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A Reconsideration of Christian Democratic Civility in the New Normal Era

뉴노멀 시대의 기독교 민주적 시민성 재고

  • 봉원영 (삼육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 Received : 2020.08.20
  • Accepted : 2020.09.15
  • Published : 2020.12.28

Abstract

While Coronavirus (COVID-19) is popular all over the world, democratic citizenship is strongly highlighted as a factor that has enabled the Republic of Korea to successfully prevent it. Democratic citizenship can also be understood as a civility, which means respecting the individual's individuality, value and freedom, but at the same time pursuing common good based on healthy relationships with others in the community. It is true that despite the need for modern Christianity to practice this civility more gracefully and politely in the public sphere, some churches and Christians have failed to show it during the Corona crisis. Under these circumstances, this study made the following suggestions for the realization of communality through the practice of democratic citizenship beyond the privatization of modern Christianity. First, Christianity needs recognition as a public church and theological establishment of it. Second, modern Christianity needs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a network society and practice public good more than ever. Third, modern Christianity should be able to provide a new lifestyle for the development of public character in the community. So the New Normal-era church should be able to restore its original churchlikeness by having a Christian identity and communicating gentlemanly in the public domain.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그것을 성공적으로 방역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민주적 시민성 요소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민주적 시민성은 시민교양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데 개인의 개성과 가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타자와의 건강한 관계를 토대로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기독교가 공공 영역에서 보다 품위 있고 예의 있게 이러한 시민교양을 실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사태를 통해 보여준 일부 교회의 모습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연구는 현대 기독교가 사사화된 종교를 넘어서 민주적 시민성의 실천을 통해 공동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였다. 첫째, 기독교는 공적교회(public church)로서의 인식과 이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둘째, 현대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네트워크 사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공선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현대 기독교는 지역사회에서 공공체성 개발을 위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뉴노멀 시대의 교회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가지고 공공의 영역에서 신사적으로 소통하면서 본연의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Keywords

I. 서론

21세기 시대의 특징을 드러내는 표현들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띠는 것으로 변동성 (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의미하는 “VUCA” 시대, 혹은 신속한(Rapid), 예측 불가능한(Unpredictable), 역설적인(Paradoxical), 엉켜있는(Tangled) 시대로서의“PURT”를 들 수 있다. 이 모든 특징들은 오늘날의 시대가 누구도 미래를 예측하여 사전에 무엇인가를 확실히 준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만을 놓고 보더라도 미국은 2008년 이후로 계속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2019년 12월에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미국을 현재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귀납적 사고에 대해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흰색의 백조를 확인해 왔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든 검은색의 백조가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백조가 흰 색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이제는 귀납적 사고의 종말을 고하는 시대가 되었다[1].

지난 2016년 1월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로, 그것이 미래사회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나 변화를 우리 삶에서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의 변화와 그 속도를 가속화시킨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 코로나(COVID-19) 전염병을 통한 팬데믹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한 때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일정 기간 동안의 자택격리(stay-at-home)와 경제활동의 폐쇄 (lock-down)가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학교는 물론이고 교회 등의 종교기관들은 모두 온라인을 통한 교육과 종교 활동을 시행하게 되었으며 온라인 쇼핑 등 비대면 방식의 사회적 삶의 양상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되었다. 또한 전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강조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정책 역시, 가상공간을 통한 비대면사회의 언택트(untact) 상황을 더욱 빠르게 촉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은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새로운 가치와 기준이 일상이 되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고 진단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의 열쇠는 속도와 적응력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 등 자유와 평등, 우애를 기본적 가치로 여기는 서방의 국가들에서는 국가의 이러한 행정적 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자동소총과 권총 등의 총기류를 소지한 무장 시위대가 주의회 의사당을 점거하고 코로나 봉쇄령을 해제하도록 시위하는가 하면, 공공장소나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각자의 개인적 책임에 달린 문제라고까지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2][3].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코로나에 대한 대처가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아리아드네 연구소 (Ariadne Labs)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염병 준비 및 대응 프레임 워크의 세 가지 단계에 해당하는 테스트, 격리 및 치료에서 모두 초기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4]. 이 연구의 결론에서는 한국이 이처럼 신속한 대응과 대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합법적인 개인 정보의 공유와 높은 기술력을 들면서 한국의 이러한 기술력과 전략적 명확성, 혁신적 의지는 모든 국가들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프랑스 주간지 〈르푸앵〉(Le Point)에서 한국이 이번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던 이유에 대해서 한국 고유의 유교 문화적 특징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한국은 개인보다는 집단에 우선하는 정서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이러한 국민적 성향이 감시사회에 익숙하게 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지침에 잘 순응했기 때문에 획일적인 통제가 가능했다는 분석이었다. 프랑스의 경제신문인〈레제코〉(Les Echos)에 글을 게재한 비르지니 프라델 (Virginie Pradel) 역시 한국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최고의 감시의 나라이기 때문에 방역의 성공을 거두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중국이 자신들의 사회주의가 코로나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자의적 주장에 대해 오히려 서방의 언론으로부터 개방성과 투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던 때에 나온 주장이어서 주프랑스 대사관의 공식적인 항의로까지 이어지는 등 많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5-7].

