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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representation of Korean Post Documentary in the 2000s

2000년대 한국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자기-재현 전략

  • 김연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 Received : 2020.12.21
  • Accepted : 2021.01.22
  • Published : 2021.02.28

Abstract

This thesis aims to analyze the possibility of the self-representation style of Korean post-documentaries in the 2000s and analyze the possibilities of the visual writing. First of all, this study examined the theoretical background of the documentary, and derived the theoretical concepts from the poetic style and the performance style presented by Bill Nichols, and divided the strategies of self-representation in the post documentary into three categories. The three strategies of self-representation were to discuss the possibility of self-representation through the analysis of works through self-representation as self-emotion, self-representation as body, and self-visual representation. In the process of this discussion, I will examine how self-representation style deconstructs the existing visual system consisting of the system of the power and functions as a alternative visual writing that can appear various women and minorities.

이 논문은 2000년대에 등장한 한국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자기-재현 전략을 분석하여, 자기-재현 양식이 가진 영상적 글쓰기의 가능성들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우선 다큐멘터리의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고, 빌 니콜스가 제시한 시적 양식과 수행적 양식에서 그 이론적 개념을 도출하여 포스트 다큐멘터리가 가진 자기-재현의 전략들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해보고자 하였다. 그 세 가지 자기-재현 전략은 자기-정동으로서의 재현, 자기-신체로서의 재현, 자기-시각적 재현으로 작품 분석을 통해 자기-재현의 가능성을 논의해보고자 하였다. 이 논의의 과정 속에서 자기-재현 양식이 어떻게 권력자의 체계로 이루어진 기존의 시각적 체계를 해체하고, 다양한 여성, 소수자가 등장할 수 있는 대안적 영상 글쓰기로 기능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Keywords

Ⅰ. 서론

이 논문은 2000년대 등장한 개인 디지털 비디오에 나타난 자기-재현 양식을 중심으로 포스트 디지털 다큐멘터리의 표현양식을 분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활용하는 ‘자기-재현(self-representation)’ 은 창작자가 자신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며, 자기 반 영적 서사가 내포된 작품에 잠정적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목적을 토대로 한국의 자기-재현 양식의 전략을 분석함으로서 기존의 시각적 체계에서 직접적으로 발화되지 못했던 여성, 소수자의 목소리가 어떠한 형식적 체계로 출현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1990년대까지 대부분 다이렉트 시네마 양식이나 설명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선호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한국의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의한 정치적인 첨예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다루다보니, 객관적 사료가 제시되는 설명적 다큐멘터리 양식이 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제작자의 주관적 해석보다는 사건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료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정보(통계, 기사, 실제인물 인터뷰 등)를 제시하는 수사법이 활용되었다. 그 이유는 정치적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사건을 다룰 때, 이러한 방법이 관객에게 가장 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가진 진실성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적 양식이나 수행적 양식으로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보다, 설명적 양식은 주류미디어에서 다루지 않았던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항쟁, 전국의 노동자사고 비율 등을 보고하는 객관화된 자료를 가시화함으로써 역사 현장의 상황을 관객에게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다양한 이슈들이 수면으로 등장한다. 한국의 1990년대는 80년대 변혁 운동의 성과로 군사독재에 의한 권위주의적 사회통제가 이완되고, 1993년의 문민정부, 1998년의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30여 년 만에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도입되어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났고, 80년대에 뿌리를 내린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이외에 환경운동, 여성운동, 문화 운동 등과 같은 ‘신사회 운동’이 등장하면서 민중운동 이외에 시민운동도 활성화됐다[1]. 그동안 타자화되거나 숨겨져 있던 다양한 신사회 문제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이슈를 다루기에는 정보와 자료들이 부재하고, 보관 자료들 역시 취약한 환경에서 보관되어 파편화되어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당시 제작자들은 사실에 입각하여 논증할 수 없는 사건이나, 진상규명이 필요한 과거사에 관한 영상을 제작할 때, 훼손되거나 취약한 사료들로 설명적 다큐멘터리 양식으로만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시기는 한국 신사회 운동과 맞물려 대중적으로 보급화된 디지털 캠코더의 개선된 화질과 기동성, 그리고 값싼 가격으로 인해 전문가 영역에 속했던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영역이 아마추어 제작자로 점차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제작자 및 순수 창작자의 자기-재현 다큐멘터리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환경 조건이 주요하게 작용되었다. 1인 미디어 제작 시스템이라는 점, 한국의 디지털기술로 한국 제작자들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현장이 전환되는 데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는 점, 쉽게 저장하고 디지털로 변환이 가능한 mini DV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시각예술 영역에서 비디오아트 1.5세대가 TV모니터를 오브제삼아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물을 제작했던 데 반해, 이들은 혼자서도 쉽게 조작할 수 있는 디지털 캠코더를 활용하여 자신을 반영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자기 반영적 형식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논문은 이러한 1인 미디어 제작 시스템에서 어떻게 자기 반영적 형식의 작품이 제작되고, 자기 자신으목소리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여성, 사회적 소수자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자기-재현적 영상 글쓰기의 출현으로 가시화되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또한 이 논의의 과정 속에서 자기-재현 양식이 어떻게 권력자의 체계로 이루어진 기존의 시각적 체계를 해체하고, 다양한 여성, 소수자가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영상적 글쓰기 전략으로 기능하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자기-재현 양식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다큐멘터리와 시적 다큐멘터리, 수행적 다큐멘터리의 역사적 배경을 논의하고, 이 두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자기-재현의 특징에 관한 논의를 일차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후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개 양상을 훑으며 2000년대 자기-재현적인 다큐멘터리가 어떠한 시대적 흐름에서 출현하였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이 논문은 2000년대에 등장한 한국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자기-재현 양식을 분석하여, 자기-재현 양식이 가진 영상적 글쓰기의 다양한 주체의 출현의 가능성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1. 다큐멘터리의 이론적 배경

