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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hical Symbolism through Meaning Action of Roland Barthes -Focus on Image Relationship of Silla Myth and Jeju Myth

롤랑 바르트 의미작용을 통한 우리나라 신화 상징체계 연구 -고대 신라신화와 제주신화의 이미지 관계성 중심으로

  • 강연심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연구위원)
  • Received : 2020.08.24
  • Accepted : 2020.09.29
  • Published : 2020.12.28

Abstract

Images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symbolic system as they are connected with imagination through the association of language. Through history, we know that Korean people have been a people of strong spiritual unity and unity for thousands of years. I tried to study how the Korean people's unified mental symbol system was utilized and accomplished through mythological images. Our people are recognized as a people of white clothes because they are connected with white clothes, and modifiers such as the country of the east where the sun does not go down are connected with the sun. The Korean people have been handed down according to the times, such as the son of the sky, the Hongik man, the birch tree and the Gyerim of Silla, as a symbol of the myth of Gojoseon, and do not know when it became a country that loved the sun and whether brightness became a symbol. In relation to the spiritual symbolic system of our nation, the mythical image of Jeju musindo embedded in the shamanist ideology was reinterpreted through the meaning of Roland Bart to provide a basis for the study of the spiritual symbolic system of our nation.

이미지는 유구한 역사적 흐름에서 파생되는 신화와 사회적 관습, 정신적인 심상(心象), 의미가 그림으로 기호화하고, 그림은 기호화를 통해 문자와 언어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기호화의 반복을 통해 민족의 상징체계가 형성되었다. 우리나라 민족은 수 천 년 동안 정신적인 단합·단결이 강한 민족이었음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 민족의 단합된 정신적 상징체계는 어떻게 활용하고 이루어졌는지 신화 이미지를 통해 연구하고자 했다. 우리 민족은 샤머니즘을 통해 오랫동안 신화 이미지가 유지되어 왔고 아직도 제주신화 이야기는 제의식과 함께 치러지고 있으며, 신화 이야기는 구비문학이라는 학문적인 측면과 이야기 전개 측면을 영화에서만 연구되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민족은 하얀 옷과 연결되어 백의민족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해가 지지 않는 동방의 나라 등 수식어가 태양과 연결된다.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신화의 상징성에 하늘의 아들, 홍익인간, 박달나무와 신라의 계림 등 시대에 따라 이어져 왔으며, 언제부터 태양을 사랑한 나라가 되었고, 밝음이 상징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체계와 관련하여 샤머니즘 사상에 내포되어 있는 제주 무신도의 신화적 이미지인 닭과 유사하게 표현된 이미지를 역사적으로 활용된 사례들과 문헌들을 제시하였고, 내표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을 통해 신화를 재해석 하였다. 그 결과 날개 손과 몸이 깃털인 반인반수의 표현, 닭이 봉황으로 이어져 밝은 빛과 연결되고 샤머니즘의 빛의 '신라'와 연결되어 신의 명칭을 국가 명칭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밝은 빛을 사랑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체계 연구에 근거를 마련하였다.

Keywords

I. 서론

일반적으로 이미지는 상상과 영상과 연결되며, 언어를 통한 의미작용까지 내포한 의미 전달과도 연결되어 커뮤니케이션에서 기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지의 개념과 어원은 라틴어 이마고(imago)에서 고대 로마 장례식 때 착용했던 데드마스크(death mask) 개념에서 나왔으며 어원적 의미로서는 죽은 자의 영혼, 유령, 신의 환영 등 신화와 연결되어 문자·종교·예술·사자(死者) 숭배의 기원[1]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지식, 진리와 같은 영역과 연결된 확장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미지는 언어·정신적인 표상에 대한 심리적인 활동에 의해 내재화되고 어떤 대상과 연결시킨 형식적인 구조로 표시, 지시성을 통해 규칙화되면서 상징화 되고 상징화에서 상징체계라는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이미지는 상징의 주술적-종교적 상징체계에서 원시적 심상의 메커니즘 연구에서 원시사회의 상징의 중요성을 밝힌 바 있다. 상징, 신화, 이미지가 원시사회의 정신적 삶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곧 이미지는 근절시킬 수 없다[2]는 것이다. 정신적 이미지는 현실에서 보아왔던 경험에 비춰 눈앞에서 보는듯한 인상과 유사하며, 정신적인 표상 역시 환각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지만 보는 것에서 그 특징들을 빌려 왔다[3]. 그러므로 모든 이미지의 근원은 눈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보는 것에서 그림으로 기호화한다.

기호화는 인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객관화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객관화 속에는 신호라는 기호가 포함된다. 신호의 개념은 닭의 울음을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으로 기호화할 수 있는 것처럼 닭의 울음을 신호로 하여 밝은 빛의 신과의 교통으로 기호화 한다.

그림과 같은 영상은 기호화를 통해 문자와 언어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기호화의 반복을 통해 민족의 상징체계가 형성된다. 신화적 상징체계는 신화나 우화가 언어로 표현된 이미지 사고 사이에 존재하며 논리성에서 언어적인 일련의 관계가 형성된다. 인간의 삶은 상징 속에서 규정되고 인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상징체계 속에 논리성으로 규율하기 때문이다.

신화 이미지 분석은 신화이미지가 우리의 삶 속에 오랫동안 녹아있어 상징성이 약화되거나 이미지의 변형으로 오늘날의 연상과 심상을 분석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화 이미지의 분석은 기호학적 의미작용 분석에 의해 추론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신화 이미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기호화하고 상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 표현 요소들을 우주로 확장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신화화하고 오랫동안 믿음을 통해 상징체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신화이미지 분석은 이미지 분석을 통해 기호화 할 수 있는 기호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롤랑바르트의 기표와 기의에 주목하는 것이다. 기표와 기의 사이에 의미작용을 통해 신화의 요소로의 접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신화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자산이며, 지역적으로 뿌리가 깊은 만큼 신화이미지 연구에 근거마련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제주 내왓당 무신도 10신위의 디자인 형태론 분석과 제주 무신도의 신화적 접근 연구에서 연구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해져오는 신화이야기와 롤랑 바르트의 신화의 의미작용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 체계를 분석하였다.