본 연구는 21세기 뉴노멀 시대를 촉진시킨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의 방역 정책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고 그 특징적 요소의 실천에 있어서 현대 기독교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뉴노멀 시대의 기독교 역할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어왔지만 본 연구가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관점에서 민주적 시민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위해 가장 먼저 한국의 방역정책 성공 원인과 그 특징을 살펴보고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 등의 공공의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의 실천을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II. 코로나바이러스 19와 민주적 시민성

지난 5월, 〈시사IN〉과 KBS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진행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사회의 전망에 대한 사회조사에서는 의외의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다[8]. 한국리서치의 웹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이 연구에서는 228개의 방대한 질문들 가운데서 한국이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에 성공했던 이유를 분석하는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주의자와 집단주의자, 정치적 성향, 순응적 성향, 공감능력, 타인에 대한 박애적 정신 등에 따라 그 대답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응답의 분석결과 권위주의나 순응지향, 집단주의 등을 가설로 한 분석에서는 그것의 정도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답변을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적 시민성 (democratic citizenship) 부분에 있어서는 이것이 높을수록 정부 방역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하는 것으로 나타냈으며, 수평적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역시 훨씬 더 강한 참여적 협조를 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국가 권력 등에 순응적이고, 개인보다는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에 협조적일 것이라는 가설과 앞서 언급된 소르망과프라델의 주장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였다.

1. 민주적 시민성의 정의와 특징

이 분석에서 민주적 시민성은 집단주의나 권위주의와 구별되며, 개인주의나 자유주의로도 설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서는 한국인들은 자신이 코로나 확진자가 될 것을 두려워한다고 응답하면서도(64%), 자신의 확진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응답(86%)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보다는 공동체 안에서의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영향력으로 더 크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민주적 시민성은 이러한 공공성의 고양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적 시민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권위주의와 자유주의는 각각 대립적인 관계로 이분법적 이해가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일찍이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민주적 시민성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다. 첫째로 그는 민주적 시민성이 기본적으로 특정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시민의 자격을 부여하고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공동체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 그는 이것이 가지는 공동체성으로 인해 초래할 개인의 자율성 상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셋째로 그는 한 공동체 안에서의 자율적 협조자로서의 민주적 시민성은 해당 공동체에 대한 충분한 비판과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리 벤(Stanley I. Benn)과 리차드 피터스(Richard S. Peters)는 단순히 다수에 의해 어떤 정책과 방향이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민주주의의 도덕적 의의를 무시하는 것이 때기 때문에, 오히려 소수에 대해서도 내적인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는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개방성, 공정과 합리적 이해가 가능한 공동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10].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에이미 거트만(Amy Gutmann)은 시민이 의식적으로 사회의 재생산 과정에 참여하도록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고 미래 시민으로서의 삶의 가치와 태도, 행동 양식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적 교육 또는 민주적 시민성의 교육을 주장했다[11]. 정한울과 정원칠은 민주적 시민성과 민족정체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 보장, 소수의견에 대한 존중, 국민들의 정치 참여 자격에 대한 평가, 참여정치의 정당성, 저항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들에 대한 국민 인식 등을 민주적 시민성의 척도로 제안한 바 있다[12]. 따라서 민주적 시민성에는 각 개인의 개별성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특성과 공공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적 시민성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성 사이에서 이 두 가지 측면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둘의 요구가 통합적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13]. 이러한 이해에서 천관율은 “공동체 지향적인 개인주의자나 공공재 생산에 기여할 의지를 가진 시민, 무임승차자를 처벌하고 싶어 하는 자유주의자 등은 한 단면만 보아서는 권위 순응형 인간으로도 보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공동체 자체에 무관심한 자유주의자로도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민주적 시민성은 둘의 절충이 아니라 제3의 꼭짓점”이며 “그것은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을 뜻”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8].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주의적 특성에는 공동체 구성원의 기본적 자유와 평등,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그들의 선택에 대해 중립적인 것을 포함한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이유는 그 공동체가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므로 공동체성과 자율성은 양립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구성원들 간의 유대와 관계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자유주의적인 관점은 민주적 시민성의 개념을 긍정하다고 볼 수 있다.

공동체성은 개인이 속한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개념으로 개인적 선이나 수렴적선보다는 타자와의 관계를 기본으로 한 공공선에 대한 추구를 강조한다[14]. 그런데 공동체에서 이러한 공공선의 실천을 위해서는 구성원의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 이상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것의 실현이 가능한 합리적 소비자요 진정한 참여자로서의 주체적 지위를 가진 민주적 시민의 자질과 태도를 필요로 한다[15].

