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18년 4월, 서울시는 2019년부터 ‘서울형 유급병가제도’를 도입할 것을 발표하였다[1]. ‘서울형 유급병가’는 서울시 근로자들의 상병으로 인한 근로활동 중단과 이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제도로, 근로자들 중에서도, 특히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중위소득 100% 미만에 해당하는 저소득근로자와 영세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발표된 내용에서는 이들이 입원할 경우 서울시가 서울시 생활임금에 해당하는 8만 1,184원을 최대 11일(건강검진 1일 포 함)까지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12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에 관한 조례안’과 예산이 가결되면서 정식적으로 도입되었고, 2019년 6월부터 시행되었다[2].
서울형 유급병가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행하는 상병수당제도의 시범사업으로서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다1)[2-5].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상병으로 인해 근로활동을 중단하게 될 경우 이에 대한 소득상실을 보전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 부가급여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시행하고 있지 않다2). 국제노동 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에서는 상병수당을 ‘사회보장협약(최저기준협약)’과 ‘요양과 상병급여 협약,’ ‘상병급여 권고’ 등을 통해 국가가 근로자에 대한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6]. ILO의 기준을 살펴보면, 최저기준협약이 가장 완화된 기준이며, 상 병급여협약, 권고 순으로 강화된 기준을 가지고 있다[7] (Table 1).
Table 1. The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regulations for sickness income security
From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nformation System on International Labour Standards [Internet]. Geneva: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cited 2020 Mar 2]. Available from: https://www.ilo.org/dyn/normlex/en/f?p=NORMLEXPUB:12100:0::NO::P12100_INSTRUMENT_ID:312247 [7].
MSC, minimum standards convention; MCSBC, medical care and sickness benefits covention; MCSBR, medical care and sickness benefits recommendation.
제도 내용만을 고려했을 때는 서울시 유급병가가 ILO에서 제시한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우선 적용범위에 있어서 서울시 시민에 한정되고 그 안에서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위 소득 100% 이하인 사람들만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완화 된 기준인 최저기준협약의 근로자 중 50%, 경제활동인구 20% 이상을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급여기간과 급여액에서 최저기준협약이 최저 26주, 이전 소득의 45%를 제시한 것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7] (Table 1). 이렇게 보장성이 낮은 요인에는 무엇보다 서울시 지방정부의 재원으로만 운영된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울시가 책정한 예상 소요예산은 약 51억 원으로[2],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평균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대비 상병수당 지출 비중이 0.4% (2013년 기준)라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작은 규모였다[8,9].
다만 이러한 제한된 재원 속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그것은 보장대상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집단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지역가입자만을 우선대상으로 한 것은 직장가입자의 경우는 대부분 회사에서 제공하는 연차휴가가 있기 때문에 별도로 유급병가라는 제도를 만들 필요성이 적기 때 문이다(근로기준법 제60조). 지역가입자들은 고용형태가 대부분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특수형태 근로자, 재택근로자, 용역근로자 등 현행 사회보험의 보장범위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근로자로서의 지위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여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에서도 보장받기 어려우며, 연차휴가마저 사용하기 어렵다[3,10]. 이 렇듯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라는 시대적 추세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처한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적 보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제도가 이전에는 없다가 갑자기 어떤 과정으로 서울시에 도입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자아낸다.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크게 확산되면서 많은 가구들이 의료비가 아니라 소득상실로 인해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기에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최근 국내에서 상병수당제도가 논의된 것은 2017년 대선 전후였으며, 당시 여론에서는 상병수당을 주로 거론하였다. 결론적으로는 대선 이후 중앙정부에서 ‘시기상조’의 입장을 내비치며 상병수당의 도입은 무산되었는데[3,11],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서울시에서 관련 정책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서울시에서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보장설계가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정책결정모형을 통해 파악한다면 우리나라 보건정책분야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는지 알 수 있고, 나아가 향후 새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하고자 할 때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우연한 사건을 통해 보편적 상병수당 도입이 논의되다가, 도중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서울시에만 적용되는 서울형 유급병가로 변경되었는지 그 정책결정과정을 분석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서울형 유급병가의 도입과정은 물론, 그 이전에 상병수당제도가 국내에서 논의되었던 과정도 함께 포함하여 정책모형 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정책결정과정을 설명하는 이론들 중 고 적 의사결정모형으로 합리모형과, 만족모형, 점증주의 모형3)이 있는데, 이 이론들은 정책의제설정, 정책결정, 정책변동 등이 문제정의와 대안탐색 및 비교, 선택이라는 선형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에 본 주제와는 적합하지 않았다[12,13].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 은 기존 고전적 의사결정모형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책의 제설정 및 정책결정이 비선형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론으로, 정책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잘 설명해줄 수 있고 정책변동의 동태성을 보다 깊고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서울형 유급병가의 복잡한 도입과정을 분석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연구방법
1.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은 정책의제설정 및 정책결정이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선형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13,14]. 그동안 국내에서 다중흐름모형을 통해 정책결정과정을 분석한 연구들은 대부분 행정학과 정책학 분야에서 다루어져 왔으나[15-18], 보건정책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정책결 정과정을 분석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중흐름모형은 정책결정과정이 인과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된다고 보는 고전적 모형과 달리, 정책문제, 정책대안, 정치 3가지 흐름들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다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서로 합류하게 (coupling) 될 때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린다고 설명한다 [19-21]. 또한 정책기업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이것은 정책의제 설정과정이 정책구조, 정책체제 내에서 시스템적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12]. 각각의 요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정책문제의 흐름
Kingdon의 정책문제의 흐름은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시점에서부터 정책참여자들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17, 18, 22]. 그리고 이들이 문제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들은 비용, 실업률, 빈곤율과 같은 여러 지표들이나, 우연한 사건・사고와 같은 초점사건, 기존 진행된 사업에서 도출된 피드백(환류) 등을 통해 정책문제의 존재와 문제 심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13, 18, 20, 22].
