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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Practical Use of 3D Typography in Time and Space within the Context of Visual Communication: Focused on the 3D Typography Project Series Entitled Rhetorical Space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탐색한 3차원 타이포그래피의 시공간적 활용에 관한 연구: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 연작 <수사적 공간>을 중심으로

  • 김나무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학부 부교수)
  • Received : 2020.07.10
  • Accepted : 2020.08.18
  • Published : 2020.08.28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al with practical investigation, which blends symbolism on spatio-temporal level-especially typography in three-dimensional environment-and the symbolism of written language in the context of visual communication. Up until now, typography research and education have mainly been centered on two-dimensional environment and printing technology, such as the paper. However, this study is the result of this researcher's direct design and implementation of projects on typography aside from paper. Accordingly, this study is to provide an opportunity to raise the level of reason and expression used in visual communication to a new level and to expand its scope. To ensure the efficient progress of the project, this study was to identify the structure, system, and process of communication first. Furthermore,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wo-dimensional and three-dimensional typography as the backbone of visual communication. In addition, several representative 3D typography works are analyzed in context and used as the conceptual framework of the project conducted for this study. Based on these results, this research verifies and suggests the possibility practically and objectively by creating the project series entitled Rhetorical Space in 3D typography. In addition, this research gives an opportunity to visualize ideas aimed at the development of character-based visual language and visual communication design in the realm of the more spatial, physical, and three-dimensional public environment.

본 연구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타이포그래피-특히 3차원 환경의 타이포그래피-와 글말의 기호성(記號性)을 시공간의 차원에서 융합하는 실천적 탐구를 다룬다. 지금까지의 타이포그래피 연구와 교육은 주로 지면(紙面)과 같은 2차원 환경과 인쇄 기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본 연구는 지면을 벗어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프로젝트를 연구자가 직접 설계하고 수행한 결과로써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쓰이는 사유와 표현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고 그 범위를 확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젝트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먼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와 체계,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중추로서 2차원과 3차원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고찰한다. 더불어 대표적인 3차원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맥락적으로 분석하여 본 연구를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의 개념적 뼈대로 삼는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 연작 <수사적 공간>을 창작하여 그 가능성을 실제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제안한다. 나아가 문자 기반의 시각 언어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아이디어의 시각화를 보다 공간적, 물리적, 그리고 입체적인 공적 환경의 영역에서 발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Keywords

I. 서론

1. 연구 배경 및 목적

그래픽 디자이너 폴라 쉐어(Paula Scher)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가장 강력한 ‘비밀 무기’는 타이포그래피”[1]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련 매체의 발달과 애플리케이션의 대중화로 타이포그래피에 능숙한 일반인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래픽 디자이너만큼 타이포그래피를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그리고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직군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타이포그래피는 어떻게 그래픽 디자이너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타이포그래피란 넓게는 글자를 시각적으로 다루는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2]. 세계적인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이자 캐나다의 대표 시인 로버트 브링허스트는 ‘인간의 언어에 지속해서 시각적 형태(Form)를 부여하는 행위[3]’를 타이포그래피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이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언어를 말하고 듣는 경험의 차원(음성 언어-구술 문화)에서 보고, 읽고, 쓰고, 그리는 경험(문자 및 시각 언어-문자 문화)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 예로 문자를 모르는 러시아의 어느 공동체에 관한 에피소드1)에 따르면 추상, 정의, 논리, 성찰, 반성과 같은 관념적 사유는 구술 문화권보다 문자 문화권에서 월등히 뛰어나다(문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구술 문화 기반의 공동체에서는 아예 그 개념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4]. 즉, 인류의 고차원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문자 문화’인 것이다. 이러한 문자 문화가 ‘타이포그래피’라는 주춧돌 위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교육에서는 주로 지면에서의 타이포그래피, 20세기 초부터 이어진 편집 디자인 기반의 2차원 환경의 타이포그래피만을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5]. 현업에서의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를 보면 3차원 환경에서의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프로젝트가 서서히 늘고는 있으나 이를 학술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은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다루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 분석을 통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형식, 그리고 양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텍스트를 다루는 모든 창작은 타이포그래퍼의 날카로운 안목과 정교한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말을 활용한 여러 창작 분야의 작업을 살펴보면 비전문적인 타이포그래피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예컨대 국내에서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한 장소인 마포대교의 생명의 다리에 설치된 자살 예방 메시지가 있다. 이 다리에는 명조 계열의 서체로 조판된 “많이 힘들었구나.”, “오늘 하루 어땠어?” 등의 감상적인 문구가 검은색 글씨로 무미건조하게 인쇄되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글자 사이, 단어 사이 등의 세부 조정을 비롯한 서체의 선택이나 글자의 표현 방법까지 심사숙고한 결과물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6]. 특히 글자와 단어 사이 간격을 보면 너무 밭아서 판독성과 가독성이 모두 떨어진다. 만약 연습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가 해당 장소의 시공간적 맥락을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메시지의 선정부터 재료와 매체의 선택, 타이포그래피의 효과적 표현까지 함께 고민하고 구현했다면 좀 더 의미 있고 설득력 있는 소통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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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자살 예방 메시지

