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보건의료산업을 통해 시장에 유통되는 의약품이나 생활화학제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 자체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때 사전에 이를 발견하거나 확산을 막기 위한 빠른 원인규명이 쉽지만은 않다. 이때 국민의 안전과 생명권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는 가볍지 않다.
정부는 보건의료영역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정부부처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관료조직, 산하기관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소관업무 역시 방대하게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러한 정부의 활동을 무색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실망으로 다가온다. 왜 이러한 문제는 시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할까? 본 연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출발하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화학성분이 사람들의 호흡기를 통해 수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였다. 특히 가습기는 건강한 사람도 이용하지만 산모와 영 · 유아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심지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얻은 환자들이 유해성을 모른채 지속적 으로 사용하여 피해를 키우기도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소 재 A병원이 질병관리본부에 신종 전염병일 수 있다고 신고함으로써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질병관리본부가 원인규명과 제품 회수조치에 나섰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정부에서는 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째서 질병관리본부는 사건의 원인규명과 제품 회수조치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는가? 본 연구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질병관리본부의 행동 비교를 통해 정부개입의 적극성이 어떠한 행동기제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러한 행 동기제가 어떠한 유인구조에 의해 도출되는지를 규명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정부구조를 개선할 것인지를 토의하고자 한다.
이론적 고찰
1.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관료제적 특성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같은 사회적 참사의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므로 행정학 분야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Hong [1]의 연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하여 관료제 조직문화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하여 기존 연구들의 “무책임한 기업의 탐욕과 국가의 무능이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건강을 위협했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재난이 생긴 뒤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원인을, 재난 이전 시기에 투영하는 식의 판단을 유보”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1]. 왜냐하면 “무엇보다 재난의 원인이 밝혀진 뒤에 는 명백한 위험이었던 것이, 그 이전에는 수용 가능한 일상적인 위험으로 간주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Hong [1]은 “이들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전제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서 판매한 기업과 이를 승인한 정부가 윤리적이라거나 합리적이었다는 얘기를 하려거나 이들을 비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개인보다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했던 조직의 특성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데, 본 연구에서도 기존 연구의 입장을 수용하 고자 한다[1].
또한 기업과 정부의 관료조직의 특성을 분석하면서 (1) 비밀주의, (2) 평가절하 어림짐작(disqualification heuristic), (3) 칸막이 문화와 피드백과 소통의 단절 등을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중요한 원인이라 고 하였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가 어떤 법률에도 적용대상이 아니 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의는 종종 정부 여러 부처를 왔다 갔다 하는 모 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하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어느 부처의 소관사항도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1].
2. 관료제하에서의 책임 은폐
관료제하에서의 책임 은폐에 관하여는 일본 정치 · 행정학 이론들이 본 연구를 위한 유력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일본의 Toya [2] 는 조직이 자기존속을 추구한다는 전제를 두고, ‘규제권한’과 ‘명성 최 대화’라는 두 목표를 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목표가 서로 상충 하는 경우에는 ‘공익’이라는 개념이 추가된다. 만약 관료조직이 윤리 적 · 정치적 실패를 저질렀을 때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명성을 최대화하려 한다는 것이다[2,3].
Kamikawa [4]는 관료조직의 목표를 조직존속과 명성의 최대화로 가정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장기적인 관점과 단기적인 관점에서 조직존속에 부합하는 정책이 대립할 때 어느 쪽을 추구할지는 정치가가 관료조직에 치명적인 제제를 단기간 내에 가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일본 대장성(大藏省)이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 금융문제의 실태를 은폐하는 단기적인 정책을 취하였으나 영원히 은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후에 정치가가 정치적 결정을 단행하여 책임을 추궁하였고 그 결과 대장성 조직은 분리되었다[3,4].