2) 정책대안의 흐름
정책대안의 흐름은 정책공동체(policy community) 구성원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들을 제시하는 단계이다[13]. 정책공동체 구성원들은 주로 공무원, 정치인, 연구자 등 전문가들이며, 이들이 포럼,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정책 아이디어들을 논의하고 정책대안들이 정책결정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18]. 제시된 대안들은 하나의 원시적인 수프(primeval soup)에 섞여 떠다니다가[12, 13, 22], 이 중 몇 개의 대안만이 선택되는데, 이때 선택되는 기준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technical feasibility)과 가치의 수용성(value acceptability) 이다[20,22]. 기술적 실현 가능성은 한 대안이 채택될 경우 그것이 집행될 가능성이 충분함을 뜻하며, 가치의 수용성은 대안의 가치가 사 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이다[19,23].
3) 정치의 흐름
정치의 흐름은 정부의제를 결정의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적 분위기, 이익집단의 활동, 행정부나 입법부 집단의 교체, 의회의 권력구조 변화, 여론의 변화와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의미한다[18, 20, 22, 24]. 특히 국가적 분위기와 행정부 또는 입법부 집단의 교체가 동일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 주요 정책참여자들을 변동시키기 때문에 정책의 제설정 및 정책결정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한다[18, 20, 22].
4) 정책의 창
Kingdon은 정책의제설정 및 정책결정은 정책문제와 정치, 대안 각 3개의 흐름이 결합될 때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 결합하는 순간을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렸다고 한다. 정책의 창은 보통 때보다 새로운 정책이나 법안이 선택될 가능성이 큰 기회이기 때문에[25], 정책 상황 주도자들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책문제에 정책결정 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에 대한 정책대안을 관철시킨다[26-29]. 특히 정책의 창이 열리는 기간은 짧기 때문에 정책상황 주도자들이나 정책결정자들은 정책의 창이 열리는 기간에 자신들의 시간, 노력, 자 금, 인적 네트워크 등을 모두 집중하게 된다. 정책의 창은 예측 가능하게 열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예측 가능한 경우는 국회에서의 법안심사 및 예산심의, 정책기한 만료로 인한 재검토를 하는 경우 이며, 예측 불가능한 경우는 사회적 사건, 선거 등을 통한 의회 집권당 변화 주요 정책결정자의 교체 등의 경우다[12,30].
5) 정책기업가
정책의 창이 열릴 때 항상 정책변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시적인 수프에 떠돌아다니는 다양한 정책대안들 중 모든 이들의 관심 과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촉매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정책기업가 가 그 역할을 한다[22]. 정책기업가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pet solution)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이 지닌 돈, 시간, 권력, 명성, 인적 네트워크 등 여러 자원을 투입하여 세 흐름들을 정치적으로 조작화하 여 결합시킨다[13, 18, 19, 22]. 정책기업가의 역할은 크게 이슈 주창 (advocacy)과 정책중개(brokerage)로 구분되는데, 이슈 주창은 정책 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대안을 내세우는 것이고, 정책중개는 이해관계자들과 협상하여 세 흐름을 결합하는 것이다[13, 22, 31].
2. 분석 틀
본 연구의 분석 틀은 Figure 1과 같다. 먼저 상병수당제도와 관련한 정책문제, 정치, 정책대안 각각 세 가지 흐름에서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첫째, 정책문제의 경우, 정책의 창이 열리기 이전에 가장 최근 이슈가 된 사건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왜냐하면 다중흐름모형 은 어떤 위기, 사건 등이 발생하면 그것이 정책문제로 이어진다고 하는 선후관계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이미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그것이 우연적인 계기로 주목받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책 문제는 지표와 초점사건, 그리고 기존 정책들에 대한 환류를 통해 파악한다. 둘째, 정치의 흐름은 국가적 분위기, 이익집단의 활동, 그리고 행정부나 입법부의 교체 등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국 가적 분위기는 새로운 정부 의제가 제시되기에 충분한 정치적 상황이나 국민여론조사 등을 통해 파악할 수 있으며, 이익집단의 활동이나 행정/입법부, 또는 정권 교체는 당시 신문기사 등을 통해 드러난 사실 그 자체로 파악할 수 있다. 셋째, 정책대안의 흐름은 정책공동체가 개최한 공청회, 토론회,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가치 수용성을 포함하여 파악할 수 있다.
