에 섰다고 진단하면서 인공지능 기반의 빅데이터 구축은 다국어 자연언어 처리 및 응용 기술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므로 ‘번역’과 ‘통역’의 메커니즘이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지만 번역이 통역의 핵심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왕성한 말뭉치 구축의 결과로 축적되는 언어데이터가 효과적으로 관리 운영됨으로써 기계번역은 물론이고 통역활동에도 혁신적인 발전이 기대된다고 한다. 신부용[11]은 번역이 단지 언어를 다른 언어로 교체해주는 것이 아닌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까지도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역화 (Localization)라고 정의하면서 번역의 결과물이 축적됨으로 통역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박지영[12]은 언어정보 기술의 발전이 번역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면서 디지털 콘텐츠 번역이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는 시청각 자료와 함께 제시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멀티미티어의 사용으로 문서가 다양한 레이아웃으로 작성되고 이미지나 소리, 아이콘이 포함된 새로운 텍스트 타입이 등장하게끔 한다.

이러한 혁신적인 번역 환경은 수어번역의 확대 가능성과 실현성을 높이는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음성언어라는 소리 정보와 음성언어를 기록하는 문자(글) 정보의 데이터 저장 용량을 크게 넘어서는 ‘시각-운동 체계의 언어’인 수어를 영상으로 정보화하여 저장, 가공, 유통까지도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현실이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수어 분야에서 최근 빅데이터 구축을 통해 정보격차와 차별 없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수어번역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립국어원 수어말뭉치 구축 사업(2015~2020년)과 범정부 차원에서 주도되는 인공신경망 기반 한국어에서 한국수어로의 기계번역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기업들과 대학들의 협력적인 연구들을 들 수 있다. 특히 한국수어사전 편찬에 수어말뭉치를 형성하여 활용하는 것은 수어의 어휘와 의미, 문법을 비롯하여 화용 정보와 용례 등 거의 모든 언어학적인 범위에서 광범위한 자료를 기반으로 세밀하면서도 정확한 사전적인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농인 원어민으로부터 추출되는 언어자원을 통해 실제 농인의 수어를 파악함과 동시에 결과적으로는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언어적 원천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수어 번역이 새로운 양상을 맞이하고 있는 때에 근본적인 몇 가지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한국수어 번역은 한국수어의 역사적 변천과정 속에서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가?’, 둘째, ‘한국수어 번역의 결과로 산출된 번역의 형태와 특성은 무엇인가?’, 셋째, ‘한국수어 번역의 현황과 전망은 어떠한가?’이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연구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간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역사적으로 한국수어 번역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와 특성은 어떠한지를 고찰하는 데에 있다. 아울러 한국수어 번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양적연구뿐 아니라 질적연구나 이론적 연구방법을 모두 포괄하여 분석할 수 있는 ‘통합적 문헌 고찰 방법(integrative literature review method)’을 사용하였다. Whittemore와 Knafl[13]이 제시한 통합적 문헌고찰 방법은 문제 규명, 문헌검색, 자료평가, 자료 분석, 자료의 제시의 다섯 단계로 전략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본 연구도 다섯 가지 전략적 단계에 맞춰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역사적 자료 및 출판물과 한국수어사전과 같은 온라인 영상 콘텐츠에 대한 질적 분석 방법을 주로 활용했다. 한국수어 연구에서 충분한 사료(史料) 및 자료의 확보는 언제나 어려운 부분이지만 특히 한국수어의 번역과 관련된 자료는 대단히 희소해서 연구의 현실성을 확보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다. 한국수어번역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직접적인 기록물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활용된 분석자료들의 경우도 거의 대부분 2차, 3차 자료들이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기록들에 한정될 경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의 범위가 부분적으로 수어통역과 겹치거나 신문기사를 비롯한 각종 언론 보도 자료, 한국수어 학습서와 한국수어사전 영상자료 등을 총망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료 및 자료의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접근이었다. 특히 신문기사들의 경우 기록자의 주관적인 상황 인식의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신문기사들을 통해서 수어번역의 실질적인 내용과 특성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수어번역에 대한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시각을 추정하는 데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 사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료수집을 위해 활용한 방법은 눈덩이표집(snowball sampling) 방법으로, 수어 분야 연구에 대한 기존의 데이터베이스가 미흡하기 때문에 선택하였다. 이 방법은 하나의 자료원을 발굴한 후 그에 근거한 다른 자료원을 추적하면서 수집하는 것이다. 연구자가 이미 이전부터 확보했던 몇몇 자료들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자료수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3월 15일까지였다. 주요 자료의 출처는 한국수어 관련 학습서와 수어사전, 연구보고서, 기사자료 등이었다. 다만 최근의 한국수어 기계번역의 현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자료에 기초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문헌고찰에 의해 정리하였다.

2.1 조사 자료 출처

본 연구에서는 1963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발간된 수어 학습서 총 89권 중 18편, 1982년부터 발간되거나 온라인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수어사전 15종 중 9종, 2016년 이후 활발하게 수행된 국립국어원 한국수어 연구보고서 28편 중 17편, 그리고 한국수어 관련 신문기사 자료 6편과 역사서 2편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활용한 조사자료는 다음 [표 1-표 4]에 제시하였다.

표 1. 한국수어 학습서

표 2. 한국수어 사전

표 3. 국립국어원 한국수어 연구보고서

표 4. 신문 기사 및 역사서

2.2 자료 해석 방법

이들 자료의 해석은 질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수어번역의 이해에 관해서는 이미 연구자가 선험적으로 갖고 있었던 관점에 의해 연구질문과 자료의 범위가 결정되었지만 본 연구의 주요 내용에 해당하는 수집된 자료의 분석과 해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미 및 주제’를 도출하는 주요 연구 과정은 질적 연구의 범주화 방식에 의해 진행되었다. 즉, ‘개념→하위범주→상위범주’ 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에 따라 결과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자료 확보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계속해서 제기되었고, 그로 인해 자료 분석과정에서도 자료수집이 계속 병행되었다. 그에 따라 다양한 개념들이 도출되었고 그것들을 하위범주로 정리한 후 상위범주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 상위범주를 각 장별로 배열한 결과, ‘역사적 변천과정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 ‘한국수어 말뭉치 사업과 기계번역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으로 제시하게 되었다.

