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칼럼 - 양계업을 농단하는 HPAI

  • Published : 2017.02.01

Abstract

Keywords

지난 해는 사회상이 반영된 “농단(壟斷)”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한자의 의미를 풀어보면 壟은 언덕이고, 斷 은 깎아 세운 것을 말한다. 이의 유래는 맹자 공손추(公孫丑)에 나오며, 고대 중국의 한 상인이 높은 언덕에 올라 시장에 어떤 물건이 많고 적은가를 조사한 후 부족한 물건을 미리 사모아 비싸게 팔아 많은 이득을 챙겼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즉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 교훈 삼아 현재 HPAI와 관련하여, 혹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방역 농단에 해당되는 일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HPAI는 철새를 타고 이동하며 농장에 있는 닭과 오리 등에 침입하여 황폐화시킨다. 무생물에 가까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떤 농장이고 구분할 것 없이 참담해진다. 어떤 면에서는 중동국가에서 자행되는 자폭(자살폭탄) 테러와 닮은꼴을 하고 있어 섬뜩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닭과 오리가 매몰될 때 이들 바이러스(H5N6, H5 N8)도 함께 땅속에 묻혀버리는 모습이 그렇다. 어쨌든 HPAI가 발생하면 가금산업은 총채적인 위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 십만 수의 계사가 일시에 텅 비는가 하면 살처분 매몰, 입식 통제 등 후속 조치로 인해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공포에 가깝다. 그러므로 피해는 살처분된 닭과 오리 등의 가축에 국한되지 않는다. 심리 위축에 따른 소비 감소, 감염 우려에 따른 불안감 고조 등으로 사회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다.

이번의 경우에는 예전과는 달리 산란계 쪽에 피해가 집중되었다. 반드시 원인을 규명하여 차후 대책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매몰된 산란계가 2천만 수를 넘어서자 계란 품귀현상이 빚어져 정부는 4일 자로 긴급히 계란 6억 개(신선란 5억 8천만 개 포함)에 대해 무관세로 수입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계란 가격이 상승하고 물량이 줄어 마트는 물론 판매점마다 계란을 확보하느라 곤란을 겪은 후유증이다. 이처럼 질병은 때에 따라 소비위축 또는 공급 부족을 심화시켜 끝내 산업을 위축시킨다. 양계업계는 가급적 계란 수입이 최소화되도록 정상화에 매진해야 한다.

질병 위기(危機)는 양계업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아쉽게도 HPAI는 철새를 매개체로 하여 지구촌 어디든 누비고 다니고 있어 차단방역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손쓸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심지어 철새 도래지에서 바이러스를 서로 주고받으며 국경을 넘나들며 가금산업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니 속수무책 당하기 일쑤이다. 독성이 워낙 강해 가금을 수 시간 내에 죽음에 이르게 하여 확산을 막고자 살 처분하는 규정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자기 농장이 아닌 이웃 때문에 닭과 오리를 매몰시켜야 하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일 년 농사가 하루아침에 망가지는 꼴과 같다. HPAI가 발생하면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생겨난다. 예방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하니 철새가 원망스럽지만 하늘을 날아 수천 km를 이동하는 철새를 어찌하겠는가?

그렇다고 무 대책이 상책인 듯 손 놓고 하늘만 바라볼 수만도 없다. 최선의 방법은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도록 힘쓰는 일이다. 현재 활용되는 방역수칙이 잘 정비되어 있더라도 혹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주저 없이 개선해야 한다. 방역규정을 잘 준수하는 것이 차단방역의 첫 번째 관문이므로 현장에서 적용이 수월해야 한다. 방역이 어려운 것은 농가 별 자율방역이 병행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방역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생 닭 유통, 산물 출하, 사료공급, 산란 성계 출하, 중추 이동, 축분 반출 등 수많은 요인들을 농가에서 각자 다루어지고 있어 효과를 높이려면 총체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이미 포천의 한 마을에서 포유류인 고양이가 야생조류를 먹고 폐사하여 조사한 바 조류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와 동일한 바이러스가 분리된 점을 미루어 보면 가금농장을 위주한 차단방역을 넘어 전국을 염두에 둔 방역대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사불란한 지휘통제 하에 전 국민이 동참하는 방역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발생 시마다 분분한 의견에 뒤엉켜 초동 방역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HPAI는 가금업계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덧 국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등장하여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국민들이 발생 초부터 종료 시까지 모든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격년을 주기로 발생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언론보도는 여전히 초창기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매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매몰 장면을 반복하여 방영한다거나 입증되지도 않은 교차 감염 가능성을 제기하여 2차, 3차 피해를 몰고 와 고스란히 생산자들의 몫이 되게 한다.

유통은 계란이 부족하여 아우성이고, 농장은 농장대로 이동통제 때문에 출하하지 못해 계란을 쌓느라 아우성이다. 서로 처해진 입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게 한다. 이런 농가들의 심정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진다면 상당 부분의 필요 이상의 보도는 줄어들도록 분위기 조성도 해야 한다. 알 권리 못지않게 생존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예를 보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양계업을 농단하고 있는 HPAI는 국가에서 지정한 재난 질병이므로 방역과 관련된 각자의 역할을 순기능으로 만들어 방역 농단의 개연성을 차단시켜 HPAI가 조기에 종식되도록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