위 세 가지 흐름이 어떻게 결합하여 정책의 창이 열리게 되었는지 파악한다. 정책의 창이 열리는 기간은 어떤 특성이 있었는지, 그리고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열리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왜 전국 상병수당제도 도입은 추진되지 않고 서울시의 서울형 유급병가제도 가도입되게 되었는지를 파악함에 있어 정책기업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정책기업가가 어떤 방식으로 정책결정과정에 기여하였는지를 자원과 전략, 그리고 이슈 주창(또는 정책중개) 등으로 파악한다.
3. 연구자료
본 연구에서는 Figure 1의 분석 틀을 토대로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신문에서 처음 상병수당이 언급된 1994년부터 서울형 유급병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2018년 12월까지의 신문기사와 학술논문, 정부 및 정당 발표자료, 서울시의회 회의록 등의 자료를 통해 분석하였다(Table 2). 그러나 신문의 경우 신속성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정치인, 관료들을 중심으로 기사 내용을 보도하는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해 정책을 추진하는 숨은 공로자, 실질적 리더(leader) 역할을 수행하는 중견급 관료 및 advocacy coalition의 영향 등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거나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책이 시행되고 난 이후의 서울형 유 급병가 관련 신문기사 중 정책추진을 담당한 인물의 인터뷰 기사 자료를 추가로 참고하고, advocacy coalition의 영향에 대해서는 위에서 파악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도출하고자 한다. 아울러 연구자료는 1994년 신문기사부터 참고하지만, 실질적인 분석은 2014년 이후의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의 신문기사 수 가 너무 적었고, 대부분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일회성으로만 언급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4) 마지막으로 학술논문의 경우 본 연구의 분석에서 보조적인 참고자료로써만 활용하였다.
Figure 1. Research model.
Table 2. Data used for analysis
먼저, 정책문제 흐름의 경우, 관련 지표와 초점사건, 그리고 환류를 통해 파악한다. 상병소득보장제도와 직접 연관된 지표는 거의 없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상병수당 및 서울형 유급병가가 상병으로 인해 손실될 수 있는 가계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지불능 력 대비 의료비 부담수준’을 나타내는 ‘재난적 의료비 지표’를 대신 제 시하고자 한다. 또한 신문기사 자료를 통해 초점사건에 대해 밝히고 정책문제가 제기되어온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환류의 경우에는 일부 학술논문들을 통해 상병수당이 아닌 의료비 보장성 확대에만 초점을 맞춰온 정책들의 성과가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정치의 흐름에서는 상병수당에 대한 기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던 시기의 신문기사 분석을 통해 정치적 사건과 분위기, 관련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의 활동, 정당 및 정부의 입장 등을 살펴보고, 기사에 언급된 상병수당 관련 포럼, 세미나 등 학술발표 자료, 국민대상 설문조사 자료 등을 추가로 분석하였다. 정책의 흐름에서는 정책의제설정의 기준이 되는 실현 가능성과 가치수용성을 정부정당의 발표자료와 신문 기사, 학술논문, 서울형 유급병가제도를 제시한 연구기관의 자료, 서울시의회 회의록 등을 통해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창과 정책기업가, 정책채택에 관해서는 위 세 가지 흐름을 분석한 자료들을 토대로 각 주제별로 정리하여 분석자료로 활용하였다.
분석결과
서울형 유급병가 정책결정과정을 다중흐름모형 분석 틀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요약하면 Figure 2와 같다. 우선 특징적인 몇 가지를 언급 하자면, 첫째, 정책문제의 흐름은 정책의 창이 열리기 전 가장 최근의 사건만 제시하였으나, 그럼에도 다른 두 흐름보다 앞서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정치의 흐름은 정책의 창이 열리는데 가장 직접적 인 영향을 미쳤으며, 셋째, 정책대안은 정책의 창이 열린 이후에야 활발히 논의되는 양상을 보였다. 넷째, 상병수당의 정치적 흐름과 정책 대안의 흐름은 중앙정부에서 반려의사를 내비치면서 멈추어버린 한편, 서울시에서 그 흐름들을 이어받아 다시 합류시키면서 최종적으로 정책결정을 이루었다. 다섯째, 수많은 정치적 혼란과 정책대안 속 에서 서울형 유급병가의 정치적 흐름을 끌어낸 것은 정책기업가의 역할이 컸으며, 이는 다중흐름모형의 적용이 적절했음을 시사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한다.
Figure 2. Policy making process of Seoul-type paid sick leave. President Park: Park Geun Hye, former president. Mayor Park: Park Won Soon, former Seoul Mayor. Minister Park: Park Neung Hoo, Minister of Health and Welfare.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NGOs, non-government organizations; NHI, National health insurance.
1. 정책문제의 흐름
정책문제의 흐름에서는 지표, 초점사건, 환류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다. 먼저, 상병수당과 직접 연관이 있는 지표는 거의 전무한 실정인데, 유일하게 Jung 등[32]의 논문에서 재난적 의료비 지표를 소득보장 정책의 필요성으로 연결 지은 사례가 있어 이를 근거로 제시한다.