Ⅱ. 역사적 변천과정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

한국수어번역의 실체적 행위를 탐색하기 위해 역사적 고찰을 한 결과, 본 연구에서는 나사렛대학교 재활 복지대학원 석사과정 국제수화통역학과와 한국복지대학교(당시 한국재활복지대학) 수화통역과가 설립된 2002년을 기점으로 삼아 3단계로 시대구분을 하게 되었다. 즉 첫째, 일제강점기부터 2001년까지의 ‘수어번역 잠재기’, 둘째, 2002년부터 2015년까지의 ‘수어번역 형성기’, 셋째, 2016년부터 현재까지의 ‘수어번역 확장기’이다.

이는 기존 한국수어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관련한 선행연구들과는 차별화된다. 한국수어의 변천 과정에 대한 시대 구분은 장진권[14][15]의 3단계설과 김칠관 [16]의 4단계설, 이준우[17]의 4단계설이 있다. 장진권의 주장은 주로 초창기 한국수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는 데에 유용한 장점이 있다. 김칠관의 연구는 1980년대 이후, 수어통역의 제도화 과정에 대한 소중한 자료로서 큰 의미가 있다. 이준우의 경우는 한국수어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본 연구는 한국수어 번역이라는 한정된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실질적인 사료 및 자료가 있지 않는 한, 분석을 수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결국 확보된 자료들을 확인하고 분석하면서 각 시기별로 뚜렷한 ‘의미 및 주제’의 전환 내지 변화가 있을 경우에 한정하여 시대구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1. 수어번역 잠재기: 일제강점기부터 2001년까지

수어번역 잠재기는 수어통역이 수행되는 활동 속에 수어번역이 잠재되어 있었던 시기를 말한다. 수어번역 행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수어통역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통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 수어가 농인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총독부 제생원맹아부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191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제생원(濟生院) 맹아부에서의 교육이 시작되면서 농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정식 수어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한국농인들 간에 수어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제생원맹아부 아본과(啞 本科)에서는 농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 수어를 사용하였다. 1916년 농인의 범법 사실에 대한 법원에서의 신문 통사[18]가 한국에서 이루어진 공식적인 최초의 수어통역이다.

1916년 7월 28일 부장 오오스까 요네죠가 음아자(音啞者) 범죄 사실 취조 통사(取調通事)로서 경성 지방법원에 출두하였다. 당부(當部) 직원 재판소 통사의 시작이다(제생원 맹아부, 1938: 15).

그렇지만 이것을 오늘날과 같은 수어통역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여러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수어통역은 교사나 농인의 가족에 의해 이루어진 자원봉사적인 성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어통역 전문가도 아니었고, 통역을 필요로 하는 농인의 정확한 의사나 권리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일종의 대리인이었다.

한편 제생원에 재학하고 있었던 임남원 학생의 수어 번역은 농인 당사자가 직접 수어를 통역하면서 번역행위가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아마도 유창한 구화로 음성통역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이하게도 신문기사에서 번역으로 명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제생원맹아부 졸업식 손짓으로 답사: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학교에서는 20일 오후 1시부터 강당에서 맹아부 제3회, 농아부 제2회의 졸업증서 수여식을 거행하였다. 개회사 다음에 창가를 부르고 학사보고가 있었으며 제생원이 졸업생 맹인 7명, 농아인 3명에게 각 졸업증서를 수여한 후에 시도내무부 이 과장은 원장 대리로 훈시하고 학생대표 맹인 전정하의 답사가 있고, 다음에 농아인 대표 권오용은 손짓으로 답사하였으며 4년생의 임남원은 이것을 번역하여서 내빈들을 놀라게 하였다. 모두 마친 후에 졸업식 창가를 부르고 2시 30분에 폐회하였다. 이후 학생의 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당일에 내빈과 학부형 수십 명이 왔으며 졸업생 명단을 알렸다(매일신보 1919년 3월 26일자)[19].

또한 박두성 선생의 수어통역 활동은 매우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통역 장면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제시한다.

상점에 침입하여 엽총 실탄을 절취/수원지원 법정에서 공판 열어 벙어리 절도에는 징역 6개월: 지난 19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제1호 법정에서는 흥미롭고 희귀한 벙어리 절도의 공판이 카토 대리검사의 입회 아래에 나카자와 판사의 주심으로 개정되었다. 벙어리의 통역은 경성제 생원 선생 박두성씨의 출장 통역으로 이루어졌다(동아일보 1929년 2월 22일자)[20].

병목정 홍순방은 벙어리로 3일에 광희문정122 김정철의 금시계를 훔쳐서 본정 경찰서에 잡혔는데 4일에 맹학교 교장 박두성 선생에게 통역을 요청하였고 취조하였다(매일신보 1929년 5월 5일자)[19].

통역세워 벙어리 공판: 전남 순천군 쌍암면 석흥리에 사는 김일침(38)은 동네에 사는 벙어리인 윤흥순(50)에게 25전의 차입금이 있는 바 수십일이 되도록 갚지 아니함으로써 벙어리 윤흥순은 채무자 김일침의 집에 가서 괭이 한 개를 빚 변제로 가져갔다. 김일침 은괭이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윤흥순은 돈을 갚으라며 언쟁하며 쌍방에 대격투가 일어나자 벙어리 윤흥순이 김일침의 목을 눌러 질식시켜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한 상해치사 사건의 공판은 지난 10일 오후 1시에 광주법원에서 개정되었는데 피고가 벙어리이기에 경성 제생원 교사 박두성 씨가 통역으로 출정하였다(매일신보 1933년 6월 13일자)[19].