1.1 다큐멘터리의 개념과 재현양식의 분류

빌 니콜스(Bill Nichols)는 “모든 영화는 다큐멘터리다”[2] 라고 정의하며, 다큐멘터리의 재현 양식을 총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시적 양식, 설명적 양식, 참여적 양식, 관찰자적 양식, 성찰적 양식, 수행적 양식이 그것이다[3]. 빌 니콜스의 여섯 가지 재현 양식은 스텔라 부르치(Stellaa Bruzzi) 등 현대 이론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4], 이 논문은 모호한 경계를 갖고 있는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논의를 위해 빌 니콜스의 재현양식 분류들을 활용하고자 한다. 빌 니콜스의 재현 양식 중 시적 양식, 참여적 양식, 수행적 양식, 복합적 다큐멘터리를 대안적 다큐멘터리로 제시하기도 한다. 대안적 다큐멘터리는 이름 그 자체로 알 수 있듯이 기존 전통 다큐멘터리 양식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표현양식과 대담한 내용들을 선보이는 작품을 일컫는다. 특히 객관성, 사실성, 진실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추상적 재현 양식에 포함되는 시적 양식과 수행적 양식은 설명적 양식과 관찰자적 양식에 익숙한 많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도로 받아드려진다.

1.2 시적 양식과 수행적 양식의 이론적 배경

시적 양식 poetic style과 수행적 양식 performance style은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성장했다기보다 아방가르드 영화와 실험 영화 등 미학적 탐구를 진행해온 예술분야에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온 분야다. 초창기 뤼미에르Lumiére의 <뤼미에르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 Workers Leaving the Lumiére Factory ; La Sortie des Usines>(1895), <기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L'Arrivée d'un Train en Gare>(1895) 에 의해 관찰자 양식이 시작이 되었다면, 알리스 기 블라셰(Alice Guy-Blaché)의 <양배추 요정> (1896), 조르쥬 멜리야스의 <달세계 여행A Trip to the Moon; Le Voyage Dans La Lune>(1902)는 극영화나 시적 영화 등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다큐멘터리 Documentary의 정신을 찾자면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와 키노 아이 그룹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 용어는 1926년 플래허티 Flaherty의 <모아나Moana>를 본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이 만들어낸 것[5]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은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진행되었던 그사이의 시기이자,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다다운동 DADA(1916-1923) 시기이기도 하다. 빌 니콜스가 구분하고 있는 시적 양식은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아방가르드 영화 시기의 작품들을 일컫는다. 이 당시 ‘도시의 교향곡 Symphony of a city’이라는 양식이 독일을 중심으로 프랑스 등지에서 유행했다. 대표적인 작품들이 절대영화 감독이자 추상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인 발터 루트만 Walter Ruttman의 <베를린 도시의 교향곡 Berlin: Symphony of a city>(1927), 장 비고Jean Vigo의 <니스에 관하여 A Propos de Nice>(1930) 등이다. 