2. 연구 범위 및 방법

비주얼 커뮤니케이터로서 그래픽 디자이너는 상당히 복잡한 층위와 다차원의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이 경우, 디자이너는 복잡다단한 내용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해석하여 ‘소화 가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혼란스럽고 복합적인 형식과 내용을 보다 접근하기 쉽고, 명쾌하고, 유용한 정보―메시지/이야기/서사―로 만드는 것이다[2].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배워 온 지면 위의 타이포그래피―포스터, 전단, 책 등―를 토대 삼아 시공간의 맥락에서 탐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주되게 행한 연구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례 연구(Case Study)이고 다른 하나는 사례 연구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실제 수행한 프로젝트이다. 먼저 기존의 주요 3차원 타이포그래피 작품 중 분야별―팝아트, 건축, 공공 예술, 장소 특정적 예술,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로 가장 대표적인 작가(또는 회사)와 작품을 선별하여 분석한다. 선행 연구 선별의 대표성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디자인 매체에 관련 작품으로 소개되거나 국제 저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경우에 근거한다. 더불어 선별된 연구 대상을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탐색하며 내러티브와 사용자 경험에 근거하여 통합적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이를 통해 얻은 식견을 근거로 본 연구의 핵심인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 연작을 수행하여 그 가능성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제안한다.

다만 본 연구에서 인쇄 기반 타이포그래피 이론을 주되게 기술하는 것은 수많은 선행 타이포그래피 연구에 대한 동어 반복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와 시공간의 맥락적 관계를 탐색하고, 인쇄를 제외한 매체 및 재료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물론 매체와 재료만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건축과 토목, 조소의 연구 영역에 더 가까운 바, 이 부분은 실제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를 일관성 있게 수행함으로써 관련 이론의 서술을 상당 부분 갈음하고자 한다. 대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3차원 타이포그래피를 다루고 있으므로 다음 측면을 주되게 고찰하는 바이다. 첫째, 어떤 종류의 텍스트와 관계가 있는지, 둘째, 어떤 상호 작용 파트너와 관계가 있는지, 셋째, 메시지의 생산자와 수용자의 시각에서 어떤 기능이 우세한지, 세 가지 측면을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고자 한다[7].

II.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언어·몸짓이나 화상(畵像) 등의 물질적 기호를 매개 수단으로 일정한 청중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정보를 알리고 교육하거나 설득하는 행위라 정의할 수 있다[8]. 어원을 보면 ‘공통되는(common)’, 혹은 ‘공유한다(share)’라는 뜻의 라틴어 ‘communis’에서 유래한다[8]. 즉, 커뮤니케이션은 최소 두 명 이상의 집단이나 공동체 사이에서 성립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본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도구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시각 문화 선구자들은 애초에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는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의 〈커뮤니케이션 입문〉(A Communications Primer)을 들 수 있다. 1953년 임스 부부가 함께 기획하고 감독, 제작한 22분 분량의 이 짧은 필름은 수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이 1949년 출간한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이론》(The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에 등장한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근거한다[9]. 다음 도식은 클로드 섀넌의 책에 소개된 가장 핵심적인 다이어그램으로‘보편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도식’이라 불린다. 이는 메시지의 송수신 과정,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의 개입 등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와 체계를 쉽게 알려 준다. 이 도식을 보면 커뮤니케이션이 기호를 사용한 메시지의 송수신에 의해 이루어짐을 한눈에 알 수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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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클로드 섀넌, 보편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도식, 1949