교육기관 밖에는 동경에서 귀국한 정동섭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농아인협회’와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 귀국한 이윤희에 의해 만들어진 ‘대한농아협회’의 2개 단체에서 문맹농인을 위한 수화교실을 개설하여 농인들을 지도하고, 수어를 통한 연극발표를 함으로써, 한국수어를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극단 활동에 있어서는 아름다운 수어를 표현하기 위해 재치 있는 다양한 기호를 대량 만들기도 하였다[21]. 이와 같은 수어 연극이 공연되기까지의 과정에 수어번역 행위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1963년 서울 농아학교에서는 국내 최초로 「수화」란 책자8를 간행하였는데, 수어 기호를 해설한 설명서이다. 「수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사용되어 온 수어 어휘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해설해 줌으로써 수어의 통일을 기하고자 했다[15]. 특히 이 시기 수어는 특수교사 단기 양성과정인 보통사범과의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교육과정운영을 통해 이루어진 수어학습의 효시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1963년에는 용어로서의 ‘수화’가 국어사전(新撰國語大辭典)의 표제어로 처음 등장했다. 이보다 앞서 1961년에 간행된 국어사전(이희승 감수, 국어대사전)에 이미 ‘수화’가 나와 있는데, 표제어로서가 아니라 “농아교육”을 설명하는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다[16].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와서는 농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수어통역 도우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수어가 발전해왔다. 서울을 비롯하여 지방에 농인단체들이 있었으나 수어통역에서의 역할은 미흡하였다. 통역을 필요로 하는 경찰서, 검찰청, 법원 등과 같은 기관이 교사 자격 유무를 수어통역의 조건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인데, 교사 자격증이 그 유일한 근거였기 때문이었다[16]. 당시 농학교 교사들은 오늘날의 사회복지사와 수어통역사의 역할을 교사 업무와 병행하여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주 특별한 경우 교사 자격증이 없었음에도 탁월한 수어통역으로 주목받은 사례도 있다.

어렸을 때 익힌 수화: … ‘여수사관’ 별명 얻고 변호사 노릇도 하는 법원 농아자 전문통역사 이복라 양 “가끔 나 자신이 벙어리가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어요.” 6년 동안 경찰, 검찰, 법원 등에서 못 듣고 말 못하는 벙어리들을 위해 통역을 맡아온 이복라 양의 수화솜씨는 그만큼 능란했다(동아일보 1975년 8월 11일자)[20].

1979년 5월 최초로 수어통역이 방송으로 나왔다. 당시 서울농학교 김삼찬 교사가 참여했다. 한국방송공사 (KBS)의 어린이날 경축대잔치 중계방송이었다[22].

“천사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어느 소녀가 화면에 나오는 한 여인의 모습에 감동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천사로 분장한 탤런트도 아니고 동화 속에 나오는 선녀도 아니다. 그 여인은 바로 서울농아학교의 김삼찬 교사였다. … 중략 … 김 교사는 텔레비전의 영상만 볼 뿐 말을 듣지 못하는 답답한 농아어린이들을 위해 우리나라 텔레비전 최초로 수화해설을 맡았다. … 중략 … 김 교사는 수화해설을 해준 것이다. … 중략 … 수화해설 프로그램을 늘려 그늘진 얼굴들에게 웃음을 줄 수는 없을까(동아일보 1979년 5월 18일자)[20].

1979년 서울영락농인교회에서는 국내 최초로 「우리들의 수화」란 책자를 간행하였는데, 708개의 수어 기호를 알기 쉽게도해로 편찬하였다. 편찬자는 주로 서울농아학교 졸업생인 손천식과 신동진을 비롯한 몇 명의 농인들이었다[15]). 특히 「우리들의 수화」(1979)가 수어번역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처음으로 한국수어 어휘의 표준화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한국수어의 어휘가 표준화되어야만 농인들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기에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한국수어의 표준화 필요성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은 한국표준수화사전편찬위원회가 구성(1979)되면서부터 진행되었다. 한국표준수화사전편찬 위원회의 활동 결과는 금옥학술문화재단(1982)의 지원을 통해 「표준수화사전 標準手話辭典」 발간으로 나타났고, 이어 김승국(1983)의 「수화사전」까지 편찬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한국수어의 표준화’는 이 시기 한국수어 관련 연구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정착됨과 아울러 한국수어 번역이 철저하게 한국어에 한국수어를 종속시키는 과정으로 내몰게 된다. 이 시기에 지향했던 ‘표준화’란 수어 어휘의 획일적인 통일에 집중한 것이었다.

특히 「표준수화사전 標準手話辭典」은 수어표준화라는 목표 하에 소수의 전문가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한국어 대응한글식 수어’ 방식을 취하고 있다. 「표준수화 사전 標準手話辭典」은 서울농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편찬되었는데 무려 5,494개의 어휘가 수록되었고, 조사와 어미까지 포함되었으며, 표제항은 한글 자모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고, 각 표제어에 수어를 하나씩 대응시켜 놓고 있다. 또한 동의어․ 유사어 관계의 표시, 영문 및 한자 표기, 품사 구별 등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예문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후 발간된 「수화사전」과 1993년 간행된 「(최신판) 표준수화사전」도 한국어의 표준어 기준에 따라 특수학교 교사들과 한국농아인협회 회원이거나 직원들로부터 제안된 ‘표준적인 수어’들이 선정수록되었다. 선정된 수어들은 한글식수어가 대부분이었다. 이제 수어번역은 실제 농인이 사용하는 한국수어를 발굴하여 한국어로 전환하는 측면은 거의 사라지고 ‘한국어에 대응하는 수어 기호제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표준화’ 영향으로 1986년에 서울농아학교는 국내 최초로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수어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수어를 교과목으로 채택하였다. 이에 주당 1시간씩 수어를 지도하기 위해 학생 지도용본 3권을 「표준수화교본」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제1권에서는 1,000여개의 어휘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어가 대화체로 수록되었는데,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한국어 문법 지도를 위해 조사는 물론 용언의 활용 및 시제까지도 한글식어법에 맞게 편찬해냈다는 점이다. 제2권에서는 제1권의 내용을 보다 발전시켰고, 제3권에서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어를 중심으로 수어 어휘의 수준을 높였다. 이수어 학습교재의 특징은 전통적인 ‘교수-학습’ 지도방식을 준용하였으며 동시에 한국어 문법에 충실한 수어어휘를 주로 가르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23].

