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Gangwon Provincial Office, which is Historical Landmark No. 439, existed from 1395 to 1895. It played a significant role of provincial administration. Gangwon Provincial Office was rebuilt in the $17^{th}$ Century when governors' additional job system began. It had 50 buildings and 670 section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Korean War, most of the buildings were demolished, and in 2005 partially restored. Currently, after the old Wonju City Post Office was demolished, the back garden facilities of the Provincial Office are being restored. The back garden of Gangwon Provincial Office was completely destroyed when the Japanese army base at Wonju made it a playing fiel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fter demolishing the old post office in the back garden, excavation and investigation were made. A pond and building relics were found, but they were too damaged to be restored. However, this thesis found that there were Bongraekak, Yeongjusa(Kwanpungkak), Cheyako, Joojeong Rainbow Bridge after studying literature and paintings. There were also Hwansunjeong and Bangjangdae outside the pond. The names of the back garden and how they were made are related to hsien. In the pond, they made 3 islands signifying Mt. Samshin(immortal world) in the legend and built pavilions on that. The pavilions of the back garden were named Bongrae, Yeongju, and Bangjang, and the titles of other pavilions also had the names of hsien. The back garden of Gangwon Provincial Office was made like an immortal world, befitting its role of governing Mt. Bongrae(Mt. Geumgang.) The governors of Gangwon Province often went to the back garden and enjoyed becoming a hsien. They regarded themselves as the owners of Bongrae, i.e., the immortal world. Gangwon Provincial Office has a unique historical significance because it implemented an immortal world, making use of the characteristic of Gangwon Province.
사적 제439호인 강원감영은 1395년 원주에 처음 설치된 이래 1895년 23부제의 실시로 폐지되기까지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 강원감영은 관찰사의 겸목제(兼牧制) 시행으로 17세기 이후 본격적 영건이 시작되어 폐지 직전까지 약 50동 670칸 규모로 존속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이 훼철되어 2005년 시설 일부를 수리 복원하였고, 현재는 (구)원주우체국 철거 후 감영 후원(後園)에 해당되는 시설을 복원 중에 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원주수비대 운동장이 조성되면서 전부 없어졌다. 후원 조성을 위한 발굴조사 결과 연못 일부와 건물지가 확인되긴 했으나, 그 전모를 밝히기에는 유구의 교란과 훼손이 심하였다. 그러나 문헌과 그림 등을 통해 후원 전각들을 고찰해본 결과 연못 안에는 봉래각(蓬萊閣) 영주사(瀛洲?:관풍각) 채약오(採藥塢) 조오정(釣鰲亭) 홍교가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못 밖에는 환선정(喚仙亭)과 방장대(方丈臺)가 건립되어 있었다. 후원 전각의 조성경위와 명칭을 살펴보면 모두 신선과 관련되어 있다. 연못 안에는 전설의 신선세계인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하는 삼도(三島)를 만들고, 그 위에 전각을 지었다. 봉래각을 시작으로 후원에 건립되는 전각들에 영주 방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전각들에도 선가(仙家)의 이름을 부여했다. 후원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전각들에도 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봉래산'인 금강산을 관할했던 강원감영 후원에 이와 걸맞는 신선세계를 조영하였던 것이다. 강원도관찰사들은 여가에 수시로 후원에 나가 신선이 되어 탈속하는 풍류를 즐겼고, '봉래주인', 즉 신선세계의 주인이라 자처하였다. 강원감영은 금강산이 소재해 있던 강원도의 특징이 잘 반영된 신선세계가 구현되어 있었다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