발터 루트만의 <베를린 도시의 교향곡>은 당시 엄청난 흥행을 했던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패와 전쟁으로 인한 생활고로 슬픔과 우울증이 심했던 독일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빌 니콜스는 <베를린 도시의 교향곡>에서 포토제니, 편집, 몽타주 기법이 활용됨으로써 제작자의 목소리가 영화의 중심을 이룬 대표적인 작품으로 논의하며, 이 작품이 시적이며 비분석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또한 그는 도시 생활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정치적 분석과 무관하게 베를린의 일상생활이 지닌 다양성을 찬양한 작품이라고 논의한다. 반대로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 Man with a Movie Camera>(1929)는시적인 동시에 성찰적, 분석적인 목소리를 차용했다고 평하고 있다[6]. 아방가르드 영화의 관점에서 발터 루트만의 <베를린 도시의 교향곡>은 포토제닉, 몽타주, 이중 인화 등과 같은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실험적인 작품이다. 전통 다큐멘터리 영화가 화면을 기록하고 서사구조를 이루는 플롯과 등장인물의 인터뷰 등에 집중하는 반면, 아방가르드 영화는 서사 구조보다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표상성과 의미작용’을 중심으로 ‘시각적 무빙 이미지’를 제시한다.

초기 아방가르드 영화는 대부분 화가, 사진가, 문학가 등 예술가 집단에서 시작했다. 독일의 절대영화를 선보였던 발터 루트만 Walter Ruttmann, 오스카 피싱거 Oskar Fischinger, 한스 리히터Johannes Siegfried Richter, 비킹 에겔링Viking Eggeling은 화가였다. 당시 유럽의 예술가들은 입체파, 미래파, 구성주의와 러시아 형식주의, 구조주의 화풍이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분절성, 단위성, 점, 선, 면, 원 등의 구성성에 집중했다. 이러한 흔적은 장 비고의 <니스를 관하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아방가르드 영화감독들이 비판적 관점으로 사회 정치성이 짙은 작품을 제작하기보다 영화라는 장치가 가진 미학적 가능성을 연구 개발하며 영화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 가운데 영국 작가인 렌 라이Len Lye(1901-1980)의 수행적 양식으로서의 다큐멘터리를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렌 라이는 다른 아방가르드 영화감독과는 다르게 하위문화, 노동자의 입장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자신과 관계된 것들을 자기-재현 적 양식으로 담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아방가르드 감독과는 다르게 채석장 노동자, 광부, 기차레일 노동자, 농장 노동자 등의 다양한 직업을 두루 거치고, 흑인 음악인 재즈에 심취하여 이들과 공동으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존 그리어슨에 고용되어 공공우체국의 광고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제작한 <Color Cry>(1952), <Free Radical>(1958) 등은 흑인차별에 반대하는 작품으로 <Free Radicals>는 아프리카 Bagirmi 부족의 박력 있는 타악기 리듬을 필름 위에 여러 번 겹쳐 긁어내 만든 선들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Ⅲ. 한국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자기-재현

1. 한국의 시대별 자기-재현의 전개 양상

한국의 자기-재현적 작품들을 살펴보려면 1990년대부터 진행된 신사회 운동과 디지털 환경을 우선적으로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제작자들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영상 제작이 점차 전환되어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하여 컴퓨터로 편집하였다. 독립다큐멘터리, 디지털 비디오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필름, 아날로그 비디오에서 디지털 비디오로 전환된 것이다. 이들이 디지털로 전환한 계기는 “싸고 편리하기” 때문이다[7]. 이 시기의 개인 디지털 비디오문화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집단, 하위문화로서의 비디오 집단, 일인 시스템 비디오 저널리스트, 작가주의 미디어예술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8].

