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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서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로의 변곡점에 관한 연구 -체험(Experiencing)과 배우의 이중 의식(Double consciousness)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Inflection Point from the Stanislavsky's System to the American Acting Method - Focusing on "Experiencing" and Actor's "Double consciousness" -

  • 배민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공연영상창작학부)
  • 투고 : 2021.10.14
  • 심사 : 2021.12.11
  • 발행 : 2021.12.28

초록

본 연구는 현대연기의 근간이 되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그 미국적 계승이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가 전혀 다른 성격의 연기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규명하고자 한다. 먼저, 시스템 계승의 주요 국가인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시스템 관련 스타니슬랍스키 저서의 출판과 번역 과정을 따라가며 각국에서 시스템이 전혀 다르게 이해되었음을 확인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의 체계를 유지하는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이 메소드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진 것인지 논의하여 두 연기론의 차이와 그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 시스템에서 메소드로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스타니슬랍스키 저술 출판과 번역, 그리고 그로 인한 시스템에 관한 이해를 인식하고자 하는 것은 시스템과 메소드 모두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라 하겠다. 시스템과 메소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본 연구가 앞으로의 시스템과 메소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논의를 마련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attempts to investigate why Stanislavsky's System, which has been the basis of modern acting, and the American Acting Method, which is the American succession of the System, were forced to become acting theories with a completely different nature. First, this study tracks the publishing and translating process of Stanislavsky's books related to System targeting the major countries of System succession, Russia,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so it confirms that the System has been understood completely differently in each country. Based on this, this study aims to clarify the difference and cause of it in the two acting theories by discussing how the "Experiencing" and the actor's "Double Consciousness", which keep the ground of System, were accepted in the Method. To recognize Stanislavsky's publication, translation, and understanding of the System, which is an inflection point from the System to the Method, will be an attempt to fully understand both acting theories. It is hoped that this study that fundamentally seeks to comprehend System and Method will serve as the foundation for discussion from various perspectives on both acting theories in the future.

키워드

I. 서론

인류의 탄생과 함께 제의와 축제 속에 존재하던 연기의 구성 요소인 춤, 낭송, 노래 등이 본격적으로 극 구조로 들어온 것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부터다. 기나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관한 논의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것은 연극이 문학과는 달리 관객의 경험으로 만남은 채 휘발되고, 그 과정에서 연기 역시 운명을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희곡을 중심으로 문학의 영역에 종속되어 연구된 이후에도 연기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었고, “영원히 눈 조각상을 만들고 있다”[1] 는 로렌스 배럿(Lawrence Barrett)의 말처럼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져버리는 신비의 영역, 또는 설명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무언가로 모호하게 정의될 뿐, 연기에 관한 논의는 오랜 시간 중심에 등장하지 못한다.

흔히 연기에 관한 논의의 시작으로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의 『시학(Poetica)』이나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의 『배우에 관한 역설(The Paradox of the Actor)』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학』은 철학에 가까운 이상적 개념의 ‘비극’을 설명하며 수사학적 관점에서만 배우의 목소리 등을 논한 것이고, 『배우에 관한 역설』 역시 이상적인 연극의 요소로서 배우의 연기를 부차적으로 취급하고 있어 연기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로서 한계가 있다 할 것이다.

배우 중심의 연기에 관한 논의의 본격적인 시작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y) 로볼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연기에 관한 평생의 실험과 연구로 만든 시스템(System)이 출현한 근대 이후 연기론들은 그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할 정도로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러시아의 제자들과 시스템의 미국적 계승이라 하는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 (American Acting Method)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과 대치된 듯 보이는 예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 나 표세볼로트 메이어홀드(Vsevolod Meyerhold)의 연기론도 그 바탕에 시스템에 관한 연구가 있다는 것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실제 적용에서도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변형 발전되어 무대와 영상 연기에서 지속해서 작업 되고 있으며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연기 훈련법도 대부분 이에 일부분, 또는 변형 적용이라 할 수 있으므로 ‘스타니슬랍스키시스템’은 연기에 관한 논의의 바탕, 혹은 기준점으로 존재하며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현대연기의 근간이 되는 스타니슬랍스키시스템과 그 미국적 계승이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칸 액팅메소드가 전혀 다른 성격의 연기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규명하고자 한다. 먼저, 시스템 계승의 주요 국가인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시스템 관련 스타니슬랍스키 저서의 출판과 번역 과정을 따라가며 각국에서 시스템 이해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의 체계를 유지하는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이 메소드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진 것인지 관해 논의하여 두 연기론 간의 차이와 그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시스템과 메소드를 온전히 이해하고 앞으로의 우리나라 시스템 연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본격적인 연구로 들어가기 전에 연구 이해의 혼란을 막고 효과적인 비교 연구를 위해 스타니슬랍스키의 같은 저작이나 다른 제목으로 번역된 각국의 출판물을 하나의 제목으로 통일할 것을 밝혀둔다. 다만, 직접 인용이나 인용의 출처를 밝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원제목을 표기하기로 한다.

Ⅱ. 본론

1. 스타니슬랍스키 저술의 출판과 번역

스타니슬랍스키는 본인의 연극적 경험과 실험을 통해 이전까지 모호하게만 이해했던 연기 구현의 과정을 체계화하였고, 이 과정에서 배우 각자의 능력에만 의존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연기가 발전 가능함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연기에 관한 연구는 연극의 부차적 요소나 도구였던 배우의 연기를 연극의 중심으로 이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기를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예술적 창조로 승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스타니슬랍스키에 일생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인 시스템 관련 저작물들은 총 4권으로, 시스템의 탄생 과정과 개요를 밝힌 시스템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예술 인생(My Life in Art)』, 배우 자신에 대한 작업으로 스타니슬랍스키가 한 권으로 출판하길 원했던 심리기술을 다룬 『배우 수업(An Actors prepares)』과 신체기술의 『성격 구축(Building a Character)』, 그리고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으로서 대본 분석을 비롯한 역할 구현의 과정을 논한 『역할 창조(Creating a Role)』이다.

