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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위원회' 기록 연구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Moon Jae-in Government's Records of 'Committees Related to Elimination of Accumulated Ills'

  • 투고 : 2019.03.31
  • 심사 : 2019.04.18
  • 발행 : 2019.04.30

초록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관련 위원회'에 관련한 문서들은 동시대 사회적 기억으로서 기록화해야 할 중요한 기록이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위원회가 발간한 국정화 백서와 부록에서 박근혜 정부의 권력남용과 불법적인 업무 추진 절차의 증거로서 제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담당 조직이 생산한 기록의 주요내용과 함께 그 관리실태를 분석하였다. 기록공동체가 기록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 현재의 기록 전문직 공동체만으로는 역부족이며 보다 큰 틀에서의 사회적 활동과 기록공동체의 외연 확대를 제시하였다.

In this paper, under the assumption that the documents related to the Military and Political Government of the Government of Japan are an important record that should be recorded as social memories of the time, the Ministry of Education's history textbook, In the white paper (Appendix) issued by the Investigation Committee, we analyzed the main contents of the records produced by the organization responsible for the history textbooks and the management of them, which were presented as evidence of the power abuse of the Park Geun-hye Government.

키워드

1. 머리말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에서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그 첫 번째 과제로 정하였다(국정기획자문위원회 2017). 이러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국가정보원을 필두로 법무부, 외교부, 문화체육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에서 관련 위원회들이 설치되고, 이전 정부 시기의 권력 남용과 불법적 업무추진 과정에 대한 실체적 규명 활동이 이루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과 관련한 위원회 활동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운영되었던 ‘민주 정부’ 시기 과거사위원회 등의 방식과는 달리 각 부처 소속의 ‘자문기구’로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년 안팎의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이러한 활동 기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각 위원회들은 각 부처 홈페이지와 언론 등을 통해서 위원회의 조사 내용과 그 근거 등을 수시로 공표해서 국민들의 알 권리에 부응하려고 했다. 그리고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는 백서를 발간하여 ‘적폐’의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이에 기초한 ‘적폐 청산’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이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의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권력 남용에 의한 ‘국정농단 행위’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정책이었다. 곧 부처 내부 구성원과의 협의 구조 속에서 ‘적폐’ 조사 대상을 설정하고, 관련 기록과 면담 조사에 기초해서 조사 과정에서의 특정 정책(사안)의 결정과 집행과정을 재구성하였다. 또한 원인 분석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안을 마련·권고하고, 백서 발간을 통한 국민적 공유라는 일련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정책적 고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시민사회와 정부기관의 ‘협의’를 전제로 진행된 적폐 청산과 관련한 문재인 정부의 위원회 활동과 그 결과로서의 백서는 적폐 청산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제이자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실현 행위에 대한 증거로서의 맥락을 지니고 있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 추진 과정을 조사하고 재구성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 활동과 이를 정리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이하 국정화 백서)는 그러한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는 위원회가 발족할 때의 교육부 장관과 위원회 위원장의 격려사에서도 확인된다. 곧 지난 정권의 ‘국정역사교과서’ 정책이 “국정정책 추진 과정 내내 갈등과 분열을 일으켰고, 교육민주주의를 훼손”시켰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교육계가 “청산해야 할 대표적” 국정 과제임을 분명히 하였다.더 나아가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집필진을 비공개하고, 국정교과서 조직에 대한 국회감사를 거부하는 등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기본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학교와 사회에 정착시켜야 할 책무”를 지닌 교육부 스스로가 그 사회적 책무를 포기한 행위였다고 단언하였다. 이 과정에서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땅에 떨어졌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곧 위원회의 ‘공정하고 중립적이면서도 철저한 조사’가 지니는 “교육 부문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여 교육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첫 발걸음”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 관련 위원회 활동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기록화는 ‘청산되어야 할 과거 사건이나 행위’에 대한 증거로서의 특정의 개별 기록을 남긴다는 차원을 넘어서 지난 정부기간 훼손된 민주적 가치와 공공기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거버넌스 실현 기제로서의 위원회 활동과 지향이라는 사회적 맥락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적폐청산 관련 위원회 활동에 대한 기록화를 위한 기본 단계로 백서의 내용과 함께 백서에 수록된 관련 문서들을 조사·검토하였다.

본문에서는 교육부의 국정화 백서와 『백서 부록』(이하 부록)에 수록된 주요 문서를 각 출처에 따라 1과 2로 시작하는 일련의 문서번호를 부여하고, 생산 부서와 주요 내용 등을 [표]로 정리 제시하였다. 모두 60여 건의 문서 중에서 국정화 관련 주무 조직들이 업무 추진 과정에서 수행한 ‘불법성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에 한정해서 서술하였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난맥상의 핵심 증거로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록의 중요성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기록에 대한 공공 기관에서의 관리 실태에서 드러나는 문제의 심각성과 그 의미를 정리하였다.

이 논문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교육부의 국정화 백서 사례를 중심으로 공공 기관에서 광범위한 기록의 ‘미등록’ 현상과 그것이 가지는 기록학적 또는 사회적 의미이다. 곧 기록화되어야 할 중요한 업무 수행의 증거이며 동시대의 사회적 표상이자 기억에 해당하는 기록을 생산 시점부터 은폐·멸실시키려는 기록행정 체제가 존재하며, 이로 인해 기록 혁신의 결과 제정된 현재의 「공공기록물법」 취지가 공공 영역에서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을 밝히고자 했다.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중요하고 의미있는 특정 기록을 기록생산시스템 밖에서 생산하고 등록하지 않는 현재의 공공행정 업무 관행은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이루어져야 할 공적 업무의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합의과정을 훼손시키고 그 증거들을 의도적으로 멸실시키는 ‘범죄 행위’이다. 이러한 중요 기록의 미등록 문제에 대해 ‘실천적 아키비스트’적 관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아카이브가 인간과 시민, 민주주의에 복무한다는 사회적 인식”으로의 전환(이영남 2018)이 전제된 기록혁신에 대한 기록전문가 공동체의 자기 성찰과 함께 기록공동체 외연 확대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될 것이다.

2.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과 중요 기록 미등록 문제

2017년 5월 12일 ‘대통령 업무지시 2호’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의 폐지 지시가 내려지고, 5월 31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교육부는 9월 25일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목표로 역사학계, 역사교육계, 법조계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활동을 실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교육부 직원들이 포함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이하 조사팀)을 설치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위원회는 교육부 장관의 자문기관으로서의 한계와 ‘임시조직’으로서의 조사팀의 공식적 업무 수행 근거 미비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2월 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사위원회 운영에 관한 훈령」을 제정하였다. 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의 사회적 중요성과 위원회의 ‘공식적 활동’에 대한 명시적 근거 규정이 필요하다는 위원회 건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위원회의 활동 방식과 절차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원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하여 반드시 조사가 필요한 사항을 교육부 장관에게 제안하면 장관은 이를 받아들여 조사팀에 지시하였다. 조사팀은 이 지시에 따라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위원회에 보고하였으며, 위원회는 조사팀의 보고를 그대로 확정하거나 추가 조사를 요청하고 재보고 받아 확정하는 과정을 거쳤다.이와 같이 조사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 규명, 위법·부당행위 조사, 행정업무 등으로 업무를 나누어서 교육부와 국편이 생산한 문건과 관련 언론 기사 등을 확인하고 관련자를 면담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위원회는 2017년 9월 25일부터 2018년 4월 24일까지 약 8개월간 20여 차례의 회의를 개최하였다. 또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결정 과정과 교과서 편찬 과정에 대한 조사에 중점을 둔 제1소위원회(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 인사들로 구성)와 국정화 과정 중 주요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해당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제2소위원회(법조인들로 구성)를 두어 수 차례의 실무회의를 가동하였다.이를 통해서 위원회는 2013년 6월~2017년 5월까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의 주요 위헌·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2018년 3월 28일 발표하였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국정화의 전체 과정과 문제점을 정리, 대안을 마련하고 국정화 백서를 발간하였다.

