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축산과학원_양계연구 동향 - 토종오리 이야기

  • Published : 2011.01.01

Abstract

Keywords

우리나라에서 오리는 언제부터 길러 왔을까? 토종오리 역사는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중국 남부지방의 호수 및 늪지대에서 사육되어 전래된 오리가 압록강을 넘어서 날아온 철새인 청둥오리와 교잡되어진 것으로 보아진다. 따라서 현재 사육되는 토종오리에는 흑색, 백색 및 회백색 등 여러 가지 외모를 보이고 있으나, 토종오리 원종을 살펴보면 외모는 청둥오리를 닮았으나 잘 날지 못하는 특성을 가진 가금화된 청둥오리라 할 수 있다.

오리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사육되어진 것은 지명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 있는 안압지(雁鴨池)는 기러기(雁)와 오리(鴨)가 날아와 노는 연못(池)이란 뜻이다. 또한 조선 선조 때 송강 정철이 쓴「송강별곡」에서도 오리가 ‘올히’로 나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천염기념물이며 철새인 청둥오리라는 단어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 청둥오리의 어원은 푸른 등을 가지고 있다는 ‘청(靑)등오리’가 ‘청둥오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푸른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청두(靑頭)오리’가 ‘청둥오리’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는 이조시대의 한의서인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청두압(靑頭鴨)이라는 글자에서 유래된 청두오리가 청둥오리로 되었다는 설이 더욱 근거가 있어 보인다.

토종오리의 원조인 청둥오리의 특징으로는 광해군 5년(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1596~1610년, 허준) 잡병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청두압(靑頭鴨, 대가리가 퍼런 오리)은 10 가지 수종병으로 죽을 것같이 된 것을 치료하며, 그 이유로는 오리 대가리가 물을 빠지게 하고 혈(血)열을 내리기 때문에 수종이 낫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일찍이 청둥오리가 약재로 이용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 토종오리 순종의 실물 자료(국립축산과학원)

또한 조선시대에서는 효종 6년에 편찬된「농가집성(農家集成, 1655, 申 )」의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에 어미 오리는 머리가 작고 부리 위쪽에 작은 구슬 같이 둥근 것이 5개 돋아난 것이 알을 많이 낳고, 둥근 것이 3개 돋아난 것이 그 다음이다(鴨母其頭欲小口上 有小珠滿五者生卵多滿三者次之) 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고종2년(1865년)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의 기록을 보면 “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빛과 같다(…水色如鴨頭…)”고 하는 것과 같이 머리가 푸른 청둥오리가 많이 있었던 것 같이 보인다. 압록강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둥오리의 서식처로서 청동빛으로 더욱 짙푸른 강이 우리의 압록강(鴨綠江)이다. 또한 섬진강과 보성강의 푸른 물이 합류 하는 곳인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와 죽곡면 하안리 일대에 오리와 철새들이 많이 날아 드는 압록풍경은 곡성팔경 중의 하나로 불리는 바와 같이 토종오리의 원조인 철새 청둥오리는 일찍부터 한반도에 사는 우리와 하나가 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오리의 규모 있는 사육은 1940년대 이전에 경상남도 밀양지방에서 오리를 논에 넣어 풀을 매게 하는 목적으로 이용되었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1980년대에는 충북지방에서도 사육되었고, 토종오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논에 오리를 방사하여 풀을 메도록 하는 오리농법을 위하여 야생의 청둥오리와 재래오리를 교잡한 가금화된 청둥오리를 사양시켜 왔다. 이와 같은 토종오리의 순종 보존을 위하여 1994년부터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전국의 농가에서 오리를 수집하여 체계적인 혈통 고정화 작업을 이룩하였으며, 현재 계통을 육성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