이 4권의 책은 1963년 『나의 예술 인생』의 미국 출판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출판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 출판된 것은 『나의 예술 인생』, 『배우 수업』 뿐이며 나머지 책들은 스타니슬랍스키 사후에 그의 원고들을 후손들이 편집하여 『성격 구축』, 『역할 창조』 순으로 출판되었다. 4권의 시스템 관련 저서와 함께 스타니슬랍스키 관련 자료들을 모아 출판한 전집은 러시아에서 1951년에서 1961년까지 8권으로 정리되었다가 1988년에서 1999 년까지 9권으로 개정 출판되었다.

처음으로 출판된 『나의 예술 인생』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미국 순회공연에 맞춰 구술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스타니슬랍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Nemiro´vich- Danchenko)의 역사적 만남에 시간이 잘못 기술되는 등에 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로 인쇄되었고, 이를 러시아 본 편집자 류보브 구례비치(Lyubov Gurevich)가 수정보완 작업해 1925년 러시아에서 개정 출판하였다[2]. 『배우 수업』도 마찬가지로 스타니슬랍스키는 영역판이 출간되기 전부터 이 책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일부 단락을 수정 보완하여 러시아판에 삽입하고자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는 1938년 그의 사망 직후에 출판된 『배우 수업』 러시아판에서 나타난다[3].

이후 출판물인 『성격 구축』은 그가 완성한 한 두 개의 장을 제외하고는 스타니슬랍스키의 필기나 초고 형태의 것을 편집하여 완성한 것이고, 『역할 창조』는 진 베 네데 티(Jean Benedetti)가 ‘스타니슬랍스키가 지필을 시작조차 한 적이 없고, 그의 생애에서 다양한 시기에 발췌한 기사와 초안 모음일 뿐’이라 할 정도로 편집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완성되었다[4]. 그의 사후에 출판된 이두 권의 책은 출판 계획과 초안을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고는 하나 얼마나 정확히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가 반영된 것인지는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관련 주요 서적들은 그의 생전에 미국에서 출판이 시작된 두 권의 저서 와이를 수정 보완하여 완성한 러시아판, 그리고 사후에 다른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두 권의 책 등으로 나뉜 복잡한 출판 경로로 어느 나라에서 출판된 어떤 책이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한 책이라 확신할 수도 쉽게 저평가할 수도 없게 만든다. 시스템에 관련된 유일한 저서로 남겨진 이 책들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참여도에 상관없이 이 책 모두를 그가 남긴 연극적 실험에 관한 자료들로서 시스템 이해의 필수 자료로 인정하고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로와 같은 출판의 경로와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을 파악하고 시스템 관련 연구들이 현재의 양상을 띠게 된 연유를 찾는 것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늦어진 출판을 확인해보자. 그의 사후에 발견된 1889년에 쓴 노트에는 연기의 ‘문법’이라고 쓰인 부분이 있고, 같은 해 그의 아내 마리아 릴리나(Maria Lilina)가 쓴 편지에도 나와 있듯이 ‘연극 예술에 관한 교본-초안’이라는 이름으로 1889년 당시 이미 연기에 관한 저술을 진행 중이었으며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1909년에는 이미 2개의 초고가 나와 있었다 [5]. 또한, 1930년 스타니슬랍스키가 구례비치에게 쓴 편지에는 시스템 관련 저서를 포함한 전체 저술 계획을 밝히며 자신의 글에 많은 부분이 20여 년 전에 쓰인 것이어서 편지를 쓰는 현재의 문법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6]. 그렇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집필이 시작되었고, 전체 저술의 계획이 분명했음에도 그의 저술 출판이 그토록 늦어지고 각 책의 출판 시차가 긴 이유는 무엇인가.

출판이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과 연기에 대한 자세이다. 샤론 마리 카르니케 (Sharon Marie Carnicke)는 그가 “인쇄물이 실험적인 태도를 독단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우려해 오랫동안 배우 예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출판되는 것을 거부해왔다”[7] 고 한다. 그는 연극적 실험을 평생 진행하며 자신의 방법을 계속 수정 보완하고자 했고, 이것이 기계적인 훈련처럼 의미 없이 반복되는 체계로 남는 것을 기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스템이 출판물로 섣불리 탄생해 고정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스템을 실험, 보완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계속되는 연극적 실험과 뒤늦게 시작된 출판 작업으로, 그의 생전에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예술 인생』과 『배우 수업』 뿐이었으며 이후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심화 된 냉전 시대의 소련과 미국의 갈등은 다음 책들의 출판을 가로막게 된다. 이로 인해 1937년 영역 번역자 엘리자베스 햅굿 (Elizabeth Hapgood)이 모스크바에 방문했을 때 스타니슬랍스키가 주기로 한 『성격 구축』의 원고는 그가 사망하고 한참 후에 그의 아들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질 수 있었고, 1949년에서야 출판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2].

결국,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과 연기에 대한 학구적이고 실험적인 태도, 여기에 그의 사후 러시아와 미국 간의 정치적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출판물의 탄생이 늦춰졌을 뿐만 아니라 출판물 간의 긴 시차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출판 상황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이해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미국,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관련 주요 서적 출판 상황을 정리한 다음의 [표 1] 을 통해 각 나라의 출판 순서와 시차뿐만 아니라 나라 간의 차이까지 확인하면서 이 문제들을 파악해보자.