Ⅱ. 이론적 배경

1. 신라의 계림신화

우리나라는 동이계에 속하는 민족으로서 오랫동안 조류를 숭상해 왔다. 최근 제주 내왓당 무신도의 디자인 형태분석과 신화적 접근 연구에서도 조류의 반인반수(伴人伴獸)의 표현으로 손동작이 조류의 날개로 표현 되었다는 연구[4-6]가 제시되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 신라는 박혁거세와 계룡, 알영 등 닭과 관련된 신화들이 많고 신라를 계림이라 하여 닭과 관계된다. 고대 사료에서도 공공연하게 신라를 닭과 연관지어 표현되어 왔으며, 천계와 금계가 오랫동안 숭상되어 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대국가 신라 신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천축(인도) 사람들이 해동 즉 당시 한반도에 살던 신라 사람들을 ‘구구탁 예설라’라고 부르며 닭을 숭상하여 머리에 깃털을 꽂고 다녔다[7]는이야기가 전하고 계룡 신화는 닭과 연결된다.

중국 한시 <회남자>와 주희(朱熹)의 무이구곡(武夷九曲)과 김수온(金守溫) 봉교제일출부상도(奉敎題日出扶桑圖)에서 천계와 금계라는 단어가 종종 나타난다[2].

한국고전용어사전에서 금계를 천상(天上)에 산다는 닭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조정(朝廷)에서 사면령(赦免令)을 반포하는 날에 금계(金雞) 깃발을 꽂은 장대를 대궐 문에 설치하여 하늘의 뜻임을 밝혔다고 하고 있으며, 신라의 서울인 금성(金城)을 계림(雞林)이라하였고, 계림은 신라를 달리 표현한 말로 쓰였다고 하고 있다[5][7].

고려초 문신인 최승로(崔承老)의 상서에서도 신라를 금계(金鷄)로 표현하고 있으며, 닭이 운다는 것은 하늘과 연결되어 하늘이 알고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承老上書曰…當初翦亂夷凶 天生前主 而假手 在後膺圖受命 人知聖德 以歸心 於是値金雞自滅之期 乘丙鹿再興之運…)[5][7].

산해경 대황남경(大荒南經)편에 남쪽바다 바깥에 살고 있다는 우민국은 새처럼 알에서 태어나고 생김새는 길쭉한 머리에 두 어깨에는 날개가 달려있다[8][9], 또 근처에 환민국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날개가 달려 있고 입은 새의 부리모양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던 중국 변방민족이었던 동이족의 새와 동일시하여 날개로 하늘을 나는 인간으로 상상 했던 신선의 원시적인 형태이다. 이런 상상은 동이계 종족에게 일반화된 경향으로 우리 민족과 관계된다. 이런 고대 동양 우민국과 환민국의 신화사상이 우리나라 고대국가에 영향을 미쳤다. 지배층들은 이런 상징체계를 이용하여 신화를 만들어 유지 발전되어 제주신화[10]에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본다.

통일신라 때 불교가 전통종교인 무(巫)사상을 불교에 흡수한 것처럼 고려 역시 유불정책을 폈으나 사상적으로 다원성이 보장되어 샤머니즘 무(巫)의 종교적 행위가 보장되었다[11]. 고구려의 삼족오와 신라의 계룡(닭) 등 조류나 닭의 숭상은 개벽신화인 「천지왕 본풀이」에서 인황닭, 지황닭, 천황닭이라 구전되고 있어 계림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파악된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는 고구려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표명하였으나 고려 4대 광종 이전까지는 통일신라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11]고 역자들은 번역하고 있다.

[그림 1]의 고려 의장을 보면 봉기(鳳旗)로 닭의 이미지와 흡사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분열되었던 후삼국의 민심을 화합하는데 주력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봉황은 하늘을 나는 닭으로 금계를 뜻하며, 고대국가 이전의 신화를 통해 상서로움을 상징하기위해 귀족 왕실을 상징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원류는 신라의 닭-계룡-봉황-금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주 내왓당 무신도 디자인 형태론 분석에서 10신위의 손 표현이 조류숭상과 관련한 알레고리가 분석되었다[3]. 손 표현이 조류의 날개나 발등표현으로 되어 있으며, 제주 행원리 본향당 무신도 8폭의 경우에서도 사람이지만 털이 나있고 귀가 닭 벼슬로, 목 부분 역시 닭의 목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는 신을 반인반수의 표현에서 조류형상으로 표현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5].

중국 동이족이 조류 숭상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며, 닭과 관련된 신화라면 「삼국유사」에서 신라 건국신화 박혁거세 등 신라 편에 잘 나와 있다. 신라 사람 들을 ‘구구탁 예설라’로 닭을 귀하게 여기는 민족으로 표현한 것처럼 신라 계림신화와 제주내왓당 무신도와 제주행원리 무신도의 닭 이미지 표현들, 제주신화 천지왕 본풀이의 천황닭, 지황닭, 인황닭으로 표현하여 구전되는 이야기에서 닭을 상징화했다는 공통점을 파악할 수 있다.

2. 신화의 상징성

신화의 상징성은 카를 융(Carl Gustav Jung)의 무의식적인 내용물에서 파생한 자연적 상징으로 근원적인 심상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사회 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가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질베르 뒤랑(Gilbert Durand)은 신화적 상징체계를 신화나 우화의 언어 이미지나 사고들 사이에 논리적 언어의 일련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역시 인간의 삶은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게 했던 상징체계에 논리가 있기 때문이며, 인간 정신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언어와 문자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을 통해 이루어진다[3][12]. 특히 신화의 의미기능은 상징화하는 기호와 상징화된 것이 자유롭게 결합하며, 표현기능과 서술기능을 통해 다시 의미기능으로 이행한다[3][12].