2. 1980년대 공동체 제작자로서의 재현

사회운동으로서의 집단은 1980년대부터 제작을 해온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하는 공동체 집단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의를 담은 영상들을 다수 제작하였다. 한국의 1980년대는 사회변혁 운동 시기로 민주화운동의 좌파 담론이 형성되었던 때였다. 이 시기 비디오 제작자는 “영화를 통해 운동하는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9]. 즉 ‘노동자뉴스제작단’의 뉴스릴 노동운동영상, ‘푸른 영상’의 독립다큐멘터리, 여성 다큐멘터리집단 ‘바리터’ 등 이들은 영상을 통한 사회운동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는 공동체 제작자’의 특징을 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독립 다큐멘터리를 소개한 《독립 다큐멘터리 회고전 1》(2004, 선재아트센터) 작품목록을 통해 영상에서도 공동체적 민주화운동 성향이 짙은 작품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품목록은 다음과 같다.

표 1. 《독립 다큐멘터리 회고전 1》(2004, 선재아트센터) 작품목록

남태제·이진필은 1990년대 들어서 가정용 VHS 비디오카메라 매체의 보급으로 필요하다 싶은 현장을 더 마음껏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10]. 당시의 비디오 활동가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들이 만나는 현장의 민중들과 하나가 되어 현실의 모순을 철폐하고 민족과 민중의 문제를 푸는데 기여하는 것을 꿈꾸었다고 말한다[11].

같은 시기의 미술 진영에서는 ‘걸개그림’의 민중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최병수, 강요배, 홍성담, 안창홍, 오윤, 이종구, 임옥상, 박불똥, 김정헌, 주재환 등 민중미술가에 의해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공동체적 성향이 짙은 걸개그림이 다수 제작되었다. 음악 분야에서도 민중가요 ‘노래패’와 같이 공동체적 사회운동 성격이 두드러진다.

3. 1990년대 자기 주관적 재현

1990년대에 들어서 공동체적 사회운동가 형태와 더불어 개인 제작자 형태가 공존하면서 ‘자기(self)’의 욕망이 표출되는 일인 시스템 비디오 작품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자기(self)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의미하게 되는 바로 그 사람, 혹은 자아가 포함된 자아 내에서 내제하는 자기 표상이나 자기 이미지 그 전체”를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로 활용되곤 한다(클레어, 2015: 15, 344)[12]. 지젝의 논의를 빌려 말하면, 예술에서는 자기(self)를 반영하는 것을 “자기를 포함한 자신의 전제들에 대해 외부적인 시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13]. 1990년대의 이러한 현상은 미국 소련의 냉전시대(1991)가 종결되고, 사회주의운동 및 민주화운동이 쇠퇴되면서 이데올로기보다 자기 자신의 욕망이 새로운 사회적 요구로 등장한 것과 때마침 가정용 VHS 비디오카메라가 출시되었던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시기 비디오 작품은 공동체 제작 형태와 개인 제작 형태가 서로 충돌, 공존, 융합되는 특징을 보인다. 공동체 형태에서 제작자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작품이 조금씩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공동체 의제를 객관화하는 데 천착해왔던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창작자 개인의 시선을 인정하는- 주관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인 시스템의 사적 다큐멘터리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2000년대 전후 생성된 하위문화로서의 비디오 집단과 작가주의 디지털 영상예술 영역에서는 자기 욕망이표상화된 작품이 제작되고 소개되면서 사회적 타자도 ‘자기-재현’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사회문화 기반이 형성된 시기였다. 전자가 미술 외부에서 생성된 비디오 집단 제작자라면, 후자는 미술 내부에서 생성된 제작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자기-재현에 기반한 비디오 예술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시기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논점이 된 것은 ‘표현의자유’ 문제였다. 박정희 정부(1963년~1979년)와 전두환 정부(1980년~1988년) 시기에는 사상 검열을 중심으로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가 탄압을 당했다. 68혁명을 기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비디오 문화 운동이 다양한 소수자 운동에 영향을 주었던 서구와 다르게 한국은 소수 집단의 8mm 문화와 비디오문화운동이 다양한 영상운동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시점 이후 1990년대 김영삼 정부(1993년~1998 년)와 김대중 정부(1998~2003)에 들어서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한층 용이해졌지만, 그동안 터부시 되었던 성의 수의와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검열과 억압이 가시화되었다. 이러한 주제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개봉이 불가능한 제한상영가 등급을 통해 검열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2008~2013)와 박근혜 정부(2013~2017)에 들어서서 제한상영가의 검열 수위가 더 높아져 언론과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가 더욱 통제되었다. 이 상황은 박정희·전두환 정부가 사상과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억압하고 통치했던 과거와 다르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신보수주의와 연대하면서 새로운 통치 수단으로 개인의 욕망을 통제한 데서 기인한다.

