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of context & meaning of Jeongjeonje by Yi Hang-no

화서(華西) 이항노(李恒老)의 정전제(井田制) 주장과 그 함의(含意)

  • 박성순 (단국대학교 교양기초교육원)
  • Received : 2012.08.23
  • Accepted : 2012.09.21
  • Published : 2012.09.30

Abstract

Until now, I guess, many scholars misunderstood the characteristic of economic awareness of Yi Hang-no as if it was a modern nationalism or radicalism against Japanese anti-Korean insistences. But I think these opinions are out of historical attitude. So to understand Yi's economic awareness correctly, I think, We should focus on the traditional Confucian thought system at that time. As one method to reach the goal, I focused on the word, Jeong-jeon-je: Oriental equal land system. Yi Hang-no put the importance on Jeong-jeon-je to make utopia he dreamed of. Yi thought Jeong-jeon-je is the basis of equal society and strong state. Also Yi thought a moral society would be achieved by Jeong-jeon-je because the equal land system, so called Jeong-jeon-je provide peasants with equal lands, so it makes peasants stable in economic situation. Especially, Yi Hang-no put importance on that Jeong-jeon-je would raise moral consciousness of people because equal economic condition makes people wealthy, so people would be good men naturally. Yi Hang-no explain it in basis of Insim-Dosim-seol: a theory of two minds bad & good to be. Yi Hang-no thought equal economic condition is the basis of making people moral being. He thought Jeong-jeon-je was a basis of the condition. Reversely, Yi thought Western insists of trade was the beginning of making people fight for individual benefit, so it produces devil selfishness out of human mind. That was the reason that Yi Hang-no opposed the trade with Western Powers. Eventually Yi's assertion of embargo came out of his Insim-Dosim-seol. In this context, Yi's Jeong-jeon-je was insisted as a method to raise human moral consciousness.

종래에 이항로의 통상불가론(通商不可論)이 서양의 경제적 도전에 직면하여 자국 산업 보호라는 경제적 자존을 그 역사적 임무로 하여 제기된 근대 민족주의적 성격의 것이라는 평가가 있어왔고, 한편에서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조선사회정체성에 맞서는 진보적인 경제사상이라는 평가도 있어왔다. 그렇지만 필자는 본고에서 이러한 시각들이 조선유학사상사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결론의 도출이라고 파악하고, 이항로의 경제인식에서 핵심어라 할 수 있는 정전제(井田制)에 관련한 논의들을 다루면서, 그것이 철저하게 유학사상에 근거하여 당시 사회를 경장(更張)하기 위한 사회개혁책으로서 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서양 제국과의 통상불가론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점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항로의 정전제 주장은 전반적인 국가제도와 그것의 운영원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제도개혁을 지향하는 변법적(變法的) 경세학(經世學)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전제를 통한 균등한 부의 분배는 병농일치의 관점에서 볼 때 강한 군사력을 형성하는 배경이 됨과 동시에 사람이 도덕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이항로의 경제인식은 자본주의 맹아론적 성격을 띤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도덕적 관점에서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항로에게 있어서 공전제(公田制)와 절검(節儉)의 태도를 축으로 하는 정전제의 시행문제는 곧 인심(人心)에 상대되는 도심(道心)의 함양을 위한 기본적 전제로서 인식되어진 것이다. 정전제라는 도구를 통해서 도심을 확립하려는 도학적(道學的) 관점이 이항로 경제인식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서양의 통상 요구는 이익을 도모하는 욕망을 부채질하여 도심에 상대되는 인심의 발호를 촉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항로가 전수설(戰守說)을 주장하면서까지 꼭 서양 세력의 접근을 막아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