표 1. 시스템 관련 주요 서적 출판 상황(러시아, 미국,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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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각 나라의 저술 출판 시차는 미국의 경우 『나의 예술 인생』과 『배우 수업』 사이에는 12년, 여기서 『성격 창조』까지 13년, 『역할 창조』까지는 또다시 12년에 시간이 필요했으며, 러시아의 경우 『나의 예술 인생』과 『배우 수업』 사이 13년, 『성격 창조』까지 10년, 『역할 창조』까지는 9년의 시차가 생긴다. 미국에서 일본을 거친 중역본을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위 나라들의 출판이 처음 시작된 지 36년이 지난 1970년에 와서야 『배우 수업』을 만날 수 있었으며, 『성격 구축』까지가 15년, 『역할 창조』, 『나의 예술 인생』까지 접하는 데는 다시 15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스템의 안내서이자 서문으로 다른 나라들에서는 가장 일찍 출간되었던 『나의 예술 인생』을 최초 출판 본이 나온 지 76년 만에서야 시스템 주요 서적 중 가장 늦은 순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시스템의 전체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연결된 내용의 책들이 긴 출판 시차를 갖게 되면서 시스템 이해의 큰 오류가 생성된다. 배우 자신의 작업 중 심리적 부분을 다룬 『배우 수업』만이 존재하는 기간에는 심리적인 것이 시스템에 전부로 이해되었고, 이는 다음 저술이 출판되기 전에 세계 각국으로 전해져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심리적 연기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출판 시차를 시스템의 단계적 변화, 혹은 진화로 받아들여 시스템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전기에 집중한 심리적 측면보다는 후기에 바뀐 신체적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 그의 최종적 가르침임으로 신체적 측면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이것은 시스템이 심리‧신체적 유기성을 전제로 한 실험이며 계속되는 실험 과정에서 강조점이 변화되었다는 이해가 배제된 것이라 하겠다. 결국, 심리·신체적 과정으로 나누어진 출판과 번역에 필요한 시차가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우려는 현재 상황의 예언이 된 듯 정확히 일어난 것이다[3].

각 나라의 출판 시차 이외에도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계승을 주도적으로 이끈 러시아와 미국의 출판물 내용의 차이도 문제라 할 수 있다. 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예술 인생』과 『배우 수업』은 미국에서 출판이 먼저 이루어진 뒤 러시아에서 수정 출판되면서 두 권의 책은 미국과 러시아에서 상당 부분 다른 내용으로 존재하게 된다. 여기에 사후 출판된 『성격 구축』과 『역할 창조』는 편집자들이 다른 초안을 사용하여 순서와 구성까지 다른 내용으로 출판되면서 그 혼란은 더 가중된다[7]. 상이한 내용의 책들이 혼재하여 존재하게 되면서 시스템 이해에 관한 문제가 야기되었음은 2000년 이전에는 미국에서, 이후에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책을 수용하며 용어와 체계 이해 등에서 혼란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판물 내용이 다른 이유이자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이해를 어렵게 한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는 것은 오랜 기간 유일한 번역본으로 존재했던 햅굿 영역 본의 문제라 할 것이다. 에릭 벤틀리(Eric Bently)는 시스템에 ‘정서 기억(Emotion memory)’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테오듈 리보(Théodule Ribot)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을 예로 들며 “미스터리는 번역가가 너무 많은 것을 빼놓기로 결심 할 때에만 창조된다”[8]며 비판하고, 카르니케는 『배우 수업』 마지막 부분에 전체적인 체계가 아직 갖춰진 것이 아니라고 밝힌 5페이지 분량을 삭제함으로써 『성격 구축』 출판 이전까지 신체적 부분이 빠진 채 심리적인 부분만이 시스템 전체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7]. 또한, 벨라 멀린(Bella merlin)은 시스템의 ‘비트(Bits)’와 ‘과제(Tasks)’가 햅굿번역에서 좀 더 과학적으로 들리는 ‘단위(Units)’와 ‘목표(Objective)’로 바뀌어 이질적인 어조를 만들어냈다고 하면서 이 같은 예들이 “스타니슬랍스키의 본래 의도가 일부 흐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9]라고 한다.

그러나 햅굿은 『역할 창조』에 실린 번역가의 노트에서 “나는 스타니슬랍스키가 나에게 맡긴 임무를 다시 한번 수행했다. 중복을 제거하고, 러시아 이외의 배우들에게 의미 없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낼 수 있다”[10] 라며자의적 편집과 오역에 대한 비판을 비켜나가고자 한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주문이었다는 변명이 아니더라도 스타니슬랍스키가 ‘감정’으로 사용하는 러시아어 ‘춥스뜨바(чу́вство, chuvstva)’가 ‘감정’과 ‘감각’ 둘 다로 번역된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단어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러시아어의 특수성과[7] 스타니슬랍스키가 전문 작가가 아니기에 생기는 완결된 글로서의 한계도 번역의 어려움이었을 것이라 감안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햅굿이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이해에 관한 혼란의 원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힘든 것은 햅굿의 영역본은 최근까지도 러시아 이외의 지역에서 시스템에 대한 주요 참고 서적으로서 쓰이며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햅굿의 오역이 확인된 이후에도 저작권법은 오랜 기간 새로운 영역본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거의 75년 동안이나 햅굿의 번역이 유일한 영역본으로 존재하도록 했고, 이것은 서구 나라들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미국의 상업적 압력이 닿는 어느 나라에서나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3].

결국, 자의적 편집과 오역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는 햅굿 영역본의 절대적 영향 아래 사후 출판이라는 한계와 하나의 내용을 나누어 출판하는 과정에서 생긴 긴 출판 시차, 그리고 햅굿 영역본과는 다른 내용의 러시아 출판물이 혼재되면서 빚어진 많은 혼란과 오해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 것이라 하겠다.

2. 체험(Experiencing)과 배우의 이중 의식(Double consciousness)

출판 시차와 번역이 만든 시스템 이해의 문제를 확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과 메소드의 변곡점에 대해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기로 한다. 메소드로의 변화의 지점을 이 두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은 시스템의 전제라 할 수 있을 만큼 시스템 체계를 유지하는 중심 개념일 뿐만 아니라 메소드와의 차이도 이 두 개념의 이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논의의 과정은 시스템과 메소드 각각의 체계를 이해하면서 메소드로의 변화의 연유까지를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시스템의 체험 개념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배우의 이중 의식까지의 개념을 분석하고 시스템에서 메소드로의 변형 과정에서 차이를 드러내게 된 연유 등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각각의 개념에 대한 이해와 함께 비교분석을 시도하기로 한다.