3.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성격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X 이벤트”라고 정의하고 있는데[5], 이것은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고 확률을 계산할 수 없지만 파급력이 큰 사건을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이러한 속성은 독일의 사회학자 Ulrich Beck이 주장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라는 개념으로 설 명될 수 있다. 국내에서 위험사회는 ‘안전한 사회’에 대비되는 ‘위험한 사회’로 대비되어 도덕적 당위성을 가지는 선언적 개념으로 오해되고 있다[6]. 그러나 실제로 위험사회론은 근대 산업사회의 성공이 낳은 비의도적인 결과인 위험 자체보다는 위험의 성격이 낳은 문제들에 관한 사회의 갈등을 현대적 제도와 관련하여 논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한다[7].
Ulrich Beck은 위험(Risiko)을 자연재난이나 위해(Gefahr)와는 구분하였는데, 위험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1) 자연적 재난과 대비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2) 인간의 즉각적인 인식능력을 벗어난 것, (3) 보편성을 띠는 것이다. 보편성과 관련하여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표현이 Ulrich Beck의 견해를 보여주고 있 다[7].
이러한 위험은 인간이 만들어낸 의사결정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예측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는 속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사회 에서는 불안이 새로운 문제가 된다[8].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에 대하여 정부가 인지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 사건의 어떠한 속성 때문일까? 본 연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초래하는 사회학적 변화보다는 위험사회론에서 설명되는 사고의 ‘인지하기 어려움’을 주목하면서, 이와 관련한 정부조직의 행태를 논의하고자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전개1)
1. 1기: 제품의 출시부터 문제 발견 이전까지(1994–2011. 3)
1)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리 부재
화학물질을 등록 · 허가하는 권한은 환경부의 소관이었으나, 유공의 가습기메이트에 사용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5-chloro-2- methyl-4-isothiazolin-3-one, CMIT)에 대하여 독성 실험의 의무가 없었다는 것이 환경부의 주장이었다. 화학물질의 허가 · 등록을 담당하던 국립환경과학원의 K교수는 “당시 환경부에서 관리해야 하는 화학 물질만 680종이 넘었다”며 “기존 물질을 관리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신 종제품에 대한 독성 평가에서 놓친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5].
한편,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 출시되는 데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리 부재가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생활화학용품을 관리하면서도 가습기 살균제가 관리항목에 없는 품목이라는 이유로 규제하지 않았다. 2007년 KC마크를 획득한 코스트코코리아의 ‘가습기클린업’에 대해서 역시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흡입독성 실험을 하 지 않았다[5].2)
2) 가습기 살균제 규제에 관한 제도적 미비점
생활화학용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에 따라 관리되며 화장품이나 의약품, 식품 등은 “약사법”및 “식품위생법”의 규제를 받고 있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는 화장품, 의약품, 식품 등으로 별도의 규제를 받는 품목이 아니었으므로 품공법의 규제대상이었다. 그러나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의 안전기준”(기술표준원 고시 제 2012-341호)에 따르면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 세제, 표백제 및 섬유유연제는 생활화학가정용품으로 분류하여 관리 하였으나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명문규정은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2007년 이전까지 세정제로조차 분류되지 않은 제품이었고 2007년 이후에는 세정제의 일종이 되어 자율안전확인대상품목이 되었다.
그러나 자율안전대상확인품목이 되었더라도 ‘제품의 물리적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화학적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에는 보건복지부가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여, 허가를 받아야만 유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9]. 요약하면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07년까지 호흡기를 통 해 인체에 흡수되는 제품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13년간 어떠한 검사나 규제의 대상이 아니었고, 보건복지부가 개입한 2011년 이전까지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하였다.
2. 2기: 문제의 발견과정(2011. 4–2012. 2)
1) 보건의료계에서 관측된 이상 징후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하여 사고의 ‘시그널’이 있었으나 이를 인지 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견해가 있다[5]. 우선 보건의료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린이와 임산부 등을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피해자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2006년 이후에는 초봄을 전후해 상급 종합병원에서 피해자가 동시에 4–5명씩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심 각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정부와 의료진 모두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10]. 이에 관해서는 2006년 봄 의료계가 원인을 일찍 규명했더라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5]. 2008년에는 이미 이 질환이 봄철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서울의 4개 대학병원이 인지하고, 환자 발생에 대비하고 있었다. 2009년과 2010년에도 유사 어린이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기관지 주변의 염증 으로 볼 때 공기 중에 포함된 어떤 성분에 의한 질환임을 암시하고 있 었다[10].