기호를 사용한 메시지의 송수신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기호는 ‘언어’일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기호가 고도로 발달했을 때 만들어지는 하나의 체계라 할 수 있다[11]. 특히 영어권에서 언어는 크게 세 가지의‘V’(The Three V's of Communication)로 이루어진다. 첫째, 몸짓, 제스처 등의 시각 언어(visual language), 둘째, 목소리와 톤 기반의 음성 언어(vocal language), 셋째, 문자 그대로 메시지를 구성하는 단어나 문장(verbal language)이다[12]. 그중에서도 시각 언어는 메시지 전달에 있어 5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12]. 시각을 채널로 하여 전달되는 비주얼(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표정·몸짓·그림·글자 등과 같은 시각 요소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음성 언어를 제외한 소통의 70%가량의 비중을 차지하는 두 가지 언어―visual language & verbal language―의 교집합이자 글말을 이용한 소통의 중심에 있는 것이 ‘타이포그래피’이다. 쉬운 예로, ‘책’이라는 매체를 클로드 섀넌의 보편적 소통 체계 다이어그램에 적용해 본다면, ‘읽기’라는 소통 행위는 단어가 신호(signal)이고, 글자들이 인쇄된 페이지가 송신기이며, 빛이 채널, 눈이 수신기 역할을 하게 된다[13]. 이를 우리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줄여서 타이포그래피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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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The Three V's of Communication

근대화 이전의 시각 예술 분야를 보더라도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중세 시대에 손으로 금물·은 물·물감 등을 채색한 원고는 텍스트와 예술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상보적 관계에 있었는지 보여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시각 예술계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이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텍스트는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회화 속에 함께 위치하지만 이미지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 이는 기의와 기표의 통속적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표가 완벽하게 독립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기념비적 사례이다[14]. 텍스트 자체로 존재론적 물성을 획득한 것이다. 또한 입체파의 선구자 조르주 브라크도 아트워크 작업 시 텍스트를 적극 활용하여 하나의 통합된 이미지-텍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을 시작으로 1960년대의 개념 예술 작가들은 예술 작품의 비물질화를 추구하며 문자 언어가 주인공인 작품들을 활발히 선보이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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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

III. 2차원과 3차원 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의 어원을 보면 ‘typos’는 그리스어로 ‘글씨나 그림의 획(stroke)’, ‘graphein’은 ‘쓰다(to write)’라는 의미를 갖는다.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이 두 단어의 합성어임을 알 수 있다[15]. 즉 타이포그래피는 문자 언어를 읽기 쉽고 보기 좋게 만들고자 활자를 맥락에 맞게 배열하는 기술 또는 기법이다. 조판(Type Setting)이란 활자체의 선택, 포인트 크기, 글줄 길이, 글줄 및 문자 사이의 간격을 섬세하게 조정하는 것이다[15]. 이런 과정을 통해 텍스트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읽고 쓰는 행위를 쓸모 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타이포그래피의 총체적인 역할이다.

1. 형상 차원

타이포그래피는 다시 크게 마이크로와 매크로,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단어와 행과 단락을 만들기 위해 글자의 모양을 선택하고 창조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여 이들을 서로 조합하는 것이다[16]. 매크로 타이포그래피는 지면 또는 스크린에 텍스트를 구조화하고 다듬고 정렬하는 것이다. 나아가 종이의 질감, 색상 등 문자를 디자인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16]. 또한 넓은 의미의 타이포그래피는 ‘서체 디자인’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면을 대상으로 하는 2차원 환경의 타이포그래피에 국한된 일차적 형상 차원에서의 분류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좀 더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네 가지 형상 차원—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메조 타이포그래피, 매크로 타이포그래피, 패러 타이포그래피—의 구분을 근거로 3차원 타이포그래피에 확장하여 적용하였다[17].

표 1. 타이포그래피의 형상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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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능 차원(접근 방식)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3차원 타이포그래피는 크게 ‘기능적인’ 접근 방식과 ‘시적(poetic)이거나 장식적인’ 접근 방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베아트리체 워드의 ‘투명한 와인 잔’으로 표현된 2차원 타이포그래피의 기능적인 측면의 접근과 ‘가독성은 독서의 기능이지 타이포그래피의 기능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에미그레》(Emigre)로 대표되는 표현적인 측면의 접근과 매우 닮아 있다. 기능적인 접근에는 사이니지(signage)와 같이 방향을 설정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이 있고, 간판이나 글자 기둥처럼 공간에 정체성 (identity)을 부여하는 방식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주로 시적이거나 장식적인 접근 방식에 주목한다. 이는 시공간에서 텍스트를 읽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실질적인 접근 방법 외에 다음의 표와 같은 언어학적 접근 방법도 상황과 문맥에 따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표 2. 타이포그래피의 기능 차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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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체 및 재료

이와 같이 지면을 벗어난 3차원 환경의 타이포그래피는 기존 인쇄 기반의 2차원 환경의 타이포그래피 기능과 의미, 맥락 등을 계승하되, 재료와 매체, 접근 방법 등을 완전히 새롭게 연구하고 고찰해야 한다.

