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20년 7월 14일 비상경제 회의는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의 3개 분야로 구성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으며 상병 수당은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사업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1]. 이와 관련하여 2020년 7월 20일 보건복지부는 업무 외 상병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치료비 지원을 통해 의료보장성을 강화하며 치료받는 동안 소득상실을 보전함으로써 공적 건강보장체계를 완성하는 목적으로 한국형 상병수당의 도입 추진을 공식화했다[2]. 보건복지부는 2021년 제도 설계연구와 2022년 저소득층 대상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형 상병수당의 지급방식·지원조건·관련 제도 연계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2000년 7월에 시행된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이전 의료보험제도에 비해 세 가지 측면에서 발전된 의미가 있다[3]. 첫째, 능력비례 건강보험료 부담을 국민건강보험의 재원으로 규정하여 사회 연대성 원리를 강화했고, 둘째,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건강 중심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했으며, 셋째,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 급여 실시를 규정1) 함으로써 직접 의료비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관련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여전히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의료영역에 한정되어 있고 상병수당은 시행령 부재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 상병수당은 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건강보장체계 내 상병수당 시행을 추진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상병수당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급여를 받게 되는 업무상 질병이나 부상, 즉 상병에 해당되지 않는 개인 상병과 관련된다. 근로자 대부분은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다시 일을 하게 되지만, 일부 근로자는 치료를 위해 업무를 중단해야 하고 이로 인한 소득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 치료 기간 소득의 중단은 건강 결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근로 무능력(work incapacity) 상태를 영속시키거나 근로 복귀 시점을 지연시킬 수 있다. 상병수당은 상병치료 및 회복 기간 근로 무능력으로 인한 소득상실의 부정적 영향을 통제하기 위하여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은 발생소득을 기준으로 취업자를 정의하고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취업자를 단계적으로 포괄하고 고정된 사업자(사업주)를 넘어 ‘일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사회보험체계를 전환하는 지향을 담고 있다[4]. 동일한 접근 방향에서, 한국형 상병수당도 모든 형태의 취업자를 포함하기 위하여 기여와 급여방식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과 제도 설계를 앞두고 그간의 논의와 주요 쟁점을 정리하여 건강보장체계 내 상병수당의 설계원칙과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다. 향후 제도 설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생산적 논의를 위한 이론적 기초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의 개념
코로나 19 사태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아픈 근로자의 소득, 건강, 일자리를 동시에 보호하는 핵심 정책으로 부상하고 있다[5]. 유급 병가란 아픈 근로자가 실업과 소득상실을 우려하여 아픈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근하지 않도록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상병 휴가, 즉 병가를 제공하고 병가기간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6-8]. 병가는 질병과 부상을 이유로 사용자로부터 휴가를 인정받는 것이고 병가기간 사용자의 임금 지급 여부에 따라 유급병가와 무급병가로 구분된다[7, 8].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회원국 대부분이 법으로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병가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공무원에 대해서만 법정 규정이 있고 일반 근로자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 없이 임의 기업복지에 의존하고 있다[6, 7]. 우리나라 공무원은 공무원법과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에 따라 업무 외 개인 상병에 대해 유급병가 60일, 유급 휴직 1년을 보장받고 있다[7]. 그러나 일반 근로자에서는 대기업 (1, 000인 이상)과 일부 사업장의 안정적 임금근로자만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유급 또는 무급 병가를 보장받고 있다[6, 7]. 유급 병가는 고용 관계가 명확한 사업장 임금근로자에게 적용된 정책으로 사용자의 역할을 전제하고 있다[6-8]. 이와 관련하여 서울형 유급병 가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중위소득 100% 이하 근로자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공적 주체인 서울시가 사용자의 역할을 대신하여 대상자의 입원 기간 소득을 보장하는 잔여적 관점의 조세 기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9].
유급병가와 비교해 상병수당은 모든 일하는 근로자를 포용하는 보편성을 전제하며 공통 위험요인인 소득상실을 보호하는 현금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즉 상병수당은 사회보험 등 공적 주체가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보편적 방식으로 질병이나 부상이 원인인 근로 무능력 기간에 발생된 상실소득의 일부를 보상해주는 현금 수당을 의미한다[5-8].
코로나 19 사태는 아픈 근로자의 ‘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사업장 규모와 종사상 지위에 따른 격차 문제와 함께 모든 임금근로자에 대한 법정 최저 기준으로 병가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7]. 아울러 상병 발생으로 인한 소득 상실의 위험으로부터 임금근로자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공적 현금지원제도로 보편적 상병 수당의 필요성을 확산시켰다.