2008년 대학병원들과 질병관리본부는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급성간질성폐렴’의 전국적 발생빈도와 폐렴 발생현황을 파악하였다. 전국 23개 병원에서 설문에 응답하였는데, 총 78명의 증례가 있었고, 그 중 36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조사결과로 발표된 논문에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병인이 알려져 있지 않고 정립된 치료법이 없는 실 정이나 매우 빨리 진행하는 질병의 특성상 조기발견이 병의 진행을 억제하고 예후를 호전시키는 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11].
2) 환자의 집단발생과 신고
2011년 봄, 다수의 폐질환 환자가 한 병원에 우연히 입원하게 된 것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월 말에 호흡 부전의 한 여성 환자가 서울 소재 A병원에서 체외막산소요법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치료까지 하고도 3월 초 숨 지고, 4월 초에는 임산부와 출산 직후 여성 4명이 유사한 증상으로 입 원하였다. A병원은 4월 19일에 다른 병원에서 동일한 증상이 있는지를 조사하여 네 곳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음을 인지하였다. 4월 25일에는 질병관리본부에 폐질환 환자 발생을 신고하였다. A병원이 신고한 동기는 “급성 호흡부전을 동반하는 중증 폐렴 환자들의 발병 원인이 규명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판 단 때문이었다. 이들은 유례없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환 자들의 ‘신종감염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시급하였다[10]. 즉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위험요인이 발견된 것은 원인미상의 폐질환이 ‘신 종감염병’일 수 있다는–결과적으로는 다행인–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다. 이날의 신고가 없었더라면 역학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가 습기 살균제 사고의 원인이 규명되지도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지 모른다.
3) 질병관리본부의 원인조사와 제품 수거 명령
질병관리본부는 세균 · 바이러스질환이 아님을 확인한 뒤 환경적 요인이 원인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역학조사를 실시 하여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10].
2011년 8월에 발표된 정부의 역학조사결과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환경시민센터는 이 날 오후 5시경 ‘가습기 살균제품과 유사제품명을 공개하고 제품 회수 조치를 실시하라’라는 제목의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2011년 9월 27 일 질병관리본부는 인과관계 확인을 위한 동물실험을 실시하고, 보 건복지부는 2011년 11월 11일 가습기 살균제 등 총 6종에 강제수거 명령을 발동하는 한편, 국민들에게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 중단을 권고 하였다. 수거대상이 아닌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은 12월 30일 의약외 품으로 지정하여 식약청장의 품목허가를 받아야만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하였다[10]. 이날 이후 현재까지 허가를 얻어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없다.
3. 3기: 문제의 해결과정(2012. 3–현재)
질병관리본부는 2012년 12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손상 사례를 파악하기 위하여 폐손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2014년 12월에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원인규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10].
2012년 12월부터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운영을 개시하였으나 폐손상 의심 신고사례의 조사방식을 두고 정부와 피해자 및 시민단체와의 이견이 있었다. 2013년 7월부터 2016년 1월까지는 3차례 피해조사가 있었다[12].
2013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급성 폐손상이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 되어 일부 피해구제가 있었으나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건의 해결과정은 잠복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2016년에 검찰조사가 재개되어 옥시래킷벤키저의 보고서 조작이 확인되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7년 11월에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어 시행되고 있다[6].
2019년에는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의 부사장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관련 자료를 파기하는 등의 증거인멸을 하였다는 혐의로 구속되는 등 검찰의 수사가 새롭게 진행 중이다[13].3)
고찰
1.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관료제적 양상: 광장의 초점과 책임의 사슬
1)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 후 정부의 행동기제: 광장의 초점
(1) 광장의 초점모델 소개
그렇다면 왜 2011년 이전까지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규제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일까? 이러한 현상을 공공광장모델을 통해 설명된다. 사회문제는 그것의 객관적인 상태보다는 집단적인 감 성(collective sentiment)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모델에 따르면 사회문제는 광장(arena)에서 경쟁을 벌인다. 사회문제들의 수는 많으며 광장은 문제들이 경쟁하는 환경이 된다. 그런데 이 광장의 수용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광장을 차지할 수는 없으며 ‘선별’이 일어난다[14] (Figure 1).