재난적 의료비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가계의 의료비 지출이 연간소득의 40% 이상인 경우를 ‘재난적 의료비’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구는 3.7%로, 의료비 부담이 심하다고 알려진 미국보다 더 높다[33]. 이에 국내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연구가 유행이 라고 할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34], 대부분의 연구들은 문 제 원인을 높은 의료비 본인부담금 비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역시 2018년부터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 정책을 추진 중이며,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학계의 분위기를 본다면 의료비로 인한 가계의 과한 부담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문제에 대해 인식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난적 의료비 지표는 지출된 의료비를 분자, 가계 지불능력을 분모로 하여 비율적으로 파악하는 지표이다. 따라서 의료비의 규모 자체도 중요하지만, 가계 지불능력이 저하되는 경우도 중요하게 고 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Jung 등[32]의 논문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수행된 대부분의 재난적 의료비 지표와 관련된 연구들은 의료비 부담수준에만 문제의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Jung 등[32]의 연구도 2019년 논 문이기 때문에 정책의 창이 열리기 이전의 문제흐름 속에서는 그와 같은 인식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의료이용으로 인한 가계의 빈곤화나 재난적 의료비 등의 문제인식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그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의료비 보장을 확대하는 것에 일관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상병수당제도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든 주요사건으로는 대표적으로 송파 세 모녀 사건, 메르스 사태 등이 있었다(Figure 2). 송파 세 모녀 사건은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상병 으로 인한 소득단절로 인해 생활고로 고생하다 방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동반 자살하여 사회적 이목을 끌었던 사건이다[35]. 이에 따라 여 러 언론에서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상병수당제도의 필요성과 연관지어 보도하였다[36-42]. 하지만 이러한 기사들은 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주요 언론사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으며, 또한 모든 기사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상병수당을 제시했다기보다 상병수당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세 모녀 사건을 인용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위 기사들은 주로 칼럼형태로 보도되었고, 문제 사건이 발생한 2014년보다 상당 시간 이후인 2015년 과 2016년, 2017년 각각 보도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메르스 사건은 2015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급성 호흡기 감염병이 우리나라에 발생하여 186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38명이 사망한 사건이다[43]. 당시 고용 불안정 노동자들이 실직과 소득상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도 감추는 등 통제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것을 문제 삼아 일부 언론에서는 건강보험에서 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8,44]. 세 모녀 사건과 비교하면 메르스 사건에서는 문제 발생과 정책대안인 상병수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언론에서 다루 어졌다. 다만, 언론에서도 그 내용을 다루는 기사 수가 많지 않았으며, 주요 언론사에서 언급한 적도 거의 없었다[3].
Kingdon의 모형에서 환류(feedback)는 기존 정책사업에 대한 평가로,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의료비 보장확대에만 초점을 맞춰온 정책들의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부터 시행된 산정특례제도를 들 수 있다. 산정특례제도는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등 고 액의료비를 발생시키는 4개 질환들에 대해 본인일부부담률을 경감 하거나 전액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제도가 시행된 이후 3‒4년 이 지난 시점에 제도의 효과성을 분석한 연구들은 정책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거나 제한적이었다고 보고하였다[45,46]. 이러한 정책의 비효과성은 의료비 보장성 확대만으로는 실질적인 가구의 경제적 부 담을 덜어주기 어렵다는 의구심을 일으켰으며, 상병수당의 필요성을 제시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47].
2. 정치의 흐름
1) 국가 차원의 정치적 흐름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는 상병수당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제도에 주목하는 계기가 된 정치적 사건은 2016년 3월 29일 기획재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에 17조 누적흑자가 있다고 밝히게 된 것이었다 (Figure 2). 당시 기획재정부는 7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서 적립금이 늘어날 경우 이를 해외투자나 부동산투자, 사회간접자본 등에 투자하는 대체방식을 통해 자산운용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론하였고, 이에 여러 시민단체들이 반발하였다[48]. 다중흐름모형에서는 이익 집단이 정책문제와 대안에 대한 정치적 활동을 함으로써 정책의제설 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20], 이때도 시민단체들이 건강보험흑 자 활용에 대해 상병수당 도입과 의료비상한제 도입 등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력을 주었다[48].
그리고 이후 건강보험 누적흑자 사건은 금세 잊힐 만큼 큰 정치적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는데, 최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이었다(Figure 2). 그리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19대 대통령선거가 2017년으로 조기에 치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분위기는 이미 새로 정권을 잡을 정부가 복지정책을 강화하리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진보당이자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 당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으로 여당인 새누리당보다 1석 더 많이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Figure 2). Kingdon 모형은 정치의 흐름이 정권의 교체, 의회 내 이념 의 변동, 정당 의석의 변화 등을 통해 바뀐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비슷 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는 커다란 정책의 창이 열린 순간으로, 정책의 창은 정치의 흐름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과도 일치하였다[20]. 실제로 대선기간인 2017년 2, 3, 4월 석 달 동안 상병수당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이 실리기도 하였다[3]. Kingdon의 모형에서는 정책의 창이 열렸을 때, 정책기업가가 주도적으로 자신이 옹호하는 정책변동을 위해 돈, 명성, 시간, 자원, 에너지 등을 집중하여 투입하게 된다[22].