이번 장에서는 햅굿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대로 『배우 수업』과 『성격 구축』을 합본하고 햅굿이 삭제한 많은 부분을 복구한 베네 데 티의 번역본을 사용할 것을 밝혀둔다. 다만, 햅굿의 오류를 논하는 부분에서는 그의 번역본을 사용하기로 한다.

‘체험’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수업』 제2장이다. 학생의 들 첫 무대 평가에서 교사 토르초프(Tortsov)는 순간적이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마리아(Maria)와 코스챠(Kostya)를 예로 들며 배우가 잠재의식적 연기를 보여주는 순간, 즉 역할로서의 완전한 ‘체험’을 통한 연기의 순간은 연기하는 배우와 보는 관객 모두가 무대 위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완벽한 순간이고, 이러한 순간들의 성공은 학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체험의 예술(The art of experiencing)’이라고 한다[11]. 다시 말해, ‘체험’은 역할의 생각과 감정을 배우 자신이 느껴 잠재 의식적인 상태에 이르는 심적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 표현된 것이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완전한 예술의 형태인 ‘체험의 예술’인 것이다. 그러나 코스챠는 ‘체험’의 예로 쓰인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으며 연기한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고, 토르초프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것이 자발적, 잠재의식적으로 나온 것”[11] 이라고 한다. 이처럼 의도치 않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체험을 스타니슬랍스키는 간접적이고 의식적인 방법 통해 맞이할 방법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개발된 것이 시스템의 심리적인 기술들이다. 시스템의 심리적 기술을 다룬 『배우 수업』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하는 제2 장에서부터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시스템은 ‘체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심리적 기술의 모든 것은 ‘체험’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체험’에 대한 이해 없이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스타니슬랍스키가 체험이라는 개념을 시스템에 도입한 것은 예술-문학 협회(The Society of Art and Literature) 시절부터 작품을 작업했던 레오 톨스토이 (Leo Tolstoy)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What is Art? (1897)에서 늑대 때문에 겁에 질린 기억이 있는 어린 소년이 자신의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예로 들면서 “만약 소년이 이야기 도중 느꼈던 것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꾼인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을 경험케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 남의 감정에 감염되는 것이 예술의 근본적인 운명이다”[12]라고 예술에 대해 말한다. 톨스토이는 이를 바탕으로 ‘예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한 번 경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불러온 후에 그것을 움직임, 선, 색채, 소리, 말로 표현된 이미지로 전달하여 다른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예술 활동이다. 예술은 자신이 체험한 감정을 어떤 외부 신호를 통해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이 그 감정에 감염되어 경험하는 것으로 구성된 인간 활동이다[12].

톨스토이에게 예술은 예술가가 경험한 감정을 외부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 인식이 가능하고 불러낼 수 있는 외부 기호로 표현될 때 시작되는 것이고, 여기서 예술의 중요한 기능은 감염을 통한 전달에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와 같은 톨스토이의 예술에 대한 정의와 기능을 시스템에 적용한다.

체험은 역할의 “인간 정신의 삶”을 창조하는 창조적 작업의 기본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의 목적은 “역할에 있어서 인간 정신의 삶”을 창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술적인 형태로 외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 우리는 유기체로서, 인간으로서의 배우의 살아있는 경험이 풍부한 연극만이 모든 이해하기 어려운 뉘앙스, 즉 역할의 숨겨진 깊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작업 과정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연기만이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고, 무대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을 그들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그들 자신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시간으로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지점으로 그들을 데려올 수 있다[11].

스타니슬랍스키는 공연에서 배우의 체험을 통한 연기로 관객에게 이 체험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연극 목표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톨스토이의 예술에 관한 생각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주요 개념인 체험을 만들어냈으며 이를 통해 연기와 배우를 예술에 위치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톨스토이의 예술에 대한 정의와 기능을 연기로 가져오면서 예술가의 경험된 감정은 배우의 체험이라는 개념이 되었고, 이 체험을 통한 연기가 예술이 관객들을 ‘감염’시키는 것과 같은 일을 해내는 것이 되면서 연기는 정당한 예술, 배우는 예술가가 된 것이라 하겠다.

톨스토이의 영향으로 연기를 예술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 체험은 역할 구현을 위한 심리적 과정이라는 본분 이외에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실용적인 역할을 한다. 먼저, 다른 예술들과 시스템을 통한 연기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배우 수업』 제2장에서 토르초프는 “체험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예술은 없다”[11] 라며 시스템의 ’체험의 예술’과 ‘재현의 예술 (The art of representation)’, ‘상투적인 연기 (Stock-in-trade, Cliché acting)’, ‘과장된 연기 (Ham-acting)’의 구분에 체험을 이용한다. ‘체험의 예술’은 매 순간 체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주요한 것이라면 ‘재현의 예술’에서 체험은 준비 과정 중의 하나로만 존재하며 내면의 내용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외적 형태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에 반해 관습적인 표현의 ‘상투적인 연기’와 일반적인 고정관념에 갇힌 ‘과장된 연기’는 체험이 배제되어 있다. 다른 방법론과 다르게 재현의 연기를 예술로 구분하는 것은 체험의 예술처럼 매 순간이 아닐지라도 체험의 순간이 있었기에 인정되는 것이고, 나머지 연기 방법에서 체험은 단지 우연일 뿐임으로 예술로 인정될 수 없다. 이처럼 체험으로 연기를 구분한 것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서 체험이 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조건이며 매 순간의 체험을 통해서 연기하는 배우가 예술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시스템은 체험을 기준점으로 예술로서 연기와 배우에 관한 이론을 확고히 한 것이다.