사업장 임금근로자와 달리 상당수가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 포함된 특수고용 형태 종사자,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비임금 근로자는 반복적 실업과 근로 빈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10, 11]. 코로나 19는 사회 보호 체계에서 배제되어 있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와 영세 자영자가 감염병과 상병 발생에 따른 소득 상실의 위험에 더욱 취약함을 보여주었다 [5]. OECD 회원국의 절반이 한시적으로 감염 근로자에 대한 유급병가 지급기준을 확대하거나 자영자에 대해서도 유급병가를 적용했고 한국도 격리 중인 코로나 19 감염 근로자에 대한 고용주의 임금 지급을 지원함으로써 한시적으로 유급병가를 강제하고 있다 [5].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는 노동시장에서 고용형 태별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급병가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8], OECD는 전체 근로자를 포괄하고 업무 복귀에 초점을 맞추는 보편적 접근으로 상병(현금) 급여의 설계를 권고했다 [5]. 구체적 제도 설계방식은 각국의 노동 및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OECD 국가의 대부분은 초기 사업주 부담의 유급병가와 이후 사회보험 부담의 상병수당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사업주와 공적 주체가 분담하여 개인상 병 발생에 따른 소득상실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다 [6].
보편적 건강보장과 상병수당의 관계
모든 사람이 필요한 보건의료 서비스에 접근 가능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 건강보장 (universal health coverage)의 개념이다[12, 13]. 보편적 건강보장은 건강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규정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의 1948년 헌장과 1978년 알마아타 선언 “모두를 위한 건강(Health for All)”에 기반을 두고 있다[13]. 이후 2015년 국제연합 (United Nations)이 2030년까지 달성을 목표로 설정한 17개 지속가능 발전의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핵심 슬로건으로 ‘leave no one behind(한 사람의 예외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모든 의제에서 형평성의 실천을 담고 있다[13, 14]. 건강 분야 의제인 SDG 3(전 연령 모두의 건강한 삶과 안녕)은 보편적 건강보장의 추상적 개념을 형평성 향상을 위한 실천적 과제로 전환시킨 의미를 갖는다[13-15] (Figure 1).
Figure 1. Association between United Nation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 3 and universal health coverage. From Kang HC. Review of sickness benefit in the UHC framework. Proceedings of the Korean Academy of Health Policy and Management Conference; 2019 Nov 7-8; Jeonju, Korea. Seoul: Korean Academy of Health Policy and Management; 2019 [15].
좋은 건강(good health)은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 발전과 빈곤 감소를 위한 핵심이다[16].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건강은 가치실현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도록 하는 핵심 도구이면서 최소한의 능력이기 때문이다[17]. 사회적 상태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좋은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18]. 따라서 보편적 건강 보장의 실천은 의료비 부담을 완화시키는 의료보장성 강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추가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결정요인 중 수정 가능한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 교정하는 사회적 개입을 요구한다[19].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이 초래하는 재정적 어려움은 경제활동의 중단으로 인한 소득의 일부 또는 전부를 상실하는 것과 관련되며 근로자의 질병은 가구의 빈곤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사회적 문제이다[18]. 질병 발생 이후 빈곤화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서비스에 대한 효과적 접근을 보장하는 것만큼 소득보장을 위한 현금지원도 똑같이 중요함을 코로나 19는 여실히 드러냈다[19, 20]. 상병수당은 아픈 개인의 소득을 보장하여 건강의 사회 결정요인을 중재함으로써 의료보장체계와 함께 보편적 건강보장의 핵심 요소인 사회건강 보호(social health protection)체계를 구축하는 의미를 갖는다[20].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국내 여건
1. 임의 기업복지에 의존하는 낮은 유급병가 적용률
한국노동패널(2016–2018년 통합) 자료 분석 결과, 사업장 근로자 중 유·무급 구분 없이 병가 이용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근로자 비율은 약 43%로 절반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는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21]. 향후 유급병가로 응답을 제한하여 조사가 이루어지면, 적용 근로자 규모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확대되면서 사업장 임금근로자가 개인 상병으로 일하지 않는 기간에 고용을 보장받도록 병가 규정의 법정화가 제안되고 있지만[6, 7, 22], 이는 사업주 부담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36개 OECD 회원국 대부분이 고용주가 제공하는 유급병가를 단기 보장 기전으로 활용하고 이후 장기 보장을 위해 공적 상병수당을 운영하고 있다[6, 23]. 사용자가 제공하는 유급병가의 대기일수는 대부분 3일에서 1주일 이내이고 보장 기간은 대다수가 30일 전후로 종결된다. 상병수당의 대기일수는 대부분 14–30일 사이에 있고 보장 기간은 최대 1년 6개월까지 지속된다[13, 20]. 사업주 유급병가와 적절한 역할분담 없이 공적 상병 급여가보다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수단으로 제공되면, 근로자의 건강증진에 대한 사업주의 투자 동기를 감소시키고 심한 경우 고용주와 근로자가 담합하여 여유시간 임금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공적 상병수당을 남용하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23].