2. 민주적 시민성과 기독교

앞서 언급한 시사인의 설문조사에서는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국가와 정부 부처, 정치계나 종교계, 언론 등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어떻게 변경되었는지를 묻는 문항이 있었다. 응답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는 국가와 의료기관, 의료인, 가족과 친척 등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친 신뢰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정한울 등의 연구에서 민주적 시민성이 높을수록 국민으로서의 일체감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 것과 일치하고 있다[12]. 그러나 그들은 민주적 시민성이 심리적 정서에서의 민족적 일체감을 적극적으로 강화시키지는 않는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다음의 사실로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공동체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면서도 국회(-33), 낯선 사람(-36), 언론(-45)이나 종교기관(-46) 등에 대해서는 크게 그 신뢰도가 하락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의 하락과 종교기관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현대 기독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 시민성이 공동체성의 기여에 영향을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의 하락은 그 공동체성의 폭과 깊이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12]. 또한 종교기관에 대한 신뢰도 하락 역시 세계적 전염병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의 상황에서 교회 등의 종교기관이 지역사회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는 것에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교(Cambridge University) 가 발표한 '지속가능개발보고서2020'(Sustainable Development Report 2020)에 따르면, OECD 가입국 33개의 나라들 가운데 대한민국이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단연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16]. 500페이지 이상 분량의 이 보고서는 다양한 지표들을 통한 종합지수를 산정하여 국가별 순위를 매겼는데, 여기에는 바이러스 감염자 1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지를 확인하는 재생산지수(Effective Reproduction Rate)와 그 지수의 감소 정도를 의미하는 재생산지수 감소율(ERR Decline), 그리고 이동성 감소율(Mobility Decline) 등이 포함되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재생산지수 감소율은 0.36으로 2위인 폴란드(0.52)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이동성 감소지수는 0.10으로 이 분야의 2위인 일본(0.16)과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이것은 감염자들에 대한 정부의 격리정책과 집단적인 활동을 줄이고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생활방역에 온 국민의 협조가 매우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높은 민주적 시민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연일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보고되는 가운데,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 등의 종교 단체가 집단 감염지로 지목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종교기관에 대한 지역사회의 낮은 신뢰도는 이러한 모습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교회의 경우가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한국의 경우만이 아니라, 미국 네바다 주에서도 카지노 시설보다도 오히려 교회 등의 종교 시설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에 더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여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밝혔다[17]. 또한 앨라배마 주에서는 한 교회가 부흥회 모임을 가진 후에 40명 이상이 일시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18]. 불행하게도 이제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위험스러운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미국에서는 깊이 내재된 어떤 종교적 신념이 오히려 무례함(incivility)을 드러내게 하는 핵심 동인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19].

이러한 상황에서 리처드 마우(Richard J. Mouw)는 다원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교양 (convicted civility)의 필요성을 강조했다[20]. 그러나 마우는 단순히 시민교양이 공동체적 삶의 전부이며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바른 예절을 보이고 교양 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강한 신념이 없는 경우가 많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진정한 교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21]. 이것은 오늘날 현대 기독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마우는 시민교양을 공공의 예의로 정의하면서도 거기에 내적인 측면도 포함시킨다[20]. 즉, 마우는 시민교양을 영적인 성숙함의 표식(sign)으로 이해했다.

사실 이보다 앞서 로버트 콜만(Robert Coleman)은 제자직(discipleship)과 시민직(citizenship)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에 충실함과 동시에, 그 대상의 범위가 훨씬 넓어진 공공의 영역에서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참여도 함께 강조했다[22].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역시 비슷한 설명의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는 이것을 위해 ‘상승’(ascent)과 ‘회귀’(return)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상승은 절대자와의 만남(encounter)의 경험을 통해 신의 뜻과 메시지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며, 회귀는 이 세상에서 신의 뜻이 실현되는 창조적 사건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 땅에서 바른 예언자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용적 상승과 창조적 회귀의 경험이 함께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23].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방식으로서 오용될 때에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23].

마우는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회와 복음 등 이분법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 윤리적인 각성을 촉구하면서 하나님 나라뿐 아니라, 지상의 사회에 속한 시민으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교양과 비일상적인 품위를 갖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오히려 사회의 질서와 제도에 대한 정적인 입장으로 연결되어 그것을 단순히 하나님의 질서의 부분적 현현으로 인식하고 비평적 정신이 결여된 채 사회적 구조의 현상유지에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24]. 그러나 마우는 그것이 오해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자신이 말하는 시민교양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유보나 거부가 아니기에 상대주의적 관점을 배격한다고 주장했다[20]. 다양한 사회적 구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질서를 우선하는 입장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을 거부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땅에서 보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해서도 그것을 제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25]. 마우의 이러한 사상은 이미 조지 앨버트 코우(George Albert Coe)에게서 발견된다. 코우는 자신의 종교교육 사회론을 발전시키면서 하나님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도움을 주며, 하나님과의 동반자적 개념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는 사회윤리적인 이상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것의 범주를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로 확대시켰다[26].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깊은 신념과 함께 예의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하고도 올바른 존경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벧전 2:17). 그리고는 이 존경과 존중의 마음의 함양을 강한 신념을 유지하는 일과 연결시킨다. “여러분의 삶의 방식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할 말을 준비하되,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답변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깨끗하게 하십시오”(벧전 3:15, 메시지성경). 이것이 기독교의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적 교양을 육성하라고 요구하신다는 성경의 이해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 정신에 민주적 시민성 요소가 분명히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III. 현대 기독교의 민주적 시민성의 실천 가능성 탐색

기독교는 분명 사람을 신사(gentleman)로 만든다고 믿는다[27]. 예수는 심지어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베풀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연설은 상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웅변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예의를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세상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일반적인 형식적인 예의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친절과 사랑에서 비롯된 예의를 장려한다.

