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ing and Developing Rural Neo-Confucian Literati after Gweon, Sangha's Move to Hwang-gang

권상하(權尙夏)의 황강(黃江) 이주를 계기로 한 재지사족(在地士族)의 형성과 발전

  • Received : 2012.10.06
  • Accepted : 2012.11.03
  • Published : 2012.11.30

Abstract

Rural Neo-Confucian Literati were major governing elite in Joseon Dynasty. They were small and medium-sized landowners all over the country and elite having Confucian knowledge. They formed villages of the same family name and exerted their influence on the community showing off their successful ancestors. Therefore, there were lots of examples that they took the actual leadership in local communities. In this sense, the Hwacheon-gun pa family line of the Andong Kweon clan were the representative rural neo-Confucian literati of Hwang-gang and Shindong areas in Jecheon. This group was formed after Kweon Sangha and his brothers' movement in 1675. Kweon was the best pupil of Song Siyeol, a prominent scholar and man of power. Although facing away the government examination, he was respected as sallim, rustic literati, on account of his teaching and writing activities and later called to High State Councillor. After his death, memorial halls and facilities to worship him, including Hwang-gang Sowon Academy, were built in the place he taught students. These facilities contributed to his descendants' acquiring his life values. They also made a contribution to the settlement of reject-heterodoxy sentiments based on their loyalty to the Myeong Dynasty in the area. Kweon Seop, Kweon Sangha's nephew,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Hwacheon-gun pa family line's growing as rural neo-Confucian literati in Jecheon area. He built memorial halls to enshrine Kweon Sangha and made rules to develop his family line. In addition, he extended their living space over Hwang-gang area and each place had the shrine to hold a memorial service for their ancestors. As a result, Kweon Sangha and Kweon Seop's family wielded power in Jecheon for hundreds years as the same family name group. Rural neo-Confucian literati didn't produce more elite government officials than the groups in the capital, but their growth enabled cultural development of the local community and the Joseon Dynasty.

조선 시대의 재지사족은 핵심적인 지배집단이었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분포한 중소 규모의 지주였으며, 유교적 소양을 보유한 지식인 집단이었다. 17세기 이후로는 곳곳에 동성마을을 형성하고, 현조(顯祖)를 내세우면서 지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지역에서의 실질적 주도권을 재지사족이 행사하는 예가 많았다. 이런 면에서 제천 지역의 황강(黃江) 신동(新洞)에 정착한 안동 권씨 화천군파(花川君派) 문중은 대표적인 재지사족이었다. 이 집단은 1675년에 이뤄진 권상하 형제가 이주하면서 형성되었다. 노론 정파의 지도자였던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는 과거를 외면하고 황강에서 강학에 힘썼으며, 결국은 산림(山林)으로 초빙되어 좌의정으로 제수되기까지 하였다. 권상하의 사후에 그가 가르치던 곳에는 황강서원을 비롯한 기념 시설과 제사 공간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시설들은 권상하가 중시했던 삶의 가치를 후손들이 받아들이는데 이바지했고, 지역 사회에 숭명의리(崇明義理)에 토대를 둔 척사적(斥邪的)인 정서가 자리 잡도록 하는데 이바지했다. 화천군파가 제천 지역에서 재지사족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또 다른 인물은 권상하의 조카인 권섭(權燮)이었다. 그는 권상하를 위한 여러 기념시설을 건립하고, 문중의 발전을 위하여 여러 규칙을 제정하였다. 아울러 황강을 넘어서 제천의 신동에 새로운 거주공간을 확보하고, 청풍 단양 문경 등지에 별서(別墅)를 장만하며 거주공간을 넓혀 나갔다. 각각의 공간에는 조상을 모시기 위한 제사 시설도 설치했다. 그 결과 권상하와 권섭의 자손들은 제천 일대에서 대표적인 성씨 집단으로 수백 년간 위세를 누릴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은 서울에 남았던 이들에 비하여 많은 엘리트 관료를 배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지사족의 성장은 지역 사회의 문화적 성장, 나아가 전 조선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