4. 2000년대 타자로서의 자기-재현

2000년대 제작자는 개인 미디어의 출현이라는 시대적 뉴미디어 환경과 맞물려 개인 제작자 형태로 변화하면서, 모든 개인이 원한다면 영상을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한국에서 사회적 타자가 스스로 카메라를 통해 자기-재현을 획득하고자 시도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그동안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여성들은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자기-재현을 시도한다. 자기-재현을 획득한다는 것은 “인간화가 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간주하는 것이기도 하다[14]. 특히 여성은 사적 영역에 속해있던 타자화된 삶의 일부를 공개함으로써 가부장제 폭력을 가시화하는 도구로 비디오카메라를 활용하였다. 이 시기부터 여성이 제작한 비디오 작품이 여성과 관련한 다양한 기획전에서 소개되었다.

《여성 미술제: 팥쥐들의 행진》(1999, 예술의 전당 미술관 1, 2전시실), 여성주의 집단 <입김>의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2002, 단채널 비디오·설치),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즘》(2003, 아트선재센터), 《가상의 딸 전》(2004, 서울여성플라자), 《제3회 여성 미술제: 판타스틱 아시아-숨겨진 경계, 새로운 관계》(2005, 성곡미술관),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2007,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혜원갤러리), 《여성과 이주-100년간의 낯선 여행》(2008, 서울여성플라자), 《Lifemale》(2015, 미디어극장 아이공),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2017, 전북도립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2018,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등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여성이 제작한 비디오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남성의 재현물로서의 대상화를 거부하고 ‘자기-재현’을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획득하면서 여성은 타자로서의 실제적인 재현이라 할 수 있는 재-현(re-present) 을 구상하게 된다.

즉,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공동체가 아닌 개인 스스로의 자기-재현을 획득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1년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최초로 위안부 생존자임을 알린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증언,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획일적인 몸으로 기획하는데 공모한 미스코리아 대회를 공영방송에서 퇴출시킨 ‘안티 미스코리아페스티벌’(1999-2009), 호주제 폐지(2005), ‘슬럿워크-잡년행진’(2011),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운동인 ‘강남역 10번 출구’(2016), 반성폭력 캠페인 나도 고발한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2017) 등의 굵직한 여성 운동 사건들은 역사화되지 않는 여성의 역사를 자각하게 만듦으로써 여성들의 자기-재현이 생존과 같은 맥락에서 제시될 필요성이 있음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Ⅳ. 2000년대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자기-재현 전략들