한편 1987년에 발간된 손천식의 「우리들의 수화(상)(하)」는 농인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수어 어휘들을 주제별로 묶어냈고, 각각의 주제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한국수어 번역 문장을 예문으로 제시하였다. 물론 한국어 문법에 기초한 ‘-이다(입니다).’ 같은 표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농인의 생활수어 어휘를 잘 제시하면서 상하권을 합쳐 대략 1,900여개의 수어어휘를 수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인 손천식은 농인 당사자로서 농인의 살아있는 수어 표현들을 다양한 대화 장면을 통해 제시하였다. 특히 ‘응용’과 ‘응용해설’로 제시된 부분의 내용은 농인의 생생한 수어문장을 번역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1990년에 발간된 남순석의 「생활수화」도 농인들의 다양한 삶의 장면들을 수어 문장으로 담아내었다. 특히 이 책은 수어문장을 먼저 제1장에서 제시한 후 제2장에서 수어 단어를 제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책 자체가 한국수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농인 당사자인 손천식과 남순석의 수어 학습서는 한국수어번역의 과정을 잠재적으로 거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권의 책도 한국어의 영향에서 온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농인의 관점에서 한국수어를 제시하고 이를 한국어로 전환하여 한국수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991년에는 교육부 장학자료로 「한글식 표준수화」가 출간되었다. 「한글식 표준수화」는 전형적인 수어 ‘표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결과물이었다. 수어어휘의 통일성을 추구하며, 수어가 필요 이상으로 변이되고 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접근이 견고해졌다. 여기에 제시된 표준수어는 수어 어휘와 지문자를 병용하여 국어 문법에 맞게 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수어 어휘가 없는 낱말은 지문자로 표시하였다[23]. 조사와 어미변화는 기존 수어가 있으면 그대로 표현하고, 없으면 지문자로 표시하였다. 이후 1994년의 「표준수화교본」과 「한국 수화 연구」에도 여전히 강력한 ‘표준화’ 지향성이 이어져 그 결과 수지한국어가 한국수어로 둔갑되어 전승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이 시기에 진행된 수어통역과 수어연구 및 수어 관련 자료 발간에서 수어번역의 행위는 잠재되어 있었고, 한국수어가 아닌 수지한국어로 표준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나, 결과적으로 음성언어인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대치하는 차원에 머물게 되었다. 아울러 수어를 언어학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원봉사의 도구 내지 불쌍하고 열등한 농인에 대한 동정적이고자 선적인 병리적 이해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한국수어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이 시기에 꾸준히 확산되었다.

2. 수어번역 형성기: 2002년부터 2015년까지

2002년부터 시작되어 2015년까지의 시기는 국내적으로는 대학을 통한 수어통역 전문인력의 양성이 본격화된 시기임과 동시에 국외적으로는 2002년 미국 워싱턴에 있는 갈로뎃대학교에서 개최된 Deaf Way Ⅱ 행사의 영향으로 수어통역사의 전문성 확보에 대한 필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수어통역사 양성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해나가고 있는 때라고 할 수 있다[23][24]. 2002년 대학원 과정의 국제수화통역학과(나사렛대학 교)의 설치, 2002년의 2년제 학부과정인 수화통역과 (한국재활복지대학)의 설치가 이루어짐으로써 학교 교육을 통한 전문적인 수어통역사가 양성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통한 수어통역사 양성은 한국수어 번역에 대한 본격적인 인식과 이해가 시작되었음을 반증한다.

무엇보다도 대학에서의 수어연구는 한국수어와 농인 사회의 긍정적 발전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한국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언어적· 문화적 소수집단인 한국 농인들의 권리 신장에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는 국내외 언어학계에 언어로서의 한국수어를 알리는 데 일조할 수 있는 통로로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한국수어와 관련한 학위논문이 다수 나왔는데 석사논문 78편, 박사논 문이 10편으로 총 88편의 학위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는 이전 시기인 1983년 한국수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김승국의 박사논문이 나온 이후 2001년까지 총 20편의 학위논문이 발표된 것에 비교할 때 2002년 이후 한국수어 연구가 급증했음을 보여준다[25].

또한 이 시기 한국수어 학습서들 가운데서는 주목할 만한 특징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박인선 외의 「수화 Up Grade」, 이준우의 「수화의 이해와 실제(초급과정)」, 한국농아인협회의 「한국수화」, 장진권의 「알기 쉽고 재미있는 한국수화여행」, 이준우와 남기현의 「수화의 이해와 실제(고급과정)」 등이다. 이들 한국수어 학습서들은 비록 예문들이 수지 한국어 문장들을 포함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실제 농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수어 어휘를 최대한 발굴하여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특히 장진권의 경우와 이준우ㆍ남기현의 경우는 농인의 관용적인 수어 표현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제시하였다. 또한 정택진 외(2006)의 「Premium Sign Language」, 변강석 외(2010)의 「한국수어와 친구되기」, 손성렬(2010)의 「손성렬의 수화문법 이야기」, 문혁(2015)의 「우선순위 농식수화」, 이율하외(2015)의 「또 하나의 언어 QR 한국수어」도 수어어원과 수어문법 등 보다 언어학적인 차원에서 한국수어의 특성들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농인들을 수어 자료 표집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실제 농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쓰는 수어 어휘와 예문들을 수록하였다[23].