그 밖에 상징유형 분류의 가장 전형적인 견해는 에드 워드 사피어(Edward Sapir)의 방식이다. 사피어는 ‘준 거적 상징(Referential Symbol)'과 ‘함축적 상징( Signifi- cant Symbol)’으로 분류하였으며 준거적 상징은 사실을 토대로 언어적 표현, 쓰는 것, 부호, 국가 등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경험을 나타낸다[13]. 던바(H. F. Dunbar)는 비본질적 상징과 본질적 상징, 통찰상징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상징의 여러 분류들을 토대로 상징의 존재양식을 언어, 행위, 상상의 산물, 관념, 인물, 사물, 사건, 제도 등 여덟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신화를 바탕으로 무속인들의 굿과 비념 등은 주술적인 행위기호로 몸짓, 의례, 의식 등 상징체계에서 나온 상징기호에 속한다[13].

상징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표출과 의미함축의 기능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중계함으로써 객관화되어 사회질서를 유지하여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한다. 또한 집단 내에서의 의사소통과 정보전달 기능, 그리고 집단 구성원들의 신념을 강화시키고 집단결속과 사회통합기능을 한다. 상징은 어떤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에 영향을 미쳐 개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행위를 유발시키며 집단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기능을 한다. 상징은 심리적 침투력으로 인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심리적 통일성을 달성하게 함으로써 신칸트 철학자 리프만(Walter Lippmann)이 주장하는 ‘단결의 메카니즘’이 된다[14]. 상징은 집단에서 객관적인 것처럼 인간의 사회관계에 강요되는 일종의 종교와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집단적인 믿음을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제정일치시대에는 제사장이 최고의 지도자로서 단결과 화합을 위해 모든 정치적인 행사가 이루어졌다. 우리 민족은 건국에 따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건국신화를 남겼고, 인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무병장수와 원한을 풀 수 있는 장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후세계와 관련한 신화를 남겼다. 그리고 농경사회와 관련된 신, 마을에 관계된 신, 가문에 대한 신 등 작게는 집안과 마을, 크게는 국가, 천상과 지하와 관련된 신화는 단결의 메카니즘으로 상징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사실적 준거를 통해 심리적 현실에 존재하는 상상력의 산물이며, 상상력은 원시의 신화 상징체계 속에서 부터 발휘되어 유전적으로 오늘까지 그 상징의 체계가 전달되고 있다.

3.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

기호는 고대 그리스어 세메이온(semeion)의 기원으로 미국 기호학자 퍼스(Peirce, C. S.)와 유럽에서는 소쉬르의 기호론을 중심으로 이미지와 제스처, 연극 등 언어형태에서 확대한 개념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기호는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는 지각 대상인 이미지의 색깔, 형태, 소리, 행위 등을 지칭하기 시작하였고 기호학 측면에서 다양한 기호의 형태들이 연구됨으로써 기호의 여러 범주의 기능적 법칙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호학은 의미생산 방식과 연결되며, 기호의 분석은 의미작용 해석으로 가능하게 된다.

유럽을 대표하는 기호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 기호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소리와 뜻에 집중하였고, 기호에는 기표와 기의의 이원론적 실체로 정의하였다. 소쉬르는 언어학적 기호 형태론을 규칙적인 언어 기능의 반대(opposition), 대치 (commutation), 치환(permutation)과 같은 원칙을 제시하면서 언어는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언어학이란 모든 기호학의 전 범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기호는 인간의 감각을 통한 물질적 인자와 정신적 인자까지 아우른다. 기호의 특성은 지각하는 것을 무엇인가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부재하거나 있는 것에 대한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것 외의 다른 것을 지칭하고 그것을 의미하기 위해 있는 것이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소쉬르의 이원론적 사고는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과 의미작용의 기본 구조가 된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기호론 요강] 발간은 비-언어학적 기호론을 탄생시켰고, 퍼스, 옐름슬레브, 소쉬르의 저서를 통해 독특한 기호의 의미작용 구조를 만들어 [신화론]을 출간하여 언어학을 뛰어넘는 문화기호학으로써 논리와 구조화된 기호이론을 제시하였다[15]. 롤랑 바르트는 ‘신화’를 이중적 연쇄에 의해 구성되는 기표와 기의를 이차적인 기호 체계로 정의하였다[15]. 소쉬르가 연구한 기호학이 언어의 기표와 기 의로 이루어진 1차 기호체계였다면 롤랑 바르트는 1차 체계의 기호를 기표기능으로 보고 2차 기의체계를 분석대상으로 하는 신화론을 제시한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에 해당하는 옐름슬레브의 ‘표현’과 ‘내용’의 관계에서 빌려왔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은 특히 디자인 형태 이미지의 표현에 대한 내용파악을 위한 해석부분에서 상징적 독법으로 알려져 있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개념을 확대하여 한 문화 속에서 기호들의 의미를 창출하는 방법에 이를 적용함으로써 소쉬르의 ‘의미작용’이라는 용어에 문화적 가치차원을 추가하였다. 의미작용은 기호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할 때 생성되고, 커뮤니케이션은 기표를 전달하는 과정인데, 이 때의 기표는 메시지의 전달과정으로 의미 작용이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일어날 것을 미리 기대하고 쌍방이 참여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의미작용은 소통의 개념이 아니라 의미를 재생산하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의미작용은 수신자에게 기표이면서 수신자에게 의미를 재생산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의미작용이란 의미의 창출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인간은 기호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면서 사회와 문화의 일원이 되고, 삶을 구조화하는 가치체계를 내면화하면서 사회공동체의 상징과 상징체계가 확고하게 된다.

