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knowledgement
Supported by : 한국학중앙연구원
This paper is a study of the beginning pattern of simseul argument in the 19th century, based on the letter written by Hanju(1818~1886) and Mangu(1837~ 1902). In the text, I analyzed the theoretical differences between Mangu and Hanju that inherited from the study of Jungjae, is to expand the scope of the dispute between the Hanju and Mangu which to provide the beginning pattern of simseul argument. By revealing the theoretical difference between Hanju and Mangu, in the opposite direction, the content of the simseul argument between the Hanju and Jungjae's developed could be clearer. In the Hanjujip, there are nine letters to Mangu, there are also three letters to the Mangujip. These letters show a certain difference in the learning of the two people. So the text focuses on the content of these letters and reveals their theoretical differences, eventually it is confirmed that their theoretical differences lead to the beginning pattern of simseul argument. In particular, interpretation of LiKi leads to interpretation of Sim. Sim interpretation centers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Zhuxi's 'Ki of Jungsang' meaning, while Hanju emphasizes to see as Lee, Mangu emphasizes that as the sum of Liki. 'Ki of Jungsang' is an interpretation of Zhuxi' Sim, and in the end, interpretation of 'Ki of Jungsang' means interpretation of Sim. Thus, while Hanju tried to see of Li, Mangu wanted to see at the sum of LiKi. This is simseul argument between Hanju and Man-gu, which was unfolded in the extension of the 19th century's simseul argument of erection. Through their argument, they are going to use it as an opportunity to review details of how the debate started in the Toegye school.
본 논문은 한주(이진상, 1818~1886)과 만구(이종기, 1837~1902)의 서신내용을 중심으로 19세기 심설논쟁의 발단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정재(유치명)의 학문을 계승한 만구와 한주의 이론적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심설논쟁의 발단을 제공한 한주와 정재의 논변에서 한주와 만구로 그 범위를 확장시켜 전개하고자 한다. 한주와 만구의 이론적 차이를 밝힘으로써 역으로 한주와 정재가 전개한 심설논쟁의 내용들이 좀 더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한주집"에는 만구에게 보낸 9통의 서신이 실려 있으며, "만구집"에도 한주에게 보낸 3통의 서신이 실려 있다. 이들 서신에는 두 사람의 학문상에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이들의 서신내용을 중심으로 그 이론적 차이를 밝힘으로써 결국 이들의 이론적 차이가 심설논쟁의 하나의 발단양상으로 이어짐을 확인한다. 특히 이기에 대한 해석은 그대로 심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심에 대한 해석은 주자의 '기의 정상'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한주가 '기의 정상'을 리로 볼 것을 강조한 반면, 만구는 '기의 정상'을 이기의 합으로 볼 것을 강조한다. '기의 정상'이란 주자의 심에 대한 해석이므로 결국 '기의 정상'에 대한 해석은 심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주가 심을 리로 보려고 한 반면 만구는 심을 이기의 합으로 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심설논쟁의 발단을 장식한 한주와 정재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한주와 만구의 심설논쟁이다. 이들의 논변을 통해 퇴계학파에서 전개된 심설논쟁의 발단양상에 관한 세부적 내용을 재차 확인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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