두 번의 선거는 새로운 정부의제가 제시되기에 충분한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여러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은 선거공약을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먼저 상병수당을 주장했던 정치인들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이슈였던 ‘기본소득제’를 ‘한국형 기 본소득제’로 변형시켜 제안하였으며, 이 내용에 상병수당을 포함하여 제시하였다[49]. 그리고 천정배 대표는 일자리 복지 차원에서 상병 수당을 주장하였다[50]. 그리고 상병수당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도입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밝힌 정치인들도 있었다. 2017년 4월 초 당내 경선 중이었던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심상정, 안철수, 유승민 6명의 대선 예비후보에게 한 시민단체가 보건의료분야 5개 핵심 이슈에 대한 입장을 물었고, 그 중 상병수당에 대하여 안희정 후보는 사회적 합의, 이재명, 심상정 후보는 적극 찬성의 의사를 비쳤다[51].
한편, 시민단체들 역시 상병수당 도입에 적극적이었는데, 당시 상병수당을 주장한 시민단체들로는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권실현 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환자단체연합,’ ‘참여연대,’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복지 총연대회의’ 등이 있었다[52]. 특히 한국환자단체연합 회의 경우 2017년 2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양승조 의원실과 함 께 ‘건강보험, 아프니까 상병수당’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여 공론화 하였으며[53,54], 참여연대와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은 전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대선 시기 사회정책에 대한 여론조사’ 를 실시하여 상병수당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을 살폈다. 그 결과 상병 수당 지급에 대한 찬성도가 76.1%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찬성 66.2%), 노인기초연금 인상(찬성 59.0%), 청년수당(찬성 39.3%) 등 다른 사회복지 안건들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고하였다[55,56].
그러나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의료정책에서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핵심 의제로 삼았고, 상병수당 도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기본소득 보장과 의료비 부담 완화, 소득양극화 해소 등에 높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공약으로 제시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 으나[52], 이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 질의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60%대로 낮은 수준임을 고려할 때 상병수당 도입보다는 건강보험 필수의료서비스의 보장성 확대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답변함에 따라 상병수당 도입은 현 정부에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게 되었다 [11] (Figure 2).
2) 서울시 차원의 정치적 흐름
서울시에서 상병수당이 논의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선거라는 국가적 흐름 속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대선주자들이 내세웠던 대선공약 중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한 것은 기본소득제였는데[3, 57, 58], 이 제도는 2016년 6월 스위스가 ‘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 시하면서 이슈화되었고, 국내에서는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거론하며 주목받기 시작하였다[57]. 당시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 문재인 민주당 대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기본소득제에 대해 적극적이었다[57,58]. 그리고 박원순 시장도 대선출마에 의지를 보이면서 ‘한국형 기본소득제’ 를 공약으로 제시하였다(Figure 2). 그가 제안한 ‘한국형 기본소득제’ 는 아동수당, 청년수당, 실직・질병에 대비한 실업부조제와 상병수당제, 장애수당, 노인기초연금 등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제였다.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선에 출마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시기인 2016년 11월부터 서울시에서는 ‘건강서울 종합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하였고5), 여기에 상병수당이 포함 되었다. 그리고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4월에 박원순 시장이 직접 기자설명회를 열어 발표하였는데, 당시에는 상병수당이 아니라 ‘서울형 유급병가’라는 명칭으로 기본적인 개념만이 소개되었으며, 구체적인 지원대상과 범위는 진행 중이었던 연구용역을 통해 정하겠다고 밝혔다[59-61]. ‘서울형 유급병가’가 상병수당을 기본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은 해당 용역보고서 대부분의 문헌고찰이 상병 수당을 중심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3].
이후 서울시가 서울형 유급병가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청회나 보건복지부와의 협의, 관련 조례 제정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예산 부터 편성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였으나[62,63], 2018년 12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에 관한 조례안’과 예산이 가결되면서 정식적으로 도입되었다(Figure 2).
3. 정책대안의 흐름
1) 전국형 상병수당
대안의 흐름은 정책공동체 구성원들이 포럼, 공청회 등을 통한 정책 아이디어들을 논의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13], 대통령선거 이전 상병수당을 주제로 열렸던 대표적이고 공식적인 포럼은 ‘건강보험, 아프니까 상병수당’ 포럼이었다(Figure 2). 이 포럼은 한국환자단 체연합회가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었던 양승조 의원과 공동으 로 개최한 포럼으로, 시민단체장, 회장, 의원 보좌관, 연구원 등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는 대표들이 지정토론자로 참석하여 상병수당을 공 론화하였고, 언론에서도 주목도가 높았다[3, 53, 54, 64].
당시 포럼에서는 가치의 수용성을 기준으로 보면 상병수당의 필요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다루었으며, 제도의 취지나 목적, 가치 측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었다. 다만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었는데, 특히 가장 핵심적인 논의는 재 정적 부담이었다. 가천대학교 임준 교수가 입원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소득손실을 기준으로 상병수당 도입 시 소요될 예산을 추계한 것을 제시하였는데, 최소 1조 4,190억 원에서 2조 8,225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하였다6). 이에 대해 당시 건강보험의 17조 흑자를 고려하면 당장 도입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란 의견과 제도가 지속되면 재정적으로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대립 하였다. 아울러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기존 사회보장제도들에 미칠 영향과 기능적 중복 가능성 등의 우려도 함께 제기되었다. 그러나 결국 정치적 흐름에서 언급하였듯 현 중앙정부가 기존 의료비에 초점을 맞춘 보장성 강화의 기조를 고수함에 따라 대안으로서 상병수당에 대한 논의도 다시금 잦아들었다(Figure 2).