2. 높은 영세사업장 근로자 비율
한국은 전체 사업장 근로자 중 5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비율이 45%로 2017년 기준 OECD 비교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비교 국가의 평균 29.1%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24]2). 미국은 18.4%로 비교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고 일본은 30.3% 수준이다. 이 중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연차휴가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7]. 한국노동패널(2016–2018년 통합) 자료를 이용하여 사업장 규모별로 병가적용근로자 비율을 비교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 서는 73%로 10인 미만 사업장의 16%보다 거의 4배 이상 높다[21]. 이러한 결과는 상병수당 설계에 있어서 영세사업장에 대한 별도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함을 보여준다[6, 7].
3. 상병수당과 건강보험의 보험료 부과기반 불일치
상병수당이 국민건강보험법에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만 상실된 근로소득을 보상한다는 개념은 고용보험과 연관된다. 그러나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의 부과기준에는 차이가 있다. 고용보험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기반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외에 추가 부과 기반을 가지고 있다. 직장가입자에 대해서는 근로소득(보수월액)과 사업소득 3)에 대해 보험료가 부과되고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세대 단위로 소득, 재산, 자동차에 따라 차등 부과되고 있다[25]. 고용보험은 보험료가 개인 단위로 부과되지만 건강보험에서는 가입자 유형에 따라 다르게 부과되어 직장가입자는 개인단위로, 지역가입자는 세대원별 보험료와 세대별 보험료가 합산되어 세대 단위로 부과되고 있다.
상병수당이 제도의 취지에 맞게 기여와 급여를 근로와 연계된 소득에 일치시키고자 한다면 상병수당 보험료는 건강보험료 부과 기반 중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에 대해서만 부과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건강보험료 부과에 사용되는 근로소득에는 일용근로소득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건강보험공단은 국세청과 관련 정보의 연계체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26]. 특수고용형태근로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활동으로 인한 소득 파악을 위해서는 일용근로소득의 파악이 필요하다. 소득세법상 일용근로자의 급여는 분리과세 근로소득으로 종합소득에 합산되지 않는다. 급여를 지급하는 자가 해당 급여액에 일정 세율을 곱한 세액을 원천징수하여 정부에 납부하고 나머지를 일용 근로자에게 지급하기 때문에 일용근로자의 소득은 종합과세소득에서 제외되고 건강보험료 부과기반 소득에도 포함되지 않게 된다. 또한 1개월 이상 근무 여부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직장가입자로 등록되어야 하는 1개월 이상 일용근로자의 상당수가 지역가입자로 신고될 수 있다. 2016년 기준, 일용근로자의 80% 이상이 지역 가입자나 직장가입자 피부양자에 포함되어 있다[26]. 이로 인해 전체 지역 가입자 중 소득정보가 연계되지 않는 소득 무자료 가입자가 68.5%에 이르고 이들을 포함하여 연 과세소득 500만 원 이하 가입자는 85%나 된다[26]. 따라서 근로활동을 하는 모든 가입자를 포괄하여 상병수당 보험료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국세청의 실시간 소득 파악시스템과 연계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보험료 부과 정보를 시간차를 두고 정기적으로 받아서 사용하게 되면 소득의 발생 시점과 보험료 부과 시점의 차이가 현재보다 더 큰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
또한 보험료는 근로활동을 하는 개인 단위로 부과하고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는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향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따라 피부양자의 규모는 축소될 것이며 상병수당 운영을 통해 근로활동을 하는 피부양자의 자발적 소득표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과 기반 분리는 상병수당 보험료 부과에 대한 가입자의 수용성과 실행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급여목적과 대상은 건강보험과 다르지만 건강보험과 동일한 가입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료에 소요 재원 충당에 필요한 보험료율을 곱한 금액을 건강보험료와 통합하여 징수하고 재정은 분리 운영하고 있다. 상병수당도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이 소요 재원을 근거로 건강보험료에 대해 추가 징수하되 재정은 분리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보험료 납부에 대한 인식을 높이지 않으면서 위험분산효과를 확대하는 접근이지만 건강보험과 동일한 부과 기반 사용으로 부담과 급여의 기준소득 불합치 문제는 여전히 민원을 발생 시킬 수 있다. 