1. 포스트 다큐멘터리의 개념

포스트 다큐멘터리(Post Documentary)란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는 양식을 넘어 제작자의 주관적 관점이 관철된 다양한 형식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작품을 의미한다. 여기서 ‘포스트 Post-’는 기존 다큐멘터리와 차별화된 다큐멘터리의 장르 양식, 특히 자기-재현으로서의 디지털 다큐멘터리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에서 주최한《포스트 다큐멘터리 전》(2002, 일주 아트하우스, 기획 김연호), 《포스트 다큐멘터리 장르전》(2009, 제9회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벌, 기획 김연호)은 2000년대에 디지털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이다. 이 기획전에서 소개했던 작품들은 기존 사회정치적 집단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등장인물의 자기-재현에 집중한 작품들이다. 《포스트 다큐멘터리 전》 기획의도에는 “포스트 다큐멘터리 중 사적 다큐멘터리는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에서 그 맥을 찾으며, 창작자의 개인적인 갈등, 상처, 주변 탐색과 같은 자기반영의 서사가 포함된 ‘자기- 재현(self-representation)’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14]. 이러한 논의 하에 당시에 소개된 작품은 <팬지와 담쟁이>(계윤경, 2000), <퍽큐멘터리 박통진리교>(최진성, 2001), <바다가 육지라면>(김지현·김나영, 2001), <주마등>(김이진, 2001), <질문을 하다>(박효진, 2001), <나의 아버지>(김희철, 2001) 등이다. 2010 년에 개최된 《포스트 다큐멘터리 장르전》에는 <팬옵티콘 코리아>(전승일, 2007), <가라사대>(임미랑, 2006), <모두들 괜찮아요?>(안소정, 박인서, 2007), <창문 너머 별>(원, 2006), <네 번째 이사? 나는 최선을 다했다>(김남표, 2003), <사랑, 이전부터 이후>(한성남, 2007), <10년의 셀프초상>(유지숙, 2001), <발 만져주는 여자>(이도, 2002), <엄마를 찾아서>(정호현, 2005), <My Sweet Record>(박효진, 2002) 등이다.

장성규는 노동자 글쓰기의 자기 재현이 크게 세 가지 전략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 재현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엘리티즘적인 문학관의 거부이다”. 두 번째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 호명의 기획”이다. 세 번째는 지배적 양식과 차별화된 “미학적 실험”이 그것이다[15]. 이러한 장성규의 자기 재현 전략을 토대로 포스트 디지털 다큐멘터리 양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자기-재현 전략들이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자기-정동으로의 재현

정동(affects)은 감정(feelings), 정서(emotions)을 포함한 모든 감정 상태, 신체적 현상의 징후 등과 관계된다. 프로이드는 사건에 대해 “기억에 얽혀있는 감정” 모두 정동이라 말하며, 기억이 망각되어도 감정이 소멸되지 않으면 개개인의 무의식에 남아 심리적 외상의 현상인 히스테리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16]. 정동은 희노애락과 더불어 놀람, 흥분, 분노, 불안, 공포, 혐오 등의 생리학적 반응들, 창작자의 숨겨지거나 억압된 욕망 등 무의식적인 표출과 연결된다.

그림 1. <My Sweet Record>

박효진의 <질문을 하다>는 청소년/청년기의 방황들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집중적으로 인터뷰하고 있는 작품으로 인터뷰이들의 우울함, 방황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박효진의 또 다른 작품인 <My Sweet Record>는 짝사랑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작품으로 그는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 애정이 내게 기록을 부탁한다. 그래서 한 시절의 나를 잡고 있었던 나의 감정을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동인 ‘애정’이 창작자의 신체를 빌려 주체화된 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전략을 활용한다. <네 번째 이사? 나는 최선을 다했다> 역시 프리랜서 예술가의 녹녹치 않은 삶을 그린 작품으로 우울함, 절망감, 불안 등의 자기-정동의 흐름대로 작품이 전개된다.

위의 작품들처럼 자기-정동을 재현한 작품들은 정동을 화면에 표상화하며, 재현 불가능한 정동의 표현을 다양한 방식들로 표출한다. 창작자가 영상 작품에서 정동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 개인의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는 효과도 지닌다.