롤랑 바르트는 사회현상을 기호학의 대상으로 보았고, 사회학은 기호의 실체와 상관없이 기호체계를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영상, 몸짓, 음악소리의 대상과 같은 것들의 복합적인 연합체로서 의식적이거나 관습적인 오락성의 내용을 형성한다. 이러한 소리 행위들은 언어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의미작용의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는 옐름슬레브의 외시, 공시 의미에 소쉬르의 기표, 기의를 대응시켜 의미작용의 기호학 개념을 발전시켜 다양한 사회문화의 현상까지 기호학적으로 분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기호의 대상을 확대 시켰다[14].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의미작용 모델을 통하여 1차적으로 외시적 의미와 2차적으로 공시적 의미로 구분하여 의미작용을 분석한다. 2차 의미작용을 통해 신화론모형으로 대중문화 현상들 속에 내포된 이데올로기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롤랑 바르트 기호의 의미작용 모델[5]에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에서 1차 기호는 생성된 외연적 의미의 1차적 의미작용에 해당하는 것은 외시의미(外示意味)로 하고, 1단계 기표의 해석은 표현에 대한 내용으로 조형이미지를 나타내는 텍스트의 특징으로 지시하는 상징 의미는 객관적인 가치를 가진다. 2단계 공시의미(公示意味)는 1단계 기표와 기의에서 외시의미가 1차 기호로 작용한다. 1차 기호는 2차적 기표가 지시하는 기의가 되고, 2차 기호가 된다. 2단계 기호작용은 사회문화적 경험이나 감각적 의미가 내포되어 주관적이며 신화적인 의미작용으로서 함축적 의미를 제시하게 된다.

외연은 낱말이 문맥 속에서의 의미나, 언어공동체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담론과 분리하여 분석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기호의미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반면에 내포는 기호가 표상하는 대상체와 관련된 문화적 경험의 연상 작용으로 문맥 속에서 의미가 기호로 작용하면서 본래 의미에서 확대되어 부가적인 의미를 창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바르트는 내포의미의 기호가 형태와 기능을 갖는다는 사실에 기호와 결부되어 가치 표현을 외연과 내포의 의미가 텍스트 기호에 드러난 의미와 숨은 의미의 관계에서 주목하여 신화론으로 정립 하였다[15].

롤랑 바르트의 이미지 분석방식의 초점은 이미지가 기호를 담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며 소쉬르가 주장한 언어학적 기호인 기표와 기의인 기표와 기의의 연결처럼 동일한 분석체계를 지니고 있어 이미지 분석을 통해기의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추구하면서도 기표를 기의와 연결시키면서 의미가 충만한 기호들을 발견하여 제시하였다.

롤랑 바르트는 언어적 메시지에 관한 매체들을 주목하여 이들의 수사학을 분석하고 이어서 시각적 메시지와의 결합방식으로 분석하였다. 롤랑 바르트가 코드화 된 도상 메시지라고 지칭하는 것은 다양한 기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방식이 혼란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기표에 사물, 사물의 색깔과 크기, 형태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모아 놓고 관계를 분석하면, 순수한 이미지가 이차적으로 해석되고, 해석은 특별한 법칙에 따라서 다른 세계와 지시관계를 맺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순수이미지는 하나의 기호로서 기호의 총체처럼 작용한다. 기호는 문자적 또는 외시적 메시지 속에 내포하는 상징적 또는 암시적 의미의 메시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알리는 사람과 수용자가 공유하는 사전지식과 관계되어 있다. 시각메시지의 중심부에 있는 구상적 또는 도상적 기호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심부에 있는 구상적이고 도상적인 기호가 전부는 아니다. 롤랑 바르트는 설득의 방식으로서 수사학에서 내포하고 있는 암시적 의미의 고유성을 지닌 의미 발견을 제시하였다. 롤랑 바르트 기호에서 암시적 의미의 수사학은 기표와 기의를 통한 제1의 의미작용이 기호가 되어 제2의 의미작용을 유발하게 한다. 롤랑 바르트는 기표와 기의가 연결된 완벽한 기호를 발견하게 된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작용은 역동적인 의미작용으로 완벽한 기호 이미지인 제2의 기의가 의미작용을 통하여 기표로 변하는 것을 도표로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15].

표 1.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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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이미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미지 속에 내포된 암시적 의미는 의미작용과정을 통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제2의 기의의 동인이 어떤 민족이나 특정한 사회역사에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은 이미지의 첫 번째 단계인 외시의 단계에서 상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언어적으로 엄격한 표현일지라도 그 표현이 과학성이나 이상적인 정보에 대해 암시하고 내포하기 때문에 모든 표현과 커뮤니케이션의 형태가 암시·내포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암시적 의미의 수사학에서 드러내는 시각적 메시지의 이미지는 기호의 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기호의 양에 있다[15]. 이미지가 암시적 의미의 수사학에서 하나의 대상 그 자체를 구성한다고 할지라도 내포된 이미지는 사물 자체와는 또 다른 언어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이미지에는 내포된 암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상상력을 통한 가상 이미지들의 시각 이미지들의 공통된 점은 무엇보다도 유추이므로, 이미지는 물질적이든 시각적이든지 자연적이든 가공적이든 간에 닮은 성질, 모양의 어떤 것에 대한 투영으로 하나 이상의 유사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이미지를 해석할 수 있다. 이미지가 표상이나 재현이라고 한다면 그 이미지는 기호로 파악되었고 유추적 기호로 인지된다. 그러므로 기호학은 이미지를 도상이나 유추적 기호로 다루려는 이미지 사용법과 완벽하게 일치되며[15], 신화 이미지가 주변의 객관적인 것과의 상모적(像模的)인 관계를 통해 우주적인 측면으로 확장하여 상징하는 것은 유추에서 비롯된 상관물로서 상상을 통해 의미작용의 내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이론은 신화 이미지 분석에서 내재적 의미파악을 가능하게 한다[16].