1. 신앙과 건강한 민주주의

지난 2019년 9월, 미국 남침례교 공공정책 연구기구인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The Ethics and Religious Liberty Commission)와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way Research), 그리고 페처연구소(Fetzer Institute)는 공동으로 미국의 복음주의적 기독교 관점(American evangelical perspective)에서 민주주의의 현재 상태에 대한 이해를 연구하고 “신앙과 건강한 민주주의”(Faith and Healthy Democracy)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28]. 미국에서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시민성의 상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시행된 이 연구는 단순히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 문화적 분열을 치유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넘어서서,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광범위한 복음주의 공동체를 시민사회에 참여시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적인 역량강화를 위한 다양한 수단들(toolkits)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비록 미국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였지만, 종교적 소속이 어떠하던지 다원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다음 번 과정을 형성할 때, 경험하게 될 도전과 가능성들을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이 연구는 사회적 응집력과 양극화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들을 탐구하였는데, 이것은 시민 사회가 어떻게 다양한 환경에서 건전한 관계 형성을 촉진하고, 번영하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시민의 미덕을 조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 복음주의자들 중 69%가 정치적 대화에서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것에 대해 다소 혹은 강하게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신을 복음주의자로 인식하는 사람들 가운데 22%가 자신들이 정치적인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관여할 때, 그들과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다소 혹은 매우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와 관련해 라이프웨이 연구소(Lifeway Research)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시민성 지수"라는 것을 개발했다[29]. 이 연구에서 발견된 몇 가지 사실 가운데 흥미로운 것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로서의 예수의 배타성(혹은 독점성)과 종교적 자유의 중요성을 믿는 복음주의자들은 동시에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고유하고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반응은 그들이 높은 시민성 지수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연구는 기독교에 대한 시민적 혐오감의 근원이 그리스도인들이 핵심 신념에 너무 단단히 집착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핵심 신념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분석했다[28]. 다시 말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념체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념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진실로 믿는다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의 구속하신 백성들을 돌볼 수밖에 없다. 창세기 1장과 시편 139편 등을 포함한 그 밖의 다른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과 우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종교의 자유가 전적으로 보장받고 있지 못한 경우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그것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종교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것을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시민적 교양에 대한 대중의 담론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적 교리들을 포기하도록 장려해 왔다. 그러나 이 연구는 종교적 전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시시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도전적인 정치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무례함은 그들이 믿는 신념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그들의 삶에서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한 결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기독교의 민주적 시민성 실천을 위한 제안

앞선 이해를 토대로, 현대 기독교는 그 구성원들이 공공의 일상의 영역에서 보다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윤리적인 삶을 살아감으로 기독교적 가치와 정체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보다 기본적으로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바른 민주적 시민성을 실천하여 누구나가다 공동체의 안녕과 행복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뉴노멀시대를 맞이한 현대 기독교가 단순히 교회적 범위를 벗어난 공공의 영역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바른 시민 교양을 실천함으로 다원주의 상황에서 보편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는 공공의 교회(public church)로서의 인식과 이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현대 문화가 보이는 큰 특징적 흐름 가운데 하나가 사사화 (privatization)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사사화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제약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삶의 영역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사회, 정치, 경제와 문화 등 공동체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사화는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는 인터넷 등 IT 기술의 발달과 개인주의적 성향의 심화 등으로 인해 대인관계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거부하거나 정부주도의 영역들이 민간에게 이양되는 것을 의미하며,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을 이분화하여 가급적 개인의 신앙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사사화는 결국 한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이해의 노력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를 생산하고, 특별히 종교의 사사화는 시민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스스로 축소시키고그 관계의 단절로 인해 시민 사회와의 심각한 소통의 부재를 낳게 되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동안 현재의 공공장소에서 일반적으로 시민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 왔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된 라이프웨이의 설문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절반 이상의 복음주의자들은 "만약 자신들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의제를 실행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믿는 실존적 위협의식을 보였다. 복음주의자들은 일종의 순교 콤플렉스를 배양하고 있으며, 항상 상대의 거짓된 행동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최고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믿음을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복음주의자들의 절반 이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믿음이 비인기적인 환경에서는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기독교 안에서 보수적인 입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일수록 공공장소 혹은 공적인 영역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공공광장은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문화적 허락을 느끼거나 그렇지 않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교회는 어떻게 이러한 공공의 광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공공의 교회(public church)는 종교의 사사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교회가 공공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적 상황에서 마틴 마티(Martin Marty)가 대안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마티는 공공의 교회가 개인과 정부, 개인과 대중 사이에서 바른 중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초월적 신앙과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공적 질서와 책임에 민감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0]. 이후에 제임스 파울러 (James Fowler)는 공공의 교회를 개인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여 통전적으로 보다 공공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프락시스(God’s praxis)를 실천하는 교회로 정의한다[31]. 그러므로 기독교가 지향하는 프락시스는 단순히 교회 울타리 안에서 그리스도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프락시스(ecclesial praxis)가 아니라, 그 실천적 범주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로 확대된 개방성, 타인과의 유대를 강조하는 연대성,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평등성 등이 나타나야 한다.

이 시대의 사회는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형이상학적인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로부터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인 환경에서 경험되는 시민사회에서 현대 기독교가 공공의 이성(public reason)을 바탕으로 비판을 넘어 상호 공존을 위한 대화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기독교적 정체성을 바르게 실천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는 좋은 사회의 요소로서 국가와 시장, 공동체를 언급하는데, 그 중에서도 공동체가 좋은 사회의 가장 주요한 요소임을 밝히면서 이 세 가지가 모두 보완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32]. 그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앞세우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황금률로써 실천할 때 바른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33].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외부로부터 칼의 위협이 가해질 때 신앙적 양심에 따라 예배드리는 것은 분명 신앙의 행위이다. 그러나 예배의 모임 그 자체가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태롭게 한다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모이지 않는 것도 신앙임을 오늘날 현대 교회는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공동체에 대하여 행복과 평안을 주는 유익한 조직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속에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분명한 이유이다.