이에 대응하여 부담과 급여의 정합성 원칙에 따라 근로 또는 사업소득만을 부과 기반으로 하는 별도의 상병수당 보험체계 설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일용근로소득 등 추가 정보 확보를 위해 국세청 실시간 소득 파악시스템과 공유체계 구축, 새로운 보험료 신설에 대한 민원 대응 등 인력과 조직 운영을 위한 상당한 행정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향후 상병수당의 보험료 부과 기반과 재정관리방식은 보다 면밀한 검토를 기반으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4. 노동시장 전환기 유형과 건강보험 가입자 유형의 불일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를 제외한 가입자로 정의되며[27],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는 고용 기간 1개월 미만, 비상근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28]. 앞서 제시한바 와 같이 특고 등 자영 자화된 근로자는 직장 피부양자와 지역가입자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25, 26]. 전통적 임금근로자 중심의 건강보험자 격관리와 실재 근로활동에 근거하는 상병수당의 자격관리가 일치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고용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발표를 통해 임금 근로자 중심의 근로조건에서 취업자 포괄소득으로 변경하여 일정 기간 소득이 발생하면 근로자로 정의하는 새로운 가입자 기준을 예고했다[4]. 이는 그동안 제기된 근로자의 자격 격차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 시장 전환기에 다양한 고용 형태의 출현을 포용하기 위한 접근이라고 해석된다. 노동부는 사업주 소득신고를 기반으로 예술인(2000년 12 월부터), 산재보험 직종 분류에 포함된 특수고용 형태(2021년 7월부 터), 1차 플랫폼 직종(2022년 1월부터)의 순서로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지역가입자는 2021년 7월부터 방안을 마련하여 사회 적합의 시 2023년 1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4]. 상병수당 설계에 있어서도 고용보험과 같이 근로소득의 발생을 기준으로 자격을 부여하고 변동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5. 소결
이상의 국내 여건을 종합하면, 첫째, 당장의 상병수당 설계는 임의 기업 유급병가와 독립적으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 단계에서는 사업장 유급병가 적용률이 낮아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간 관계 설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병가를 법적으로 규정하거나 또는 간접적으로 기업의 자율적 확대를 지원하는 정책들을 통해 향후 기업 유급병가와 공적 상병수당의 관계를 어떻게 유도할지에 대한 방향 설정은 필요하다. 둘 간의 관계 설정은 공적 상병수당의 대기기간 설정 등 세부 제도 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상병수당의 보험료 부담과 급여의 합치 원칙에 따라 근로 또는 사업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부과 기반의 분리와 관련 재정의 분리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복지부가 추진 중인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따라 점차 피부양자가 감소하는 방향에 맞추고 근로활동에 대한 소득표출을 유도하기 위해 피부양자를 상병수당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직장가입자에 속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 또는 1인 자영자의 경우, 소득 파악이 어렵거나 연 소득이 낮은 경우가 많아 임금근로자와 동일한 기여-급여의 기준과 정률의 부과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제도 초기에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등급별 정액 보험료 부과와 상병 수당 급여방식을 적용하여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앞의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상병수당이 건강보험과 동일한 부과 기반을 갖는 체계에서 제공된다면 수급 자격은 건강보험과 동일하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고 부과 기반이 분리된 별도 체계에서 제공된다면 임금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의 경제활동인구 분류에 따라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보장체계에서 상병수당 논의와 주요 쟁점
건강보장체계에서 상병수당 도입의 주장은 2000년도 이전부터 있었다. 1995년 의료보험 통합일원화와 보험 급여 확대를 위한 범국민 연대 회의가 상병수당을 장기 과제로 상정했고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보장권 강화 측면에서 건강보험 상병수당 의무화를 권고했다[29].
건강보장체계에서 상병수당 관련 연구는 크게 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건강 문제가 실업과 빈곤으로 이어지는 경로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대안으로 상병수당을 제시하는 분석연구이다[30-32]. 둘째는 상병수당 도입을 전제하고 질병으로 인한 빈곤화 문제에 대응하는 외국의 제도 검토를 기반으로 건강보험 내 도입 방향을 제안하는 제도연구이다[13, 29, 33-38].