Ⅲ. 신화 상징성에 대한 의미작용

1. 신라의 계림신화 분석

우리나라는 동이계에 속하는 민족으로서 오랫동안 조류를 숭상해 왔다. 그림1처럼 최근 제주 내왓당 무신 도의 신화적 접근 연구에서도 조류의 반인반수(伴人伴獸)의 표현으로 손동작이 조류의 날개로 표현되었다는 연구가 제시되었다[3][4]. 그리고 제주 「천지왕 본풀이」의 서두 부분에 하늘신을 천황닭으로, 지신을 지황닭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사람신을 인황닭으로 표현되어 구전되고 있다[17]. 제주도 행원리 본향당 무신도의 8폭의 먹그림에서도 깃털모양의 몸 표현과 귀모양이닭 벼슬처럼 표현되어있어 조류숭상 중에서도 닭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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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제주 내왓당 무신도와 제주 행원리 무신도 일부분[4][5]

우리나라 고대국가 신라는 박혁거세 신화를 통해 알영, 계룡 등 닭과 관련된 신화들이 많고 신라를 계림이라 하여 닭을 숭상하였다고 보고 있다. 고대 사료에 공공연하게 신라를 닭과 연관하여 표현되어 왔으며, 천계와 금계가 오랫동안 숭상되어 왔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제주 무신도의 신화적 접근 연구에서 조류 숭상과의 관계에서 조류 중에서도 닭과 관련된 표현들을 [그림 1]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삼국유사] 천축(인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구구탁 예설라’라고 하여 닭을 숭상하고 떠받들므로 머리에 날개깃을 꽂아서 꾸미개로 표시하였다[7]라고 전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 고종의 아들인 이현의 묘에 그려진 예빈도(禮賓圖) 가운데 신라 사신도에서도 조우관에 새털을 꽂아 장식하고 있고 중국 한시에서 흔히 천계와 금계라는 단어가 나타나 닭의 숭상은 신라만이 아니라 동이족 전반적인 사고 체계에서 나온 상징 동물로볼 수 있다.

산해경 대황남경(大荒南經)편[17][18]에 남쪽바다 바깥에 사는 우민국 사람들은 새처럼 알에서 태어나고 길쭉한 머리에 두 어깨에 날개가 달려있다고 하여 새나 닭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근처에 사는 환민국은 사람들이 날개가 달려있고 입은 새의 부리모양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새와 닭의 토템으로 숭배하던 동이계 종족에게 일반화된 경향으로 우리 민족과 관계되며, 새의 형태와 행동에서 동일시하여 우주로 확대하여 하늘을 나는 인간으로 상상했던 신선의 원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런 날개가 의복화하여 입었을 것이고, 우리나라 한복의 저고리의 형태도 조류의 날개와 닭 날개 형태에서 왔을 확률이 높다.

지금의 한복의 저고리에서 어깨에서 팔소매로 내려오는 부분이 축소되고 붕어 배 모양의 붕어배래(선)이라 일컫는데, 이는 일제시대 때 격하해서 칭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프랑스의 중국학자 칼텐마르크(Max Kaltenmark)도 고대 한국을 포함한 동이계 종족의 신화가 후세의 신선이야기로 변천해갔다고 주장[18]하고 있어 천사의 날개나, 옷이 날개라는 말이 우리 민족의 상징적 사고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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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우민국 백성과 우리나라 전통 한복 저고리[4][5]

이런 고대 동양 신화사상이 후대 고대국가에 영향을 주면서 신화를 통해 국가 지배층들의 사상을 유지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경주 식리총에서 발굴된 사후세계를 위한 금동신발은 거북등무늬가 전면에 구획되고 연꽃무늬, 새무늬, 가 릉빈가, 기린, 날개달린 물고기가 표현되어 있다. 새겨진 마주보는 새에서도 일반 새의 머리 위쪽 부분이 닭벼슬처럼 표현되어 있다. 백제 무령왕릉의 금동신발에도 외측판에 거북등무늬가 타출되어 있고, 내부에 꽃잎 무늬와 더불어 봉황이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경우 한나라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아 백제의 예술적 요소가 가미된 백제예술의 진수로 잘 알려져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상단부분 봉황 역시 거의 닭의 형태의 얼굴과 벼슬, 날개, 발까지 표현되어 있다. 이런 봉황을 용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모든 조각표현들이 봉황을 향하여 표현되었다. 참고로 용은 왕의 상징으로 표현되어진다. 향로는 제 의식에 사용을 목적으로 제작되었고 봉황은 천계나 금계로 인식되어 고대 국가의 종교적인 상징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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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신라 금동신발의 마주보는 새 무늬, 백제 금동대향로, 고려 봉기, 조선 흉배, 현재 정부 표장의 봉황[4][5]

[그림 3]의 고려 의장 봉기(鳳旗)는 통일신라의 문화를 수용하여 분열되었던 후삼국의 민심을 ‘하늘의 뜻임’을 알리고 화합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봉황은 금계를 뜻하는 상상의 새지만 닭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금류로 그 행태를 우주로 끌어들인 전형적인 신화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이승의 닭을 하늘을 나는 닭 이미지로 확대하여 고대국가 이전에 상서로움을 상징하였던 신화를 통해 지배층인 귀족 왕실을 상징하는 고급문화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류의 형태는 동의족 우국민 백성처럼 날개가 변형되어 한복의 윗저고리의 형태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봉황을 의복에 수를 놓으며 궁중 복식 문화로 거듭났다. 고려는 원나라의 왕비를 받아들이면서 궁중이 원나라 복식이 유행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체계를 고수하기 어려웠던 반면, 조선은 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불교를 배척하였어도 궁궐에 석탑을 세우는 등 우리의 민족적 상징체계를 문화에서 승화하였다. 봉황 표현은 금계이며 천계로서 결국 하늘이 내린 새 왕조의 정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봉황 표현은 표장으로 현재 청와대 대문과 정부 표창장 등 대통령표장과 관련된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어 대통령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표장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완성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금계, 천계의 상징체계로 하늘의 계시나 하늘이 인정한 정부임을 선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봉황이 상상의 새로 상서로움을 나타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으나 그 원류가동이계 우민국, 환민국의 날개표현과 신라의 닭 숭상에서 천계, 금계로 이어지는 상징체계였음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상징이라는 것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상징 또는 민족의 사상과 이어지면서 새로운 형태로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2. 의미작용 분석

