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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nalysis on Signification and Mythical Meaning of Documentary

다큐멘터리 <이시부미>의 의미작용과 신화적 의미 분석

  • 김도형 (선문대학교 역사.영상콘텐츠학부) ;
  • 오동일 (선문대학교 역사.영상콘텐츠학부)
  • Received : 2021.08.04
  • Accepted : 2021.11.10
  • Published : 2021.12.28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signification structure and mythical meaning of Hirokazu Koreeda's documentary . In other words, by approaching the signification structure of the semiotic elements that constitute storytelling, the mythical meaning implied by is widely examined. It is to discuss the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the aesthetic form he is aiming for, and at the same time, to look at the aesthetic type that expands the meaning value of documentary storytelling. In particular, Hirokazu Koreeda uses typical and symbolic elements in harmoniously in the storytelling process. By applying such a dual aesthetic form, it effectively conveys the mythical meaning required in the times to the audience. Therefore, is a signification system that emits mythical meaning, and it reflects the aesthetic intention of Hirokazu Koreeda who has confidence in the imagination of the audience.

본 연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큐멘터리 <이시부미>의 의미작용 구조와 신화적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즉, 스토리텔링을 구성하고 있는 기호적 요소들의 의미작용 구조에 관해 접근함으로써, <이시부미>가 함축하고 있는 신화적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미학적 형식의 본질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의 의미적 가치를 확대하는 미학적 유형을 분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시부미>에서 전형적이며 상징적인 요소를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조화롭게 활용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이중적인 미학적 형식을 적용함으로써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신화적 의미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시부미>는 신화적 의미를 발산하는 의미작용 체계이며, 그것은 관객의 상상력에 신뢰감을 가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미학적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Keywords

I. 서론

1. 연구배경 및 목적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시부미(いしぶみ)>(2015)는 원폭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에 정평이 있는 히로시마 TV가 제작하고 발표한 작품으로써, 1969년에 제작된 원작 <이시부미(碑)>를 2015년 8월 전후 70주년 특별 프로그램으로 리메이크하여 니혼TV 계열에서 방송한 것이다[1].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극영화 분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사회현상과 흐름, 특정 사건에 대한 작가적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2].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이시부미>는 ‘죽음’과 ‘기억’, 그리고 ‘애도’에 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차별화된 접근 시각과 영상 논법을 구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의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火垂るの墓)>(1988)는 죽어가는 소년세이타(Seita)의 독백, “소화(昭和) 20년(1945) 9월 21 일 밤 나는 죽었다”로 시작된다. 미군의 폭격으로 홀로 남은 세이타와 여동생 세츠코(Setzuko)는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작품은 감각적 경험의 시각화를 통해 전쟁 속에 내팽개쳐진 남매의 비참함에 관객의 파토스 (Pathos)적 의식이 이입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스토리텔링 방식은 정작 “무엇이 일본을 전쟁의 광기 속으로 내몰고 일본 국민과 주변 국가들을 고통받게 했는가”라는 역사적 질문을 무력화시키고 역사적 사실에 관한 왜곡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3].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카하타 이사오와는 달리 관객의 해석적 상상력을 존중하고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신화적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방법론적으로 관객의 해석적 상상력을 존중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이시부미>에 내포된 신화적 의미에 관해 관객이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말하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시부미>를 리메이크하면서 전형화와 상징화를 토대로 하는 의미작용 (signification)을 작품 전반의 스토리텔링에서 관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최근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보면 화자(話者) 의내레이션(narration)이나 인터뷰 내용을 자막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으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시부미>를 제작하면서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화자의 목소리를 자막처리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 자신의 자의적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의 주요 요소로 작용하도록 활용했다. 그것은 관객의 상상력을 신뢰하고 그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영상미학과 의미체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4]. 그러나 원작과 <이시부미>를 구성하는 의미체계를 분석해보면 두 작품이 추구하는 신화적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를 통해 중점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이시부미>의 의미작용과 신화적 의미 분석은 궁극적으로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의 의미적 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미학적 유형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시부미>에 나타나는 의미작용 구조의 분석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추구하는 차별적인 미학적 형식의 본질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기도 하다.

