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칼럼 - 줄탁동시와 여조삭비(如鳥數飛)

  • 정석찬 (농림축산검역본부 조류질병과)
  • Published : 2015.05.01

Abstract

Keywords

병아리를 좋아한다

사회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지도 30년이다.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누구나처럼 많은 고난과 힘든 일을 끈기와 노력으로 극복하여 왔던 것 같다. 그동안 세균질병 연구 분야에서만 근무하다 2015년 1월 초에 조류질병과로 자리를 옮겼다. 그야말로 나에게 이 분야는 햇병아리다. 도전을 위해 무언가 새로운 마음가짐과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래서 새와 관련된 한자성어 중에서 ‘줄탁동시( 啄同時)’, ‘여조삭비(如鳥數飛)’를 과훈으로 선정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햇병아리 시절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 속에서 나오기 위해 새끼와 어미닭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쪼아야한다는 뜻으로 함께 협력해야 일이 이루어지며, ‘여조삭비’는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개 짓 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의미이다. 비록 햇병아리지만 내 나이로 보아서 이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되지 않을까?

지난 2014년 1월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8 AI)는 정부와 방역기관, 관련 업체 및 농가에서 확산방지와 종식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있다. 이로 인해 양계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지쳐있다. 휴일도 없이 AI 검사와 방역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우리 직원들 모습도 안쓰럽기 짝이 없다. 지치고 힘들 때 ‘줄탁동시’와‘여조삭비’를 생각하면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인간의 건강은 동물 건강과 환경 보존이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는 “One Health”개념으로 추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AI 질병은 더 이상 양계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보건 측면에서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필수과제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양계산업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비용을 낮추는 데에 한계가 있고, FTA체결 등 국내·외 환경변화에 따라 기복이 심한 것도 우리의 현실임에 틀림이 없다. 양계산업에 처한 환경 극복과 더불어 AI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서 축산물 소비자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양계산업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AI 바이러스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이다. 이 바이러스조차도 가만히 있지 않고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도 환경에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AI와의 싸움에서 이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철새는 내년에도 다시 온다. 종식한 후에도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위생과 방역을 고려하지 않은 사육형태는 매년 도래하는 겨울철새의 AI 바이러스로부터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근본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과학적 위험분석에 근거하여 질병방역을 고려한 양계산업의 구조적인 개선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내 농가는 내가 지킨다”는 농가의 철저한 방역의식 없이 AI 종식을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AI 바이러스가 농장내로 전염되는 가장 큰 요인은 바이러스에 오염된 분변이다. 이러한 분변은 차량이나 사람의 신발과 손을 통해서 가금류에 전염된다. AI를 막기 위한 농장의 골기퍼는 농장주이다. 양계농가에서 AI 예방을 위해 지켜야할 핵심은 농장 차단방역이다. 모든 일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AI 종식을 위해 선제적인 방역정책도 중요하지만 농가의 적극적인 협력과 차단방역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모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달래고, “줄탁동시, 여조삭비”의 다짐으로 이제 우리의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양계를 처음 시작하던 햇병아리 시절로 되돌아가면 누구나 저절로 힘이 솟구친다. 병아리조차도 서로 먹이를 나눠먹고 도와주는 신의가 있다. 비록 질병 청정화를 달성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할 지라도 농가에서 함께 협력하고 열심히 날개짓 한다면 건강한 양계산업은 미래의 행복한 일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