현대 기독교는 공적인 담론을 매개로 하여 만남과 소통,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대안적 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단순히 신자들만의 공동체 개념을 넘어 시민사회에 속한 모든 이들, 즉 타자들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해내는 사랑과 경청, 환대의 장소로까지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피트 워드 (Pete Ward)는 이러한 개념의 교회를 “액체교회”(Liquid Church)라고 소개했는데, 물과 기름처럼 유연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공동체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34]. 현대 기독교가 통전적 시각을 가지고 공공의 교회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시민사회와의 바른 접촉점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현대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네트워크 사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공선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행하는 2020년 8월 28일자주간리포트에서는 “일반국민의 개신교 인식”이라는 내용의 설문조사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35]. 이것은 지난 6월에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조사한 것이었는데, 코로나19이후에 개신교인을 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이 “거리를 두고 싶은”(32.2%), “사기꾼 같은”(29.1%)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오늘날 시민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한국교회봉사단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기독교의 사회동사활동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에서 기독교가 사회봉사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봉사활동을 가장 “진정성 있게” 하는 종교는 가톨릭인 것으로 나타났다[36]. 기독교의 가장 적극적인 사회 봉사활동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로부터의 호감을 가지는데 실패했던 것은 그러한 사회봉사활동을 교회성장의 도구로 활용해 왔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이 사회의 약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공평과 정의를 실천 하는 것 그 자체를 교회로서의 역할과 책임으로 분명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을 결정함에 있어서 교회 밖 시민사회의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가 먼저 시민사회의 문제점을 고민하면서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사회적 담론의 변두리에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가속화될 인간의 소외현상과 노동력의 부족 등의 사회적 문제로 시민 사회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현대 기독교는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오늘날 이사회가 논의하는 담론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내용과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종교적 게토화 현상을 스스로 부추겨 왔다. 오늘날의 사회는 단순히 지리적 개념의 지역 공동체 기반 사회를 넘어 관계 중심의 네트워크 사회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전의 지역공동체 중심의 전통적 사회와 오늘날 네트워크 사회의 가장 큰 특징들로는 수평적인 인간관계와 선택가능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 기독교는 이전의 “끌어들이는” 선교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사회를 향해 적극적으로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민 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는 자연스럽게 시민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공유하며 시민교양의 실천을 통해 그것이 추구하는 공동선을 신사적인 방법으로 추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민교양의 실천은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 모두가 긍정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교양은 개인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 사회 전체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시민교양은 건강한 정도의 겸손함으로 자존감을 발달시키고, 적절하게 자제력 있는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 교양은 공동체에 대해 희생적이며, 인간이 번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심 없는 자질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community)는 “함께”를 의미하는 라틴어 ‘cum’과 “선물”을 의미하는 ‘munus’의 합성어이다. 즉 공동체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집단이라고할 수 있다. 그런데 시민교양은 언제나 그것을 실행하는 당사자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에, 너무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시민교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공적인 삶이 시민적 정의에 부합하는 우리의 교양을 형성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37].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도시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20]. 이것은 시민적 교양은 항상 공공의 영역에서의 경험을 통해 개발되어야 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민주적 시민성 혹은 시민 교양은 사회나 공동체 등의 공공 영역을 기본적인 전제로 하여 공공생활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 대한 관심은 매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점차적으로 시민사회 영역의 쇠퇴와 공공의 영역의 상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38]. 실제로 오늘날의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개인의 자존감을 조장하는 일은 잘 해왔지만 상호관계에서 자제력을 가르치는 일은 잘 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39].

시민교양은 단지 습관이나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분명 무례한 것보다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40]. 따라서 이러한 교양 있는 행위는 사회적 희생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는 상대방을 자기보다 우선하게 하는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교양은 더 큰 공동체 안에서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실행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정중함과 예의, 그리고 좋은 예절을 확장할 것을 요구한다[41]. P. M. 포르니(P. M. Forni) 역시 시민교양은 도덕적으로 의무화된 인식, 즉 "다른 사람의 복지와 행복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자제와 존경, 배려로 엮어진 태피스트리(tapestry)와 같은데, 그러므로 시민교양은 윤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39].