표 3. 3차원 타이포그래피의 매체 및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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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3차원 타이포그래피 주요 사례연구

1. <LOVE>

성공적인 3차원 타이포그래피의 가장 대중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아마도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인 <LOVE>일 것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뉴욕 모마 (MoMA)가 작가에게 의뢰한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 (1964)이었다. 그런데 카드 디자인이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회화에서 조각으로 발전하였다. 1970년에는 내후성 강판(COR-TEN steel)을 이용한 3차원 버전이 만들어져 인디애나 폴리스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18]. 그후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에 여러 다양한 버전과 색상으로 설치되었다. 한 작가의 작품이자 해당 장소와 공간의 랜드마크, SNS 시대의 아이콘, 쏟아지는 관련 굿즈까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LOVE>라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의 파급력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LOVE’라는 추상적 단어의 효과적 표현을 위한 글자 배열과 디돈(Didone) 계열의 모던한 서체 선택, 크리스마스와 사랑의 공통적 외연으로서 상징적 컬러 팔레트의 적용이 눈길을 끈다.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는 ‘O’를 바로 세워 디자인했으나 나중에 ‘O’를 기울여 배치함으로써 강조와 변화를 준 부분에서는 운율이라는 조형원리를 담아내는 섬세함까지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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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로버트 인디애나, <LOVE>, 1970~

2. 퓐만 인쇄소(Drukkerij Veenman)와 미네르트빌딩(Minnaert Building)

건축 디자인에서는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 노이털링즈 뤼덱(Neutelings Riedijk)이 디자인한 퓐만 인쇄소와 위트레흐트 대학교에 있는 미네르트 빌딩이 있다.

먼저 퓐만 인쇄소의 파사드에는 네덜란드 시인 K. 스키퍼스의 글이 더치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카를 마르텐스의 레터링으로 표현되었다. 이 파사드는 2차원의 텍스트가 시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매우 효과적으로 3차원의 텍스트로 전환되어 적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Drukkerij’가 네덜란드어로 ‘인쇄소’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해당 건물의 외관을 마치 한 편의 시가 인쇄된 입체적 지면처럼 꾸밈으로써 건물의 시공간적 맥락을 3차원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환유적으로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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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퓐만 인쇄소

미네르트 빌딩 역시 같은 건축 사무소에 의해 디자인된 빌딩으로 이 빌딩의 특징은 거대한 글자 기둥들이다. 1층 전면을 메우고 있는 이 글자 기둥은 조화롭게 건물의 일부를 이루며 기능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기둥 뒤의 공간은 학생들의 자전거 파킹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 경우 3차원 타이포그래피 기둥이 해당 건물과 장소, 즉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비주얼 아이덴티티 역할까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해당 건물을 지을 때 그래픽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건축 및 환경 디자인의 상호 학제적 연구가 뒷받침되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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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미네르트 빌딩

3. 〈트래버싱 월〉(Traversing Wall)

영국의 아티스트 고든 영(Gordon Young)은 공공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그래픽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퍼,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활발히 협업하여 인상적인 텍스트 메시지를 제작하고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장소 특정적 내러티브 프로젝트에 3차원 타이포그래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의 시공간적 경험을 극대화한다.

먼저 〈트래버싱 월〉은 영국 배리 섬의 동부 산책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40m 길이의 벽을 가로지르는 대형 3차원 타이포그래피 벽(wall)이다. 웨일스어와 영어로 조합된 텍스트는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벽을 하나의 랜드마크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이 작품은 이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보행자들과 등반가들을 해안가 코너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벽을 수놓은 거대한 글자는 다채로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잘라낸 4000개 이상의 해변과 관련된 시각물로 구성된다. 화석, 과일, 공룡, 편지 등으로 디자인되어 암벽 등반 시 필요한 홀드로도 쓸 수 있다. 또한 배리 섬이라는 지역과 관련된 중요한 키워드도 이 벽 안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21].

