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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ji Enlightenment and Kokutai Theory -Kyō (敎) as an Ideology and a Distorted Enlightenment

메이지 일본의 국체론적 계몽주의 - 이데올로기로서의 '교(敎)'와 계몽의 구조-

  • Published : 20190000

Abstract

This paper reexamines the prevailing understanding of the Meiji Enlightenment in terms of the discourse on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conducted by Meirokusha in the early Meiji period. Specifically, it extends the discourse on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beyond the confines of Meirokusha to also include the discourses of those advocating the unity of church and state and the establishment of a state religion. Such discourses gave rise to various forms of enlightenment in the late Meiji period, of which this paper explores the critical appropriation of modern western enlightenment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of formation of Kokutai (national polity) theory, hence the enlightenment of Kokutai. There is a particular focus on the division and reorganization of the concept of 敎 (teaching / religion), since it was the key concept in Kokutai theory and enlightenment was only relevant to Kokutai theory in this context. This analysis shows that when the adherents of Kokutai understood it as a religion, and 敎 (teaching / religion) was seen in ideological terms, then enlightenment appeared in a distorted form as a discipline required by divine authority. Another finding is that when rational judgment and criticism of the Kokutai religion were not allowed, this suppressed the formation of the individual subject of enlightenment.

본고는 메이지 계몽사상에 관한 종래의 논의가 메이지 초기 메이로쿠샤의 문명개화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즉메이지 계몽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이로쿠샤의 문명개화론뿐 아니라 제정일치 및 신도국교화 입장에서 나온 문명개화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 두 방향의 논의가 메이지 후기 국체론의 영향 아래 다양한 갈래의 계몽주의로 전개되었다는 이해다. 그 갈래들 가운데 본고에서는, 신도국교화 논의에서 출발해 일본형 정교분리를 거쳐 국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근대계몽사상의 비판적 전유가 일어난 점에 주목했다. 특히 국체론의 핵심을 이루는 '교' 개념이 정치·종교·교육 영역에 걸쳐 분화·재편되는 과정에서, 신성권위에 의한 '가르침'이 하달되고 그에대한 응답으로서 '깨달음'이 요청된 상황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몽의 의미와 주체가 이분된 동시에 불가분의 관계로 제시된 지점에 국체론적 계몽주의가성립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로부터는 국체 이데올로기로서 '교'가 작동할 때, 신성권위의 이름을 빌린 외부 주체에 의한 명령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요구된신앙적 깨달음이 계몽의 구조를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에 대한 판단과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대적 의미의 계몽 주체의 형성이 억제되었다는 문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