그런데, 위원회는 조사 활동 과정에서 관련 문서들을 어떻게 취득했을까? 위원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재구성하고 위법·부당 사항을 조사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등 관련 부서에서 기안·검토·결재한 ‘공식 문서’를 검토했다. 그리고 이 외에 “전자결재시스템을 거친 공문은 아니더라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내부 문건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교육부 2018a, 10-11). 이렇게 위원회가 ‘전자결재시스템을 거친 공문’ 외에 개인 PC와 외장매체(USB)에 저장된 다수의 ‘내부 문건’들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공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생산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의 핵심적 증거들이 ‘기록’으로 획득·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온전히’ 재구성하는 데에는 교육부의 역사교육지원TF의 PC 21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등의 PC 19대 등 모두 41대와 USB 1대의 데이터 복구 작업을 통한 핵심적 ‘내부 문건’ 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관련 위원회 활동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교육부 국정화 백서 사례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위원회가 특정 정치적 입장에 의한 ‘주관적 해석’ 논란을 최소화화기 위해 교육부의 학교정책실 교과서정책과 역사교육지원팀, 역사교육지원TF,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국사편찬위원회 역사교과서편수실 등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 추진 조직들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생산한 문서들과 관련자들의 진술에 근거해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국정화 백서와 부록의 2권으로 이루어진 교육부 진상조사 백서는 당시의 상황 및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공적 업무 활동을 증거하는 문서와 일부의 관계자 진술을 발췌하거나 인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국정화 백서의 증거로서의 객관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두 40건의 국정화 관련 ‘주요 문서’를 부록으로 별도 제시하고 있다. 국정화 백서의 이러한 특징은 외교부 백서를 제외하고는 ‘적폐청산’과 관련한 각 부처 위원회가 발행 배포한 백서들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국정화 백서의 주요 내용을 구성하는 문서는 교육부의 국정화 추진 부서들의 주요 업무 활동의 증거이며 설명 책임의 근거인 동시에 위원회와 교육부가 최종적으로 공식화한 위원회 활동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1차 사료이다. 특히 부록은 국정화 백서의 내용적 근거가 되는 자료집이자 1차 사료이다. 따라서 1차 사료가 가지는 기록으로서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학에서 사료비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학에서는 국정화 백서의 내용을 구성하는 각 문서들의 출처와 함께 진본성이나 신뢰성 등의 기록 요건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전자적으로 업무가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기록생산시스템에서의 생산, 획득, 유지 등 여부는 업무 활동의 매커니즘과 맥락 보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는 업무 활동의 재현물로서의 기록과 ‘의미있는 정보’로서의 기록 인식(또는 개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설문원 2019).

역사학이나 기록학 모두 업무수행 과정에서 생산·획득된 기록의 증거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이때 공적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업무 활동과 연계된 맥락이 사상된 ‘미등록’ 문서는 그 자체의 신뢰성은 물론 기록으로의 인정 여부 등 여러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필자는 교육부 위원회가 활동 과정에서 ‘획득’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조직의 업무 수행 증거로서의 백서 수록 문서들이 가지는 정보적·증거적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교육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였다.

해당 문서들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국민 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최우선 국정과제로 정한 ‘적폐 청산’ 과제 중에서도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던 문제’였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안과 관련하여 교육부가 2014년~2017년의 3~4년간 공식적으로 수행한 공적 활동의 ‘행정적 증거’이다. 또한 공적 업무 수행 과정과 결과에 대해 공직 사회와 국민에게 설명책임 의무를 다하기 위한 ‘법적 증거’이다.

그런데 청구한 정보공개에 대한 교육부의 결정 통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부록에 수록된 문건 중 8할이 ‘내부 보고문서’로서, 문서번호나 단위과제카드(명)은 물론 보존기간이나 공개여부 관련 등의 ‘기록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곧 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의 권력 남용,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업무 처리 행위에 대한 증거 자료로서 부록에 수록한 문서들은 “의사결정 과정이나 상황보고 등 내부보고 문서”로, “상급자에 대한 단순 보고를 위한 것”이기에 “별도로 문서등록대장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 정보공개 담당 부서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상황보고 등 내부보고 문서는... 최종 의사결정이나 정책결정이 완료되면 의사결정이나 정책결정의 책임성을 위해 문서를 등록(문서등록대장에 등록시 단위과제카드와 문서번호가 부여)”한다는 설명에는,교육부 백서와 부록에 실린 국정화 관련 문서들이 ‘상급자의 정책 결정이나 의사 결정을 위한 단순 보고 자료’이며, 이러한 자료들은 통상 ‘내부보고 문서’라고 해서 등록하지 않는다는 공직자들의 ‘왜곡된’ 기록 인식이 잘 드러난다. 기록의 미등록 행위에 대한 ‘일말의 변명’은 커녕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 처리 방식이라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곁들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제16조에는 “공공기관은 공식적으로 결재 또는 접수한 기록물을 포함하여 결재 과정에서 발생한 수정 내용 및 이력 정보, 업무수행 과정의 보고사항, 검토사항 등을 기록물로 남겨 관리하여야 한다.”고 하여, 우리 사회가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행정 구현”을 위해 남겨야 할 ‘최소한의 기록화와 기록관리 대상’을 명시하였다. 또한 시행령 제17조에서, 법령과 조례의 제·개정 관련이나 이에 상당하는 주요 정책의 결정 또는 변경, 행정절차법에 의해 행정예고 해야 하는 사항 등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미리 조사·연구서(검토서)를 작성·보존하도록 규정하였다. 다만, 업무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단위과제별로 관련 기록물을 생산·관리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조사·연구서 등을 작성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처리과 기록관리 업무처리 절차』(NAK3:2015, v2.2)에서는, 조사·연구서(검토서)를 반드시 생산해야 하는 행정예고 사항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국민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사항, 많은 국민의 이해가 상충되는 사항, 많은 국민에게 불편이나 부담을 주는 사항, 그 밖에 널리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는 사항 등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전자문서시스템과 업무관리시스템이 통합된 온나라 시스템을 사용하는 공공기관은 별도의 조사·연구서(검토서) 형식이 아니라 해당 행정예고와 관련한 업무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결재하거나 접수된 기록물’은 물론 ‘업무수행 과정의 보고사항이나 검토사항 등’에 해당하는 문서를 ‘기록으로 남기고 관리’ 해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념적 갈등과 연계되어 국민적 이해가 상충되어 국민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업무활동 기록들은 행정예고 대상 업무와 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산 과정에서부터 잘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이는 공공 행정적 관점에서 볼 때도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교육부 백서에 서술된 내용을 증거하는 문서들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결과는 공공기관의 공적업무 행위에 대한 기록관리 규정은 물론이고 공공 행정의 일반적 상식에도 위배되는 기록의 ‘미등록’ 행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상적으로 행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공공기관의 ‘기록을 생산하지 않고 관리하지도 않았던’ 후진적 기록 문화 토양과 구조를 개혁하고자 추진된 참여정부의 ‘기록혁신’ 성과, 곧 전자적으로 기록을 생산·관리하는 시스템의 전 정부적 확산, 기록 전문직의 공공기관 채용, 그리고 조직적·인적 측면에서 이전 시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서의 국가기록원 체제로 전환된 지 10여 년이 훌쩍 지나버린 2019년 3월 현재,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문서에 대한 인식과 관리 실태는 한국의 공공기록 관리의 현주소를 ‘있는 모습 그대로’ 증언해주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잘못된 기록관리 실태가 결코 교육부만이 아닌 전 공공기관에서의 공통 사항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가기록원이 2017년 6월부터 8월까지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국책사업, 그리고 세월호 등의 ‘사회적 참사’와 관련하여 12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록 실태 점검’을 통해서도 일부 사실이 이미 확인된 바 있다(국가기록원 2018). 그러나 당시 국가기록원은 석유공사, 가스공사, 수자원공사 등 정부산하 공공기관과 국토교통부 소속기관(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국토연구원)으로 한정하거나 국토교통부와 국무조정실의 일부 업무에 국한한 상황으로 인식하는 지극히 제한된 실무 차원의 접근 자세마저 보였다(설문원 2018, 7).