또한, 체험은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주체적으로 평가, 점검하는 방법이 된다. 배우의 연기는 순간에 소멸하고 수행의 주체인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서 체험의 개념이 생기기 이전에는 연기를 평가할 방법은 타인의 시선에 의한 막연한 감상 이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배우가 자신의 연기에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를 체험의 순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연출가나 평론가, 관객 등의 평가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있었던 연기를 배우 스스로 점검할 방법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체험의 이러한 두 가지 용법은 체험이 실용적인 방법으로서 시스템을 지탱하는 중심점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체험의 배경과 그 역할을 살피면서 체험이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정립의 기본 바탕이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체험은 시스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시스템에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개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체험에 대한 설명 방식에 있다. “체험의 예술은 무엇입니까?”라는 코스챠의 질문에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라며 즉답을 피하고, ‘영감(Inspiration)’, ‘창조적 자연(Creative nature)’, ‘잠재의식적 창조 (Subconscious creation)’ 등과 관련 지으며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할 뿐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 실천의 방법과 목적에 대해서도 체험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역할에서 인간 정신의 생명을 창조하고 무대에서 예술적 형식으로 그 생명과 소통한다는 기본 목적을 달성한다는데 도움이 된다”라고만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체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으로 표현된 이야기들의 유추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다[11].

스타니슬랍스키가 이렇듯 직접적으로 체험에 관한 정의를 피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스타니슬랍스키가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단정적으로 정의 내리기를 피하고 시스템의 다른 개념들과 함께 이해되기를 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심리·신체적 기술들은 각각 하나의 장 이상을 할애해 논의된다. 그러나 체험은 시스템이 추구하는 예술의 목표를 논한 『배우 수업』 제2장을 시작으로 여러 장에서 산발적으로 나누어 거론되고 있다. 이는 『배우 수업』 제9장의 ‘정서 기억’이 체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인 제16장에서 토르초프가친구들과의 수술장면 놀이를 예로 들면서 체험에서 ‘믿음과 진실감(Belief and the sense of truth)’, ‘만약에 (If)’가 존재할 때, 그 힘이 발휘된다는 토르초프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체험은 심리적 기술들과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체험을 위해서는 편안한 신체 상태가 필요하며 몰입할 수 있는 정당한 희곡 분석도 필요하므로 체험은 심리적 기술 이외의 시스템의 다른 요소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결국, 체험은 심리적 기술을 포함한 시스템의 모든 부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으로서 어떤 하나의 요소나 역할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시스템 중심축으로 서모든 기술과 연결된 체험이 다른 기술들과 함께 이해되도록 유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11].

다음으로 체험이 가진 의미의 복합성을 말할 수 있다. 체험을 말하는 러시아어 페레지바니예(пережива́ние, perezhivanie)는 동사 페레지띠(пережи́ть, perezhit)에서 파생된 행동 명사(Noun of action) 이다[13]. 『러시아어-한국어 사전』 (2018)에서는 페레지띠의 뜻이 ‘경험(체험)하다. (위험 따위에) 부닥치다. ~을 경험하여 알다. (사람, 물건이) 견디다, 인내하다, 체험하다, 조우하다. (괴로운 일, 불행을) 참고 견디다, 곤란을 당하다, 고민하다, 고통스럽게 체험하다’ 등이라 하고, 페레지바니예는 ‘경험. 체험. 견문. 경력. 경험 내용(경험으로 얻은 지식, 능력, 기능). 감정적인, 감동하기 쉬운, 다감한, 감동시키는, 감정에 호소하는, 정에 약한, 심적 체험. 인상. 감각. 유물. 잔존물’ 등이라 하면서 연기와 관련된 정의로는 ‘체험을 가진 배우에 의한 연출’이라고 한다[14]. 이처럼 다양한 의미의 단어를 스타니슬랍스키가 선택하여 사용한 것은 체험이 하나의 의미를 넘어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르니케는 페레지바니예의 접두사 ‘пере(pere)-’는 영어에서 동작의 반복이자 지속을 의미하는 ‘re-’, ‘through-’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체험은 반복되는 공연 속에서 배우가 완전히 ‘극에 사로잡혔을 때’의 ‘자연스럽고 올바른’ 상태 지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집중’과 ‘몰입’이 포함된 것이라 하고[7], 백승무 역시 체험의 접두사 의미에 착안하여 심리적인 문제에 관한 소통을 의미한다고 하며 교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15]. 이 밖에도 『배우 수업』 전체에는 체험의 복합적인 의미가 곳곳에 드러난다. 제16장의 토르초프의 친구들과 함께한 수술장면 놀이 경험담에서 실제 수술과 같은 공포와 놀이의 즐거움 사이, 즉 현실과 허구 사이의 교차 감각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현실과 허구 사이의 ‘고통을 견디다’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하고, 제 2장에서 재현의 예술과 체험의 예술을 비교하면서 토르초프가 “매 순간을 체험하는 우리의 연기는 그 체험을 새롭게 느끼고 물리적으로 새롭게 구현해야 한다”고 한 것은 체험이 공연의 ‘현장성’과 공연을 실행하는 ‘배우’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11]. 이처럼 체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번역인 ‘역할로 사는 것’, 즉 역할로서의 단순 경험을 넘어선 복합적인 의미와 기능을 내포한 개념인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만든 체험 개념의 특별함은 현대 러시아 문학 사전(The Dictionary of Contemporary Russian Literary Language)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하는 방법’이라 하면서 ‘역할의 심적 상태의 진정한 침투’라고 별도로 요약된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13].

체험의 정의, 형성 배경, 기능, 체험의 유기성과 복합적인 의미 등을 살핀 지금까지의 과정은 체험이 단순히 이해될 수 없는 특별한 개념이며, 시스템을 이루는 중심축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체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체험과 동반되어야 하는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해 논의하여 시스템을 형성하는 중심 기반에 대한 이해를 완성해보자.