건강 문제가 빈곤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분석한 연구들은 주로 중증 질환자나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상병수당을 제안했다[39]. Kim과 Kang [30] 은 중증질환 발병 이후 의료비 급증뿐 아니라 근로활동 중단으로 단기간 소득이 급감하는 위험을 계량화하고 중증질환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장하는 공적·사적 안전망 확보를 제안했으며, 특히 저소득층에 특화된 상병 수당제도를 도입하거나 단체계약을 통한 정액형 민간보험 활용을 제안 했다. Yang [40] 은 암 환자가 구에서 일반 가구보다 질병 발생으로 인한 과부담 의료비 발생위험이 4배 이상 높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암 환자에 대해 가구소득 감소를 보전하는 상병수당 지급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Kim 등[31]은 중증질환과 장기입원에 따른 건강충격이 소득과 경제활동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계량적으로 규명하고 사회안전망 강화를 제안했다. Kwon [32]은 노동시장 참여 및 근로소득의 변화는 건강충격 발생 이후 3년까지 지속되며 저소득층 또는 및 비정규직 근로자는 고소득층 또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이전의 일자리 상태를 잃을 위험이 높음을 규명했다.
다음은 건강보험 상병수당 시행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제도 연구들이다. Choi 등[33]은 건강보험 법상 근거를 토대로 건강보험 상병 급여 시행을 위한 세부 추진전략을 제시한 최초의 연구이다. 이후 Jung [29]은 건강보험 재정의 흑자 전환을 배경으로 질병 발생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고 장기적 선순환을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사업의 일환으로 상병수당 도입 추진을 주장했다. 대부분 보편적 상병 수당의 도입을 위해 임금근로자에 대한 유급병가 확대정책을 병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일부는 취약 근로자 대상 공적 상병수당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13, 37, 38, 40]. Lim 등[38]은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다양한 대안모형을 분석하여 건강보험 소요재정을 최소 8, 055억 원에서 최대 1조7, 718억 원으로 추계했다. Lee [22] 는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외국의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현황을 검토하여 유급병가 법제화와 상병 급여를 신설하는 포괄적 혼합형 보장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1. 건강보장체계에서 상병수당의 도입목적: 소득보장 vs. 고용보장
아픈 근로자가 근로를 중단하고 회복 기간을 갖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보호할 뿐 아니라 감염성 질환인 경우 타인을 보호할 수 있다[22]. 전통적 임금근로자 중심의 구조에서 사업주의 유급병가는 고용과 소득을 동시에 보장함으로써 아픈 근로자의 쉴 권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근로 형태의 모든 근로자에게 공통으로 작용하는 고용보장 기전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건강보장체계에서 상병수당의 설계는 보편적으로 모든 근로자의 상병 발생 시 소득보장 기전을 마련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Figure 2).
Figure 2. Effect mechanism of sickness benefit for universal health coverage.
2. 핵심 보호 대상: 취업자 vs. 실업자
상병수당이 보상하는 상실소득은 질병 발생이 근원이고 이로 인한 근로활동 중단의 결과여야 한다. 그렇다면 상병수당의 보호 대상은 경제활동 인구 중 실업자인가? 취업자인가? 실업자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고용보험과 연관된 제도의 고안이 필요하다[39]. 제도 간 정합성 차원에서 보면, Figure 2와 같이 고용보험이 실업자에 대한 소득보장을 하고 있으므로 상병수당은 실업하지 않은 취업자를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OECD도 근로자의 업무 복귀에 초점을 맞추는 상병수당 설계를 권고하고 있다[5]. 특히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등 취업과 실업의 경계가 모호한 근로 형태가 확대될수록 실업을 적용대상의 기준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다만, 상병수당 지급이 시작된 이후 실업이 있다면 시작된 지급 기간은 완료되도록 할 수 있다. 아울러 상병수당은 상병과 근로활동의 관계를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개인을 단위로 운영하는 것이 기여와 급여의 연계, 고용보험 등 관련 제도 간 정합성 차원에서 바람직하다[39].