한편 2005년에 「한국수화사전」이 등장하였다. 이 사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출간되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2000년부터 한국수어와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였다. 당시 사업의 초점은 주로 수어를 표준화하여 보급하는 데 있었다. 농인들은 비교적 소수인데다 흩어져 살고 있어서 수어에는 다양한 변이형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농인들 사이의 의사소통 편의를 증진하고 교육 현장에 수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변이형 중에 표준을 정해서 보급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각 학문 분야와 사회발전에 따라 다양한 어휘들이 새로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수어 단어들도 협의9를 통해 만들어내어야 했다[23][25].

2007년에는 「한국수화문형 사전」이 나왔다. 여기에는 4,483개의 수어문장을 대상으로 문형을 분석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어 문장을 먼저 만들고, 이를 번역한 수지 한국어문장이 제시되어 있다. 그 결과 한국수어의 문형을 수록한 사전을 추구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수지 한국어문형 사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23].

한편 이 시기에 특기할 만한 사업으로는 한국복지대학교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추진한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국어교육용 한국어-수화 동영상 사전 개발” 연구의 결과물인 「한국어-수화사전」과 기존의 종이사전이었던 「한국수화사전」을 웹사전으로 개편한 「한국 수어사전」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이 웹사전은 서비스되는 수어사전에서 검색이 한국어로만 지원되므로 보다 많은 농인 사용자의 접근성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특히 국립국어원의 수어연구사업은 2013년을 기점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2012년까지는 주로 한국수어 어휘의 표준화에 주력했는데 2013년부터는 사업명칭도 ‘한국수화 표준화’에서 ‘한국수어 연구’로 변경하고 수어 말뭉치 구축, 박물관 등에 대한 수어 동영상 서비스 제공, 수어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등 보다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2013년에는 특히 수어 법률 제정이 가시화되면서 그 이후의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수화 발전 기본계획 수립 연구」(2014)를 수행하였고, 그에 따라 사업들을 진행하였다[23][26].

이렇게 수어를 표준화하고, 규정 차원의 수어, 특히 규정 어휘들을 수어 사전 형태의 결과물로 제시하고, 이를 보급했던 이상의 사전 편찬 작업들은 결과적으로 한국 농인의 고유한 한국수어를 크게 제한하였고, 그 결과 작위적인 수지한국어를 양산함으로써 한국수어를 오히려 위축시키게 하였다[23]. 물론 2013년부터 국립국어원의 수어사전 편찬의 방향이 표준화에서 진정한 한국수어 발굴로 급선회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수어 학습서들 가운데 탁월한 책들에서 한국수어 번역의 의미 있는 접근들이 나타났음을 발견한 것은 한국수어 자료 형성에 있어서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들 한국수어 학습서들로 인해 실제 농인이 사용하는 한국수어들이 발굴되어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3. 수어번역 확장기: 2016년부터 현재까지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수어 사전」은 농인과 청인 누구나 한국수어 단어에 대한 한국어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기존의 한국수어 웹 사전과 모바일 앱 사전 등을 통합하여 새롭게 정비한 사전으로 거듭났다. 「한국수어사전」은 ‘일상생활 수어’와 ‘전문용어 수어’ 그리고 ‘문화정보 수어’ 사전으로 구분된다. ‘일상생활 수어’와 ‘전문용어 수어’의 경우 각각의 수어 단어마다 수어 동영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수형 사진과 설명, 원어정보, 동형어, 반형어 등의 수어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하단에 표제어, 품사, 뜻풀이, 용례 등의 한국어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한편, ‘문화정보 수어’의 경우 주요 국립 박물관에 소재한 유물에 대한 수어 동영상과 유물 사진 그리고 한국어 설명을 함께 제공하고 있어 사전으로서의 성격보다는 농인의 문화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제공되고 있다.

이렇게 웹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수어사전이 구현됨으로써 농인들이 다양한 수어 어휘를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나 「한국수어 사전」에 실린 표제어의 수록 방식이 한국수어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기존 한국어 사전의 표제어 기준인 ‘가나다순’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록되어 있어 농인들의 한국수어 ‘접근성’과 ‘활용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행히 국립국어원에서는 2015년 한국수어 웹 사전구축을 통해 ‘자세히 찾기’ 기능을 추가하여 ‘분류 별 검색’, ‘수어정보로 검색’, ‘한국어 정보로 검색’ 등 보다 세분화된 검색이 가능해졌으나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다. 사용자들이 현장에서 모르는 수어 단어를 발견하였을 때에 「한국수어사전」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한국수어사전」의 검색 방식은 한국어를 통해 한국수어를 검색하는 것으로, 한국수어에 대응하는 한국어를 모르면 검색할 수 없었다. 특히 농인들의 경우 소수의 농인들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문해능력 수준이 낮아 그 어떤 매체로도 신속ㆍ정확하게 정보를 습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23][27-29].

