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지수 433의 유혹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노심초사 염려했던 조류인플루엔자가(HPAI)가 국내에 발병했다. 비록 오리농장에서 발병했다지만 오리도 어차피 고기를 생산하는 가금류로서 육계를 사육하는 본인으로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느껴진다.
더더구나 닭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이 갑작스러운 농장장의 공백으로 본의 아니게 닭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더욱 피부로 느껴진다. 그동안 농장장이 관리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긴 했지만, 막상 실전에 돌입하려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다행히 농장은 고상식 축사에 최신형 설비가 완비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1. 초보자의 도전
다소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고상식 축사에 기계설비가 잘 설치되어 있으니<표 1> 관리만 잘 하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본인은 정작 기계설비는 물론 전기조차 문외한인 처지에서 당황스러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온통 24시간을 긴장의 연속에서 58,000수의 병아리를 관리하려다 보니 식사를 제대로 하기는 커녕 제시간에 잠자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물며 대외적인 바깥일은 엄두조차 낼 수가 없어 행정업무는 시간제로 출근하는 여직원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 농장 전경
표 1. 농장의 설비현황
또한 입추와 출하는 계열 주체에서 진행한다지만 사육은 농장에서 맡아야 하는 처지이기에 사육성적이 곧 나의 성적이요, 또한 사육수수료와 직결된 나름대로 중요한 입장임을 인식하니 정말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거 농장장이 던져주었던 기억들을 되새기며 하루에도 2회 이상 계사를 둘러보아야 안심이 되었다. 입추 초기에는 약추나 폐사된 병아리를 골라내어야지, 혹시 실내온도가 높거나 낮지는 않은지, 습도는 적정한지, 물이나 사료는 제대로 공급되는지 등등 계사에 들어가지 않을 때는 CC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니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긴장되었다. 혹시라도 기계설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A/S 담당에게 지원을 받긴 하지만 병아리의 생리를 알랴, 기계설비를 숙지하랴 진정 수험생보다도 더한 압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2. 생명의 존귀함
매일 계사를 돌아보면서 죽은 병아리를 보면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그런데도 약추(위약한 병아리)는 과감하게 도태해야 한다는 고참님(?)들의 충고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직접 제거하려니 차마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도태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계사 입구에 조그만 보호실을 만들고 다리를 못 쓰거나 발육 부진으로 키가 작은 병아리들을 그곳에 모아 특별관리를 하였다. 그 결과 상당수는 건강을 회복하고, 발육 부진했던 병아리도 정상화되면 원래의 무리에 포함해주었다.
사육 초기에는 약추를 과감하게 도태하는 것이 병아리 사육의 기본이라고 우겨대는 고참님들의 주장을 믿고 따랐는데 도태시킨 병아리들의 아련한 눈망울이 어른거려 한동안은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태어나지를 말지……”라고 안타까움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무엇이 옳은 것인가!
또한, 털갈이하기 전까지는 온도가 중요하다는 말에 주야로 열풍기의 작동과 계사내 온도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에는 환기관리가 중요하다기에 환기설비에 대한 주의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 모든 설비가 완비하게 갖추어져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다지만 이제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나라의 기후환경이 육계를 사육하는데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조석으로 달라지는 일교차, 맑거나 흐린날의 기온 변화, 특히 비가 오는 날 온·습도의 변화무쌍함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비록 자동으로 설정된 기계설비도 만능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3. 1차 속기작업
계열 주체의 계획에 따라 상당수를 1차에 출하<표2>하고 나머지는 더 크게 키우기로 했다. 듣기 좋으라고 한 것인지 1차 출하성적이 초보자의 사육성적치고는 괜찮다는 것이다. 절대 싫지는 않았고, 또한 진정성으로 닭을 대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아침, 저녁으로 계사를 들랑거리며 닭들과 눈을 맞추고 “불편한 것은 없니?”, “어떻게 해주면 더 좋겠니?”라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정성으로 살핀 것밖에 없다.
표 2. 1차 출하성적
오전에 계사를 돌며 기계설비와 환기, 온도, 습도 등을 살피고, 물과 사료는 컴퓨터에 기록된 결과를 보면서 매일 변화되는 흐름을 관찰하였다. 다만 계분은 고상식 축사이기에 오후 시간을 잡아 병아리 때에는 2~3일에 1회, 10일령부터 20일령까지는 1일 1회, 20일령 이후부터는 1일 2회씩 스크래파를 가동해 계분을 치워주었다.
그 결과 다른 농장들은 냄새, 유해가스, 파리 등으로 문제가 된다는데 본인이 닭을 키우는 동안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 실제 우리 농장에서 닭을 키울 때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우리가 닭을 키우는 것인지, 아닌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닭을 출하할 때에야 알 정도로 청정도를 계사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유지되고 있다.
4. 2차 출하작업
드디어 최종 출하날짜가 잡혔다. 설레는 가슴으로 출하작업반에게 따스한 차를 한잔씩 권하며 출하작업 중에 닭을 너무 거칠게 몰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랜 작업을 마치고 출하성적을 집계해보니 예상대로 육성률과 평균 체중은 괜찮은 것같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날아온 사육정산서는 본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표 3. 2차 출하성적
▲ 고상식 계사에서 사육된 닭
특히 생산지수가 433이 나왔다는 것에 본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 이것이 본인의 사육성적이라니 육계의 초보자로서 믿어지지 않았다. 또한, 그동안 주야로 기도하며 닭들에게 건강하게, 잘 커주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특히 출하성적도 성적이지만 1, 2차 생계 품질검사에서 비규격, 배꼽, 무릎, 홍계가 한 마리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고상식 축사의 특징이 밝혀진 것 같아 안심되었다. 파손과 비품은 상차, 운반, 하차과정에 발생한 것이라니 계열 주체에서도 불만이 없다.
표 4. 1, 2차 생계 품질검사
그동안 고상식 계사에 대하여 피상적으로만 알던 것이 이번 사육을 계기로 확실히 다름을 인식하게 되었다. 깔짚을 전혀 깔지 않으면서 항생제조차 투약하지 않는 우리의 프로그램이 진정 정착되어가는 것에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관계자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5. 생산지수 433의 유혹
생산지수 433! 막상 본인은 특별히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이렇듯 좋은 성적이라고 추켜세우니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또한 자신감도 생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최선을 다하는 자가 이러한 칭찬과 기쁨을 누리는 것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인가 보다.
실제 고상식 축사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대형 닭(큰 닭)을 정착시켜 맛있고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생산원가가 낮은 닭고기를 공급하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고, 우리가 도전해야할 가치 있는 일이다. 자체적으로 대형 닭을 생산하는 것이 수입 닭고기를 차단하는 길이요, 사육 농가의 소득증대는 물론 관련 업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애국사업이다.
▲ 고상식 계사의 사육환경
아무튼 또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생산지수 433이 한국에서는 대단히 훌륭한 성적이라지만 아직도 우리의 성적은 결코 선진외국보다 저조한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산지수 433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성적을 위하여 도전하고 싶다. 이러한 달콤한 유혹을 누구인들 거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