오늘날을 “진정성(authenticity)의 시대”로 규정한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지역사회가 침식되고 가족과 이웃, 심지어 정치까지도 파괴되고 있는 지금의 시대일수록 공동체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42]. 테일러는 현대에 이르러 집단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우선시 되면서 공동체의 공공선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불편함(Malaise)의 시대라고 역설한다[43].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개인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고, 진정성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높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하여 현대 기독교가 지역사회에 보여준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과히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었다. 사랑을 말하고 그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누구와 무엇을 향한 사랑인지는 보여주지 못했다. 공동체 안에서 상생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서로 간에 최대한의 상식을 만들어 가면서 존중과 배려가 바탕이 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풀어가는 현대 기독교의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현대 기독교는 지역사회에 대한 더 깊은 예의와 품의를 가지고 그것의 문제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번영과 발전은 번창하는 민주주의에 매우 필수 적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동체 안에서 공유된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에는 사람들은 그것을 대신하기 위한 다른 공동체를 쉽게 만들어 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지극히 선택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동질화된 이웃과 심지어는 미국의 경우 주(states)까지로 그들 자신을 편향시키려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지역사회를 포기하거나 다른 지역사회를 스스로 선택하는 대신에 어떻게 지역사회를 돌볼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지역시민의 참여 문화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인종이나 종교, 소득수준이 다른 사람들을 알고 그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시민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점점 더의도적으로 그런 사람들과 전혀 만날 필요가 없는 이웃과 학교, 교회를 선택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어떻게 차이를 추구하고 그것에 관여할 것인지는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현재의 양극화 상태에서는 그렇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매우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 스스로와 비슷한 환경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스스로의 에코 챔버(echo chambers)를 초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지금의 양극화의 분열을 해소하고 탄탄한 공적 영역을 건설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네트워크 사회를 향한 진정한 선물로서 바른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셋째, 현대 기독교는 지역사회에서 공공체성 개발을 위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공공 영역에는 심각한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기술 및 소셜 미디어의 부작용이다. 오늘날 다양한 연구는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양극화 증가에도 기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44-47]. 공공장소에서의 소셜 미디어는 자신과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한 참견이나 생각을 나누게 하는 잘못된 자유 의식을 주는 경향이 대단히 많다. 또한 많은 경우에 그것은 책임이나 규제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깊이가 매우 얕고, 현실이나 사실에 대한 인식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소셜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면서 점차 확증 편향된 사고를 갖게 하는 에코챔버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28].

둘째, 도덕적 합의의 상실이다. 과거의 공적인 기독교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감당했는데 기독교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사회에 도덕적 합의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독교나 계몽주의 어떤 것도 공적인 토론을 위한 공통의 도덕적 틀을 제공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가 더욱 발전해 나감에 따라, 교회는 공적인 광장에 관여할 수 있는 공통의 도덕적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분명 정의와 도덕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 다양하여 결국 이성적 담론을 통한 하나로 공유된 의미로서의 도덕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어렵게 되었다.

셋째, 시민사회의 위축이다. 오늘날의 사회가 공동의 의미를 상실함에 따라 시민들은 공동의 목적, 혹은 심지어 공동의 취미를 위해 자발적인 모임에 모이는 경향이 훨씬 줄어들었다. 앞서 언급된 라이프웨이 리서치의 설문 응답자들 가운데 스포츠클럽, 동호인 단체 등 어떤 형태의 조직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이 1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28]. 시민사회가 번창하는 민주주의의 기반임을 인식할 때, 이러한 약화된 시민사회가 민주적 참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애널리스트인 정희선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매우 인상적인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서 “콜라보”(collabo)를 그 특징으로 들었다[48]. 품질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업들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명품 브랜드인 까르티에 (Cartier)가 편의점을 열고, 여성 잡지사인 린넬(リンネル)은 주택을 설계하여 판매한다. 물건이 아닌 경험을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자동차 회사 렉서스(Lexus)가 카페를 열어 브랜드와 삶을 연결시키고, 화장품 회사가 독서모임이나 건강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제공하고, 의류 브랜드가 호텔을 오픈할 뿐만 아니라, 백화점을 그간의 통념을 깨고 1층 전체를 식당으로 만들며 이발소에서 술을 팔고, 편의점이 피트니스 센터를 개설하는 등 고객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이야기(story)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호주에서 시작된 멘스 쉐드(men’s shed)는 지역사회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운동이다. “어깨에서 어깨까지”(shoulder to shoulder)라는 슬로건을 가진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서구사회의 가정에서집 마당에 위치한 창고(shed)를 지역사회에 개방하여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개인의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서로의 건강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의 효용과 가치는 효율적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었는데,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 99.5%의 응답자들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발견했다고 응답했으며, 97%는 자신들이 지역사회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또한 90%의 응답자는 자신이 지역사회로부터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9]. 