배우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배우가 이중적 존재라는 것은 배우 자신이 연기의 도구이자 주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배우로서의 자의식과 역할로서의 의식이 공존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배우의 역할과의 관계, 즉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해 크리스토퍼 B. 밤 (Christopher B. Balme)은 The Cambridge Introduction to Theatre Studies (2008)에서 배우가 역할과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인 ‘관여(Involvement)’, 배우가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거리 두기(Detachment)’, 배우가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상태인 ‘역할의 자기 소멸(Self-renunciation)’로 구분한다[16].

스타니슬랍스키의 역할로서의 체험에 대한 강조는 위에서 밝힌 밤의 세 가지 구분 중 어느 것도 아닌 ‘역할과 배우 자신을 동일시’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스타니슬랍스키는 역할로서의 체험과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배우가 연기할 때는 둘로 나뉜다. 살비니는 “연기를 할 때는 웃고 울면서 동시에 내 웃음과 눈물을 분석해 더 깊이 감동하게 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보다시피, 이중의 삶은 영감을 받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돕는다[11].

스타니슬랍스키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배우의 이중 의식을 강조한다. “역할의 성격묘사는 배우로서 인간을 가리는 가면이다. 우리는 가면을 썼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장 친밀하고 흥미로운 내부를 드러낼 수 있다. 이것이 역할 성격묘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라고 하며 가면으로서 역할과 자신으로서의 배우가 함께 공존함을 말하고, 자기 자신 안에 두 존재가 소통하는 것이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것 또한, 이중의식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 의식의 강조는 시스템이 밤의 구분 중 ‘관여’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스타니슬랍스키는 체험을 통해 역할과 최대한 가까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공연으로서 실행할 수 있는 이성적인 감각이 유지되기를 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체험을 통한 ‘역할로서의 나’와 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나’ 사이의 균형, 또는 서로의 도움 속에서만 무대에서 배우의 연기가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11].

스타니슬랍스키의 이중 의식에 관한 주장은 디드로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거듭된 실제 공연에서의 실험에서 자신이 톨스토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이론처럼 연기로 만들어진 예술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다는 것과 배우와 역할은 통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디드로에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인다[7].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한 인정은 무대에서 ‘역할’로서의 배우 이외에 ‘관찰자, 통제자’로서의 자아가 배우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역할’ 을 바라보는 다른 자아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기에 체험에 의한 능동적인 배우를 추구했던 디드로의 수동적인 배우에 반대한 자신의 주장을 뒤집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배우 수업』 제2장에서 체험의 예술과 재현의 예술을 비교하면서 재현의 예술에는 매 순간이 아닐지라도 체험의 순간이 존재함으로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한 것이라 했다. 이를 다시 살펴보면, 재현의 연기를 예술의 영역에는 속하지만 매 순간을 체험하는 체험의 연기보다는 하위 개념으로 취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재현의 예술에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디드로에 대한 반대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기론 정리의 필요성을 깨달은 1906년 핀란드 휴가에서 디드로의 『배우의 역설』을 읽었고, 자신의 저술 러시아 본 편집자인 구례비치에게 이론적인 연기의 역사를 고려할 때 디드로의 이론과 싸워야 한다고 한다[7]. 또한, 『배우 수업』 제2장에서는 디드로의 사상을 이어받은 재현을 대표하는 배우인 코클랭 앨더(Coquelin Elder)가 “배우는 사는 것이 아니라 연기한다. … 예술은 실생활도 아니고, 그것이 반영된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창조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 토르초프는 “그런 오만한 도전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며 재현의 연기에 대해 “아름다움은 있지만, 깊이가 없다. 깊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효과적이다. 내용보다 형식이 흥미롭다”라고 재현의 연기를 낮추어 평가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11]. 스타니슬랍스키는 계획에 의해 수동적으로 실행되는 재현의 연기보다는 매 순간의 체험을 통해 배우에 의해 능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연기만이 관객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현의 연기에 관한 생각을 바탕으로 만든 체험을 주요 축으로 하는 시스템 안에서 배우의 이중 의식에 관한 디드로의 입장수용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두 개념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함께 수용하는 것을 택한다. 예술 구분에서는 체험을 통해 디드로의 계산대로 실행하는 수동적인 배우의 존재를 거부한 것이기도 하고, 배우에게 역할을 관찰할 수 있는 역할 이외에 또 다른 자아가 있다는 것은 배우 이중 의식에 대한 디드로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 되면서 시스템에는 디드로의 이론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모두 담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전면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환한 것이 아니라 체험을 바탕으로 한기 본적인 큰 틀의 이론적 체계는 유지하면서 실용적 인부분에 있어서 디드로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역할과의 관계에서 ‘거리 두기’의 관점이라 할 수 있는 디드로 연기론을 절반만 수용하여 ‘체험’을 통한 배우의 능동적 감성과 ‘이중 의식’을 통한 이성적 사고가 결합 된 ‘역할’과 ‘통제자’가 공존하는 연기론을 만든 것이다. 이는 체험을 통해 연기 이론으로서 기반을 다지고, 배우의 이중 의식을 통해 연기를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시스템이 연기론으로서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맞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스템에서 동반되어야 하는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 개념을 논의하면서 두 개념은 시스템 이해의 기본이어야 하는 시스템 형성의 중심 기반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스타니슬랍스키 메소드’의 줄임말[17] 이라고 할 정도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계승을 자처한 ‘메소드’는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이 지점이 시스템과 메소드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시작점이라 할 것이다. 그 연유에 대한 분석은 미국에서의 스타니슬랍스키 저술 번역과 출판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버넷 M. 합굿(Burnet M. Hobgood)은 스타니슬랍스키가 미묘하고 복잡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체험’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서 영어로 번역됨에 있어서 동사와 명사 형태를 가진 하나의 단어인 ‘Experiencing’ 으로 번역하는 것이 다양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 한다[13].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스타니슬랍스키 저술 번역을 지배하고 있는 영역본의 번역자 햅굿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배우 수업』의 원제목을 직역하면 ‘체험의 창조적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The Actor's Work on Himself in the Creative Process of Experiencing)’이지만, 미국에서는 상업적으로 더 매력적인 ‘배우 준비(An Actor Prepares)’로 출판되면서 제목에서부터 체험이 배제되었다. 본문에서도 체험이 ‘삶의 예술(The art of living a part)’, ‘장면을 사는 것 (To live the scene)’, ‘감각(Sensations)’, ‘살고 체험하는(Living and experiencing)’, ‘경험(Experience)’, ‘감정적 경험(Emotional experience)’, ‘창조 (Creation)’ 등의 여러 형태로 번역되면서 체험은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되지 않는다[18]. 합굿은 번역자 햅굿이 자신에게 보낸 서신에서 체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자신의 번역은 각 문맥을 더 명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결정임을 밝혔다고 설명한다[13]. 그러나 부드러운 문맥의 연결을 위해 자의적으로 추가된 ‘감정적’ 과 같은 형용사는 체험과 감정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여러 단어로 다르게 번역된 체험은 그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되면서 햅굿의 의도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즉, 햅굿 번역은 연기의 경험적 차원보다는 감정적 색채를 선호함으로써 미국에서 시스템을 심리적 기술로 이해시켰고, 체험은 시스템의 중심으로서의 힘과 일관성을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번역뿐만 아니라 스타니슬랍스키 저술 간의 출판 시차도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한 이해의 문제를 만든다. 이미 이전 장에서 논의되었듯이 저술 간의 출판 시차는 시스템을 심리적인 기술을 다룬 연기론으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미국, 그리고 그 영향권 아래의 모든 나라에 전해져 시스템 이해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고, 심리·신체적 유기성에 대한 이해 결여는 체험의 이해에도 영향을 끼쳤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한 이해이다. 배우의 이중 의식이 대부분 설명되는 『성격 구축』이 『배우 수업』 출판 13년 후에 출판되면서 『배우수업』만으로 이해된 시스템에는 배우의 이중 의식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에 대한 오류를 동시에 보여주는 예로는 『배우 수업』의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면 ‘역할에 가까워지고 하나 된 느낌(Come close to the role and will begin to feel as one)’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며 ‘체험하는 것이 역할(Experiencing a role)’이라 한 것[11]을 햅굿의 번역에서는 ‘너의 역할과 일치하다(Unison with your role)’, ‘역할을 살다(Living the part)’로 표현된다[18]. 즉, 『성격 구축』이 존재하지 않는 미국의 상황에서 역할과 가깝다는 역할의 일치가 되었고, 체험을 통한 역할은 역할을 사는 것이 되면서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저술 번역과 출판의 시차, 여기에 러시아 교사들의 언어적 한계까지 더 해져 미국에서는 시스템을 형성하는 주요 기반인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은 배제된 채 시스템의 계승을 말하면서도 전혀 다른 기반을 가진 메소드라는 연기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메소드를 형성하는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시스템은 심리적인 연기론이다. 시스템을 신체와 심리를 분리한 채 심리적인 것에만 집중된 연기론으로 이해하면서 감정은 신체와의 유기적인 연결 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이며 연기의 유일한 조건이 되었다. 구현의 과정이자 신체에 관한 내용인 『성격 구축』의 출판이 지연되고, 심리적 기술을 다룬 『배우 수업』만이 존재하는 13년 동안에 만들어진 메소드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굴러가는 공처럼 심리적인 기술로 향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햅굿에 의해 감정적인 방향으로 번역된 체험은 본래의 유기성과 복합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이 오류를 극복할 힘이 될 수 없었다.