롤랑 바르트의 이원론적 접근인 기표와 기의의 작용은 암시적 의미 과정을 매우 자연스럽게 해석해 준다. 제2의 기의의 동인이 어떤 민족이나 특정한 사회의 역사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이미지란 첫 단계인 외시의 단계에서의 표상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언어적인 표현일지라도 그 엄격성이 과학성이나 생생한 정보에 대한 열망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커뮤니케이션 표현형태가 암시적이고 내포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암시적 의미지가 수사학에서 대상 자체만 지칭하더라도 이미지의 사물 자체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언어에 대한 상징성은 도상학 해석 단계에서의 분석은 내재적인 가치 측면의 해석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을 통해 공시적 의미인 시대적인 가치인식의 패러다임을 찾을 수 있다.

‘신라’라는 고대국가 명칭은 고구려 414년 「광개토왕릉비문」에 이미‘신라’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로, 사라, 서나, 서나벌, 서야, 서야벌, 서라, 서라벌, 신라 등으로 불리다가 지증왕(503) 때 좋은 뜻을 가진 한자 신라(新羅)라고 표기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7]. 신라는 덕업 일신(德業日新)이 망라사방(網羅四方)의 뜻으로 하는 일이 새롭고 날로 번창함을 뜻한다[7]. 같은 시기에 중국과의 교류에서 동등한 위치를 갖고자 왕의 명칭이었던 거서간, 차차웅, 마립간 등 샤머니즘의 제사장을 나타내는 명칭을 한자어 왕(王)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신라 시대 이전 한나라 시대에 이미 샤머니즘이 기록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은 격(남무(男巫))이 있었고 이는 신라의 제사장에 해당하는 거서간, 차차웅과 같은 남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후일 남방으로부터의 영향으로 여무(女巫)가 우세하면서 쇠퇴되었다[3]. 우리 민족이 유목민족으로서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것으로 본다면 북방의 샤머니즘과도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

샤머니즘에서 에스키모 샤만이 하는 중요한 일인 병을 고치는 일, 사냥감을 넉넉하게 주고, 날씨를 좋게 해달라는 기도, 불임여성에게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늘의 신(神) ‘실라(Sila)’와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7]. 특히 제주 내왓당 무신도 중 여신(女神)들의 치마폭에는 치유를 나타내는 마름모꼴의 형태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샤만의 이런 기도의 형태들이 제주 내 왓당에서도 그대로 행해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늘에 있다는 실라(Sila)신은 고대국가 신라(Silla)의 발음과 같다.

표 2. ‘신라’고대국가 명칭에 대한 의미작용 분석[4]

고대국가 신라는 지증왕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여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으로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시기로 하늘의 신이 우리민족을 보호하고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고 실라(Sila)를 국가이름으로 사용하다가 주변국과의 교역과 협상을 위해 한자표기로 신라(新羅)로 확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표 2]은 고대국가‘신라’명칭에 대한 의미작용 분석이다.

표 3. 날개모습 손과 깃털 모양의 끈에 대한 의미작용 분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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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의 제주내왓당 무신도 얼굴에 표현된 7개의 빨간 점에 대한 의미작용으로 인간 신체에서 아주 중요한 부위로서 인간의 삶과 연결된 요소들이다. 얼굴에 나타난 7개의 점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부위를 점을 찍어 표현하였고, 결국 북두칠성을 상징화하여 표현된 북두칠성에서 온 천신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다. 의미작용서 보여주는 기의와 같이 칠성신은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표 4. 날개모습 손과 깃털 모양의 끈에 대한 의미작용 분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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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4]의 날개모습의 손과 깃털 모양의 목의 끈과 허리끈에 대한 기표와 기의를 알아보고 의미작용에 대해 분석해본 결과, 북두칠성에서 날아온 천신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은 ‘새처럼 날 수 있어야 하늘나라에 있는 신과 교통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신은 인간과 달라야 하나 인간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 범위는 인간 주위의 동물들의 상모적인 표현을 통해 신을 상상해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 말에 이런 무신도가 그려졌다면 신(神)의 표현에 대한 방법론이 유지되어 왔을 수 있다. 제주신화「천지왕 본풀이」에서도 초기 천지인 시조를 닭 의미소로 형상화하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밝은 태양 빛의 가치를 잘 알았고, 어둠이 없고 해가 비치는 땅에 살고 싶었던 민족으로서 닭이 새벽을 알리는 행동과 동시에 태양이 비치는 것을 하늘의 빛의 신과 교통하는 것으로 동일시하였다. 이런 상상이 천지개벽 신화에서 천황닭, 지황닭 인황닭의 신을 만들었고, 태초 삼황을 표현해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산해경 대황남경(大荒南經)편[15][16] 계우국과 우국민의 표현들은 신라의 건국신화 박혁거세 신화에서 알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내용과 유사하다.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 역시 박물지에 묘사되고 있는 이방인들의 기괴한 표현들은 본국인을 위해 주변 민족을 비정상적인 인종으로 치부하기 위해 상상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상고시기의 모든 나라 이름과 부족이름 사람이름은 상응하는 정보에 의해 표현되었을뿐 실재의 인물표현은 아니며, 계우국(系羽國) 과 우민국(羽民國) 역시 사람들이 가금류를 키워내고, 깃털을 채집, 가공하는 등 깃털로 자신을 꾸미는 나라인 것이다. 이런 내용은 동이족인 우리 민족과 관련된다고 보이며, 계우국이나 그 속국에서 닭, 오리, 거위 등 가금류를 키우면서 깃털을 이용하여 꾸미는 등 길들여졌을 것이며, 키우며 관찰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어깨와 닭의 날개 죽지, 사람의 손과 날개가 대칭되어 제주무신도의 날개 손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신라는 다른 조류가 아닌 닭을 숭상하였을까 의심 가는 부분이다.

