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국내에서 웰빙(Well-being)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웰빙은 단순히 의식주뿐만 아니라 온갖 시시콜콜한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신드롬으로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이렇게 사람의 웰빙에 대해 열광하던 그 즈음 필자는 1970년대에 영국에서 발간된 축산학 서적을 보던 중 ‘가축의 웰빙’을 언급한 글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동물복지의 원조인 영국이라지만 우리가 사람의 웰빙을 떠들기 훨씬 이전에 사람이 아닌 가축의 웰빙을 논하고 있다니... 사실 ‘동물복지(Animal welfare)’는 2000년대 초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낯선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축산 분야에서 기능성, 친환경 등 이슈의 대를 이어 향후 관련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제주에서 개최되었던 제10회 아시아·태평양 가금학회(APPC 2014)에서는 아태지역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가금학자들이 모여 다양한 분야에서 최신 연구동향과 정보를 공유하였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특별히 ‘가금의 복지 및 생산(Poultry Welfare and Production)’심포지엄을 주관하여 국내외석학과 전문가를 모시고 가금 복지 분야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를 가졌다. 본고에서는 해외 초청연자들의 발표내용을 중심으로 세계 가금복지 정책과 최근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럽의 가금 복지 정책과 연구 동향
세계동물보호협회 수석자문위원 마이클 애플비 박사
동물의 관리와 복지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축산을 목표로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개념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1964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Ruth Harrison의 「Animal machines」은 농장동물 복지를 사회적 이슈로 끌어내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영국정부에서는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를 구성하고 1965년 ‘동물의 5가지 자유’를 담은「Brambell Report」를 발간하였는데 이는 유럽 동물복지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Ruth Harrison과 그의 저서「Animal machines」
▲ 강연중인 세계동물보호협회 마이클 애플비 박사(세계동물보호협회 수석자문위원, 영국)
1981년 덴마크에서는 세계가금학회(WPSA)의 지원 하에 제1회 유럽 가금복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으며 이후 4년마다 유럽 각국을 돌며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정의한 동물복지 기준에 따르면 동물은 건강하고 편안하며, 적절한 영양공급을 받고, 안전하고, 본능적 행동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통증, 공포, 스트레스 등 불편한 상태로 고통 받지 않아야 한다. 1976년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에서는 농장동물보호(Protection of Animals kept for Farming Purposes) 규정을 제정하고 동물이 행동학적, 생리적으로 필요한 관리와 적정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며, 불필요한 고통을 수반하는 움직임의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하였다. 이후 유럽연합(European Union)에서는 1985년‘계란의 라벨링을 위한 교역기준(Trading Standards for labelling eggs)’, 1986년‘산란계에 대한 지침(Directive on laying hens)’, 1997년 ‘암스테르담 조약(Treaty of Amsterdam)’, 2007년 ‘육계에 대한 지침(Directive on broilers)’등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이들 중 ‘산란계에 대한 지침(1999)’은 2012년부터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 금지 규정을 담고 있다. 또한 ‘육계에 대한 지침(2007)’에서는 육계의 복지를 고려한 사육밀도, 조명, 깔짚, 사료, 환기 등의 기준을 과학적 연구에 근거하여 제시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2006년에 나온 ‘유럽연합 동물복지 액션플랜(EU Animal Welfare Action Plan)’은 개도국과의 무역에 있어 동물복지 생산 시스템을 장려토록 하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무역자유화가 EU의 동물복지 개선 노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영국에서는 가금의 복지를 위해 80년대부터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로슬린 연구소의 Gentle박사는 닭의 통각수용기(nociceptor)에 대한 조사와 닭의 통증을 최소화하는 여러 가지 연구를 수행하였다.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는 EU 동물복지 규정에 따라 병아리의 부리자르기(beak trimming)가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대체할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일부 생산 체계(예. Freedom Food Eggs)에서 전통적인 칼날(hot blade) 방식이 아닌 근적외선(infra-red)을 이용한 부리자리기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EU에서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이 금지됨에 따라 여러 형태의 사육시스템(예. Enriched, Modified, Furnished, Colony)이 연구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사육시스템은 산란계의 행동학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Cooper와 Appleby는 산란상이 위치한 방과 사료통, 급수기 및 횃대가 있는 방 사이에 전자식 감지장치가 있는 문을 달아 닭의 이동과 행동 습성을 관찰함으로써 이러한 시스템의 설계를 위한 기초 데이터를 제시하였다. 현재 영국의 가금복지 관련 연구는 산란계에서 부리자르기의 대체방법, 골절 감소, 수명 연장 등, 그리고 육계에서는 절뚝거림, 흉부수종, 발바닥피부염, 사이토카인을 이용한 스트레스 연구 등이 수행되고 있다. 또한 여러 농장들과의 연계를 기반으로 동물복지를 고려한 ‘정밀축산 (Precision livestock farming)’연구들이 추진 중이다.