결국 한국어의 ‘가나다’와 같은 자모가 없는 한국수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검색 방법은 수어 단어를 구성하는 형성적 자질들(formational features)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는 수어가 지닌 언어적 특성에 기초하여 검색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수어 단어의 구성요소는 수형(handshape), 수위(location), 수동(movement), 수향(orientation)과 같은 수지적 요소를 포함해 수어 사용자의 얼굴 표정, 상체의 방향과 움직임과 같은 비수지 신호(non-manual signals)이다. 따라서 2016년까지 구축된 「한국수어사전」의 일상생활 수어와 전문용어 수어를 농인 이용자들이 한국어를 모르더라도 수어 단어의 수어소로도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단어를 ‘손 모양(수형)’, ‘손 위치(수위)’, ‘한 손 단어/두 손 단어’, ‘같은 모양/다른 모양’으로 분류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수어사전을 한국어의 한글로 검색하는 방식과 함께 한국수어의 수어소로도 검색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한국어와 한국수어 양방향으로 검색이 가능한 한국수어 웹 사전을 2016년 최초로 구축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수형 기반 한국수어사전」이었다[23].

2017년에는 이중언어 사전을 만들기 위한 「한국수어 사전 수어 뜻풀이와 용례 구축 및 정비」 연구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연구는 「한국수어사전」이 사전으로서의 기능을 보다 충실하게 수행하고 주 이용자인 농인들이 쉽게 접근하여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뜻풀이와 용례를 시범 구축하고, 「한국수어사전」에 제시된 정보를 보완 및 정비하며, 웹사전으로서의 기능을 고도화하였다. 그 결과 이 연구는 그동안 공공과 민간에서 다양하게 수행되어 온 한국수어사전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연구에서는 뜻풀이와 용례 구축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의미 정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한국수어 말뭉치에서서 용례를 추출하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또한 연구의 전 과정에서 농인 연구진과 청인 연구진이 활발하고도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였으며, 전국에서 다양한 농인 전문가들(번역자, 감수자, 모델, 검수위원, 검토단, 자문위원단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수어 번역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23].

한편 이 시기에는 한국수어말뭉치 사업이 본격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수어의 문법 구조를 밝히기 위한 연구도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 수어가 가진 특유의 문법적 요소들을 찾기 위한 탐색적 접근이 구체화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국내외 수어문법서들이 분석되었을 뿐만 아니라 농인들의 강연이나 담화 장면 등을 녹화하여 분석한 후 여러 차례 농인들의 검토를 거쳐 한국수어의 문법적 성분과 구성 유형을 찾아 정리해 나가고 있다[23][30-32]. 또한 수어지명에서 나타나는 한국수어의 형태론적 특성과 어원론적 형태를 밝히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33].

더욱이 2021년 3월부터 국립국어원은 한국수어 어휘를 표제어로 제시하고, 이에 대응하는 여러 한국어 어휘와 실제 수어용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한국수어사전의 구조를 정비하여 운영해나가고 있다. 이는 ‘하나의 의미에 하나의 수어를 연결하여 제공하는 한국수어 표준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수어를 독자적인 언어로 인정하고 구현하는 방향으로 본격적인 전환이 일어났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 1. 역사적 변천과정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

Ⅲ. 한국수어 말뭉치 사업과 기계번역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

1. 한국수어 말뭉치 연구 및 구축사업에 따른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와 특성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말뭉치 구축 사업은 2015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매년 수행되고 있다. 2015년에는 한국수어연구 활성화를 위한 과학적인 연구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수어 말뭉치 기반 조사 및 시범 구축’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말뭉치 구축을 위한 지침서를 개발하고, 서울지역의 농인 30쌍을 대상으로 90시간 분량의 언어자료를 수집하여 그 중에서 13시간 분량의 기본 주석을 실시하였다. 2016년에는 ‘한국수어 자료 통합지원시스템 구축’ 사업이 진행되어 주석 지침을 수정 보완하고 수어자료 주석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였고, 특히 이 사업에서는 한국수어 말뭉치를 활용한 실증적 수어연구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입움직임과 관련된 주석 지침10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수어에 나타난 입 움직임에 대한 연구사례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해외 수어 자원과의 연계방안을 제시하고 농사회를 대상으로 한국수어말뭉치 구축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키기 위한 워크숍도 개최하였다. 2017년에는 기수집된 원시 말뭉치를 대상으로 250분 분량의 영상에 대한 기본 주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타입을 재정비하여 그동안 수집한 원시 말뭉치와 구축된 말뭉치를 한국수어자료 통합지원 시스템에 연결하는 작업을 완성하였다[34].

그리고 윤석민 외[35]가 수행한 ‘2018년 한국수어 말뭉치 연구 및 구축’은 2015년도 한국수어 말뭉치의 시범 구축에 이어 원성옥 외[34])에 의해 2017년 개정한 한국수어말뭉치 구축 지침을 다시 정비하였다. 그런 후 한국수어 말뭉치를 구축하였다. 강원지역, 전남지역, 전북지역, 경남지역의 총 네 곳의 지역을 선정하여 언어 자료를 수집하였고, 2015년에 수집한 언어자료(동영상) 중에서 6개의 영상, 총 재생시간 82분 54초 분량의 영상에 대해 우세손과 비우세손에 대한 번역 및 기본 전사를 완료하였다. 아울러 한국수어 말뭉치의 구축 및 연구 성과 확산을 위한 워크숍, 한국수어말뭉치 전문 전사자 양성을 위한 전사교육을 실시하였다.