2) 서울형 유급병가
정책대안의 흐름상으로 서울형 유급병가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17년 7월 박능후 장관이 전국형 상병수당에 대해 보류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되었으며, 서울시는 곧장 연구용역에 착수하였다(Figure 2). 중앙정부에서 정책결정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중앙정부의 역할과 지자체의 역할이 중복되거나 상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서울형 유급병가에 대한 연구용역은 원시적인 수프에서 떠돌아다니는 다양한 대안들 중 하나를 채택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이미 정책시행 여부는 결정해놓은 상태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제도를 구성할 것인가를 분석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 용역보고서에서는 우선적으로 보장이 필요한 대상 조사, 제도도입 시 예상되는 소요재정을 추계 등을 통해 산출해낸 자료들을 가지고 서울시에서 사용 가능한 예산에 맞추어 대략적인 급여조건, 급여액, 급여기간 등이 제안되었다[3]. 그리고 이러한 분석들은 기본적으로 ‘상병수당의 정책대안 흐름’에서 핵심이었던 ‘아프니까 상병수당’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Figure 2). 따라서 서울형 유급병가의 정책대안 흐름은 상병수당 정책대안 흐름이 막히게 되면서 이를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연구용역을 통해 도출된 결과들을 토대로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전산시스템 구축 비용 1억 6천만 원을 추경예산에 편성하여 서울시의회에 제출하였다[63]. 그러나 서울시의회 283회 임시회 추가경정예산안 예비심사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오현정 부위원장 과 김소양 의원이 공청회나 입법예고, 조례 제정 등 사회적 합의 없이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점과 중앙정부와의 협의절차, 예산편성 사전절 차 미이행, 세부사업계획 부재 등 절차적인 부분을 지적하며 졸속추진을 반대하였다[62, 63, 65, 66]. 그리고 이후 서울형 유급병가의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서 울시의회의 내부적 견제와 자정작용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임시회의 때 서울시의 움직임에 반대했던 오현정 부위원장이 한 달 뒤 ‘서울형 의료보장제도 신설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기 때문이다[67,68]. 서울형 유급병가에 대한 토론회 역시 시민단체장, 회장, 교수, 변호사, 고위관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임시회의와 정책토론회 두 번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온 오현정 의원의 발언은 당시 서울시에서 서울형 유급병가에 대한 가치수용성과 실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가치수용성 측면에서 보자면, 오현정 의원은 서울형 유급병가의 급진적인 추진을 반대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취약계층 노동 자를 위한 정책 시행은 반겨야 할 일,’ ‘서울형 유급병가의 필요성과 내용에 대해 공감함’ 등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69,70]. 또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 역시 ‘정책을 밀실이 아닌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론화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70].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엄격하게 비판하였는데, ‘중앙정부와의 협의절차 미흡,’ ‘세 부사업계획 부재 및 예산편성의 타당성 부족’ 등을 언급하며 사회적 논의와 정책전문가에 의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시하였다[71].
4. 정책의 창과 정책기업가
우선 정책의 창은 박근혜 대통령의 예기치 못한 탄핵과 조기대선을 계기로 열리게 된 것으로, 이는 Kingdon의 모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비선형성과 비합리성, 그리고 체계적인 시스템하에 정책결정과정이 이끌어지지 않는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상병수당은 중앙정부의 정책의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서울시 지방정부에서 정책의제로 받아들여 서울시 차원의 제도로 변형시켜 도입하였는데, 이러한 차이는 정책기업가의 유무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기업가는 정책의 창이 열린 순간 여러 자원 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대안을 밀어붙이는 핵심적인 인물인데[14,22], 상병수당의 경우 새 정부의 어떤 인사도 상병수당 도 입을 옹호하고 정책의제로 내세우지 않았다.
2018년 12월 서울형 유급병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되기 이전까지 신문기사들을 보면 박원순 시장이 정책기업가의 역할인 이슈 주창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59-61]. 그러나 드러나는 사건과 대중에 잘 알려진 영향력 있는 인물을 위주로 보고하는 신문기사의 특성상 서울시 내부에서 실질적으로 서울형 유급병가를 옹호하고 추진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 6월 정책이 시행되고 난 이후 한 신문기사에서 그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72]. 서울시 시민건강국 나백주 국장은 서울형 유급병가제도의 사업설계 단계에서는 주 수혜대상자인 취약계층의 의견을 수집하고,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을 통해 연구용역을 발주하여 고려대학교 산학협 력단을 연구에 착수시키는 등, 정책도입부터 시행까지 전 과정을 총 괄하였다.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연구용역기관이었던 고려대학교 팀과 지속해서 회의를 통해 소통하였고, 실질적인 정책을 구상함에 있어 중복급여 방지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였다[72].