2. 연구범위 및 방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에 관한 국내의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면, 주로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적 내용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 주제적 내용의 구현을 위한 스토리텔링 요소와 형식 등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이다[5][6]. 그러나 그러한 선행 연구의 대상과 범위는 텍스트로서 작품이 지닌 주제적 의미와 스토리텔링의 구조 등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그와 같은 선행 연구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하여 <이시부미>의 의미작용 구조와 함축된 신화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기호적 요소들의 의미작용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이시부미>가 내포하고 있는 신화적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와 관련하여 이론적 배경으로써 기호학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기호(sign)’란 의미작용을 위한 최소의 단위이다. 그리고 의미작용은 기호를 구성하고 있는 기표(signifier)와기의(signified)의 의미체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자의(恣意)적이며 의식(意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호의 의미작용에 따른 의미 해석은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 구조에 의해 결정되며, 의미체계는 문화적 배경과 상황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7].

특히, 이론적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는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의 ‘신화론’은 연구 방법론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는 루이 옐름슬레우 (Louis Hjelmslev)의 의미작용 분석 모델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기호·약호·텍스트의 의미작용 분석을 위한 모델을 1, 2단계의 의미작용 수준으로 설명했다[9]. 다시 말하면, 바르트는 [표 1]에서와 같이 신화를 상호 연결되어 일어나는 함축의미적인 개념의 연쇄로 바라봤다. 1단계 의미작용(외시의미) 체계가 촉발하는 기호를 2단계 의미작용(함축의미)을 위한 기표(형식)로 봤으며, 그와 같은 기표(형식)는 함축의미라고 할 수 있는 기의(개념)와 결합하여 신화적 의미를 내포하는 기호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화는 여러 유형의 표현들로 구성될 수 있으며, 실사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신화를 구성하는 연쇄적 개념들을 촉발하는 기본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다 [10][11].

표 1.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 구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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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이해

1. 다큐멘터리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가가 되고 싶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문예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등 다양한 영화언어의 실험을 통해 작품세계를 구축한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영화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진로를 영상 분야로 수정했다. 그러나 당시 다른 사람들처럼 8mm 영화를 제작해보거나 집단작업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우선 시나리오를 읽거나 매일 새로운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12]. 그리고,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 작가가 되면 영상 제작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그에게 있어서 TV 프로그램은 현실적인 선택지 중 하나였다[13].

실제로, 1987년 대학을 졸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TBS 출신의 연출자들이 설립한 유명 제작사 ‘티브이 맨 유니언(TV Man Union)’에 들어가면서 TV 다큐멘터리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영상 분야에 매력을 느꼈던 주된 이유는 영상제작을 하면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취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적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깨뜨리는 매우 자극적인 작업이다. 그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이 훨씬 복잡하고 풍요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14].

2.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큐멘터리

‘티브이맨 유니언’에서 조연출로 수년간 현장경험을 쌓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미나마타병 화해 소송과 관련된 환경청의 고위 관료가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복지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게 된다. 실제로, 그는 성실하게 근무하던 어느 공무원의 자살을 다룬 작품 <그러나…복지를 버리는 시대로(しかし… 福祉切り捨ての時代に)>(1991)를 통해 마침내 데뷔했으며, 이 작품으로 여러 상을 받는 등 TV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2015년 <이시부미>를 리메이크할 때까지 약 17편의 TV 다큐멘터리 작품을 연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일본 나가노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3년 동안 바라본 <또 하나의 교육 : 이나초등학교 봄반의 기록(もう一 つの教育〜伊那小学校春組の記録〜)>(1991)이 있다. 이 작품은 1992년 ATP(Association of All Japan TV Program Production Companies)에서 논픽션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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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또 하나의 교육 : 이나초등학교 봄반의 기록>

또 다른 대표작품으로는 입원 중인 병원의 영양 관리 문제로 인해 새로운 기억을 쌓아 갈 수 없는 ‘전향성 건망증’에 걸린 한 남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2년 반 동안 기록한 <기억이 사라진 때(記憶が失われた時…〜ある 家族の2年半の記録〜)>(1996)를 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작품을 통해 의료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며, ‘사람에게 있어서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물음에 접근하기도 했다[15].