강창욱 외[36][37]에 의해 수행된 ‘2019년과 2020년 한국수어 말뭉치 연구 및 구축’은 2018년도 원시 말뭉치 수집 지역 중 4쌍이 수집된 전남지역(광주 포함)의 농인을 대상으로 15쌍 50시간 이상의 수어 촬영 및 편집을 목표로 한 ‘원시 수어말뭉치 수집’ 과제와 80분 분량의 경남지역 수어 영상을 주석 파일로 작업하는 ‘한국수어 말뭉치 주석’ 과제를 중심으로 추진하였으며, 이는 산재한 국내 수어 자료 실태 분석과 국내외 수어 말뭉치 실태 분석을 통해 ‘한국수어 말뭉치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특히 이러한 ‘한국수어 원시 말뭉치 수집’은 한국수어말뭉치 자료의 지역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2018년 수행된 원시 말뭉치 수집에서 4쌍을 수집한 전남지역(광주 포함)에서 총 19쌍 38명의 언어제공자로부터 총 59시간 53분 분량의 영상을 촬영하였으며, 편집 및 검증 과정(3회)을 거쳐 최종적으로 49시간 24분 분량의 완성된 수어자료를 확보하였다. 아울러 2020년 ‘한국수어 말뭉치 주석’은 2018년도와 2019년에 걸쳐 수집되어 주석 데이터로 만들어지지 않은 경남지역 말뭉치 수어 자료에 대해 실 시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수어말뭉치 구축 사업의 가장 큰 성과로는 2015년 국내 최초로 한국의 원시 수어 말뭉치를 수집하면서 생성된 동영상을 주석하면서 수어 말뭉치 구축을 위한 표준으로 현재의 용어인 “한국수어 말뭉치 주석 규약”이라는 ‘전사지침’을 제작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주석 규약이 한국 수어말뭉치 구축의 실질적인 표준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수어 번역이 지향해야 할 실제 한국농인이 사용하는 한국수어를 찾아야 하는 근원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준 결과로 작용한다.

어쨌든 이렇게 제작된 ‘전사지침’을 이후 수어 말뭉치 구축을 수행할 때마다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하였으며 향후에도 이 규약은 해마다 추가로 수행되는 주석 작업에 따라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거나 수정될 수 있게 했다. 2020년 현재 한국수어말뭉치 구축에서 주석 규약은 지금까지 수행된 번역 및 주석을 수행하기 위해 알아야 할 구체적인 규칙과 약속을 다루고 있다[36].

2. 기계번역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

손을 추적해 수어를 인식하는 시스템을 구현하거나 3D를 활용하는 등 시각언어인 수어의 특성을 살려 학습효과를 높이려는 노력들이 시도되어 왔다[38][39]. 그러던 중 2020년 N대학교와 T사, E사가 협력하여 인공지능 학습데이터 구축사업을 수행하였는데 여기에서 2000문장, 1000개 단어에 대한 데이터 구축을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국어 문장을 수어로 번역한 영상(수어인식 데이터) 및 수어로 번역한 영상과 동일한 아바타 데이터를 구축하였다[40].

한편 최치훈·이한규·안충현[41]은 아바타 수어 서비스 구현을 위해 한국어-한국수어 병렬 말뭉치를 구축하였다. 이 연구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문법적 비수지 기호(non-manual signals) 표시를 구체적으로 제안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문형, 감탄형, 명령형, 청유형 등을 표기하는 접근을 혁신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또한 김정호·황의준·박종철[40]은 한국어에서 한국수어로의 기계번역 시스템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국어-한국수어 병렬 말뭉치를 구축하는 방법과 이렇게 구축된 병렬 말뭉치를 통해 번역 모델을 학습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모두 일정 범위의 주제를 벗어난 구어 문장은 어휘 정보가 없어 번역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일상생활 번역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즉 실제 사용을 위해서는 번역 가능한 주제를 확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한국어-수어 병렬 데이터가 요구되고, 병렬 데이터 구축은 상당한 자원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한국의 수어 기계번역은 최근 2~3년 사이에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한국수어 번역에서 기계번역은 크게 ‘문법기반 번역’과 ‘인공신경망 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문법기반 번역과정은 ‘음성인식 → 자연어 처리 → 문법기반 번역 → 애니메이션 생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음성인식은 음성을 듣고 텍스트의 형태로 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어 처리는 텍스트를 형태소 분석, 의미역 분석, 개체명 분석, 구문분석 등의 과정을 통해 번역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것이다. 수어번역 에서 문법기반 번역은 번역시스템에 부여된 규칙을 기준으로 수어문을 작성(수어단어+비수지신호)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애니메이션 생성을 한다. 즉, 수어문을 기준으로 저장된 애니메이션 데이터를 매칭하여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송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공신경망 번역과정은 ‘음성인식 → 인공 신경망 번역 → 애니메이션 생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인공신경망 번역은 인공지능이 기존에 학습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수어문을 작성(수어 단어+비수지신호) 한 후 애니메이션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공신경망 기반 한국수어번역은 현재 ‘한국어-한국수어’ 병렬 말뭉치 구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한국어- 한국수어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한국어-한국수어 병렬 말뭉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략적으로 기본 시작을 위해서 3만-10만 쌍의 병렬 데이터가 요구되며 약 7억-10억 쌍의 병렬 데이터가 최종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문자가 있는 음성언어의 경우를 참조한 것이므로 수어의 경우 더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분명한 것은 현재의 한국수어 분야에서의 기계번역 수준은 수어통역사의 통역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어통역 분야에서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 교육, 법률과 같은 분야에서는 상용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수어 분야에서의 기계번역도 결국에는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글 번역 서비스 정도의 차원에서 수행되는 일상생활이나 재난 및 위기상황 등에서 수어통역사가 불가피하게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긴급하게 활용될 때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E사를 비롯한 기업들을 통해 개발된 한국수 어 기계 번역 시스템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가령 수어 자동 통역기 프로젝트 ‘SUZI’와 SRT 수어 알림서비스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KETI(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수어인식 기술이 탑재된 공항 내 시설 안내시스템 개발, ETRI(전자통신연구원)의 긴급재난안내문자 내용을 연구진이 개발한 딥러닝 번역 엔진을 통해 한국어 문장을 수어 원고(Script)로 바꾸고 이를 다시 수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방식의 시도를 말할 수 있다.

