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국 박사의 회고록 ⑦ - 양계박람회(1)

  • Published : 2016.07.01

Abstract

본고는 양계와 한평생을 함께 한 오봉국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그 동안의 인생여정을 정리하여 출간한 '축산의 비전을 심으며 살아온 나의 인생여정' 자서전 내용 중 '양계와 함께 걸어온 나의 회고' 내용을 발췌, 게재한 것이다. 오봉국 교수는 1925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학교 축산과에서 농학석사과정을 거친 후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석, 박사과정을 마친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양성은 물론 양계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1969년에는 (사)한국가금협회장(대한양계협회 전신)을 역임하고 현재까지 대한양계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바 있으며, 현대가금학 등 16편의 주옥같은 저서를 남겼다.

Keywords

11. 양계박람회

1991년 1월 당시 양계협회장으로 계시던 신흥종 회장과 부회장으로 계시던 이재식 사장 두 분이 나에게 양계협회 상임고문으로 와서 협회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1991년 2월은 나에게는 40년간 봉직하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퇴임식이 있는 달이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개인사업체에서 기술고문으로 와 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생각 끝에 (사)대한양계협회 상임고문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양계협회는 협회창립에서부터 지금까지 직·간접으로 깊은 인연을 맺고 지내온 처지이며 내가 한 평생을 양계와 관련 있는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해온 입장에서 앞으로 남은여생을 양계산업분야에서 봉사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일시적으로 사기업체 고문으로 가면 대우도 받고 높은 월급을 받을지 몰라도 자기직분에 대한 보람을 찾고 사회생활에서 만족을 얻기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양계협회 상임고문으로 취임하면서 내가 할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협회는 모든 양계인들의 구심체가 되어야 하고 양계산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앞으로 양계산업이 지향해야할 방향제시를 해주는 것이 협회의 사명이라면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협회와 양계인들이 하나 되는 어떤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계기가 마련된다면 협회는 회원들의 구심체가 되고 협회와 회원은 서로 협조하는 무드가 조성될 것으로 생각되어 양계박람회 개최를 구상하게 되었다. 1990년에 현대양계 잡지사고 김중곤 사장이 4월 부활절을 전후해서 지금 성동구 장안동 소재 어린이대공원에서「닭의날」행사를 가진 바 있으며 이 행사 기간 중 계란소비 캠페인과 닭싸움 등 오락프로와 몇 가지 전시행사를 개최한 바 있었으나 조직적이며 규모가 있는 박람회와 같은 행사는 아니었다. 그 동안 고 김중곤 사장께서는 일개 양계잡지사가 양계박람회와 같은 큰 행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니 양계협회에서 이러한 행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제시와 권유를 하였으나 양계협회에서는 행사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예산과 행사계획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선뜻 실행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양계박람회에 대한 양계협회의 입장은 박람회 행사에 대하여는 찬동하나 양계협회가 감당하기에는 예산규모나 사업내용의 다양성 등 이와 같은 행사를 시행해본 경험도 없으니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협회사업으로 해보자고 적극 찬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박람회 사업은 박람회 개최를 주장하고 추진해 보겠다는 사람이 책임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람회사업은 양계협회를 주최기관으로 하되 주관기관은 한국양계박람회 추진위원회를 협회 내에 별도기구로 설치하고 모든 책임은 추진위원장인 오봉국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박람회에 대한 예산, 사업의 구성, 조직, 운영 등 모든 사업이 1991년 4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예산 총규모는 약 3억 원으로 하고 정부보조와 찬조금으로 약 1억원, 자체부담액 2억 원으로 책정하고 사업을 진행하되 박람회사업에서 흑자가 되던 적자가 되던 간에 모든 금전적 책임은 오봉국 개인이 책임지는 것으로 하고 우선 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종자돈을 협회 직원 퇴직금으로 적립한 돈을 빌려 쓰기로 하였다.

박람회 전임요원으로는 양계협회 창설당시부터 협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임병규 선생(당시: 월간양계 편집위원장)을 사무국장으로 모시고, 정회완 씨(전 식육처리협회 전무)를 기획부장으로, 양계협회에서는 박람회 운영실장으로 이규성 전무를, 총무부장에는 남두희 협회홍보실장을 영입하여 업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