등반 코스는 모든 연령에 맞춰 구성되어 있으며 개별 문자를 오르내릴 수도 있고, 벽의 전체 길이를 가로지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 작업은 해변과 산책로뿐만 아니라 카디프 공항의 육지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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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트래버싱 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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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트래버싱 월〉 디테일

4. <WE ARE ALL WORKERS>

현재 가장 활발하게 3차원 타이포그래피를 탐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한 명을 꼽으라면 아마 미국의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일 것이다. 그가 리바이 스트라우스 & 코퍼레이션(Levi Strauss & Co)의 ‘우리는 모두 일꾼이다’라는 제목의 캠페인을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면 타이포그래피의 형상 차원과 기능 차원, 두 가지 측면 모두 사려 깊게 탐색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설치물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리바이스 큐브에 그려진 타이포그래피와 도로의 빌보드에 설치된 무빙 타이포그래피,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착시 효과를 이용한 이 설치물은 리바이스 큐브에 그려진 타이포그래피를 사방에서 볼 수 있지만, 글자의 형태는 특정 각도에서 봐야만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해당 큐브가 설치되어 있는 30일 동안 미국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제이슨 폴란이 방문자들의 초상화를 큐브에 직접 그린다. 이 그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모두 일꾼이다’라는 글자와 함께 큐브에 채워지며 새로운 리바이스 큐브로 재탄생된다[22].

그림 10. 리바이스  큐브

다른 하나는 동일한 캠페인의 빌보드 무빙 타이포그래피 작업이다. 기어가 서로 맞물렸다가 풀리는 반복 효과를 이용하여 글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반복하여 사용한 접근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는 추상적인 패턴처럼 보이다가 톱니가 서로 맞물렸을 때 ‘WE ARE ALL WORKERS’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22].

그림 11. 리바이스  무빙 빌보드

5. <De Vorharding>과 〈읽다/쓰다/다시 쓰다〉

<De Volharding>은 더치 디자인 스튜디오 러스트(Lust)가 헤이그의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인 투데이즈 아트 페스티벌을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De Volharding(the persistence)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특정 빌딩의 이름으로 이 건물은 20세기 초 헤이그 협동조합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였다. 러스트는 페스티벌의 주제인 “THX: THE HAGUE INT'L”을 관람객에게 시공간적으로 경험시키고자 이 빌딩을 국제공항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실시간 디지털 사이니지(signage)이자 관제탑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페스티벌에 초대된 글로벌 아티스트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디지털 사이니지를 자바(java) 언어로 디자인하고, 고해상도의 디지털 프로젝터를 이용해 빌딩 파사드에 실시간으로 투사하였다. 따라서 이 빌딩은 마치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실시간 정보 안내판처럼 기능하며 대형 3차원 타이포그래피와 음성 안내 방송을 통해 페스티벌의 공연(performance)과 행사 정보를 8개 국어로 제공한다. 이는 타이포그래피의 기능론과 형상론 두 측면 모두를 완벽히 충족하며 탈맥락화와 재맥락화를 통해 하나의 도시가 국제공항이라는 다른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36×6개의 개별 제어가 가능한 조명과 48개의 2000와트 스피커를 거리에 설치해 600m가 넘는 도심 한복판의 거리를 마치 국제공항의 대형 활주로처럼 디자인하기도 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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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De Volharding ‘THE HAGUE INT'L’ 디지털 사이니지

〈읽다/쓰다/다시 쓰다〉는 디자인 스튜디오 러스트의 마지막 실험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으로 텍스트와 언어에 적용되는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과 신경망(Neural Network)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작품은 타이포잔치 2017 본 전시에 초대된 작품으로 몸과 언어, 텍스트(여기서는 3차원 영문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최근까지 주로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어 온 마르코프 연쇄(Markov Chain)를 기반으로,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독창적 접근으로써 ‘몸과 타이포그래피’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러스트는 프로젝트 연구 단계에서 형태를 만들거나 디자인을 하지 않으며 단지 프로젝트의 ‘어휘’, 새로운 ‘단어’를 구현한 스케치와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려고 노력한다.〈읽다/쓰다/다시 쓰다〉는 어휘가 풍부하면 할수록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문장의 격조가 높아지는 현상에 착안하여 의미론(Semantic)적으로 콘텐츠를 분류하기 위해 신경망과 머신 러닝을 사용하고, 컴퓨터가 스스로 ‘말하기’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관람객은 컴퓨터가 정보를 배우고 분류하는 과정을 센서에 반응하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험하며 확인하게 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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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읽다/쓰다/다시 쓰다〉 디지털 프로젝션

6. 〈Title of th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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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Title of the Show〉 전시 전경

