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괴산 원풍리 마애불병좌상은 보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는 초대형 마애불이다. 이불병좌상은 발해에서 동경용원부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던 불상이나 신라나 고려에서는 조성 사례가 매우 희박하다. 본문에서는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의 조성 시기를 10세기 후반기인 광종 집권기로 파악할 수 있었다.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 소백산맥을 넘는 주요 교통로 입구에 조성된 이유는 진천과 청주 세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진천과 청주는 광종에 앞서 재위하였던 고려 2대, 3대 왕인 혜종과 정종의 처가 세력들의 세거지였다. 이들은 광종이 가장 경계했던 호족들이었다. 마애이불병 좌상의 제작에는 중앙 정부의 후원 하에 충주와 문경 지역 장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문경 지역 장인들의 경우 발해 유민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의 제작에 발해 유민들이 참여하였을 가능성은 마애불이 발해에서 유행하였던 이불병좌상인 점, 협시보살 보관의 특징이 발해적 요소가 확인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각연사 비로자나불좌상 광배 후면의 불패형 불탑이 발해적 요소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고려시대 발해 왕실 후예로 추정되는 대씨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개 태씨로 기록되어 있으며 태씨들의 집단 거주지가 문경이라는 점을 통해 발해 유민들이 고려초 문경에 정착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은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 북부와 충청도 중부 지역을 왕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려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 그 권위는 한 때 광종에 대항하여 권력 투쟁을 벌였던 진천과 청주의 호족 세력들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거대한 이불병좌상을 주요 교통로에 조성한 이유는 후삼국 시기 이후 고려에 내투한 수만의 발해 사람들이 광종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또한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은 10세기 후반 경 광종대의 시대적 상황과 조각사의 흐름이 잘 반영되어 있는 의미 있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
The rock-cut relief of two Buddhas seated side-by-side in Wonpungri is a large Buddha sculpture in relief on the side of a cliff in Wonpung-ri, Goesan. This Buddha sculpture is from the Buddhist scripture Sutra of the Lotus. <法華經> Two seated Buddhas statues were prevalent in the Balhae Kingdom, but this was not popular in Silla and Goryeo. In the main text, the time that the two seated Buddhas in Wonpung-ri was created is identified as being during the 10th century. King Gwangjong created a Buddha statue for political purposes. The relief of two seated Buddha image carved on a cliff is located on an important traffic route over the Sobaek Mountain Range. After King Gwangjong took the throne, he paid close attention to the reigning powers of Jincheon and Cheongju because the people of Jincheon and Cheongju were engaged in a power struggle against Gwangjong. The huge relief of two seated Buddhas statue shows the authority of King Gwangjong. In particular, the people of Jincheon and Cheongju had to see this Buddha statue when crossing the Sobaek Mountain Range. The image contained in the relief of the two seated Buddhas features many characteristics of the sculpture style of the Balhae Kingdom. After the fall of Balhae, many of the Balhae people settled in Mungyeong. Balhae people from Mungyeong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the relief of the two seated Buddhas. Through the relief of the two seated Buddhas, King Gwangjong wanted to show the people of Jincheon and Cheongju that the Balhae people were supporting him. The relief of two seated Buddhas reflects the historical situation of the King Gwangjong era in the late 10th century and the style of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