둘째, 시스템에서 배우는 ‘역할을 사는 것’이다. 역할과 가까워지기 위한 체험의 존재나 동반되어야 하는 배우의 이중 의식이 희미해진 채 ‘역할로 사는 것’이 배우가 역할을 구현하는 최고의 성취 과정으로 번역되면서 역할과 배우는 동일화된다. 메소드를 만든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는 이를 발전 시켜 역할을 하는 것을 배우의 자기표현으로 만들었고,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자기만의 개성을 그대로 살려 스타가 된 할리우드 배우들이라 할 것이다.

셋째, 시스템은 연기 훈련법이다. 체험을 위한 방법들은 역할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되어 훈련에서의 성실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심리적인 기술들만 실천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되면서 스타니슬랍스키가 만들고자 했던 연기 체계는 사라진 채 『배우 수업』은 심리적 기술의 용법서가 되었다. 톨스토이의 예술에 정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의 이론적 체계는 배제된 채 메소드는 역할로 살아가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성실한 훈련법이 된 것이라 하겠다.

이를 다시 정리하자면 시스템에서의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이 잘못 전달되면서 메소드는 체험을 배우 자신의 경험으로, 배우의 이중 의식 존재를 배우와 역할의 동일화로, 이론과 훈련의 복합체계인 시스템을 심리훈련법으로 만든 것이라 하겠다. 이로 인해 발생 되는 ‘감정’에 관한 이해의 문제가 시스템과 메소드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이 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역할로서의 체험을 통한 감정이 역할의 감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메소드는 체험을 감정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배우의 이중 의식을 배제하면서 체험을 단순한 배우 자신의 경험으로 이해하여 감정은 역할이 아닌 배우 자신의 것이 된 것이다. 이것이 시스템과 메소드의 근본적인 차이가 형성된 시작이라 할 것이다. 이로 인해 메소드는 무엇보다도 배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다. 스트라스버그는 배우 자신의 감정을 위해 배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서 기억’이라는 하나의 심리적 기술에 집중하였고, 점차 고백적인 자기표현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메소드는 연기론이 아니라 심리치료라는 비판까지 받게 된다. 감정만을 위한 극단적인 정서 기억으로 스트라스버그가 향하게 되면서 다른 메소드 교사들이 반기를 들고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텔라 애들러(Stella Adler)는 시스템의 중심으로 ‘행동’을 외치면서도 지적분석에 갇혀 있었으며 ‘교감’을 내세운 샌포드 마이즈너 (Sanford Meisner) 역시 배우와 역할의 의식을 구분하지 않은 채 상대의 심리에만 의지하게 되면서 스트라스버그가 만들어 낸 메소드의 대안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그 한계 안에 머무른 것이라 하겠다.