2011년 이전에는 가습기 살균제라는 새로운 문제가 이익집단, 의 회 등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광장의 초점(focus of arena)을 벗어나 있 었고,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 · 관료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였다(Figure 1A). 그러나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신종전염병 억제’라고 하는 다른 이슈로 전환되어, 광장의 초점영역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 정책의제를 전문가 · 관료집단이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문제해결에 이르게 된다(Figure 1B)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 시기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임산부들 사이에서 원인미 상 폐질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었다고 하는데, 바이러스성 폐질환 이라거나 일본의 방사성 물질에 의한 폐질환일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있었다고 한다[15-17]. 따라서 ‘발견되기 어려운’ 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는 문제가 광장의 초점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관료 및 전문가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귀결을 끌어내었다.
Figure 1. The focus of arena: the process of finding the problem of humidifier disinfectant. (A) Before finding the problem (period 1). (B) Finding the problem (period 2).
(2) 2008년 의료계와 정부의 행동: 광장의 초점 밖에서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2008년 대학병원들과 질병관리본부는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폐질환의 원인규명을 하지는 못하였다 [11]. 2016년 9월에 열린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 제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 당 B의원은 “질본이 너무 자신들의 업무를 감염성 질환에만 국한해 (2008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는 질타를 하였다[18]. 이에 대한 질병관리본부의 서면 답변내용은 “최종 임상연구결과 다양한 병원체가 검출되어 특정 감염병을 원인으로 추정하기 어려웠으며 당시 연구진은 감염병 외 가습기 살균제 등 환경성 요인을 의심하지 못해 이와 관련된 추가조사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2008년 당시 감염병이 아니거나 근거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역학조사가 진행되지 않은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19]. 요약하자면 당시 의료계와 질병관 리본부는 환경성 질환일 가능성은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3) 2011년 의회, 언론, 시민사회의 행동: 광장의 초점 안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광장의 초점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은 주로 언론의 역할이 컸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언론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면서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피해자들은 보건당국의 발표가 있고서야 피해자임을 알 았고, 정부를 상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를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특성으로 장기성(長期性)과 그로 인한 비당 파성(非黨派性)을 들 수 있다. 1994년과 1996년에 유공과 옥시가 각각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출시한 이후 2011년에야 유해성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은 17년간이다. 따라서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대해 서는 특정 정파가 다른 정파에게 책임추궁을 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의회와 언론, 시민단체의 활동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언론이었다. 2011년 5월 11일 한 폐렴 환자가 사망하자 언론들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으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불안감이 확산된다고 하였고, 보건당국은 “유행성 질환이 아니”라고 하였다[20]. 산모 카페에서 “원인불명의 폐질환이 방사능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에 떨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21]. 6월에는 언론 들이 ‘원인불명 폐질환,’ ‘원인미상 폐질환,’ ‘미확인 급성 폐질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며, 그 내용은 가족 간에 발병이 이루어졌으나 당국은 전염성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난이었 다[16, 17, 22, 23]. 6월 20일에 이르러 언론은 환경성 질환일 수 있다는 결과적으로는 옳았던 예측을 내놓게 되었다[24]. 언론의 역할을 정리 하자면 국민들의 불안감을 알리는 전파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전염성 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었고, 당국이 질병의 원인을 밝 히지 않는 것을 질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에 보건당국은 질 병의 원인에 대하여 무지하였으며, 언론은 그러한 무지에 대하여 무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인미상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발표가 나온 것은 8월 31일이었다. “지난 4월에서 5월 주로 출산 전후 산모들에게 나타났던 원인 모를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으며 “보건당국은 관련 업체들을 상대로 시중에 유통된 제품을 수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 를 사용하면 원인미상 폐질환에 걸릴 확률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보다 47.3배 높았다”고 한다[25].