Choi와 Park [12]은 Kingdon 모형에서 정책기업가의 활동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공식적 지위로서 활동을 넘어서는 활동, 즉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는 정도를 넘어 해당 정책의제에 대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기술되어야 한다고 제시하였는데[12], 나백주 국장의 실무적 활동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기자설명회를 열어 직접 발표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한 측면도 있으나, 소속 직원들의 도움 없이 본인이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박원순 시장은 직위를 통해 가질 수 있는 권력, 명성, 인적 네트워크 등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고 이슈 주 창(advocacy)의 역할을 수행했기에 마찬가지로 정책기업가로 볼 수 있다.
고찰
본 연구는 서울형 유급병가가 도입된 과정을 Kingdon의 다중흐름 모형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서울형 유급병가는 본래 상병수당제도라고 하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이론적 모델로 설정하여 서울특별시의 상황에 맞추어 설계된 제도이다. 따라서 서울형 유급병가가 정 책의제로 설정된 과정을 살피기 위해서는 상병수당제도가 중앙정부 의 정책의제 설정과정에서 어떻게 논의되어왔는지도 추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Kingdon의 모형은 정부가 채택한 정책의제보다는 채택되지 못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며, 정책의제가 설정되는 과정이 우연적이고 비합리적, 비선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다[12]. 따라서 상병수당제도가 중앙정부의 정책의제로 채택되지 못하고 서울시 지방정부에서 제도의 형태를 변형시켜 도입한 것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세 개의 흐름별로 살펴보면, 먼저 문제의 흐름은 상병수당 또는 서울형 유급병가의 정책의제설정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문제의 흐름이 정책의제설정이나 정책변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고 믿을만한 지표에 뚜렷한 변화가 관찰되거나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사회적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왜 냐하면 Kingdon 모형에서 정책문제의 특성은 문제가 이전부터 존재 해왔으나, 관심받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주목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병수당이나 유급병가라는 정책적 대안이 필 요하다는 근거로 제시할만한 지표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본 연구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표를 제시하였으나 그것 역시 기존 학계에 서는 상병수당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는 지표였다. 또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던 사회적 사건들도(송파 세 모녀 사건, 메르스 사태), 문제의 핵심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위 사건들로 인해 부차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상병수당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강력하게 제도의 추진을 어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결부시켜 상병수당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한 언론의 수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주요 언론사들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흐름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데 영향을 미치기에는 논의가 미흡했다.
다만 기존 의료보장정책에 대한 환류를 통해서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의료비 보장성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어온 기존의 정책들의 효과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기 시작하였 고, 송파 세 모녀 사건, 메르스 사태가 1년 간격으로 연이어 발생하면 서 ‘의료이용으로 인한 가구의 경제적 부담’과 관련하여 완전히 새로 운 접근, 패러다임이 요구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상병수당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Kindon의 모형에서는 정치의 흐름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정치의 흐름에 따라 정책의 창이 열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12]. 정치의 흐름에서는 건강보험 17조 누적흑자 사건부터 20대 국회의원 선거 등 조금씩 조짐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Figure 2에 서도 나타나듯, 정책의 창이 열리는 데 영향을 미친 정치적 사건은 박 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뒤이은 조기대선이었다. 두 차례 연이은 선거와 기존 10여 년 만에 기회를 맞은 진보정권의 우세(권력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정부정책을 원하는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상병 수당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익단체,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하며 옹호하였고, 일반 시민들도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를 나타내었다.
정책대안의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모형처럼 문제해결에 가장 좋고 사람들이 가장 지지하는 대안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던 대안이 장기간에 걸친 생존, 진화과정을 거쳐 중한 정책대안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12]. 사실 우리나라에서 상병수당에 대한 연구는 2007년 Choi와 Kim [4]의 논문을 첫 시작으로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진행되어오고 있었다[3]. 다만, 이전에는 보건정책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정책의 창이 열리게 되면서 갑자기 주요 정책이슈로 부상하였다.
또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상병수당이 여러 가지 정책대안들 중 하나로 논의되는 과정에서 부각된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아프니까 상병수당’이라고 하는, 이미 주요 정책주제로서 포럼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정책문제 흐름 속 ‘환 류’를 통해 기존의 의료비 보장성 확대정책들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결과들이 제시되어오고 있었고, 정치적 흐름에서 건강보험 17 조 흑자가 보도되면서 여러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새로 운 대안에 대한 희망’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를 핵심 아젠다로 내세운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포럼을 주최한 단체와 그를 둘러싼 옹호연합(advocacy coalition)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정책토론회나 공청회 형식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아닌, 특정 주제로서 포럼을 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관계는 그 특성상 공식문서나 신문기사 등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순 없으나, 정황상 이미 주최단체 및 옹호연합 간에는 자체적 합의와 소통이 이루어진 상태였다고 보인다. 그 단체들은 먼저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양승조 의원실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고,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의 소속이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라 포르시안 신문사,’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소비자 시민모임’ 등인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다[53, 54, 64].
정치의 흐름과 대안의 흐름은 중앙정부의 정책의제로 상병수당과 서울시 지방정부 정책의제로서의 서울형 유급병가로 크게 나뉘게 되는데, 이는 정책의 창이 열린 대선시기에 상병수당이 정책의제로 주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서 후순위 정책으로 미룬 반면, 서울시 지방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주목 할 점은 새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서울시는 이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서울시가 중앙정부의 움직임에 좌우되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점은 Kingdon 모형에서 중요시하는 정책기업가의 역할을 다시금 재확인시켜주는 데, 결국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차이점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정책기업가의 유무였다.