이는 2018년 8월의 가습기살균제 사안이 포함된 ‘사회적 참사’와 관련해서 해당 부처의 기록 폐기 금지와 기록보유현황 제출을 요청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국가기록원 2018). 곧 등록되지 않은 기록이 생산현황이나 폐기대상 목록에 포함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에 보유현황을 제출받아도 ‘의미있고 가치있는’ 특정 기록을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전형적인 뒷북치기 기록 행정 행위만을 되풀이했다. 물론 수자원공사 사례와 같이 기록 폐기 금지 조치가 일정한 성과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량의 마구잡이 폐기 행위에 대한 ‘사후적’이며 매우 제한적인 기록 행정 조처에 불과하다.

국제표준에 의하면, 기록은 “업무활동을 수행하는 중에 생산, 접수되고 사용된 것”으로, 증거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진본성, 신뢰성 등의 기록으로서의 요건을 유지해야 한다”(ISO 15489-1:2016, 5.2.1) 곧 기록의 품질요건은 조직과 개인이 기록 관리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이상적인 기록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이다. 기록관리 기관을 포함하여 기록전문가 공동체가 교육부 백서 관련 문서의 미등록 사례를 보다 엄중하게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업무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록생산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의 획득’ 자체를 가로막는 ‘미등록’ 행위를 ‘일부의 잘못된 관행’으로 안일하게 인식해서 ‘방치·용인’하는 한 한국의 국가기록 관리 체계는 사회 전반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것이다. 아니 이미 기록공동체 내부로부터도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활동한 국가기록관리 혁신TF의 한 위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국가기록원장이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한 기록의 제출을 요구했을 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이재정 2018, 210).

“등록된 건수가 단 1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국가기록개혁TF 전체회의 때 화를 냈더니 그 다음에 19건을 가져왔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18건은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국가기록원이 기록을 등록하지 않는다? 매우 서글픈 현실입니다.”

관련 문서는 정책업무 담당 직원의 개인PC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인 국가기록원마저 이럴진대, ‘1인 기록관 체제’하에서의 공공 기록 미등록 실태의 심각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생산 시점에서 확보·유지해야 하고 획득 이후의 관리 과정에서 보호해야 할 기록의 품질요건, 곧 기록의 속성은 기록의 ‘등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듀란티가 기록의 신뢰성과 관련해서 기록형식의 완전성과 기록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한 통제를 강조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Duranti 2002) 곧 기록이 증거로서 신뢰받기 위해서는 기록형식의 물리적·지적 요소들이 완벽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업무과정에서 사용되는 시스템 속에서 생산될 수 있도록 통제되어야 한다.

기록관리는 “기록의 생산.접수.유지.이용.처분을 능률적이고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관리영역으로서, 업무활동과 처리행위에 관한 증거와 정보를 기록의 형태로 획득.유지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므로(KS X 15489-1:2007, 3.16), 기록의 ‘미등록’ 행위는 곧 현용단계의 기록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반(反) 기록 행위인 동시에 “영구적 가치를 가지는 기록의 평가선별, 정리와 기술, 보존, 접근제공 업무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보존단계의 기록관리(Pearce-Moses 2005) 체계를 형해화시키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투명성과 설명책임의 주요 기제로서의 기록의 중요성과 기록 전문직의 사회적 기억 수호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진전과 토대 강화에 기여하려는 한국 기록 혁신의 역사적 과정과 가치 지향을 훼손시키려는 ‘중대한’ 반(反) 사회적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편, 교육부의 국정화 백서 사례는 ‘역사기록(사료)’의 수집·보존 전문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이 ‘적폐 행위의 가담 주체’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이라는 중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역사 왜곡에 ‘동원’된 사실과 관련해서 일정한 시사점을 가진다. 곧 ‘역사쿠데타’로까지 규정된 이 문제는, 편찬 위원 명단 비공개와 편찬기준의 정치적 편향성 등에서 드러난 반민주적 성격(민족문제연구소 2016)과 함께 국편의 내부 직원을 동원해 집필자 초고를 수정하는 등 ‘권력의 시녀’ 역할을 자청했다는(이신철 2017) 점에서 국편의 ‘존립’ 자체에 대한 회의론마저 초래하였다.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공공기록 정책과 역사기록의 수집·편찬 업무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국가 ‘기억기관’인 행자부 소속 국가기록원과 교육부 소속 국편에 대한 전면적 재구성(곽건홍 2017) 문제는 기록공동체의 외연 확대와 행정자치부 체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기록혁신 방향 및 정책적 지향으로서 더욱 주목되어야 한다.

3. 국정화 백서의 여론조작 관련 문서와 주요 내용

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을 ‘국정화 준비’ 단계, ‘국정화 강행’ 단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단계,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 이후 정책 추진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교육부 2018a, 10), 각 단계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역사교육지원팀, 역사교육지원TF,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등 조직의 업무 활동을 그 활동 과정에서 생산한 관련 문서들을 근거로 삼아 세묀하게 검토하였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위법 사항을 크게 불법적 국정화 여론 조성·조작, 국정화 지원TF의 부당한 운영,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의견서 조작, 청와대 개입에 따른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의 부당한 처리, 교과서 편찬과 집필 과정의 위법과 부당 행위, 국정화 반대 학자들에 대한 학술연구지원 불법 배제 행위 등 6가지로 조사·정리하였다(교육부 2018a, 139-217).