이에 따라 환경보건시민센터 ·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 여성환 경연대 ·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영유아 사망을 몇 년 전부터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제조사를 밝히고 강제회수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26-29].
실제로 보건당국이 제품과 제조사를 밝히고 강제회수를 실시한 것은 동물실험이 이루어진 11월이 되어서였다[30]. 피해자들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소송을 예고하고,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청원을 하였으며, 11월 30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피해자대회를 가졌다 [31-33].
한편,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C의원이 9월 26일 국정감사에서 “사망환자까지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최종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발적인 생산 및 사용 자제 권고조치를 한다는 입장”이 라며 “이제라도 가습기 살균제의 원인성분과 제품명을 공개하고 시 중에 유통되는 제품에 대해 전량 회수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습기 살균제와 원인미상 폐손상과의 인과관 계가 상당히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증명된 후 그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해당 제품에 대해 강제 회수조치를 하고 싶지만 법적으로 하기 힘들게 돼 있다”고 답했다[34].
시민단체와 의회(당시 민주당)는 제조사를 밝히고 강제회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정부와 보건당국은 동물실험을 통해 원인이 밝혀져야만 강제회수가 가능하다며, 회수는 권고만 하고 있었다. 시민단체와 의회가 강제회수를 요구한 시점부터 동물실험이 끝나 실제로 강제회수가 이루어진 시점은 40여 일이 지나서였다.
의회와 언론, 시민단체 간에 의견의 대립은 없었으며 보건당국은 이들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언론이 전염병에 대한 우려를 보도하였으며, 보건당국은 이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은 광장의 초점모델로 설명이 된다. 2008년 당시 에는 언론의 압력이 없었기 때문에 감염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보건당국은 환경성 질환에 대한 의심조차 할 수 없었지만, 2011년에 는 언론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폐질환의 원인을 밝혀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보건당국이 이 사건에서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건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보건당국만이 사건의 원인을 규명 하거나 원인이 되는 제품을 구별할 수 있었으며, 의회와 언론, 시민단체는 어떠한 지식이나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는 점은 다른 환경사고나 환경이슈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2)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 후 정부의 행동: 은폐의 행동기제
가습기 살균제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리대상이었다가 2011년 의 약외품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보건복지부의 규제대상이 되었다[9].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인지 시점부터 원인규명과 제품의 회수를 시행 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가습기 살균제가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폐질환의 원인규명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행동기제가 작동한다는 점을 추론하였다[5].
행동기제 1. (의사결정의 지연) 조직은 불확실 위험요인이 있을 때 의사결정을 지연한다.4)
행동기제 2. (소극 관성) 조직은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거나 위험요 인의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바뀌어도 그전까지 의사 결정을 지연해 왔던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행동기제 3. (적극 관성) 조직은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거나 위험요 인의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바뀌어도 그전까지 의사결정을 지연해 오지 않았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위의 행동기제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에 부합하는지를 살펴 보자. ‘행동기제 1’에 대해 고찰해 보면,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 중 하나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oligo(2-(2-ethoxy)ethoxyethyl guanidine chloride, PGH)의 독성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35,36].5) 노동부가 2007년 PGH에 대해 “증기 노출작업 때 호흡용 보 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여야 한다”(노동부공고 제2007-148호)고 한것을 볼 때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5]. 산업 통상자원부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위험성을 알 수도 있었으나, 집단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높은 위험성을 인식한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적극적 규제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 통상자원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사망자의 발생의 개연성이 높다’는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6)
‘행동기제 2’를 살펴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규제 권한을 행사하고자 할 때 저지하지는 않 았지만,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회수조치를 하지도 않는 등 소극적으로 행동하였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 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우원식 위원장은 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olyhexamethylene guanidine, PHMG)이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다는 것을 2005년부터 환경부가 알았는데도 유해성 심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자, 환경부 차관 은 “국회 입법까지 시일이 걸리며 (중략) 내부적인 논의는 있었으나 법제화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하면서 “2005년 가습기 살균제에 PHMG와 메틸이소티아졸리논(2-methyl-4-isothiazolin-3-one, MIT) 이 사용될 때에는 유해성 심사대상이 아니었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37]. 물론 법률규정을 따라야 하는 정부부처는 가습기 살균제 에 대한 규제의 근거가 없었으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더라도 국민들은 정부조직이 1차적으로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 자체가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산업통상자 원부 차관은 “시중에 문제가 되는 품목 중심으로 사후관리를 한 탓에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사후관리가 미흡했던 것을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해, 사과와 책임인정은 하지 않고 유감 표명에 그치는 태도를 보였다[38].