미국의 오레곤 주에서 시작된 킨포크(kinfolk) 역시 공동체성 지향적이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들로 요리를 하여 주변의 가족들과 이웃들을 초청하여 함께 어울려 소통하면서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공유했던 것이 이제는 낯선 사람들과도 음식을 나누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문화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그것에 오히려 더욱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믿는 “십자가의 도는 단지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자 방법이며 원리이자 방식이”기 때문이다[50]. JR 우드워드(JR Woodward) 는 이제 교회가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함을 주장하면서 공동체와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사랑과 경청, 너그러움과 환대를 특징으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1]. 그 하나의 방법으로 그가 제안한 것은 식탁을 통한 교제 (shared table)이다. 실제로 예수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당부하셨던 일 한 가지가 바로 “함께 먹는 것”이 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찬 공동체(eucharistic community)로서 식사는 그리스도인 모임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52]. 그것은 분명 환대, 소속감, 그리고 은혜의 표기이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참여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실습이다. 후한 대접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낯선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53].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기독교 안에서 시작되고 있는 만찬교회 운동(dinner church movement)은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현재 미국의 기독교 안에서 보수나 진보, 도시나 시골 등의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성경 속에서 나타난 예수의 사역은 많은 부분이 식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역이었음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쁨에 관한 것이고 공동체 형성에 관한 것이었다[54]. 평범한 식사의 경험을 통해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일상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의 참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심오한 필요를 충족시킨다. 이것은 기독교의 단순한 선교적 모델이 아니라 실제적인 실천이라는 점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특정한 방법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며, 식사를 함께 하기어려운 환경에서 이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맥락적이다. 또한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참여적이며, 이웃과 낯선 사람 등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적이며, 예약이나 정해준 수 없이 모두가 환영받는다는 점에서 환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55]. 이러한 공유된 식탁을 통하여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회에서 낯선 이들을 환대하고 소통하며 그들을 포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주적 보편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IV. 결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개인주의의 심화 현상을 부추겼다. 전염과 감염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교육과 종교, 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비대면적 삶이 일상화되어 “각자도생”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나 혼자 잘 막아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 전체가 함께 연대하고 협력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 그래서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더 깊은 인식과 그것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기도 했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염병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품위(decency)입니다 "[56]. 알베르트 까뮈(Albert Camus)의 1947년 소설 전염병(The Plague)의 중심인물인 리외(Rieux) 박사의 말이다. 카뮈는 전염병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삶의 불확실성과 불합리성을 고발한다. 이것이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번 COVID-19으로 인해 다시 주목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통찰력이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마 우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시민교양이 바로 이 품위(decency)라고 말했다. 이러한 다원주의 시대일수록, 더욱이 이 전염병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공공의 영역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바로 품위이다. 마우에 따르면, 시민교양은 상대방과 의견이 다를 때조차도,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공공의 예의"를 확장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시민교양과 그것의 뒷받침되는 덕목들은 그들을 포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장하려는 개인적인 결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교양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이게 할 수 없는 일종의 초대와 같은 것이다. 사람은 분명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대되고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관대함이나 감사함과 같은 다른 많은 중요한 미덕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의무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도록 요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57]. 그러므로 이것은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를 위해 공적교회로서의 분명한 신학적 이해와 실천적 의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대 기독교는 지역사회 공동체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윤리적일 필요가 있다. 서구 사회에서 시민성은 기독교와 매우 밀접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기독교가 공동체 안에서 관심과 선호의 변두리로 밀려난 지금의 시대에 민주적 시민성은 더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종말론적인 위기를 논하면서 단순히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져버리는 직무유기로 인식하고 더 좋은 공적인 영역을 갈망할 수 있고 또 갈망해야 한다. 현대 기독교가 영성이나 종교성을 바탕으로 사회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고 기독교가 주장하는 기준과 사회적 가치가 사회의 상식보다 탁월할 때, 비로소 교회가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바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기독교가 삶의 현장에서 환대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실제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제시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함을 확인했다.