이러한 백서의 내용 서술의 특성을 고려해서, 이 장에서는 먼저 역사교육지원팀과 역사교육지원TF의 불법적인 국정화 여론 조성과 ‘민간사회를 가장한’ 여론 조작 행위를 증거하는 문서 내용을 확인한다. 이어서 국정화 강행 단계와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단계를 포괄하는 2015년 1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존속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 중심이 되어 추진했던 온라인상에서의 국정화 우호 여론 조성 행위와 관련한 문서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백서에 수록된 문서들의 증거적·정보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 ‘국정화 강행’ 단계의 비밀 조직 운영과 주요 문서

여기에서는 교육부가 청와대의 국정화 정책 지시에 초기에는 소극적이나마 국정화 이외의 다른 대안도 함께 모색하다가, 2015년 2~3월 청와대의 본격적 추진에 따라 국정화 강행 방침으로 선회한 이후에 구성된 ‘역사교육지원TF’(이하 지원TF)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박근혜 정부는 새롭게 진용을 구축한 2015년 7월부터 국정화 추진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작동시키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 세력을 통제할 ‘정교한’ 추진 전략과 상황을 진전시킬 계획을 다각도로 마련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은 청와대 비서실을 중심으로 교육부가 앞장서서 추진하였지만, 범정부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9월 29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달했다(교육부 2018a, 174).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대학 구조 개혁 추진 등 교육개혁 현안들은 교육부에만 맡기지 말고 범 정부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상황실/TF 구성운영도 필요할 것”

이에 따라 교육부는 10월 5일 서울 동숭동 구 국립국제교육원에 지원TF를 급박하게 구성하였다. 기획팀, 상황관리팀, 홍보팀으로 구성된 이 조직의 활동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다각적인 홍보 활동을 통한 지지 세력 결집과 지지 여론의 확대에 맞추어졌다. TF의 이러한 활동은 10월 12일의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 예고’에 10월 12일부터 11월 2일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과 묀접한 관련이 있었다. 행정 예고 다음날인 10월 13일,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신청한 지 하루 만에 국정화 추진을 위한 44억의 예비비 승인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비비 44억 중 절반이 넘는 24억 8천만 원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비로 편성되었는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지상파 홍보 동영상을 비롯한 각종 홍보 계획이 결정되었다.

역사학계와 국민 대다수의 반대 여론을 잘 알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국정화 비묀TF를 구성하기 이전에도 학교정책실 교과서정책과의 역사교육지원팀을 통해서 국정화 우호 여론 형성을 위한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2015년 9월 14일 역사교육지원팀이 작성한 (1-15) 「역사교과서 발행 체체 개선 관련 기고 현황」에 나타난 국정화 우호 여론 형성을 위한 ‘업무 활동’은 다음과 같다(교육부 2018a,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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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1-15) 「역사교과서 발행 체체 개선 관련 기고 현황」(2015.9.14.)

(1-15) 문서의 언론 기고 현황에 의하면,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은 국정화지지 여론을 조성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조선일보와 머니투데이 등 언론에 기고할 기고자를 섭외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고 원고를 검토하고 제공하는 행위를 ‘공적 업무’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홍보·여론’ 활동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며 매우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실행되었다. 역사교육지원팀과 지원TF의 PC에서 발견된 (2-23-1), (2-23-2), (2-23-3)에 해당하는 학계 성명서, 학부모 성명서, 시민단체 성명서의 샘플의 존재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민간인 및 민간단체’를 가장한 공적 조직의 ‘홍보’ 활동, 곧 공공기관에 의한 여론 조작 행위가 공공연하게 진행되던 시기에 설치된 지원TF는 2015년 11월 12일까지 37일간 운영되었다. 지원TF는 3개 팀 21명에 이르는 ‘단’급 규모로, 고위 공무원을 단장으로 하고 역사교육지원팀장과 팀원 6명, 임의 차출된 중앙교육연수원과 국립대 등 소속기관 공무원들로 구성되었다. 지원TF의 ‘공적 업무 활동’의 문제와는 별도로 그 조직 과정에서 정상적인 교육부의 직제개편이나 인사발령 등의 절차가 결여되었다. 지원TF의 운영 경비를 역사교육지원팀 명의로 처리하는 등 각별한 ‘보안’이 필요한 ‘비공식적’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에서 ‘캐비닛 문건’에 근거해서 작성한 「2015 ~2016년 청와대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교육부 2018a, 39-41 재인용), 당시 청와대와 교육부가 비묀조직으로 지원TF를 구성, 운영한 속내가 잘 나타나 있다. 이념적 이슈가 강한 국정화 문제로 인해 청와대가 직접적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청와대가 총괄하거나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비묀 TF가 10월 26일 작성한 (2-6)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 상황 및 향후 대책」에는 10월 30일~31일 서울대에서 개최하기로 되어 있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예정된 역사학계의 ‘한국사 국정화 반대 공동성명’ 발표가 미칠 사회적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청와대와 교육부의 ‘작전’이 잘 나타나 있다(교육부 2018a,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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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6)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 상황 및 향후 대책」(2015.10.26.)

(2-6) 문서에는 장소와 경비를 제공·지원하는 서울대총장과 학술연구재단을 통해 ‘자제 요청’을 빙자한 ‘부당하게’ 압력을 가하는 행위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또한 역사학자와 역사전공자들의 학술대회인 전국역사학대회에서의 국정화에 대한 의견표명을 가로막기 위해 보수단체의 집단행동을 교사(敎唆)했으며, 교육부 차관이 직접 나서서 학부모단체 대표를 면담하면서 보수단체의 일사불란한 ‘대응’에 대해 ‘협의’한 사실이 확인된다. 한편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역사학자들의 국정화 반대 성명 발표에 대한 맞대응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지지 성명 발표가 추진되는데, 여기에 교육부가 깊숙이 관여한 증거가 당시 학술진흥과장의 메일에서 드러났다(교육부 2018a,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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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당시 학술진흥과장 고○○ 이메일(2015.10.26.)

이상에서 확인된 교육부의 지원TF 활동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전면적인 홍보와 지지세력 확보 등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아 각종 보고 자료와 국정화 홍보 자료 작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교육부 공직자들로 구성된 공적 조직인 지원TF의 이와 같은 ‘공적 업무 활동’은, 청와대의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화 추진 방식을 지시받아 수행하는 일종의 ‘사적 정치조직’으로 운영됨으로써 공공기관과 공직자가 유지해야 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송두리째 던져버린 행위에 대한 중요 증거이다.

2)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의 활동과 주요 문서의 내용

2015년 10월 말 언론 등에 의해 지원TF의 존재가 드러나자 교육부는 2015년 11월 13일 지원TF를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하 추진단)으로 공식 재편하였다. 기획팀과 대외협력팀으로 구성된 추진단은 학교정책실장이 단장을 겸임하고 별도의 고위공무원 부단장이 실제 업무를 총괄하는 구조였는데, 일방적인 조직 구성 과정에서 공직자들의 저항과 반발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보복성 인사와 사표를 제출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교육부 2018a, 57). 추진단은 교육부의 국정화 강행 단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단계까지 핵심적 조직으로 많은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여기에서는 국정화 강행 단계에 온라인상에서 불법적으로 ‘우호적’ 여론을 조작·조성한 부분에 국한하여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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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1-19) 「올바른 역사교과서 관련 온라인 대응 방안」(2015.12.3.)