다음은 닭에 대한 의미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롤랑 바르트의 분석 툴에 닭 메타기호를 대입하여 분석하였다.

천지개벽신화 「천지왕 본풀이」에 '천황닭이 목을 틀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라는 신화소는[표 5]과 같이 닭은 의미작용을 통해 하늘의 빛의 신과 교통으로 새벽을 알리는 매개체로 인식되어져 우리나라 민족을 일컫는 밝음과 연결되는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는 밝은 빛과 맥락을 같이한다.

표 5. 닭의 의미작용[4]

닭은 가금류로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며, 지상에 살지만 날개가 있고, 높은 곳으로 날 수 있으며, 날아오른 닭은 아침에 새벽빛을 보면 먼저 목청껏 운다. 사람들은 닭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아침 새벽빛을 맞이하는 행위로 목청껏 운다. 그리고 울면 해가 뜬다. 높은 곳에 오르는 행위는 사람은 할 수 없는 행위이고, 높은 곳에서 먼저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관계를 태양과의 교통으로 의미작용 된다. 닭은 울음으로써 하늘의 빛의 신(神) 태양과 교통하고 하늘에 있던 빛의 신(神) 실라(sila)[3]가 국가의 명칭이 되면서‘빛의 신은 우리 민족과 함께 한다’는 상징성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신라라는 국명은 지증왕 4년에 한자로 바뀌면서 사용했던 음을 뜻글자로 바뀌고 닭을 상징의 매개체로 활용하여 계림이라 정하고, 계룡과 알영 등 닭과 연결되는 신화들이 탄생했으며 이런 신화들의 의미 작용 끝에는 빛과 관련이 된다. 고대국가 신라는 샤머니즘 국가로서 마립간, 차차웅 등 제사장을 뜻하는 단어가 왕의 칭호로 사용한 만큼 샤머니즘 종교에서 “신라”는 빛의 신을 뜻하는 단어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국호로 칭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닭이 울음으로 신과 교통하면 해가 뜨는 소원이 이뤄진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하늘의 빛의 신과의 교통의 매개체인 닭을 기표로 밝은 세상이라는 기의로 작용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닭의 울음을 하늘에 있는 빛 신과의 교통으로 태양이 비추고 있다는 상상으로 닭을 숭상하였고 신화에 중요한 소재의 의미소로 등장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닭이 울음으로 천계에 닿을 수있게 하고, 닭은 울음으로 빛과 함께 암흑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존재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해가 동쪽에서 떠서 새벽을 알려주는 소리가 되며, 이는 곧 문명의 시작이라고 하는 개벽신화에서 신화소의 모티브로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배달”은 단군 (檀君)신화에 등장하는 박달나무의 신(神)에서 비롯된 단어이며, 배는 ‘빛이 밝다’의 “박”과 연결된다. 달은 음 달과 양달과 같은 표현에서의 “달”로서 빛이 드는 장소를 의미하여‘밝은 땅’이라는 뜻으로 ‘해가 비취는 밝은 땅에 사는 민족’을 일컫는 동시에 가장 동쪽에 위치한 우리 민족의 터를 상징한다. 이렇게 “배달의 민족”과 연결되는 동물은 닭일 수밖에 없다. 닭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동물로 동이 트기 전부터 울음으로 새벽을 알리고 아침이 밝아 옴을 알린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에 천상에는 천계가 금계가 있어 지상의 계(닭)와 울음으로 교통한다고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닭은 천상의 신과 교통하기 때문에 신성한 동물로 비춰졌고, 우리나라 신화에 닭과 알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닭을 숭상했다고 알려진 신라인들은 흩어졌던 우리 민족을 통일하고 지배층으로서 복속국가의 이민족들을 정신적 이념으로 이끌었다고할 수 있다. 신라시대의 정신적인 사고의 상징체계가 유지되었던 신라체제가 고려시대 초기까지 유지되었고, 근 천년의 역사를 이끌었던 신라 지배층의 문화가 서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로서 고수할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도 신라의 전통적인 종교적 사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인들은 닭을 숭상하고 닭이 교통했던 천상의 빛 태양과 같은 격인 금계(金鷄)를 상징화한 봉황을 이승으로 가져 옴으로써 모든 일은 “하늘의 뜻임”을 강조하여 백성들을 동요 없이 이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삼국시대의 경우 초기 왕은 대부분 제사장을 겸하고 있다고 보았을 때 대부분 불교도입 이전에는 샤머니즘을 국교로 삼고 있었을 확률이 높고 통일신라는 불교를 앞세워 삼국의 백성들을 통합하였으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신라의 상징체계인 하늘의 빛의 신, 신라(실라(Sila))-금계-닭의 울음으로 비춰지는 샤머니즘은 불교로 교화되어 통일신라로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신라를 상징했던 ‘금계’는 빛의 신 ‘실라(Sila)'였던 것이다.