3. 고용주의 역할과 공적 상병수당의 관계: 보완 관계 vs. 대체 관계
제도 설계에 앞서, 고용주의 유급병가와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사업장의 유급병가 도입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공적 상병수당의 도입은 사업자의 유급병가 도입 동기를 떨어뜨리고 공적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 반면에 고용주 유급병가가 확대될 여지를 두고 상병수당을 설계할 경우, 영세사업장의 근로자들과 기타 근로조건이 취약한 근로자들은 공적 상병수당이 시작되기까지 상당히 긴 대기기간을 감당해야 한다. 이미 사용자 유급병가가 있는 근로자는 사용자 유급병가에 이어 상병수당을 받음으로써 보장 기간이 연장되지만 그 외 근로자들은 실제 혜택을 경험하기까지 상당한 대기기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보장 수준에서 둘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한편, 국가 단위에서 전체 아픈 개인을 대상으로 일정 대기기간 후 동일한 보장 수준의 상병수당을 제공하고 지자체 또는 지역 단위에서 국가 단위 상병수당을 받기 전까지 취약한 조건의 근로자를 보호하는 보완적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서울형 유급병가와 국가 단위 보편적 상병수당의 역할 관계 설정을 위해서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4. 수급 자격: 15-64세 근로 연령층 vs. 전체 근로자
보편적 건강보장 틀에서 상병수당의 적용대상은 건강보험 가입자 개인과 동일하다. 다만, 상병을 원인으로 근로를 중단하여 발생한 소득상실에 대하여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수급 자격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을 제외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소득보장 기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39]. 하지만 근로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연령으로 수급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39].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제도효과가 높게 기대되는 근로 연령층(15 64세)으로 수급 자격을 제한하고 중복급여금지 원칙을 적용하여 전체 근로자로 수급 자격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5. 상병수당이 적용되는 의료적 범위: 경증질환 vs. 중증질환
급여대상이 되는 질병의 범위를 경증으로 또는 중증으로 제한하는 것도 제도의 주요 성과를 어디에 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제도의 남용을 억제하면서 질병 발생의 빈곤화 예방에 목적을 둔다면 경제적 충격이 큰 중증질환으로 급여범위를 제한하여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취업자를 대상으로 적기치료를 통한 근로 복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나치게 중증질환으로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 향후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제도 취지와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에 부합하는 의료적 범위의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6. 도덕적 해이의 통제 가능성: 개인의 책임과 공적 인증체계의 고려
상병수당 도입과 관련된 주요 논쟁 중 하나는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할 수 있는가이다[41]. 상병수당은 개인 상병으로 근로를 중단한 기간에 대한 현금 보상제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근로자의 질병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39]. 이 문제는 제도 설계의 정교성과 얼마나 엄격한 의료적 인증체계를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42].
OECD는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관대하고 포괄적인 병가 또는 장애급여를 제공하고 있는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를 대상으로 병가 이용 감소를 위한 제도개혁의 성과를 비교하고 누가 근로 무능력기간을 인증하는지가 병가 이용을 감소시키는 주요 기전임을 강조했다[42]. 상대적으로 개혁성과가 낮다고 평가받는 노르웨이는 수급 자격을 신청자의 주치의(general practitioners)가 발급한 의료 평가에 근거하고 있는 반면, 네덜란드나 스위스는 제3자에 의한 의료 평가에 근거하고 스웨덴에서는 보험 의사가 관련 의료기록을 기초로 판단하고 있다[42]. 특히 스위스가 일반의에서 공공의료기관(public medical authority)으로 평가 결정을 이관한 효과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42]. 다음으로 중요한 기전은 상병 급여의 수준과 구조에서의 변경이다. 스위스와 스웨덴에서 근로 복귀에 초점을 맞춘 약간의 급여 수준 감소가 상당한 병가이용을 감소시키는 성과를 보여주었다[42].
또한 민영보험 가입자가 상병수당 신청과 의료이용 증가에 미치는 도덕적 해이를 통제해야 한다. 입원 일당 정액을 보상해주는 민영보험 가입이 불필요한 입원과 장기입원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43]. 한국 의료패널 분석 결과, 2017년 기준 1개 이상의 민간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대상은 78.7%였고 단일 실손형 상품과 미분류자를 제외하고 정액형이 포함된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가진 대상자 비율도 73.9%에 이른다[44]. 적용대상의 2/3 이상이 민영보험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영보험과 상병수당의 적절한 역할 관계 설정이 검토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이 책임지는 대기기간을 결정하고 공적 의료 인증체계를 구축하여 상병수당의 신청과 의료이용에서 남용을 통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치료 기간을 인증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활동을 중단하고 쉴 필요가 있는 기간으로 근로 무능력기간을 인증하도록 함으로써 상병 수당의 수급을 위한 의료이용 동기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장체계에서 한국형 상병수당 설계의 원칙과 개념적 틀
상병수당 도입의 국내 여건과 관련 쟁점 사항들의 검토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원칙을 설정하고 상병수당의 기본 모형을 설정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안하고자 한다.