(1-19) 문서는 당정청 협의회 회의 자료로 작성된 것으로, SNS나 인터넷 댓글에서 국정화 역사교과서의 편찬 기준이나 편찬심의회 구성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여론 확산을 경계하면서, ‘집필진 보호’, ‘자유로운 집필 분위기 조성의 중요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고나 SNS상의 발언을 ‘우호 시민 단체’를 통해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잘 보여준다.

더 나아가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온라인 여론 동향을 조사하고, 이를 경찰청에 발송까지 하였다. 교육부 대변인실 홍보기획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에서는 온라인상의 반대 여론 동향을 아이디(닉네임), 발언 내용, 작성 일시까지 ‘채증’해서 정리하였다. 그리고 추진단 관련자 PC에서는 ‘경찰청 발송’이라는 제목의 폴더에서는 언론기사 댓글, 다음 아고라, 트위터 등에서 국정화 반대 의견을 수합한 문건 15건이 발견되었다(교육부 2018a, 171). 추진단의 이러한 업무 활동은 일반적인 여론 동향 정리나 파악 수준을 넘어 불법적 ‘민간인 사찰’로까지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추진단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업무 외에도 수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EBS 역사 교재와 학교 도서관의 청소년 역사 교양도서 선정에도 적극 개입하였다. 아래의 문서는 학교 도서관의 역사 교양도서에 대해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2016년 1월 18일 추진단이 교육부 차관에게 보고한 (2-7)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 상황」(교육부 2018b, 49-67) 중에서 ‘3. 올바른 역사교과서 개발 관련 현안 대응’의 일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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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2-7)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 상황」(2016.1.18.)

‘어린이 역사교양도서 편향실태 점검’ 항목에 의하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본체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거나 체제 전복활동을 고무하거나 선동”하는 도서를 제외한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학교도서관의 도서 선정 기준을 강제하였다. 곧 박근혜 정권의 가치관에 반하는 도서의 구입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마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자행된 ‘불온도서’ ‘금지도서’ 정책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이 시·도 교육청으로 하달된 사실을 알려준다.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사고에 빠져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거나 전복 활동을 ‘고무·선동’하는 행위로 몰아붙여 ‘용공·좌경세력’으로 범주화하겠다는 교육부 관료들의 정권 코드 맞추기 행정의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문서는 당시 전북교육청이 주도하고 강원·광주·세종교육청이 참여해서 역사교과서 보조교재를 개발하는 움직임과 경기도교육감, 인천교육감의 국정화 반대 1인 시위 동향 등 ‘진보교육감’에 대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한편 청와대와 교육부는 한국사가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자, 수능 출제에 영향력이 큰 EBS 수능특강 한국사 교재에 대해서도 개입했다. 추진단은 EBS 수능특강 한국사 교재 9중 5종을 검토하여, 이에 대한 ‘편향성’을 지적하고 수정안을 EBS 교재 감수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전달한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EBS 역사교재와 관련해서 별도로 작성한 문서 (2-8) 「EBS 역사교육 현황 및 편향성 해소 대책」(2016.2.3.)에 의하면, 교육부가 EBS 교재에 대해 직접 개발이나 검토 과정에 참여할 경우 ‘교재검열’ 등의 사회적 논란 발생 우려가 있기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감수할 때 교육부 차원에서도 동시적으로 검토해서 수정 보완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었음을 자세히 알 수 있다(교육부 2018a, 60-63).

이상에서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 추진 과정에서 행해진 불법적 여론 조성과 조작 행위를 증거하는 대표적인 문서의 존재와 내용을 확인하였다. 교육부와 교육부 소속 공직자들은 ‘민간사회를 가장한’ 여론 조성과 조장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심지어 온라인상의 국정화 반대 정보를 취합해서 그 동향을 경찰청에 제공하여 민간인 사찰 행위에 적극 가담했음을 알 수 있었다.

4. 국정화 백서와 부록에 수록된 문서의 관리 실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정리한 백서 부록에는 주요 문서로 40건을 수록하였고, 국정화 백서에는 문서 26건이 언급되었다. 부록의 문서목록에는 36건으로 되어 있지만, 이중 1건이 세 개의 문서를, 2건이 두 개의 문서를 하나로 묶은 것이고, 1건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에서 진상조사와 백서집필을 위해 작성한 것이기에, 박근혜 정부 교육부에서 생산한 실제 총 문서건수는 39건이다. 필자는 위원회가 백서 부록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하여 위법과 부당한 업무 활동의 ‘명백한 증거’로 수록한 39건의 문서에 대해서, 생산부서명과 생산일자, 단위과제와 보존기간, 단위과제카드의 생산·접수번호, 보존기간, 비묀 여부 및 공개 여부 등의 기록 정보를 교육부에 정보공개 청구하였다.

[표 1]은 그에 대한 교육부의 ‘통보 내용’에서 기록생산시스템에 등록된 7건과 훈령 1건을 제외한 31건의 정보를 정리한 것이다. ‘구분’은 부록에서 [붙임1], [붙임2] 등으로 문서를 구분했고, 교육부가 정보공개 결정 통보할 때에도 부록에서의 구분을 그대로 인용한 맥락을 고려한 것이다. 곧 백서 부록의 [붙임3]과 [붙임4]는 [표 1]의 2-3과 2-4에 해당한다.

 [표 1] 부록의 ‘미등록’ 문서

HGKRBZ_2019_n60_5_t0001.png 이미지1) 부록에 수록된 ‘미등록’ 문서 현황과 주요 내용

[표 1]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총 39건의 문서 중 31건이 모두 ‘공적 업무활동’을 증거하는 기록으로 획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백서 발간된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 교육부 시기 자신들이 수행한 업무 활동의 증거를 기록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곧 31건의 문서는 ‘내부 보고문서’ 또는 ‘내부 참고문서’로서,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와 관련해서 수행한 공식적인 업무 과정에서 생산한 ‘정식’ 기록이 아니었다. 따라서 기록으로 등록하면서 부여되는 문서번호나 단위과제카드(명)도 없으며, 당연히 보존기간이나 공개여부에 대한 기록정보도 있을 수 없다. 과연 이 문서들은 단지 내부적으로 검토만 하는 자료로 공적 기록으로 보존할 가치나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표 1]에서 장관이나 차관에게 실제로 보고되었을 가능성이 높거나 청와대에 보고되었다고 백서에서 언급한 문서를 우선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2-2)는 2014년 9월에 창의인재정책관실 역사교육지원팀이 청와대(VIP)에 보고한 문서이다(교육부 2018a, 28). 문서에는 담당 국장과 과장의 성명과 사무실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가 적시되어 있고, 당시 국정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역사학계(교사)의 반발과 참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국정교과서로 정책을 전환할 경우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공론화를 통한 다각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국정화 준비’ 단계에서의 교육부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2-4)는 아래 그림에서 보이듯이 제목 바로 밑 부분의 ‘차관님 검토 여부’에 ‘검토’로 체크 표시가 되어 있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시기 및 단계별 대응 방안에 대해 보고드림(BH 교육비서관실 요청, ‘15.7.5)”이라고 ‘주요 보고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다(교육부 2018b, 26-30). 역시 해당 실·국장과 과장의 성명과 사무실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가 적시되어 있는 해당 문서는 ‘역사교육지원팀 → 창의인재정책관(국장) → 교육정책실장 → 차관’으로 이어지는 결재라인을 거쳐 청와대에 보고되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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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2-4)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발표 시기 및 단계별 대응 방안(안)」(2015.7.7.)