서울시 유급병가 정책의 추진에 있어 실질적인 정책기업가는 서울시 시민건강국의 나백주 국장인 것으로 파악되며, 박원순 시장 역시 자신이 가진 자원들을 통해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와 옹호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부의 경우 상병수당을 정책의제로 옹호한 인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도도입에 대한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은 반면, 서울시는 나백주 국장이 적극적으로 정책설계와 추진에 개입 하였고, 박원순 시장 역시 서울형 유급병가제도에 대한 설명회를 열어 발표하는 등 정책을 지지하였다. 물론 서울형 유급병가의 추진과 정에서 절차적인 부분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 었으나, 이 역시 비합리적이고 비선형적인 정책결정과정을 중요시하 는 Kingdon 모형에서는 오히려 더 잘 설명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서울시 유급병가 정책이 정책기업가가 독 립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여 추진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물론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에서는 정책기업가는 단일 주체로 제시되지만, 실제 정책 아젠다를 둘러싼 추진배경에는 정책옹호연합 (advocacy coalition)의 힘이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개인이 주장하는 정책에 대한 정치적 힘은 이 옹호단체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정책대안의 흐름에서 상병수당 포럼이 갑자기 개최된 것은 이미 이 옹호단체들 간의 암묵적 합의, 또는 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을 상기하면, 서울시에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 역시 이와 같은 사전 의사소통과 적극적 옹호가 배경에 놓여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옹호연합모형(Advocacy Coalition Framework) 이라는 정책결정모형을 통해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서울시 정책추진과정에서 옹호연합이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것은 다중흐름모형의 한계이자 본 연구의 한계로 남는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적용한 다중흐름모형은 중앙정부의 상병수당 제도 정책의제 설정과정과 서울시 유급병가의 정책결정과정 설명에 가장 적합한 모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전적 의사결정모형들은 각각 어느 정도 차이점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정책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정치적 시 스템상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는 이들을 활용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12]. 대표적으로 합리모형은 주로 경제적 가치의 측면에서 ‘기대가치의 극대화,’ ‘최대손실의 최소화’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도록 하는 이론으로, 먼저 문제의 확인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으로 목표설정, 대안의 탐색, 각 대안 의 결과 예측, 대안의 종합적 비교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뒤에 정책이 결정된다는 모형이다[73]. 그러나 단적으로 Figure 2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제인식과 대안탐색, 논의, 결정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서라기보다 정치적 흐름에 크게 좌우되고 있었다. 그러나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이 현재의 우리나라 정책결정과정을 분석하기에 적합할 뿐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즉 우리나라의 정책결정과정은 향후 합리모형을 따를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의사결정이 정치적인 요인에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정치시스템이 정교화되어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긴박한 문제나 초점사건 등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긴급 의사결정 사안으로 두고 추진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대안을 탐구하여 의사결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권 및 행정부나 입법부 집단 등의 교체로 인한 권력구조의 변화가 기존 정책의사 결정을 쉽게 바꿀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다중흐름모형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다양한 정책변동 사례를 설명하는데 주로 적용되어 왔는데[19,74-77], 우리나라와 같이 다원주의적 특성이 적은 정치환경에서 적용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13]. 특히 정책의 창이 열리기 전까지 세 흐름들이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다원주의에서 벗어난 사회에서 는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12, 13, 78]. 하지만 위와 같은 한계점들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다중흐름모형을 통해 상병수당이 어떻게 사회적, 정치적, 정책적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 왜 중앙정부에서는 정책의제설정에서 보류되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서울시에서 상병수당을 서울형 유급병가라는 제도로 변형시켜 도입 하였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다중흐름모형을 적용한 기존 대다수의 연구들이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 차원의 개별 사례연구로 이루어졌으나[19], 본 연구에서는 중앙정부의 정책의제가 지방정부의 정책의제로 이전되고 변형된 사례를 분석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보건행정학 분야에서 정책결정과정을 분석하는 연구는 상당히 드물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국가정책의 의제설정과 결정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는 것은 향후 획기적이고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관철시키고자 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서울형 유급병가는 나름대로 가치 있는 제도이지만, 서울시 지방정 부의 재원으로만 운영된다는 점 때문에 서울시민, 그 중에서도 건강 보험 지역가입자, 중위소득 100% 이하, 그리고 입원이라는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급여를 받을 수 있게 결정되었기 때문에 ILO의 기준은 물론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에 한참 미치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상병수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으나, 모든 국민이 사회적으로 안전한 삶을 영위하게 하려면 전 국민 상병수당은 가급적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보건분야 정책입안자 및 정책설계자 들은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을 상기하며 향후 보편적 상병수당 정책도입을 준비하는 데 있어 전략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감사의 글
본 연구는 2018년도 서울특별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시립병원 비급여분석 및 보장성 강화 전략수립’ 연구에 기초하였다(과제번호: Q1727931). 위 연구 진행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도움을 준 김재민, 김진성, 차선화, 문다슬, 장정민, 조성래 연구원과 연구자료 수집에 조언을 주신 이준협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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