3. 자기-신체로서의 재현

우리의 신체는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정체성이 내면화된 권력체계와 규율 장치가 기능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신체”로 기능한다[17]. 신체는 일상의 의복, 행위, 말의 문화까지도 체현되는 공간이며, 우리는 이렇게 체현된 신체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수행한다. 즉, 신체는 집단정체성이 규범화한 것들을 수행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렇기에 기존 권력 집단이 규정한 집단정체성을 벗어난 신체로 재맥화하려면 개인은 집단정체성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의 신체를 중심으로 집단정체성을 사유하는 재맥락화된 신체로 새롭게 재기술되어야 한다.

그림 2. <10년의 셀프초상>

그림 3.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자기-신체로서의 재현 전략은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Krauss)의 「비디오: 나르시시즘의 미학 Video:The Aesthetics of Narcissism」(1976)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18]. 자기-신체로서의 재현 전략은 자신의 신체를 주체-객체화하는 나르시시즘 전략으로 주체가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자신을 대상화하면서 작품 속에서 자기-신체를 구체화하고이미지화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10년의 셀프초상>은 10여 년간 매일 아침마다 찍은 자화상을 영상으로 담은 작품으로 매일 변화하는 자기- 얼굴의 재현을 통해 ‘삶의 의미와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 이전부터 이후> 역시 ‘사랑’ 이라는 정동을 두 남녀의 신체를 통해 가시화한 작품이다. 이외 이 시기에 제작된 자기-신체로서의 재현을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김진아, 1995-2000)가 있다. 김진아는 위의 작품을 제작하며 카메라를 통한 자기-신체의 재현이 가진 “나르시즘적인 소통”이 타자화된 시선과 자신의 몸을 화해시키는 도구가 되었다고 회고한다[19].

당시 한국 디지털 비디오 창작자는 자신의 신체를 화면에 등장시키는 비디오 퍼포먼스 또는 퍼포먼스 비디오 형식을 통해 이 사회가 호명하지 않는 비가시화된 정체성을 비디오를 통해 드러낸다. 이 사회에서 정제되지 않은 낯선 정체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창작자의 호출에 의해 이 정제되지 않은 낯선 정체성은 비디오를 매개로 새로운 주체의 실천적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렇게 자기-신체 재현 전략을 통해 창작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비디오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기존 권력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4. 자기-시각적 재현

관점(perspective)은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위치를 의미한다. 관점은 사회문화적 배경을 통해 발전되고 각 시대마다 매개되어 전유된다. 서구의 원근법(line perspective)은 삼차원의 현실을 2차원으로 투사해 옮긴 회화기법으로 이 과정에서 ‘세상을 보는 눈은 하나여야 한다’는 서구의 ‘객관성’과 ‘합리성’이 발달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관점들이 철저히 배제되거나 왜곡된 채 시각 권력이 전유되어 왔다는 점이다. 원근법에서 제시되는 소실점(vanishing point)이 권력 적재 현이자 권력을 교묘하게 은폐한 채 전유 되어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각 문화는 성인남성중심이라는 편향성을 띤다.

자기-시각적 재현은 가부장체제 중심의 시각 성에서 나아가 여성, 소수자를 대상화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관점이 관철된 시각적 재현을 의미한다. 자기-시각적 재현은 권력자의 관점으로 표준화된 시각적 장치들을 여성,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으로 재편한다. 자기-시각적 재현은 다수자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소수자, 가부장제 중심의 시각 문화에서 대안적 주체로서의 여성, 자본 중심 산업에서 소외된 예술창작자의 관점에서 작품이 전개된다.