(2-5)는 「붙임1 국정화 추진을 위한 교육부 TF 구성·운영(안)」이라는 첨부 자료 맨 윗줄에 “(반장)-교육부 차관/(부반장)-학교정책실장”으로 되어 있고, 정책기획관, 대변인, 지방교육지원과장, 교육과정정책관, 학교정책관 등을 반원으로 편성한 업무분장(안)이 제시되어 있다(교육부 2018b, 34). 교육부 차관을 ‘반장’으로 하고, 주요 실국장을 ‘반원’으로 하는 태스크포스 구성·운영 방안은 내용의 중요함이나 관련된 결재선상의 고위공직자 면면을 볼 때 ‘보고 행위’가 없을 수 없는 문서이다. (2-11)은 제목 아래에 “국무총리실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에 대한 검토 의견을 작성·송부해온 바, 이에 대한 분석 의견 및 조치 계획을 보고 드림”이라는(교육부 2018b, 84-87) 서술 내용을 볼 때, 최소 실국장과 차관에게 보고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표 1]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서 유형은 추진단의 업무용PC와 USB 복원을 통해 위원회가 확보한 문서들이다. (2-35-1), (2-35-2), (2-36)은 국정화 추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극심한 상황에서 청와대와 교육부가 역사학계 대상으로 ‘지지세력 확대’를 위한 ‘당근’으로 학술연구지원사업비를 이용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증거 자료이다. 추진단 기획팀은 2016년 1월 18일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여론이 매우 큰 역사학계에 정책지지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역사학계의 편향된 연구지형을 보완할 필요”에서 (2-35-1)을 작성했다. 그리고 (2-35-1)의 계획은 3월 17일 “학술연구지원사업의 ‘top-down형 아젠다 제시 연구지원’ 중 역사분야 아젠다를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서 별도 발굴하여 제시”하는 (2-35-2)로 구체화되었다. 곧 아젠다를 발굴하는 방법으로 역사학 분야에서는 국편 등 역사유관기관과 ‘올바른 역사교과서’ 개발에 우호적인 역사전공 교수로부터, 역사교육 분야에서는 역사교육·교육학 전공 교수 및 초·중등학교 역사전담교원 협의회를 통해, 기타 분야에서는 102인 지지성명 참여 교수 중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교수 중심으로 개별 연락을 통해 아젠다를 수합하였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수립할 세부시행 계획에 수합된 아젠다를 포함시켜서 공고를 내도록 한 것이다.

7월 26일 작성된 (2-36)에는 “국정화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는 청와대의 의견과 학계의 국정화 반대 여론으로 인한 연구비 신청 자체가 저조한 현실 사이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실무적 어려움도 확인된다. 곧 국정화 반대 선언에 참여하거나 진보교육감의 보조교재 개발 집필진으로 참여한 교수(연구자)라도 추진단과 계속 소통하고 있는 ‘온건 또는 유화적’ 인사로 분류된 2명을 지원 대상자로 선정한 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첨부된 지원사업 현황표에는 구체적인 국정화 반대 활동(반대선언 참여, 반대선언 참여 추정, 반대 토론회 참석 등)이나 국정화 적극 협조 활동 등을 토대로 지원 여부란에 ‘◯’나 ‘◎’를 표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36)은 교육부와 청와대가 국정화 반대 역사학자에 대해 학술연구지원을 배제한 사실을 증거하는 문서이다. 교육부는 이렇듯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였고 청와대는 이를 근거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연구과제 지원 선정 과정에까지 일일이 관여했다(교육부 2018a, 215).

이상에서 확인된 것처럼, 문서 양식이나 내용의 중요성 등에서 차관까지 보고·결재되었고, 청와대나 국무총리의 지시·검토에 대한 보고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반드시 등록되어 관리되어야 교육부의 업무 행위 증거이자 대내외 설명책임의 근거들이 ‘기록’으로 획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백서까지 발간하고 교육부 수장이 온 국민을 향해 교육부를 대표하여 과거 잘못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음에도, 과거의 잘못된 업무 수행의 증거인 해당 문서들은 여전히 ‘미등록 문서’로 방치되고 있다.

[표 2]는 백서 부록에 수록된 39건의 문서 중 교육부의 정보공개 결정 통지를 통해 확인된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 활동으로 ‘등록’한 7건의 기록 정보를 정리한 것이다. (2-15)는 국편의 역사교과서 편수실에서 작성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용 도서 편찬 계획(안)」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배경과 필요성, 편찬 개요와 개발 방향, 중점 추진 과제와 세부 추진 과제, 소요예산과 향후 계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의 완결로서의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편찬과 관련된 기본 계획임을 알 수 있다. (2-15)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사 분야 박사급 전문인력을 많이 보유한 국편의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 전담 기관으로의 조직 전환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계획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이다. 그런데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관련 실무 집행 기관인 국편의 기본 계획, 그것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내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현안 중 하나였던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본계획임에도, 국편은 해당 기록을 ‘교과서 관련 일반’이라는 단위과제를 적용해서, ‘3년 보존기간’으로 책정하고 있다. 당연히 영구보존되어야 할 기록이 3년만 보존하고 폐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지정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12.12 쿠데타와 관련해서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문서가 보존기간 3년이어서 이미 폐기되고 없다던16) 1988년의 ‘광주청문회’ 때의 황당한 역사 멸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2-15) 기록의 보존기간 3년 책정을 교육부 소속기관 실무자에 의한 ‘단순한’ 실수 또는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표 2] 부록의 ‘등록’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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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역사교육지원팀 업무 지원 계획(안)

앞의 (2-29)는 원래 학교정책실 교육과정정책과에서 생산한 「역사교육지원팀 업무 지원 계획(안)」과 「역사교육지원팀 추가 업무 지원 계획(안)」의 2건의 기록을 백서 부록에서는 편의상 하나로 분류·편집했다. 그렇지만 각각 별건 기록임이 ‘교육과정정책과-6520’, ‘교육과정정책과-6521’의 다른 등록번호와 결재일자, 그리고 첨부된 지원인력 명단의 상이함에서 확인되며, 부록에서도 이를 구분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 통보과정에서 교육부는 이를 2건의 별건 기록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1건으로 처리하였다. 이는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지만, 교육부 관료와 실무자들이 백서 발간 이후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서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수행한 업무 활동의 증거 기록들을 제대로 관리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지나간 ‘빨리 잊혀지고 싶은 기억’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2-30)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홍보계획(안)」, (2-31) 「SBS-TV 영상물 제작 및 송출 건 협찬 약정」, (2-32) 「천안함 영상물 제작 요청」의 3건은 홍보 업무가 부서에 따라 다른 단위과제로 분류되는 사례인데, 일반 회계 관련이기에 보존기간 5년으로 책정되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 개입에 따른 홍보(예산) 활동의 부당한 처리에 대한 중요한 증거라는 점을 감안할 때(교육부 2018a, 182-193) 보존기간의 재검토가 요청된다. (2-33-1)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등 역사교과용 도서 편찬 책임기관 지정」이고, (2-33-2)는 (2-33-1)의 붙임 문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등 국정 역사과 교과용도서 편찬 기본계획(안)」을 부록에서 별건의 기록으로 잘못 분류·편집한 것이다. 이 기록은 국정교과서 편찬의 기본 계획임에도 다른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보존기간이 지나치게 하향 책정되어 있다. 붙임의 ‘기본계획(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보존기간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