오세아니아 지역 가금복지 정책과 연구 동향
뉴질랜드 1차산업부 축산국 동물복지과장 케이트 리틴 박사
호주는 국가동물복지전략(Australian Animal Welfare Strategy)에 의거, 농업부에서 제시한 ‘동물복지 규정 및 지침 모델(Model code for the welfare of animals)’을 기반으로 하여 1980년대부터 각 자치주별로 동물보호 및 복지에 대한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따르고 있다. 이중 가금류에 대한 규정에 따르면, 2001년 이전에 만들어진 산란계 케이지는 2021년까지 1수당 550㎠로 면적을 늘려야 하며 2001년 이후 제작된 케이지는 수당 550㎠를 제공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1차산업부(Ministry for Primary Industries) 산하에 국가동물복지자문위원회(NAWAC)를 두어 농장동물 복지 관련 규정의 제정과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기적으로 내놓도록 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1999년 제정된 동물복지법(Animal Welfare Act) 중 ‘산란계 복지 규정(Code of welfare for layer hens)’에 따라 2022년부터 케이지 사육을 금지할 예정이다. 케이지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에는 횃대, 산란상, 바닥긁기 공간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산란계의 평사(Barn) 사육 시스템에서 사육밀도는 최대 7수/㎡이며 뉴질랜드 동물학대방지협회(RNZSPCA)에서는 계군의 사이즈를 동당 5천수로 제한하고 있다. 방사(Free range) 사육시 외부 사육밀도는 뉴질랜드는 EU와 같은 2,500수/헥타르이며 호주는 이보다 적은 1,500수로 규정하고 있으며, 실내에서는 9수/㎡로 역시 EU 수준과 동일하다. 뉴질랜드의 동물복지법에는 육계의 복지 규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사육밀도를 비롯해 깔짚관리와 환기 등의 사양관리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최대 38kg/㎡로 사육밀도를 제한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는 환기시설에 따라 이보다 약간 높은 40kg/㎡까지 가능하다. 최근 호주의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업체에서는 케이지 생산 달걀의 판매나 사용을 전면 혹은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임을 발표하면서 정부 정책보다 한발 앞서 나아가고 있다.
▲ 뉴질랜드 1차산업부 동물복지과장 케이트 리틴 박사
호주와 뉴질랜드의 가금복지 연구는 유럽의 선행 연구결과들을 기반으로 하여 오래전부터 활발히 추진되어 왔다. 깃털쪼기와 카니발리즘, 둥지 및 산란 행동, 육계의 절뚝거림, 기타 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 그리고 특히 방사형 사육과 Colony system이나 Furnished cage 등 대체 사육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가금복지 정책 및 연구동향
일본 토호쿠대학교 슈수케 사토 교수
일본은 동물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나 국민소득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농장동물의 복지에 대해서는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미진한 편이었다. 2005년에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요청에 따라 농장동물 복지에 관한 연구회가 조직되면서 가이드라인을 위한 원칙을 설정하고 이후 여러차례의 회의를 통해 2009~2011년에 걸쳐서 농장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일본의 경우 아직 93%의 산란계가 케이지에서 사육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소와 돼지도 매우 제한된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동물복지 원칙에 따라 각 축종별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이를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홍보하기 위한 브로슈어를 제작하여 농장에 배포한 바 있다. 일본의 가금복지 연구는 관행적인 케이지를 대체할 새로운 사육시스템 개발로부터 사료원료 및 사양관리가 닭의 건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Hosokawa와 Saito(2006)는 토종닭 소규모 사육시 이동형 계사를 개발하여 기존 계사보다 사료효율이 좋고 닭들의 깃털쪼기나 싸움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소규모 사육을 위한 이동식 계사(Hosokawa & Saito)
Sato 교수 연구팀은 육계사에 횃대와 건초더미를 설치했을 때 육계의 행동과 스트레스, 발바닥 피부염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닭들은 횃대와 건초더미가 있을 때 서있거나 움직이는 시간이 앉아있는 시간보다 유의적으로 더 증가하였다. 또한 성별에 따라 이에 반응하는 양상도 다르게 나타났는데, 수탉은 암탉보다 건초를 쪼는 시간이 더 길었으며 횃대에 올라가는 시간은 암탉들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트레스 반응과 발바닥 피부염도 횃대와 건초더미가 설치된 계사에서 유의적으로 감소하였다. 도정하지 않은 벼 낟알(unhulled rice)을 사료에 첨가 급여함으로써 닭의 쪼는 습성을 충족시켜 스트레스를 낮추고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으며, 질소 이용률을 향상시켜 깔짚상태 개선과 발바닥 피부염, 흉부수종 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후속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맺는 말
예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동물복지가 대중들의 이슈로까지 부각된 것은 사회적 변화때문이다. 루스 해리슨의 책이 발간되었을 때 일어난 큰 반향도 60년대 영국사회가 급속히 도시화되면서 애완동물 사육이 증가하고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동물도 감정을 가지는 존재로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Waytz 등, 2010). 현대사회에서는 대중들의 생활수준과 의식수준이 향상되면서 점차 친환경·고품질·안전 식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매스미디어,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예전엔 미처 접하기 힘들었던 정보에 대한 신속한 공유가 가능해졌다. 소비자들은 이제 우리가 먹는 축산물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되었고 비인도적인 생산방식에 거부감을 표출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니즈(Needs)에 맞춰나갈 수밖에 없는 산업은 그 요구를 수용하고 변화해야 하는 시대이며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점차 확산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동물복지가 과연 동물의 입장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아직 아무도 할 수 없다. 다만 대중들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와 노력은 응당 앞으로의 축산이 나가야할 방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는 동물복지가 크게 이슈화 된 데에는 동물의 권리(Animal rights)를 주장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가금학 교수인 마이클 데어 박사가 주창했던 바와 같이 이제는 축산인들이 한발 앞서 스스로 변화하고 떳떳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키우는 가축을 주인보다 더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No one cares more about their animals than farmers)’라는 그의 말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