〈Title of the Show〉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율리아 본(Julia Born)의 작업이다. 율리아는 디자이너 로렌즈 브루너와 함께 현대 미술관을 위한 대규모 설치물을 디자인했으며, 이는 현대 미술의 맥락에서 그래픽 디자인의 문제, 보다 정확하게는 ‘그래픽 디자인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에 관해 다룬다. 갤러리의 벽면은 다양한 조형 아트워크와 타이포그래피 작업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마치 책의 페이지처럼 구성되고 배치된다. 주로 벽면 상단의 쪽 번호나 하단의 주석 등을 보면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율리아는 이를 다시 사진으로 촬영하여 책으로 디자인하는데 해당 도록은 갤러리의 실제 공간을 측정한 치수를 바탕으로 그 비율에 맞춰 판형과 그리드가 디자인되고 촬영한 사진들은 원래의 비율과 위치에 맞게 아름답게 재배치된다. 이런 개념적 행위를 통해 전시회와 카탈로그는 그 자체로 프로젝트의 주체가 되어 서로 연결되면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놓인다. <Title of the Show>라는 제목 역시 프로젝트의 제목이자 전시 제목, 종국에는 책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행위와 과정을 거치며 드러나는 콘텐츠와 매체의 기묘한 관계에 대한 시간적 은유의 (문자) 언어화로 볼 수 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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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Title of the Show〉 전시 공간과 해당 전시의 전시 도록에 인쇄된 전시 공간

V.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 연작 〈수사적 공간〉

독일의 기호학자 롤랑 포스너는 “타이포그래피는 활자와 식자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선택은 내용에서 중요하지 않고, 내용의 선택은 조판 과정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7]. 이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로 대표되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로고스 중심적 사고에 기인한다. 이때 타이포그래피는 빠롤(언어 사용)적 현상으로 랑그(언어 체계)를 대상으로 삼는 언어학, 심지어 기호학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독창적인 저작 〈그라마톨로지〉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데리다는 ‘차연’(差延)이라는 개념을 통해 음성 언어 중심의 구조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 후로 ‘내포’(connotation)와 ‘외연’(denotation) 같은 개념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자 언어 기반의 소통에서 탈(脫)맥락화 또는 재(再)맥락화를 통한 보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11]. 또한 현대 언어학에선 글말의 ‘선형성 도그마’에 도전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텍스트는 선형적인 연쇄를 넘어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아니면 적어도 위계가 있는 다층적인 구조체라는 사실이 여러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텍스트의 공간성과 기호성이 오직 타이포그래피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7].

프로젝트 연작 〈수사적 공간〉은 위에 언급된 이론적 연구의 결과를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방법으로 검증한 작품 사례이다. 리서치와 기획, 프로토타이핑과 실제 제작까지 작업의 전 과정을 연구자가 직접 수행한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의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관되고 연속적인 주제와 표현을 의미하는 일반적 개념의 ‘연작(series)’이라기보다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시공간적 맥락에서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큰 틀에서의 ‘창작실험’에 가깝다. 해당 실험은 2020년 현재 기준으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가장 대표적이며 보이스가 뚜렷한 세 작품을 선별하여 작품 분석 및 평가와 함께 기술하였다.

1. 〈모노리스 인 레드〉(Monolith in Red)

〈모노리스 인 레드〉는 ‘몸과 타이포그래피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탐구한 《타이포잔치 2017: 몸》의 본 전시 ‘붉게 쓰기’ 섹션에 특별 초대된 3차원 타이포그래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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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모노리스 인 레드〉 전시 전경

〈모노리스 인 레드〉는 거울에 비친 관람객의 몸과 진공관에 흐르는 붉은 네온으로 쓰인 타이포그래피가 맞닿는 공간에 ‘붉게 쓰기’를 재현한다. 작품의 외형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신비로운 흑체(黑體) ‘모노리스’를 차용했으며, 1(12):4(22):9(32)의 비율로 인공물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모노리스의 메시지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에서 “피로 써라(Schreibe mit Blut)”를 인용한 것이다. 이는 몸의 존재론적 사유와 ‘몸-쓰기’를 이야기한다. 모노리스 옆에 대칭으로 놓인 두 개의 전신 거울과 패턴은 각각 공간(격자무늬)과 시간(사선무늬)을 나타내며, 맞은편에 놓인 두 개의 대형 거울과 패턴은 4차원 시공간을 상징한다. 전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모노리스와 마주한 이곳이 지구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본 작품은 ‘몸’과 ‘몸-쓰기’를 물리적 언어로 세상에 드러내어 관객의 몸과 접촉하게 만드는 ‘붉게 쓰기’의 알레고리이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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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모노리스 인 레드〉 후면 일방향 거울

2. 〈워칭 유〉(Watching YOU)