2) 국정화 백서에 인용된 문서의 주요 내용과 관리 실태

[표 3]은 백서 본문에서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검토하면서 인용한 문서들을 목록의 형태로 정리한 것으로, (1-1)부터 (1-21)까지는 교육부에 정보공개 청구한 목록과 동일하며,17) (1-22)부터 (1-26)까지는 이후 백서 본문과 부록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문서를 추가한 목록이다. 위원회가 백서 본문 서술과 관련해서 인용하면서도 부록에서 별도로 제시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그러나 부록의 형태로 별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문서의 주요 내용과 특이사항, 그리고 관련 문서 정보 등을 살펴볼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 증거적 가치와 중요성이 높은 문서들이며, 백서 본문의 서술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주요한 근거 자료라는 점은 분명하다.

 [표 3] 국정화 백서 인용 문서의 목록 및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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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1-16), (1-19) 문서는 앞장에서 설명했으므로 생략한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그리고 장관에게 보고한 문서만 (1-1), (1-3), (1-5), (1-6), (1-11) 등이다. 또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으로 국무조정실과도 업무 관련성이 있는 EBS 한국사 교재와 관계된 문서(1-26)도 있다. 그런데 교육부의 정보공개 결정 통지에 의하면, (1-20)의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보고문서’로 문서등록번호, 단위과제카드명, 보존기간 등의 기록정보 자체가 없다고 한다. 부록의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장·차관에게, 심지어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보고된 정책결정 과정의 중요한 문서들이 미등록된 문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5. 맺음말

박근혜 정부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업무의 수행 과정을 증거하고 설명책임의 근거 자료인 국정화 백서와 부록에 수록된 주요 문서들이 기록생산시스템 밖에서 생산되고 관리되지 않는 기록관리 현장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문서의 ‘미등록’ 사례는 대다수 공공기관 기록행정의 ‘표본’에 불과하다. 일례로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부록』에 수록된 40건에 달하는 고용노동부 본부와 지방노동청에서 생산한 검토회의 결과 및 회의록은 물론 조치방향, 검토, 제안, 추진일정(안), 압수수색 검토, 부당노동행위 관련 보고 등도 “생산문건의 출처 및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없는” ‘미등록’ 문서이다.

공공기관의 주요 업무 활동 과정을 증거하는 기록의 ‘미등록’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길지 않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기 추진되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의 전체적 맥락과 구체적 내용을 밝히는 한편 비교적 충실한 내용의 백서까지 출간하였다. 그렇지만 위원회 활동의 최종 결과물인 국정화 백서와 부록에서 제시한 교육부와 청와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국정농단 행위’ 증거 문서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육부가 생산·등록한 ‘공식’ 기록이 아닌 미등록된 문서였다. 추측컨대 필자가 국정화 백서와 부록에 수록된 문서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하지 않고, ‘국정역사교과서 관련 기록물’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했다면 [표 1]과 [표 3]의 ‘내부보고문서’ 또는 ‘내부참고문서’는 대부분 ‘부존재’로 답변되었을 것이다. 이는 진본성과 신뢰성 등 국가기록 표준에서 정한 기록 요건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등록된 기록으로만 조사 활동을 했다면, 위원회의 활동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객관적 사실에 조금도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며, 백서 또한 편찬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중요한 국가기록의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며, 더욱 심각한 점은 국가기록원과 기록전문가들이 적극적인 기록업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기록물법이 전면 개정되고 기록 전문직들이 공공기관에 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 기록의 ‘미등록’이라는 ‘기록 적폐’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전자기록 환경 하에서도 계속 온존·강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직자들이 미등록 행위에 대한 ‘방패막이’로 언급하는 단골 메뉴인 ‘내부보고문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내부보고문서’는 공공기록물법에서 규정하는 ‘등록’해야 하는, 곧 “결재권자가 결재하거나 보고받은 기록물에 대하여는 결재 또는 보고가 끝난 후 생산등록번호를 부여”해야 하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기록물’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것으로 ‘등록 의무’가 면제된 그 무엇을 의미한다.

곧 한국의 공공 기관의 ‘내부보고문서’ 또는 ‘내부검토문서’는 공공기록물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다.19) ‘행정효율(또는 행정편의)’이라는 명분 아래 「사무관리규정」의 계보를 잇고 있는 전 정부부처 공통의 ‘기록행정 지침’으로 통용되는 「행정효율과 협업촉진에 관한 규정」을 따른다. ‘결재권자의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문서이기에, ‘지체없이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제20조에 따라 생산등록번호를 부여하고 등록’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업무 추진 과정에서 청와대의 직접적 지시는 물론 장·차관의 질책과 독려 속에서 업무 내용의 정당성이나 실행 과정의 합법적 절차와 규정 준수 보다 ‘윗선’의 의도를 확인하면서 수시로 진행 사항을 ‘보고’하고, 일련의 ‘정무적 관점’이 포함된 방침과 지시를 받아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등록은 ‘최소한’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수립 이후 줄곧 계속된 이러한 기록행정 체제, 곧 현재의 행정자치부 체제하에서 ‘1인 기록관’의 기록 전문직은 등록된 기록의 처리만으로도 힘겨워하며, 행정 관료들이 ‘의도적’으로 등록하지 않는 중요한 국정운영 현안과 관련한 문서에 대해 ‘생산통제’할 엄두조차 못낼 정도로 ‘고립’되어 있다.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중요하고 의미있는 특정 기록을 ‘내부보고문서’ 운운하며, 기록생산시스템 밖에서 생산하고 등록하지 않도록 용인하는 행정자치부 체제하의 공공행정 체계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할 공적 업무의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합의과정을 훼손시키고 그 증거들을 의도적으로 멸실시키는 ‘범죄적 행위’를 용인하는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록혁신의 성과인 공공기록물법의 취지와 지향의 실현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기록 적폐’에 대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토대를 강화하고 사회적 표상을 기록해야 할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인 국가기록원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중요 국정과제로 추진한 ‘중요한’ 업무활동의 증거들을 ‘등록하지 않는 행위’, 공적 업무활동의 등록 행위를 통해 현재와 후대에 해당 정부와 기관의 업무 행위 증거이자 가치 있는 정보로서 기록을 남기겠다는 공공기록물법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곧 한국 사회의 기본적 합의에 대한 전면적 도발 행위이자 기록 멸실 행위이다. 한국의 기록전문가 공동체는, 미등록 행위가 의미하는 곧 최고 통치자들과 공직사회 엘리트들이 공적 행위의 증거로서의 기록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아카이브 영향력의 범위를 통제하고 제한하려는 ‘의도된 저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직자들은 법률적 위임에 따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사회에 대한 막대한 권력 행사와 영향력 때문에 공공의 감시와 견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업무활동에 대한 기록을 통해 조직 내외부에 설명책임을 다해야 한다. 기록은 이러한 설명책임성을 보장하는 최상의 수단이다(랜달 C. 지머슨 2009, 3).