이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TV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본인의 참여를 통해 ‘물음’에 대한 끊임없는 ‘추궁’의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통해 어떤 ‘물음’에 대해 ‘해답’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각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3.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큐멘터리 미학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큐멘터리는 현실과 그것의 재현에 대한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TV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처음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나, TV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관습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Voice Over Narration)’을 활용해 여러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도 있으나, 그 자신이 직접 사건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현실을 작품 속에 재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이 직접 등장하지 않을 때도 그의 다큐멘터리는 작품의 주제적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1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는 재현의 과정을 통해기호화된 현실이 암시하는 현상의 이면에 관한 2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미학적 경향으로 인해서 그의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대상이나 인물을 활용한 허구(fiction)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6]. 그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있어서 재현이라는 것은 현실이라는 재료를 의도적으로 충돌 시켜 그 이면에 함축된 의미를 도출시키는 미학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재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 속 등장인물의 여과된 표정과 감정, 인물들 간의 관계성, 기억에 관한 언급 등이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17].

Ⅲ. <이시부미>의 의미작용과 신화적 의미에 관한 접근

1. 전형화의 의미작용: ‘시대에 대한 분노’

원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리메이크한 <이시부미> 와 달리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321명의 학생에 대한 ‘슬픔’의 정서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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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이시부미>(1969)의 화자 스기무라 하루코

원작에서는 1945년 8월 6일 원자 폭탄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당시 히로시마 제2중학교 1학년의 유족으로부터 전해진 수기를 히로시마현 출신의 여배우 스기무라 하루코(杉村 春子)가 모놀로그(monologue) 형식으로 낭독했다. 수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원폭투하 후 죽어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같이 갈게’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은 ‘괜찮아, 엄마를 만났으니 됐어’ 라고 대답한다.” 스기무라 하루코는 이러한 내용의 수기를 읽으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픈 심정에 이입되어 오열하기도 했다. 스기무라 하루코가 보여준 그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특히, 당시 TV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달리(dolly) 숏이나 9분간의 롱숏 등과 같은 영상기법을 사용하며 관객의 감정이입은 매우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18].

그러므로 원작에서는 원폭이 있었던 히로시마 지역 출신의 스기무라 하루코가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기호화되어 1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했다. 즉, 오열하는 스기무라 하루 코는 기표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의 슬픔이라는 기의를 내포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긴 어머니라는 기호로서 의미작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1단계 수준에서의 기호는 2단계 수준의 연쇄적인 의미작용 과정에서 ‘피해자’라는 다른 차원의 함축적 의미가 기의로 더해지면서 ‘미국이 가해자인 원폭의 피해자’라는 신화적 의미가 형성됐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나 리메이크된 <이시부미>는 원작과는 다른 차원의 신화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본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노여움입니다.”라고 <이시부미>의 주제를 설명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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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이시부미>(2015)의 화자 아야세 하루카

<이시부미>의 화자로 등장하는 아야세 하루카(綾瀬 はるか)도 스기무라 하루코와 마찬가지로 히로시마현 출신의 여배우이며 모노로그 형식으로 수기의 내용을 전달한다. 그러나 두 화자의 공통점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같은 내용의 수기를 낭독하면서도 두 화자로부터 느껴지는 감성과 정서는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작에서의 스기무라 하루코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원폭의 피해자 위치에 존재했다. 그러나 리메이크된 <이시부미>의 아야세 하루카는 히로시마 제2중학교 선생님의 전형화된 모습으로 수기를 낭독하며 피해자 의식을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자책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아야세 하루카를 재료로 표현하는 <이시부미>의 1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은 당시 히로시마 중학교 선생님을 기표로 하고, 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을 기의로 내포하며, 원폭으로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한 학생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선생님을 기호로서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일출은 오전 5시 24분. 아침부터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321명의 히로시마 제2중 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이날 먼 곳에 사는 학생들은 5시 30 분, 가까운 곳의 학생들은 7시 30분 정도에 집을 나섰습니다. (원폭 장면) 그때 뒤를 돌아본 순간 벽돌담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수많은 친구가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화자 아야세 하루카는 이와 같은 내용의 수기를 담담하게 낭독한다[20].

1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에서 형성된 기호로서의 아야 세 하루카는 2단계 수준의 연쇄적인 의미작용 과정에서 ‘분노’라는 다른 차원의 함축적 의미로 확장한다.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가 만든 시대적 상황과 학생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어른을 상징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상호 연결되어 일어나는 신화적 의미를 보여준다. 그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원작에서 형성된 ‘지배적 신화(dominant myths)’에 대해 <이시부미>를 리메이크하며 50여 년이 지나 새로운 ‘대항적 신화 (counter myths)’를 작품을 통해 제시하는 실천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21][22].