〈워칭 유〉는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탐구하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이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감시 장비가 점점 눈에 띄지 않게 되는 현상에 착안하여 감시 장비가 감시하는 대상과 공간을 의도적으로 텍스트를 이용해 드러내는 것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계층적 관계의 전복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이다. 감시 카메라는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채기는 어렵다. 따라서 〈워칭 유〉에서는 감시카메라가 감시 중인 특정 영역을 특정 텍스트로 마킹하여 가시적으로 노출시켰다. 작업에 쓰인 텍스트는 전체주의적 감시 사회를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발췌하였다. 소설의 텍스트 풀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문구는 감시 장소 곳곳에 아날로그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투사되어 관람객이 지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감시자와 피감시자 사이의 관계를 동등하게 만들고자 감시자 역시 CCTV 멀티스크린을 통해 해당 문구를 볼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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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워칭 유〉 콘셉트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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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워칭 유〉 슬라이드 필름 프로젝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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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워칭 유〉 슬라이드 필름

3. 〈첩첩삶중〉

〈첩첩삶중〉은 60603이라는 창작 집단이 기획한 라이프 스타일 관련 특별 전시이다. 60603에 따르면 전시 장소가 을지로의 빼곡한 빌딩 숲 한가운데 있다는 점에 착안해 ‘첩첩삶중’이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전시에서는 7인의 작가를 초대하여 작가 자신만의 창의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된 창작물을 선보였다. 따라서 본 3차원 타이포그래피는 해당 전시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상징적인 대형 월 그래픽 작품으로 전시의 큐레토리얼을 문자 그대로 관람객들에게 경험시키고자 하였다. 실제로 산이 첩첩이 쌓인 풍경을 ‘삶’이라는 단 한 글자로 이뤄진 아스키(ASCII) 아트로 그려냈다.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산이 첩첩이 쌓인 풍경 이미지를 디퓨전 디더링하여 1비트의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삶’이라는 문자로 치환한 작업이다. 이후 전시 공간의 외벽에 검은 잉크로 실크스크린 타일 프린트를 하였다. 디지털 프린트의 경우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정제되고 깨끗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삶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주기엔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실크스크린 타일 프린트를 사용하였다. 결과적으로 관람객들에게 한 편의 첩첩산중(疊疊山中) 풍경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개별 ‘삶’이 첩첩이 쌓여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려낸다는 의미도 함께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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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첩첩삶중〉 대형 월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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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첩첩삶중〉 디테일

VI. 작품 분석 및 평가

본 연구에서 선별하여 소개한 세 작품은 앞서 서론의‘연구 범위 및 방법’에서 언급한 작품에 쓰인 텍스트와 작품과의 관계,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 타이포그래피의 기능과 표현 두 측면, 그리고 실제 제작에 있어 고려하거나 유의할 점을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3차원 타이포그래피 연작 중 가장 대표적이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품 〈모노리스 인 레드〉는 전 세계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인 타이포잔치의 2017년도 본 전시에 특별 초대된 작품이다. 당시 비엔날레의 주제는 ‘몸’이었으므로 작품에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인간, 그 존재의 ‘몸’에 주목한 실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특히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몸’에 관한 핵심 문구를 다수 인용하여 관객이 이 작품을 대할 때 마치 해당 책의 텍스트를 4차원 시공간에서 직접 체험하며 읽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작품은 크게 거울 속의 네온사인과 대형 거울 겉면의 바이널 시트로 이뤄진다. 대형 네온사인의 경우 네온에 적합한 활자체를 직접 디자인하여 구현했고 바이널 시트의 경우 글자의 최소 및 최대 크기를 여러 차례 테스트하여 가독성과 판독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특히 네온사인의 경우 인쇄와는 반대로 발광(發光)하는 방식으로 글자를 표현하기 때문에 글자나 글줄의 간격을 인쇄용 조판보다 넓게 설정하고 다각도로 테스트를 해야 했다. 당시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팀은 “〈모노리스 인 레드〉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로 구현된 니체의 실존적 텍스트와 관람객의 몸 사이의 시공간적 관계를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미장센을 빌어 숭고하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했다.”고 평했다.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주제로 다룬 〈워칭 유〉는 해당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감시와 통제가 만연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를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1984》의 문구를 임의로 선택하여 투사(投射)했다. 슬라이드 필름 프로젝터를 사용해 최신식 감시 장비를 암시적으로 조롱하고 풍자하는 듯한 타이포그래피를 관련 장소에 드러나게 했다. 이는 텍스트를 읽음으로서 해당 주제를 직접 경험하며 동시에 비가시적인 감시와 통제를 인지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슬라이드 필름을 활용하였기에 프로젝션을 미리 예측하여 글자의 최소와 최대 크기 및 획의 두께를 다각도로 테스트하고 빛이 필름을 명확히 통과해야 하므로 인쇄와는 달리 가변폭 서체가 아닌 고정폭 서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워칭 유〉는 그래픽디자인의 비평적 기능이라는 측면과 메시지를 문학적으로 전달하고자 3차원 타이포그래피의 특성을 고려해 매체와 재료까지 사려 깊게 탐구한 융합 연구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최고 권위의 예술-디자인학교인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의 플릿 라이브러리에 사진 아카이브 형식으로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도심 속의 잿빛 삶을 은빛 삶으로 바꾸어간다’는 메시지를 담은 〈첩첩삶중〉의 타이포그래피 월 작품은 한국의 ‘츠타야’로 불리는 라이프 스타일 서점 ‘아크앤북’의 그랜드 오프닝을 위해 특별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텍스트를 문학적이거나 은유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경험보다는 전시의 주제에 맞게 ‘삶’이라는 글자로 풍경을 만듦으로서 공간적이고 이미지적인 문해를 통해 ‘첩첩산중’과 ‘첩첩삶중’을 함께 감상함과 동시에 체험케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삶’이라는 단 하나의 글자로 산수풍경을 만들기 위한 코딩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의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여 특정 이미지를 벡터(vector) 오브젝트로 변환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표현이나 기법의 측면에서는 별도로 텍스트를 조판할 필요가 없었기에 벽의 질감을 살려 글자를 하나하나 세세히 프린트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 작품의 타이포그래피는 제너레이티브(generative) 디자인으로도 활용이 가능하여 향후 더욱 다양한 알고리즘을 연구해 무빙 타이포그래피나 인터랙티브 타이포그래피로도 구현해 볼 계획이다.