이러한 기록에 대한 기본적 인식과 관점을 분명히 하면, 공공기관의 미등록 행위에 대한 대응을 단순히 관련 법규의 일부 조항 삭제나 변경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리고 지금까지 반복해온 것처럼 기관 기록전문직을 수직적으로 동원하려는 ‘손쉬운 실무’적 행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기록의 생산 통제와 관련하여 그동안 학계에서 제출된 여러 방안 중 기록처분동결제도는 공공기록물법 개정안에 반영되기도 하였다(현문수 2017; 국가기록원 2018). 또 공공기관의 기록정보 부존재를 입증할 책임을 명시하고 부존재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심사 혹은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정보 부존재 공익침해 심사제도’(김익한 2018)도 하나의 제도적 대안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공공기록물법의 기록 생산과 등록 원칙이 온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1인 기록관 체계’로 상징되는 ‘체계적 기록관리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기록혁신이 필요하다. 기록처분동결제도만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등록되지 않으면 평가·폐기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상황’에서 취해지는 ‘사후적’인 기록행정 행위이다. 또한 생산현황보고 제도도 시스템적인 미비나 한계(황진현 2018) 외에도 미등록 문서가 누락된 생산현황 분석에 토대하여 이루어지는 국가기록원의 중요기록 선별 수집 정책과 관련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미등록 문서는 기록생산시스템 밖에서 배회하는 ‘계통이 다른’ 유령이어서 평가·폐기라는 기록관리 광장에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종이기록 환경이 전자적 환경으로 바뀌고 과거 공직 세대가 신진 세대로 교체되어도 오랜 기간 하나의 문화로 고착된 공공행정의 미등록 문서관행과 이를 관철시키는 기록 인식(또는 관점)을 한 순간에 바꾼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체득하였다. 더욱이 그것이 남북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되고 독재권력 하에서 정착된 ‘생산하지 않고, 등록하지 않으며, 관리하지 않는’ 한국의 공공기록관리 역사(이경용 2002; 곽건홍 2003)와 그 맥락이 맞닿아 있으며, ‘행정 효율 만능’(이영남 2005)의 재생산 구조가 한국 기록 행정 제도의 기본적 토양이라는 점에서, 기록혁신에 대한 저항의 저변과 강고함 속에서 기록전문직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를 실천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록관리 혁신TF가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기반 강화와 관련해서 기록의 등록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생산 시점부터 기록의 체계적 통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기록 전문직 인력과 조직의 강화 방안을 제시한 것도(국가기록관리혁신TF 2017) 이러한 맥락적 이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등록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았으며, 지난 정부의 ‘적폐 청산’를 주장하는 현 정부 하에서도 자기 조직의 ‘어두운 과거’를 증거하는 기록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이러한 광범위한 기록 관행을 바로잡고 사회적 기억으로 포착하고 관리해야할 책무를 지닌 국가기록원은 근본적인 대책의 필요성조차 못느끼는 듯하다. 공공기관의 지금과 같은 기록생산 누락 현상을 ‘용인·방치’한다면, 곧 증거적 가치와 맥락을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는 현재의 기록행정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기억 전승이라는 본연의 기록 전문가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적폐 행위의 증거가 멸실되어 가는 상황을 방조함으로써 적폐 세력의 생명력을 연장·유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1990년대 호주 퀸즈랜드주립 아카이브가 공공기관의 기록폐기에 연루된 하이너 사건(Heiner affair)에서21) “사체에 파리가 꼬이는 것처럼 엉성한 기록관리는 부패를 유혹한다”고 한 호주연방 감사원의 논평은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이 사건에서 우리 기록 전문가 공동체가 배워야 할 점은 주 정부가 해당 기록의 폐기 승인을 아카이브에 요청한 사실에서,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를 지킬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공공의 사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엔론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 미국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 위원장과 대변인의 주장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곧 “멍청해서 기록을 파괴한 사람은 누구나 파면될 것이다”, “우리 조사를 회피하기 위해 기록을 폐기한 사람은 누구라도 기소될 것이다.”(랜달C.지머슨 2009, 354-360).

자신들의 공적 업무 행위에 대한 증거이자 설명책임을 위한 증거로서의 기록을 ‘고의적으로’ 등록하지 않는 이러한 ‘부패 행위’를 국가기록원과 기록 전문가들은 더 이상 방치·용인하지 않아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공공기록이 낮은 보존기간 적용과 의도적인 은폐와 폐기, 접근에 대한 철저한 통제로 인한 ‘기록 부재’ 결과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너무도 생생하게 학습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기록은 우리의 집단적 기억의 표상이며,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주는 선물이다”라는 언설(Lipchak 2004, 19)은, “공식적인 업무수행 과정에서 생산된 업무 기록들을 공공연하게 등록하지 않는 행위와 그러한 행위를 방조·용인함으로써 형성된 고의적 기록 멸실 행위와 문화는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주는 ‘부끄러운 기록 수준’이자 ‘재앙’이다.”라고 한국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의 기록전문가 공동체는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의 기록생산시스템에 획득된 것만 ‘기록’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기록의 수호자로서 획득되어야 할 기록이 시스템에 미등록되는 토대와 환경을 개혁하고자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전문가적’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 우리 기록관리 제도의 압축 성장의 이면에 그늘져있는 기록전문가 공동체의 협애한 배타성과 미숙한 자기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결정’을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 더 이상 기록혁신이 이룩해놓은 현 제도의 성과와 한계 앞에서 ‘편승’하거나 ‘저항’했던 ‘소극적 주체’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구사회의 아카이브 패러다임이 ‘증거와 기억’을 넘어 ‘정체성과 공동체’를 지향해가는(Terry Cook 2013) 때에, 우리 사회가 기록전문가에게 요청하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려는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 인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국가기록원과 기록 전문가 공동체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관련된 공공기관의 각 위원회 활동 과정의 증거로서의 기록의 현황과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록전문직의 기록 생산과정에서의 통제 문제가 민주주의의 토대와 연결된 매우 근본적이며 중요한 사항임을 국정 운영의 최고 경영층까지 알리는 동시에 이를 전 사회적으로 공유·확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행자부 체제로부터 탈피와 전복적 인식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당면 기록화 문제가 민주주의 가치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사회적 현안 과제임을 환기시킴으로써 기록의 공개와 활용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시민그룹을 망라한 기록공동체로 확대 발전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실천 행위를 통해서만이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의 배타적 특권인 전문성(이소연 2011)이 보장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관련 위원회 활동 과정과 그 결과로서의 공공기록이 지니는 증거적·정보적 가치와 그 의미, 곧 사회적 기억과 표상으로서 기록화되어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해당 기록과 관련지어서 논증하고자 하였다. 기록학계의 연구방법과 대상이 실체로서의 기록과 연계되지 않은 채 관리 방법론이나 기술적 측면에 편중된 ‘기록의 괴리 현상’에 대한 비판과 함께 남겨야 할 기록의 내용과 성격, 현재 생산·관리되고 활용되는 기록 자체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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