Ⅳ. 결론

제주 내왓당 무신도 10신위의 디자인 형태론을 근거로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적 해석을 시도하였으나 내재적 상징성은 분석할 수 없어 본 연구에서는 닭에 대한 표현을 중심으로 롤랑 바르트의 의미작용을 통해 그 상징성을 연구하였다.

파노프스키 도상학적 이미지를 근거를 바탕으로 얼굴에 나타난 7개의 점, 옷에 표현된 닭의 요소와의 관계, 그리고 고대 신라의 명칭을 롤랑 바르트의 기표와 기의 관계를 통해 의미작용을 전개하여 닭의 상징체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왓당 무신도의 신의(神衣)는 우리나라 전통복식과 유사하게 보이나 신위들의 복식에서 목의 끈과 허리 끈, 그리고 남성 신들의 가슴 끈의 매듭이 깃털모양으로 장식되어 나타내고 있다. 목의 끈의 경우 전통한복에서 동정 밑에 덧대는 부분을 ‘깃’으로 칭하고 있고, 한복의 저고리는 새나 닭이 날개를 펼쳤을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 신위들의 목의 끈의 매듭 형태에서 변천과정에서 깃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손의 표현이 날개표현을 하고 있어 의미 작용을 통해 살펴본 결과 신의 모습이 닭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의 신임을 파악하였고 이런 표현은 제주신화 천지왕본풀이에서 천황닭, 인황닭, 지황닭으로 표현한 이미지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유구조에서 천(天)신과 지(地)신 사람 (人) 신을 닭으로 표현하여 하늘 천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신라인들은 땅을 넓히고 국력이 강화되면서 하늘의 빛의 신, 혹은 태양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며 샤머니즘에서 하늘의 신인 ‘신라(Sila)'신을 국가명으로 지정했을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제주 내왓당 무신도의 모든 신위들의 날개 손 모양을 하고 있고, 제주 행원리 본향당 무신도 8폭의 신위들의 닭 벼슬과 비슷한 귀 표현과 닭 목같은 표현이 닭의 형상과 유사하고 신(神)의 몸은 깃털로 되어 있어 이런 형태의 알레고리 분석에서 반인반수의 신을 표현한 것으로 분석되어, 닭과 연결될 수 있는 연상 이미지이다. 닭은 인도사람들이 우리나라 신라 사람들을 ‘구구탁 예설라’라고 하여 닭을 신처럼 귀하게 여겼고 닭을 숭상했을 것이라 파악된다. 특히 신라를 역사 문헌에서 ‘계림’과 ‘금계’로 지칭하고 있어 닭의 상징성은 신라와 관계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작은 부족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고 더 나아가 백제와 고구려 등 거대한 국가를 무너뜨려 하나로 통일한 지배층 신라의 문화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현재까지도 그 상징성은 우리의 내면의 정서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화적 이미지에서 닭은 많은 신화소들 중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객체로 울음을 통해 새벽을 알리는 닭이 천상과 소통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기호화 했다. 울음이라고 하는 신호는 하늘에 있는 밝은 빛의 신과 교통하는 것으로 의미부여가 되고 닭이 지닌 날개는 이승과 천계를 오고가는 이동수단으로 작용하여 이승에서 일어나는 일과 천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매개체 역할로 기호화 괸 것이다. 그러므로 닭의 울음과 하늘의 태양과 연결되며 밝음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결국 닭은 금계로서 이승을 뛰어넘어 하늘에 있는 천계와 소통하는 것처럼 하늘에 닿아야 하는 승천사상이 밑바탕에 깔리게 된다.

금계인 봉황의 상징은 [그림 3]과 같이 왕들의 사후 세계를 위해 매장되었던 금동신발, 고려의 상징인 지배층을 나타내는 봉기의 경우처럼 닭의 숭상은 천상에 산다는 봉황의 모티브가 되었고, ‘하늘의 뜻임’을 나타내는 봉황이미지는 조선의 지배층인 관료들의 흉배에 수놓아졌으며, 오늘날 정부의 표장과 관련되어 봉황 표장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조류사상과 관련한 롤랑 바르트의 의미 작용을 통해 파악해 본 결과 닭 이미지는 오랫동안 삶을 통해서 아침 해를 알렸고, 밝은 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에너지를 통해 만물이 형성되는 것을 오랫동안 관찰을 통해 파악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중요한 하늘에 있는 빛의 존재를 신화화 하여 닭이 울음으로써 먼저 알리니 하늘에 있는 천신과 교통하는 것으로 비춰져 빛의 천신을 닭과 유사한 반인반수로 표현하고 얼굴의 7개의 점을 통해 북두칠성 천신을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내왓당 무신도의 표현은 지금까지 알려진 계림신화와 같이 닭과 관계되는 고대국가 신라의 상징체계와 관계된다. 신라는 오랫동안 샤머니즘을 믿었었고 종교적 제 의식에서 닭을 귀한 생명을 대신하는 재물로 받쳐질 정도로 닭을 귀하게 생각하고, 닭과 연결되는 금계, 천계를 나타내는 봉황은 고대국가 신라의 상징이 면서 하늘의 신과 빛의 신 ‘신라’의 상징물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우리 민족은 우리의 뿌리가 우주에 있음을 승천 사상을 통해 내재적 사상으로 상징화되어 있어 사람의 옷까지도 날개로 표현하여 ‘하늘의 뜻’이라는 믿음이 무신도에 내재되어 전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 무신도에서 신화적 요소가 나타났고, 그 맥이 끊어져 오랫동안 상징적 요소를 해석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으로 상징화 된 것은 단군신화가 있는 고조선의 박달(밝달)나무를 통해 태양을 이승으로 끌어 옴으로 밝은 빛, 태양신을 사랑하는 민족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 밝은 빛의 극대화된 상징인 하늘의 빛의 신, 실라(sila) 고대국가 ‘신라’ 명칭에 있으며 신라 상징물인 금계 봉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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