VII. 결론

본 연구는 프로젝트 논문으로서 개념 예술의 텍스트성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타이포그래피를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관점에서 융합한 실천적 탐구이다. 더불어 본 연구에서 조사한 이론과 접근법, 프로세스를 〈수사적 공간〉이라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 연작에 실제로 적용하여 지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선행 연구의 실효성을 함께 검증하고자 했다.

물론 본 연구를 한 편의 프로젝트 논문으로 매듭짓는 현재 시점 이후로도 관련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텍스트 기반 작품을 실증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연구자가 관련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함에 있어 하나의 개념적 프레임워크처럼 활용하였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에선 방법론적 측면의 연구가 주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후속 연구에서는 방법론적 측면의 핵심 개념인 개입과 중재, 차용, 전복, 확장의 가능성을 통해 메시지를 발명하거나 발견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고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커뮤니티, 장소, 자연적으로 생성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에 관심을 두고 보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적인 공간을 어떻게 읽고 경험할 수 있는지 탐구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후속 연구의 지향점을 잘 반영한 가장 최근의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를 하나만 꼽으라면 워싱턴 D.C.에서 백악관을 향하는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노란 글씨의 ‘BLACK LIVES MATTER’가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자칫 과격하고 선동적인 한 편의 프로파간다로 치우칠 수 있는 메시지를 시공간의 맥락(특히 장소의 맥락)과 효과적으로 연결시켜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은유로 표현하였다. 또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전시만을 위한 장소가 아닌 방문자와 더욱 가깝게, 누구든 원하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광장(plaza)에 설치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의 연구는 해당 프로젝트처럼 방법과 의미, 두 측면 모두에서 가치를 획득한 전시 혹은 미술관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3차원 타이포그래피 프로젝트를 주된 탐구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또 다른 주요 후속 연구로는‘미디어 컨버전스’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 등을 이용한 무빙 타이포그래피 또는 인터랙티브 타이포그래피가 있을 수 있다. 다만 해당 분야의 경우 디지털 환경과 매체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와 기술적 숙련도가 요구되기에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연구할 예정이다.

그림 23. ‘BLACK LIVES MATTER’

마지막으로 본 연구를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논문으로 작성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지면이나 스크린 위의 타이포그래피와는 달리 시공간과 언어, 그리고 3차원 환경의 타이포그래피를 세련되고 완성도 있게 융합한 프로젝트를 아직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원 환경과 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한 타이포그래피 연구가 본 연구를 주춧돌 삼아 더욱 진화하여 3차원 타이포그래피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새로운 교육과 프로젝트에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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