‘행동기제 3’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인지하자 질병관리본부는(본 래 자신의 소관사항이 아니던) 회수조치를 단행하고, 식약처는 의약 외품으로 지정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3) 은폐의 원인: 책임의 사슬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환경부 ·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식약처 · 질병관리본부)의 대응과정의 차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Figure 2). 여기에서 ‘정치 · 시민사회의 압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광장의 초점(focus of arena)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 압력으로 인하여 정부조직은 정치 ·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행 동할 책무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책무에 대하여 정부조직은 은폐하 거나 해결하는 대응을 할 수 있다.
정부조직이 책임회피 행동에 대하여는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Toya [2]는 조직은 자기존속을 추구한다는 명제를 당연한 진리로 두었다. 그런데 관료조직이 치명적인 실패를 저질러 서 ‘국민의 적’이 되고 정치가가 조직의 존속에 치명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우에는 공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을 실 시하여 명성을 최대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2,3].
Kamikawa [4]는 ‘명성의 최대화’ 만으로는 관료조직이 어떠한 정책 선호를 가지는지 설명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관료조직은 조직존속 또는 방어를 위해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의 경영 위기위기에 대한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하여 대장성(大蔵省)은 금융문제를 뒤로 미루고 은폐하는 선택을 해 왔 던 것이다[3,4].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하여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은폐 행동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식약처의 적극적 대응에 관한 적용으로써, 본 연구에서 새롭게 도식화한 것이 ‘책임의 사슬’이다.
‘책임의 사슬’은 “조직은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거나 위험요인의 불 확실성이 확실성으로 바뀌어도, 그전까지 의사결정을 지연해왔던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하는 소극관성(행동기제 2)이 작용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사슬에 묶이면 은폐의 영역을 벗어나 지 않는다.7)
반면에 책임의 사슬에 묶이지 않는 정부조직은 ‘해결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때에는 “조직은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거나 위험요인의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바뀌어도 그전까지 의사결정을 지연해 오지 않았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적극관성(행동기제 3)이 작용한다.
가습기 살균제를 관리 · 감독한 주체인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는 ‘책임의 사슬’에 묶여 은폐하고자 할 유인이 있어 은폐의 영역에 있었다. 반면, 원인규명 및 제품 회수 주체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식약처는 ‘책임의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해결의 영역’ 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책임의 사슬에 자유로운 조직(부처 또는 부서)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할 때 ‘해결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8)
Figure 2. The chain of accountability: the actions of government departments.
2. 규제권한 분산을 통한 불확실성 대응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을 위하여 정부관료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임의 사슬’에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규제의 계단’을 제시하고자 한다(Figure 3). 규제의 계단에는 하나의 생활화학제품이 화학물질로부터 제품화되고 가정에서 사용되는 단계를 거칠 때 각각의 단계의 규제책임과 권한이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식약처에 부여되고 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허가와 용도의 제한 등에 관한 사항을 관할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생활화학제품의 등록 및 인 · 허가와 유통 등에 관한 사항을 관할한다. 식약처는 제품이 가정에서 사용될 때의 환경조사(역학조사)와 함께, 사용된 제품을 무작위로 수거하여 독성시험을 하는 등 전단계에서 간과할 수 있는 위험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다. 이러한 부처 간 권한의 분산이 ‘칸막이 문화’의 부작용을 겪지 않으려면 모든 생활화학제품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3단계의 규제를 일 관적으로 적용하는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39].9)
규제의 계단은 각 단계가 모두 ‘그물’을 들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앞서 설명했듯이 규제의 계단에 따라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허가와 용도 의 제한 등에 관한 사항을, 산업통상자원부는 생활화학제품의 등록 및 인 · 허가와 유통 등에 관한 사항을 관할하게 되는데, 이들은 각각 화학물질과 생활화학제품을 온전히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소비자가 생활화학제품에 관한 질의를 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답변할 의무가 있고, 제품이 아닌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환경부가 답변할 의무가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이들은 화학물질과 생활화학제품을 규정에 맞게 금지하거나 통과시키는 문지기의 역할이다.