그림 4. <팬지와 담쟁이>

그림 5. <모두들 괜찮아요?>

<팬지와 담쟁이>(계윤경, 2000)는 왜소증 여성 장애인이 주인공을 수평적 앵글로 담아낸 작품이다. 계윤 경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앵글을 통해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이 왜곡되어있음을 밝힌다. 기존 정통다큐멘터리는 비장애인 성인 남성의 신장에서 카메라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왜소증 여성 장애인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 컷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왜소증 장애인의 시선으로 카메라와 동일시된다. 보통 어린아이와 왜소증 장애인이 카메라에 담길 때 카메라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 컷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창작자는 주인공인 왜소증 장애인의 관점으로 재맥락화한 재현을 통해 기존의 카메라 관점과는 차별화된 카메라의 시선을 선보임으로써 기존 시각 권력의 시선을 드러냄과 동시에 해체한다. 반대로 <모두들 괜찮아요?>는 현대판 판옵티콘이라 명명하는 CCTV의 관점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은폐된 권력자의 시선을 드러낸 작품이다. 창작자는 도시 어디에나 설치되어있는 CCTV 기기의 눈을 통해 국가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제기한다. 이 역시 권력자의 시선인 CCTV의 시선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구조를 드러내며, CCTV 의무분별한 설치로 인한 시민들의 사생활 침해, 인권침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높이에서 수평적 앵글을 담아낸 애니메이션, 페이크, 다큐멘터리 등 복합적 양식을 선보인 <퍽큐멘터리 박통진리교>(최진성, 2001), 라면이라는 사소한 소재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모호한 경계를 실험한 <바다가 육지라면>(김지현·김나영, 2001), 창작자의 ‘아버지’라는 대상을 성찰적으로 탐구하는데 활용하고 있는 <주마등>(김이진, 2001)과 <나의 아버지>(김희철, 2001) 등이 그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정치적 다큐멘터리가 주를 이루었던 1980-1990년대 정통적 다큐멘터리하고는 다른 자기- 재현을 기반으로 한 시적 양식과 수행적양식이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포스트 다큐멘터리 장르전》을 통해 소개되었던 이외의 작품들은 ‘비디오 액티비즘 섹션’에는 과거 뉴스릴 등 푸티지 필름을 통해 오늘날을 성찰하고 있는 <팬옵티콘 코리아>(전승일, 2007), 방송국에서 구성작가로 일했던 시기를 성찰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가라사대> (임미랑, 2006), 나혜석과 같은 여성 운동가, 신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형식의 <창문 너머 별>(원, 2006) 등이 소개되었다. ‘디지털 비디오 일기 섹션’에는 지극히 사적인 이사를 통해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네 번째 이사? 나는 최선을 다했다>(김남표, 2003), <사랑, 이전부터 이후>(한 성남, 2007), ‘사적 다큐멘터리 섹션에서는 <발 만져주는 여자>(이도, 2002), <엄마를 찾아서>(정호현, 2005) 등이 앞서 살펴본 자기-재현 양식들이 제시되어있다.

Ⅴ. 결론

한국 다큐멘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2000년대 초기작품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포스트 다큐멘터리가 더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세한 영역까지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어 자기-재현의 방식들과 내용이 더 풍부해져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여성 창작자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여성운동의 케치프레이즈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정치적 메시지가 다큐멘터리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을 것이다. 거대 담론에서 배제되어 왔던 여성이나 소수자가 전략화했던 방법 중 하나는 오랫동안 은폐되어왔던 권력자의 시선을 드러내고, 가시화되지 못했던 차별적 위치로서의 여성, 소수자의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낸 점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권력자의 위치에서 규범화된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2000년대는 다양한 목소리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등장하며, 기존에 갖고 있던 재현의 방식에 문제제기를하며 등장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체로 거대 담론을 제시했던 기존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미시적이고 개인의 역사나 개인의 삶의 가치에 주목하며 등장하였다. 그렇기에 자기-재현 양식들은 사회적으로 은폐되거나 배제되었던 등장인물을 통해 자기-재현을 시도한다. 이러한 포스트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치중했던 방식은 앞서 제기했던 것과 같이 자기-정동, 자기-신체, 자기-시각적 재현 전략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2000년대 등장한 자기-재현 양식들은 주류사회에서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새로운 재-현 전략들을 모색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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