점점 더 다원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다양성의 의미는 보다 진지한 탐구가 필요한 사항이다. 교회는 성경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할 때 우리 자신과 가장 유사한 이웃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는 않았으며, 성경이 이웃으로 제시했던 사마리아인은 당시에 하층 계급의 경멸받는 민족 외부인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상실한다면 교회의 정체성 또한 상실하는 것이다. 오늘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대안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공동체성은 민주적 시민성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보다 더 품위 있고 예의바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교회는 격려와 친밀함으로 개인의 가치와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지역사회를 향해서는 헌신과 배려를 실천함으로 교회가 공동체로부터 교회다움을 인정받고 잃어버린 공신력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본 연구는 전 세계적 위기로 인식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민주적 시민성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민주적 시민성은 위기의 때에 더욱 발휘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평상시 일상의 삶에서 나타나는 민주적 시민성이 더욱 그 사회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본 연구에 대한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따라서 특수한 위기 상황이 아닌 일상의 삶의 맥락에서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시민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향후 이러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기를 제언한다. 또한 현대 기독교는 그 구성원들이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바른 선택을 하고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대중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도덕 교육과 훈련만이 아닌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자세, 활동, 습관, 목적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품성과 인격의 개발을 포함한 전인적(wholistic) 교육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26].

References

  1. 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2.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52496514 (2020년 7월 23일 접속).
  3. https://apnews.com/54374ff841dfd84323a1fb86d1e93180 (2020년 7월 23일 접속).
  4. https://ourworldindata.org/covid-exemplar-south-korea (2020년 7월 23일 접속).
  5. http://kr.people.com.cn/n3/2020/0226/c203282-9662183.html (2020년 7월 23일 접속).
  6. https://www.nytimes.com/2020/02/25/world/asia/daegu-south-korea-coronavirus.html (2020년 7월 23일 접속)
  7. https://www.nytimes.com/2020/04/24/opinion/coronavirus-democracy-europe.html. (2020년 7월 23일 접속)
  8.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0/03/11/south-korea-shows-that-democracies-can-succeed-against-coronavirus/. (2020년 7월 23일 접속)
  9. http://www.korea.net/NewsFocus/Society/view?articleId=184727 (2020년 7월 23일 접속).
  10.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132 (2020년 7월 23일 접속).
  11. H. R. Niebuhr,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Charles Scriber's Son's, 1960.
  12. S. I. Benn and R. S. Peters, Social Principles and the Democratic State, George Allen & Unwin Ltd., 1959.
  13. A. Gutmann, Democratic educ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7.
  14. 정한울, 정원칠, "민주적 시민성의 성장과 민족 정체성,"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정치, EAI, 2007.
  15. B. P. Dauenhauer, Citizenship in a Fragile World, Rowman & Littlefield, 1996.
  16. C. Taylor, "Cross Purpose: The Liberal Communitarian Debate," in Liberalism and the Moral Life, Nancy L. Rosenblum (ed.), (Harvard University Press, 2014.
  17. J. Gyford, Citizens, Consumers and Councils: Local Government and the Public, The MacMillan Press, 1991.
  18. Cambridge University, Sustainable Development Report 2020: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and COVID-19,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
  19. https://www.usatoday.com/story/news/politics/2020/07/24/supreme-court-nevada-covid-rules-can-favor-casinos-over-churches/5454128002/ (2020년 8월 5일 접속).
  20. https://www.usatoday.com/story/news/nation/2020/07/28/covid-19-more-40-people-infected-alabama-church-revival/5525594002/ (2020년 8월 5일 접속).
  21. https://www.usatoday.com/story/opinion/2019/10/04/christians-return-to-core-convictions-make-america-more-civil-column/3845002002/ (2020년 8월 5일 접속).
  22. R. J. Mouw, Uncommon Decency: Christianity Civility in an Uncivil World, InterVarsity, 2010.
  23. M. E. Marty, By Way of Response, Abingdon Press, 1981.
  24. J. A. Coleman, "The Two Pedagogies: Discipleship and Citizenship," Mary C. Boys (Ed.), in Education for discipleship and citizenship, The Pilgrim Press, 1989.
  25. M. Volf, A Public Faith: How Followers of Christ Should Serve the Common Good, Brazos Press, 2013.
  26. J. M. Gustafson, Ethics from a Theocentric Perspectiv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27. P. Lehman, The Transfiguration of Politics, Harper & Row, 1975.
  28. G. A. Coe, A Social Theory of Religious Education, Charles Scribner's Sons, 1922.
  29. E. G. White, Gospel Workers,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11.
  30. P. D. Miller, Faith and Healthy Democracy, The Ethics & Religious Liberty Commission, 2019.
  31. B. Ashford and C. Pappalardo, One Nation Under God, B&H Academic, 2015.
  32. Martin Marty, The public church, Crossroad, 1981.
  33. J. W. Fowler, Weaving the New Creation: Stages of Faith and the Public Church, Harper San Francisco, 1996.
  34. A. Etzioni, The Third Way to a Good Society, Demos, 2000.
  35. A. Etzioni, The New Golden Rule: Community And Morality In A Democratic Society, Basic Books, 1998.
  36. P. Ward, Liquid Church, Baker Books, 2001.
  37. http://www.mhdata.or.kr/bbs/board.php?bo_table=koreadata&wr_id=112. (2020년 9월 14일 접속).
  38. http://www.koreandiakonia.org/contents/board/normal/normalView.asp?page_str_menu=22&bbs_seq=1074. (2020년 9월 14일 접속).
  39. J. T. McNeill (ed.), John Calvin: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Ford Lewis Battles (trans.),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6.
  40. R. D. Putnam,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Simon & Schuster, 2001.
  41. P. M. Forni, Choosing Civility the Twenty-five Rules of Considerate Conduct, St. Martin's Griffin, 2003.
  42. S. L. Carter, Civility: Manners, Morals, and the Etiquette of Democracy, Harper Perennial, 1998.
  43. K. D. Glenn, The Hope of an Open Hand Civility as an Invitation to Incarnational Ministry, George Fox University D.Min. Dissertation. 2013.
  44. C. Taylor, A Secular Ag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
  45. C. Taylor, The Ethics of Authenticity, Harvard University Press, 1991.
  46. S. Hong and S. H. Kim, "Political Polarization on Twitter: Implications for the Use of Social Media in Digital Governments," Government Information Quarterly, Vol.33, No.4, pp.777-782, 2016. https://doi.org/10.1016/j.giq.2016.04.007
  47. https://www.politico.com/interactives/2019/how-to-fix-politics-in-america/polarization/more-social-media-regulation/. (2020년 8월 7일 접속).
  48. C. Lee, J. Shin, and A. Hong, "Does Social Media Use Really Make People Politically Polarized? Direct and Indirect Effects of Social Media Use on Political Polarization in South Korea," Telematics and Informatics, Vol.35, No.1, pp.245-254, 2018. https://doi.org/10.1016/j.tele.2017.11.005
  49. I. Garibay, A. V. Mantzaris, A. Rajabi, and C. E. Taylor, "Polarization in Social Media Assists Influencers to Become More Influential: Analysis and Two Inoculation Strategies," Scientific Reports, Vol.9, 2019,
  50. 정희선, 라이프스타일 판매중, 북바이퍼블리, 2019.
  51. B. Golding, "Men's Sheds in Australia: Learning Through Community Contexts," National Centre for Vocational Education Research. (2007).
  52. 이동영, 공공신학과 한국 사회, 새물결 플러스, 2019.
  53. D. White Jr. and JR Woodward, The Church as Movement: Starting and Sustaining Missional-Incarnational Communities, IVP Books, 2016.
  54. J. D. Zizioulas, Being as Communion: Studies in Personhood and the Church, St Vlaldimir's Seminary Press, 1997.
  55. A. Hirsch and L. Ford, Right Here, Right Now, Baker Books, 2011.
  56. https://religionnews.com/2019/08/29/dinner-church-movement-sets-the-table-for-food-faith-and-friendships/ (2020년 8월 16일 접속).
  57. https://www.dinnerchurchmovement.org/. (A2020년 8월 16일 접속).
  58. A. Camus, The Plague, Vintage Books, 1947.
  59. R. B. Pippin, The Persistence of Subjectivity: On the Kantian Afterma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