반면, 식약처는 제품이 가정에서 사용될 때의 환경조사(역학조사) 와 함께, 사용된 제품을 무작위로 수거하여 독성시험을 하는 등 전 단계에서 간과할 수 있는 위험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산업통 상자원부의 역할과는 차별화된다고 하겠다. 이들은 문지기를 통과한 화학물질이나 생활화학제품이 잘못 사용되고 있을 때 비상적인 상황 으로 간주하고 멈추게 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마지막 계단의 역할은 앞의 계단에 비상적인 상황임을 알리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브레 이크’의 존재가 규제의 계단이 기존의 권한의 분산과는 다른 점이다.
Figure 3. The steps of regulation for chemical safety.
결론
1. 연구의 요약 및 한계점
본 연구는 ‘정부가 수많은 부처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관료조직, 산하기관들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를 막지 못하였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우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2011년 이전에 왜 주목을 받지 못하였는지에 대하여 ‘광장의 초점’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라는 새로운 문제가 이익집단, 의회 등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광장의 초점(focus of arena)을 벗어나 있으면,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 · 관료라고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므로 사고를 제때에 예방할 수 없다.
또한 ‘책임의 사슬’을 통하여 광장의 초점영역 안으로 들어온 사고에 대하여 정치 · 시민사회가 정부에 대하여 해결을 하라는 압력을 가하더라도 정부조직은 ‘책임 은폐’라는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러한 선택 을 할지에 대한 여부는 정부조직의 과거의 행동으로 인한 ‘책임의 사슬’의 존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 기 위해서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책임의 사슬에 자유로운 조직(부처 또는 부서)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하여야 한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정부관료의 무관심 극복이 중요하다고 강 조하면서, 하나의 대상을 여러 부처가 각각의 단계를 거쳐 중첩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규제의 계단’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2011년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하여 보건복 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러나 2012년부터 현재까지 2016년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사와 보상이 지체되었던 점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이 하나의 원 인이므로[6], 보건환경 및 법학의 영역에서 화학물질 피해 입증에 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향후 연구 과제
국내외 유사사건 · 사고 사례를 검토하여 본 연구에서 제시한 ‘광장 의 초점’ 및 ‘책임의 사슬’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더 발전시키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에서 발생한 ‘C형 간염 사건’과 유럽 에서 발생한 ‘후천성면역결핍증 은폐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일본의 약해간염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비교를 통해 ‘책임의 사슬’에 관한 논의를 심층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국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는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인지한 시점부터 원인규명, 회수조치 등을 신속하게 진행한 반면, 일본의 C형 간염 사건에서 후생성의 대응은 상당히 지연된 측면이 있었다.
1991년 10월 프랑스의 르몽드는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약 10년간 프랑스에서 감염된 혈액을 수혈한 것이 원인이 되어 40만 명 이상이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AIDS) 등 심각한 질병에 감염되었다는 폭로를 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르몽드가 입수하여 발표한 비밀 보고서는 1989년 8월 프랑스 국립혈액원 장 미셸 가레타 박사가 프랑스 혈액관리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클로드 아벵 당시 보건장관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수혈에 의한 AIDS 감염 인구가 3,600명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40]. 1980년대 는 처음으로 AIDS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존재를 알게 된 시기였다. 국내에서는 1985년에 첫 AIDS 환자가 보고되었다[41].
이러한 사례들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환경 재앙’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바람직한 정부조직구조 및 조직문화에 대한 연구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감사의 글
이 논문은 2017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NRF-2017S1A5A2A0102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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