그림 2. 한국수어 말뭉치 사업과 기계번역에 따른 한국수어번역의 형태와 특성

Ⅳ. 결론

공식적인 한국 최초의 수어통역이 1916년에 나타난 이래 1919년 당시 제생원 재학생의 음성통역 형태의 수어번역 행위가 수행되었다. 아울러 박두성 선생을 비롯한 봉사자들에 의해 한국수어의 번역과 통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한국수어 번역 행위는 1963년 「수화」와 1979년 「우리들의 수화」 같은 수어 학습서들이 발간되면서 잠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선구적인 수어 사용자들에 의해 다채로운 모습의 수어 학습서들이 집필되는 과정에서 본격적인 한국수어 번역이 수행되었다. 아울러 국립국어원이 능동적으로 추진했던 수어사전 편찬 작업도 한국수어 번역이 이뤄지는 데에 일조하였다.

이제 한국수어번역은 획기적인 양적, 질적 확대를 향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 간의 문화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번역체제를 구축해가도록 뒷받침한다. 여기에서 언어적, 문화적 소수집단의 한 구성원인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 형성되는 번역도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적극 수행될 것이다.

1. 시사점

본 연구의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한국수어번역의 실체적 행위는 세 단계의 시기적 구분을 할 수 있게끔 역사적 변천과정에 따라 분명한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즉 수어번역 잠재기, 수어번역 형성기, 수어번역 확장기다. 먼저, 수어 번역 잠재기에서 두드러지는 수어번역의 형태는 ‘한국어 어휘’를 선정하고 그 어휘에 대해 ‘수지 한국어’를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 시기 한국수어 번역의 특성은 ‘표준화’ 지향성이었다. 다음으로 수어번역 형성기 때는 이전 시기에서부터 계승되어온 ‘표준화’ 경향이 여전히 거대하였음에도 한국수어 학습서들을 집필한 여러 저자들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언어학적인 고찰을 시도하고 있었으며 더욱이 한국수어의 생생한 특성들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 한국수어번역의 형태는 전통적인 ‘한국어 대응 수지 한국어’ 전환 방식과 농인 언중들 이 실제 사용하는 ‘한국수어를 발굴하여 한국어 해설을 부가’하는 방식이 혼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시기 한국수어번역의 특성은 한국수어 ‘표준화 지향성 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수어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의 본격화’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수어번역 확장기 시기는 한국수어의 주체가 농인임이 분명해지면서 한국수어말뭉치 구축과 한국수어사전의 전면적인 개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시기 한국수어 번역의 형태는 한국농인의 언어로서 한국수어를 실체적으로 탐구하고 규명하여 ‘한국어-한국수어’ 번역 방식과 ‘한국수어-한국어’ 번역 방식 모두를 취하는 것으로 제시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수어-한국수어 해설’ 방식까지 염두에 두는 명실상부한 한국수어의 발전적 전환기라는 수어번역의 특성을 띠고 있다.

둘째, 한국수어말뭉치 구축사업과 인공지능 한국수어 기계번역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국립국어원을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한국수어말뭉치 구축사업에 의해 한국수어를 전사하고 이를 축적해나가는 접근이 이뤄지면서 한국수어를 전사하는 방법과 실질적인 내용을 한국수어 번역의 지침과 과정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수지 한국어가 아닌 실제 한국농인의 수어를 찾아 나가는 작업이 한국수어연 구의 기본이 되게끔 과거 ‘표준화’ 방식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의가 있다. 또한 민간기업들과 대학들이 협업하여 한국수어 기계번역을 눈앞의 현실에서 펼쳐보여줌으로써 한국의 수어기계 번역이 문법기반 번역과 인공신경망 번역으로 구체화시켰다는 점도 매우 인상적인 사실로 볼 수 있다.

셋째, 한국수어번역의 선구자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손천식과 남순석의 한국 수어 학습서를 비롯하여 한국수어의 수어번역 형성기에 출간되었던 탁월한 수어학습서들을 학술적인 차원에서 고찰하고 저자들의 수고와 그 내용의 가치를 규명하여 한국수어 연구의 자산으로 삼아나가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주도하는 다양한 한국수어 관련 연구들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민간의 영역에서 한국수어 전문가들이 수어학습서라는 도구를 통해 펼쳐내었던 한국수어 번역의 결과물들이 소중하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넷째, 수어 영상 데이터를 활용한 한국수어말뭉치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어 말뭉치 구축사업과 병행하여 다각적인 차원에서 수어 영상 데이터에 기초한 혁신적인 한국수어말뭉치 사업 개발이 요구되는 것이다.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의 언어정보와 자료, 특히 말뭉치가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수어번역의 영역도 이제 대규모의 수어 영상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즉 수어문자가 없이도 수어 영상을 통한 수어말 뭉치 수집과 가공, 저장, 공유 및 공개 등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인공신경망 기반 기계번역을 ‘음성언어-수어’ 간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42-44]. 이는 수어번역이 인공신경망 기반의 수어통역과 학습용 수어교육교재 및 교육방법 개발, 안전 및 재난 분야의 공익적 자동 수어통역 시스템 구축 등에 널리 활용될 수 있는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후속 연구를 위한 제언

후속 연구를 위한 제언으로는 첫째, 한국수어 영상 데이터 수집과 면밀한 분석을 통한 한국수어 번역 연구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다양한 한국수어 영상 데이터들을 확보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온라인상에 기하급수적으로 올려지는 엄청난 한국수어 동영상 가운데에는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한국농인들의 수어들이 넘쳐난다. 가령 한국수어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만도 어림잡아 30여 개에 이른다. 이미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만이 아니라 각 지방 농아인협회에서도 뉴스와 교양 및 정보 등으로 구성된 수어콘텐츠들을 자체제작하여 송출하고 있다. 풍부한 수어 자원들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수어번역의 성과물들을 빅데이터로 수집, 저장, 활용,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한국수어 전문가들을 파악하고 이들이 오랜 시간 수행해 왔던 연구 성과물들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성해 나갈 준비가 요구된다. 나아가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수어를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는 학술적 공론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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