2. 상징화의 의미작용: ‘기억이 아닌 현실’

<이시부미>의 장면에는 원폭 돔(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을 상징)을 연상시키는 원기둥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었고 그 안에 놓인 나무상자가 교실 의자나 강, 그리고 관이나 비(碑)를 상징하며 차례로 변화해 가는 무대 세트도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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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이시부미>(2015)의 공간 배경 및 장치

앞서 언급했듯이, <이시부미>는 모놀로그 형식으로 화자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주로 전개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와 같은 화자의 목소리로 형상화되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튜디오 세트와 장치 등을 과감히 생략하고 상징화하는 미학적 형식을 적용했다. 그것은 관객의 의식을 작품에 종속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이 확장되는 것을 의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작에서처럼 관객의 감정이입을 강화하기보다는 각자의 가치관과 경험, 상상력을 토대로 작품 속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4].

그리고 <이시부미>에서는 과거 원폭으로 죽음을 맞이한 학생들, 히로시마 제2중학교를 상징화한 공간(스튜디오)과 생존자에 대한 인터뷰 장면, 자료관 등과 같은 현실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두 공간은 먼저 조명과 자연광으로 인해 색상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렇듯 작품에서 표현되는 공간을 색상의 이미지에 따라 구분한 것은 색상이 지니는 상징성, 보편성, 차별성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이시부미>에서 보이는 색상은 다른 언어적 요소들과 융합되어 작품의 메시지와 정서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기호로서 작용한다[23]. 그것은 <이시부미>가 분노로 감싸고 있는 전쟁을 주요 소재로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단지 슬픔의 정서로만 다가서지않고자 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의도가 담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작품 의도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슬픔으로 가득한 프로그램들도 많습니다.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쉽습니다. 특히, 슬픔이나 감성적으로 포장해 전쟁을 말하는 행위는 저는 윤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접근 시각은 원작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4].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시부미>에서 상징화된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이중적으로 교차시키며 또 다른 차원의 신화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1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으로 보면, 먼저 상징화된 공간은 기억 속의 공간이다. 즉, 1945년 8월 6일의 기억을 기표와 기의를 통해 적절하게 구현한 것이다. <이시부미>의 스토리텔링은 분명히 그와 같은 상징화된 기억의 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시부미>는 당시 원폭에서 살아남은 히로시마 제2중학교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여준다. 그러한 장면은 관객에게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현실’ 공간에 대한 주의를 효과적으로 환기한다. 다시 말하면, 노인이 된 생존 학생의 모습을 기호로 활용하면서 히로시마 제2중학교 학생들에게 벌어진 일을 현실 속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시부미>의 두 공간적 표현을 통해 2단계 수준의 의미작용을 가능하도록 하며, 관객들에게 ‘기억의 현실화’라는 신화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그림 5]에 등장하는 생존자는 당시 기억을 되짚으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정말 성실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러한 내용을 통해 1945년의 일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각인시킨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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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이시부미>(2015)의 원폭 생존자 인터뷰

[그림 6]에서처럼 동생의 유품이 있는 자료관을 방문한 형은 “왔구먼”이라고 인사를 한다. 형의 이 한 마디를 통해 자료관에 전시된 유품들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기호가 아닌 현실과 이어지는 현실 속 기호적 의미로 전환된다[4]. 그러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원폭을 경험하지 않은 대다수 관객도 죽은 학생들과 이어짐 속에서 현실 공간에 살아 있다는 신화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앞서 설명했던 전형화의 의미작용이 상징화의 의미작용과 연계되면서 작품 전반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의도하는 신화적 의미가 효과적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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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이시부미>(2015)의 자료관

Ⅳ. 결론

본 연구를 통해 다큐멘터리 <이시부미>에서 나타나는 의미작용의 구조와 그에 따른 신화적 의미를 분석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리메이크한 <이시부미>는 원작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대응적 신화를 작품 속에서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미학의 본질적인 특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다큐멘터리 <이시부미>는 전형적이며 상징적인 요소를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조화롭게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전형화와 상징화는 리얼리즘의 척도 기준으로 볼 때, 상호 극단적인 위치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시부미>에서 그와 같은 이중적인 미학적 형식을 적용함으로써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신화적 의미와 메시지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미학적으로 그와 같은 두 측면의 스토리텔링 요소를 주요 장면의 화자와 배경 세트 등에 적용함으로써 작품 전반을 신화적 공간으로 풍요롭게 구축했다. 그와 같은 공간은 작품에 함축된 신화적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의미작용 체계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관객의 상상력에 신뢰감을 가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미학적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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