또한, 시스템과 메소드는 ‘이상적 개념’과 ‘현실적 적용’이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메소드가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으로 훈련법으로서 가치가 증명되었듯이 시스템과 변별점이 되는 메소드의 가장 큰 장점은 실용성이라 할 수 있다. 체험의 개념을 살펴보면서 확인하였듯이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며 심리‧ 신체적으로 얽히고설킨 시스템의 개념들을 스타니슬랍스키는 은유와 간접적 표현이라는 방법을 택해 설명했고, 실제 적용 방법들도 개념 설명을 위한 예시들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법이 적용될 수 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이해되고, 변화가 가능하도록 개념을 단정 짓거나 자세한 설명을 피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스템은 쉽게 이해할 수도,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이상에 머무는 개념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에 반해 메소드는 그들만의 이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연기 훈련법으로서 실제 적용할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저서들이 모두 출판되고 시스템이 심리·신체적 과정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그들이 초기에 형성하였던 메소드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연기론으로 진화를 꾀한다. 이를 이어받은 후기 메소드 주자들이라 할 수 있는 우타 하겐(Uta Hagen)과 이바나 처벅 (Ivana Chubbuck) 등의 교사들 또한 같은 방법으로 메소드를 발전시켜 나간다. 메소드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모호하고 이상적인 개념으로 머무르는 시스템과는 다른 현실적 적용이 가능한 실용적 용법이 되는 길을 찾은 것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시스템을 이해하고 발전 시켜 세계에 전했다는 메소드의 시스템 계승에서의 의의도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것이다.

Ⅲ. 결론

시스템 관련 스타니슬랍스키 저술의 출판, 번역에서 비롯된 시스템 이해의 문제를 바탕으로 시스템과 메소드가 다른 성격의 연기론이 된 연유를 시스템의 체험과 이중 의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시스템의 신체적 기술을 다룬 『성격 구축』 없이 심리적 기술을 다룬 『배우 수업』만이 햅굿의 번역으로 전해지면서 시스템은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이 배제되고 더 심리적인 면을 강조한 채 미국에 흡수되었다. 이 같은 시스템에 관한 이해 아래 형성된 메소드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본 뼈대라 할 수 있는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 ‘심리·신체적 유기성’을 가진 시스템 기술들을 ‘감정’과 ‘정서 기억’ 으로 간단히 대체하였고, 그 결과 ‘역할’의 ‘체험’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과 ‘배우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 메소드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연기론이 되었다. 시스템에서 메소드로의 변곡점을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을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은 시스템과 메소드의 기본 체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논의의 시작점이 된다.

먼저, 우리나라의 시스템 이해에 관한 논의이다. 일본을 거친 햅굿 번역본과 러시아 번역본이 모두 존재하고, 순서가 바뀐 채 긴 시차를 두고 출판이 이루어졌던 우리나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혼란 이외에도 시스템 관련 연구에 관한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오사량의 중역본만이 존재했던 2000년 이전까지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배우 수업』의 심리적인 측면을 스타니슬랍스키시스템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으며 러시아 유학파들이 대거 등장한 2000년 이후에는 반대급부로 에쮸드 (étude)를 중심으로 신체적인 실천에 집중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시스템 연구는 현재까지도 시스템의 전기와 후기, 심리와 신체, 스타니슬랍스키와 이외의 다른 연기론 등으로 나누어 시스템을 이분법적으로 단순 비교하거나 번역본 유입과 함께 일어난 유행에 따라 부분적인 훈련이나 한정된 시스템의 요소와 적용사례 등에 집중된 연구 양상을 띠게 된다. 우리나라의 시스템 연구는 복잡한 경로로 유입되어 무분별하게 혼재하는 자료 속에서 부분별로 비대해진 불균형적 연구라는 한계를 갖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우리나라의 연구 지형은 시스템 인식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시스템 수용사를 다룬 2010년 발표된 김대현의 「스타니슬랍스키 연구사」[19]와 오사량 중역의 문제를 지적하고 시스템 용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구축하고자 한 2006년 출간된 홍재범의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한국 극예술의 접점』[20]이 우리나라의 시스템 이해를 바로 잡고자 하는 대표적 연구이다. 본 연구 역시 시스템을 올바르게 인식하고자 하는 연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의 연구 한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구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이기에 시스템 이해에 관한 논의는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시스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논의이다. 잘못된 시스템에 관한 이해로부터 메소드가 형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시스템을 변화 가능한 기초로 받아들인다면 메소드를 단순히 시스템 수용의 오류라 할 수 없다. 시스템과의 차이를 인식한 이후에도 메소드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과정으로 그 가치를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적용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그 어떤 연기론보다 효용의 면에서 메소드는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메소드는 시스템의 발전적 계승으로서, 독립적인 하나의 연기론으로 서둘 다 인정 가능한 연기론인 것이다. 이는 시스템이 현대연기의 근간으로서 역사 속에 남겨진 연기론이 아니라 지금도 변형 가능한 연기론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메소드가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연기론으로 변용될 수 있는 연기론인 시스템에 관한 논의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시스템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 학자인 소냐 무어(Sonia Moore) 가시스템은 연극 예술의 과학으로써, 항상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며 무한한 실험과 발견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듯이 시스템은 계속해서 변형 발전되고 있기에 이에 관한 연구 또한 멈출 수 없다[21]. 시스템과 메소드를 새롭게 이해하고 우리나라 시스템 연구 발전에 관한 논의의 시작점이 되고자 한 본 연구가 끊임없이 발전할 시스템 연구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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