1. 건강보험 상병수당 설계와 시범사업 대상 선정을 위한 원칙
ILO는 사회건강 보호의 원칙으로 10가지 원칙을 제시하였으며 [20], 상병수당 설계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칙 적용을 제안한다. 첫째, 모든 개인을 포괄하는 보편적 접근이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건강권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뿐 아니라 모든 개인을 사회적 보호의 틀에 포괄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접근방식의 다양성과 점진적 실현이다. 국내 상황에 맞게 급여대상, 범위, 수준에서 다양한 중재 방식을 고려하고 보장성을 최소 수준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재정에서 위험 분산과 사회적 연대성이다. 전 국민을 적용대상으로 하여 위험 분산 풀(pool)을 확대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성을 제고할 수 있다. 넷째, 국가의 전체적이고 일차적인 책임이다. 국가는 전국적인 수준에서 재원 조달, 위험 분산, 서비스 제공을 관리하는 일차적 책임을 갖도록 한다. 이와 연계하여 사업주의 유급병가제 공, 지역 단위 공적 주체의 잔여적 접근과 보완적 관계를 갖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급여의 충분성이다. 전체 인구를 보장할 뿐 아니라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에 충분한 수준으로 보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여섯째, 급여의 예측 가능성이다. 병가의 법정 의무화 또는 관련 지원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모두가 상병수당을 개인의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일곱째, 형평과 사회통합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보장범위와 수준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여덟째, 재정적·경제적 지속 가능성이다. 안정적 재원 조달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아홉째, 사회적 대화와 책무성이다. 상병수당의 도입으로 모두가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열 번째는 포괄적 사회 보호 시스템으로 통합이다. 개인을 중심으로 관련 제도 간 급여가 연속되고 제도 간 급여대상과 수준에서 정합성을 갖도록 상병수당을 설계해야 한다.
2. 건강보험 상병수당 설계의 개념적 틀
Figure 3은 앞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상병수당 설계의 개념적 틀을 제시한 것이다. 건강보장체계에서 한국형 상병수당의 도입 비전은 업무 외 상병에 대한 가입자의 적기 치료와 회복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상병수당의 도입목적은 의료보장성 확대뿐 아니라 치료와 회복 기간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보편적 건강보장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개인이 업무 외 상병으로 치료 및 회복을 위해 근로를 중단할 때 상실하는 임금 또는 소득의 일부를 현금으로 보상하는 상병수당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20] (Figure 3).
Figure 3. Conceptual framework of sickness benefit for universal health coverage. From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Towards universal health coverage: social health protection principles’: social protection spotlight [Internet]. Geneva: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2020 [cited 2021 Jan 8]. Available from: https://www.ilo.org/wcmsp5/groups/public/---ed_protect/---soc_sec/documents/publication/wcms_740724.pdf [20]. NHI, national health insurance; 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상병수당의 수급 자격은 근로 연령(15–64세) 취업자이며 점진적으로 65세 연령으로 확대 가능할 것이다. 지급조건은 상병 원인의 근로 중단과 소득상실이 확인 가능한 경우로 제도 초기에는 상당 부분 신청자의 증빙서류 제출을 근거로 지급이 이루어지고 사후에 확인과 정산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불가피할 것이다.
상병수당의 급여 수준은 근로활동의 동기를 유도하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ILO는 상병수당의 급여 수준을 기존 소득의 최저 45% 이상에서 최대 66.7%까지 제안하고 있다[20]. 상병수당이 이전 임금 또는 소득을 보상하는 수준은 실제 근로활동 소득과 사용자의 배상책임에 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 휴업급여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결정하되 실업의 동기를 높이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실업급여(평균임금의 60%)보다는 상병수당의 수준이 높아야 할 것이나 소득 파악과 소득정보의 연계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정률 방식의 결정보다는 모든 근로자에 대해 등급별 정액제 부과와 급여를 통해 제도 간 정합성을 제고하는 방향에서 점진적으로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3.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의 기대효과와 성과 측정 틀
Figure 3은 앞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상병수당 설계의 개념적 틀을 제시한 것이다. 제도 도입을 통한 기대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지역사회 감염의 예방과 작업장 상해 발생위험의 감소이다. 감염 근로자의 무리한 출근은 집단 감염의 위험을 높일 수 있고, 특히 고위험 근로자의 질병 상태 출근은 신체적 기능과 집중력을 감소시켜 작업장 안전을 위협하고 비치명적 상해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45]. 미국에서 기타 지역에 비해 유급병가를 시행한 지역의 독감 발생률이 5.5%–6.5% 감소했다[46]. 유급병가가 없는 경우, 비치명적 업무상 상해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45]. 둘째, 조기 진단과 적기 치료를 통한 악화 방지와 고비 용 치료 예방이다. 치료 서비스 접근성을 높여 치료의 지연을 감소시킴으로써 증상 악화를 막고 질병 기간을 단축하여 궁극적으로 고비용 치료를 예방하고 빈곤화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45]. 유급병가가 없는 근로자는 의료서비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높은 의료비가 필요하거나 빈곤선 미만의 가구소득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 적기의 치료 시점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47]. 셋째, 건강증진과 노동생산성 제고이다. 근로자의 재정적 손실 없이 질병 치료와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갖도록 지원함으로써 건강증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건강검진, 예방적 의료에 대한 보편적 접근 보장으로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건강 격차를 감소시킴으로써 지역사회 건강 수준 향상과 질병 상태 근로 감소를 통한 노동생산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Figure 4는 제도의 기대효과를 바탕으로 질병의 자연사와 단계적 예방 틀을 참고하여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상병수당의 작용 기전과 성과 산출 틀을 제시한 것이다[48-50]. 질병의 자연사 관점에서 보면, 상병수당은 재정적 어려움 없이 의료접근을 보장하는 의료보장성에 더해지는 소득보장이므로 질병 기간(무증상 질병, 질병 발생, 회복/불구/사망) 중 의료시스템 이용단계에서 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상병 수당의 의료적 범위와 최장 급여 기간에 따라 상병수당이 포괄하는 음영 폭은 좁아지거나 넓어질 수 있고 조기 치료 중심의 왼쪽으로 또는 장애 예방 중심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이 시기 의료적 개입의 성과는 조기발견과 적기치료를 통해 질병의 진행을 막고 장애 발생 등 질병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여 궁극적으로 근로 복귀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있다. 소득보장은 이러한 의료적 성과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특히 적용대상자 특성에 따른 격차를 줄임으로써 건강형 평성을 제고할 것이다(Figure 4).
Figure 4. Performance framework of sickness benefit for universal health coverage (UHC) [48-50].
측정 가능한 성과는 단기 산출과 중장기 결과로 구분했으며 각각에서 건강보장 영역과 노동생산성 영역으로 세분했다. 단기 산출의 측정은 건강 영역에서 미충족 의료 필요의 감소, 노동생산성 영역에서 아픈 상태 출근(presenteeism)의 감소, 병가 사용의 증가이다. 중장기 결과의 측정은 건강 영역에서 감염질환의 발생률 감소, 질병 악화의 예방, 고비용 치료와 빈곤화 예방, 장애의 예방이고, 노동생산성 영역에서는 비치명적 상해의 감소, 근로 복귀의 증가이다(Figure 4). 중장기 성과는 상병수당의 직접적 영향보다는 관련된 정책의 혼합된 영향일 수 있다.
결론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에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서 가입자의 경제적 부담이 적정하도록 보장하는 건강보험제도가 있고, 노령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호하는 국민연금제도가 있다. 취업자의 실업 위험에 대비하여 취업지원과 구직활동 기간 소득보장을 위한 고용보험제도가 있으며, 근로자의 업무 관련 상해에 대한 치료 및 소득을 보장하는 산재보험제도가 있다 [13]. 다만, 업무와 관련 없는 근로자 개인의 질병 발생에 대해서는 별도의 위험보장체계가 없다. 즉 개인이 질병으로 근로를 중단하고 쉬어야 할 경우, 건강보험에서 의료서비스 급여는 받을 수 있지만 치료기간 상실되는 근로소득을 보상해주는 공적 보장체계는 없다. 실직자가 되어야 고용보험의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고 장애 판정을 받아야 국민연금의 수급자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일부 개인들은 임의 기업 복지를 통해 유급병가를 활용하거나 민간보험 가입 등을 통해 사적보장체계를 마련하고 있을 뿐이다 [13].
상병수당은 건강 형평성 관점에서 건강의 사회경제적 요인을 조절하기 위한 접근으로 오랜 기간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어 왔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전 국민 고용보험 적용’과 함께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의 추진은 고용보장을 위한 사용자 부담을 줄이며 사회건강보호체계에 모든 근로자를 포괄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보인다. 보편적 건강보장의 틀에서 상병수당의 도입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상병 발생의 빈곤화 위험을 균등하게 가정하고 건강보험에서 의료와 상병수당을 보장하는 비용을 전 국민이 부담능력에 비례하여 분담하는 사회건강보호체계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20]. 이는 의료서비스 접근의 보장과 함께 보편적 건강보장에 이르는 핵심 요소이다. 물론 국가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맥락에 맞게 제도는 다양하고 점진적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 제도 설계의 논의는 위험분산과 사회연대 성 수준에 따른 자격-부과-급여의 대안 비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제도 설계에 반영함으로써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것이다. 2022년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범사업이 진행될 예정이지만 본 사업의 일부로서 사업이 시행되고 평가되기 위해서는 본 사업 모형을 전제한 시범사업 설계가 필요하다. 이 연구에서 제시하는 원칙과 개념적 틀이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제도 모형을 설계하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되어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독창적 제도 설계를 지원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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