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과학 교육의 목표 중의 하나는 학생들에게 자연에 대한 의미 있는 이해를 발달시키는 기회들을 제공하는 것이다.1 이를 위하여 7차 교육과정에서는 과학에서 다루는 기본 개념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생활 주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기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소재로 삼은 용해와 확산과 관련된 혼합 현상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 현상으로, 과학교육과정에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2-3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학생들의 인지수준을 고려할 때 어려울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학생들은 용해 현상에 대해 다양한 오개념을 가지고 있으며4,5, 충돌에 의한 확산의 개념도 어려워 하였다.6 김문수와 정영란7은 입자들이 균일하게 분포하게 되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고를 학생들이 가지고 있음을 밝혔으며, 노태희와 전경문8은 용해와 확산 현상이 화학 변화라는 오개념도 학생들이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허미연 등9은 분필이 무극성이기 때문에 물과 같은 극성물질에 녹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오개념에 대해 지적하였으며, 혼합 현상에서 엔트로피 관점의 사고가 부족함을 밝혔다. 대다수의 선행연구들은 이처럼 학생들을 대상으로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개념 획득의 어려움에 대해 연구하였으나, 용해나 확산 현상과 관련하여 아직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등 과학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학생들이 개념 획득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많은 연구에서 교과서의 서술이나 과학 교사들의 수업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강대훈 등5은 용해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관찰되는 자연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적절한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학생들이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자연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에 관련된 중등 과학교사들의 사고 특성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용해와 확산은 두 물질이 균일하게 혼합되는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기본 개념이 없는 경우에는 자연 현상만으로 이를 구분하기 어려워 용해와 확산 현상을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6 많은 선행 연구10-15에서 주장한 것처럼 용해와 확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무질서도)의 개념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인력, 엔탈피, 깁스 에너지 등의 개념이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혼합 현상을 구분하여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이와 관련된 개념을 혼합 현상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은 중등 과학에서 다루고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도하는 과학 교사들은 이를 구분하는 개념을 획득해야, 자연 현상에서 구분되는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현상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혼합 현상을 중심으로 중등 과학교사들의 사고특성을 조사하여 분석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등 과학교사들은 용해와 확산의 구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가? 둘째, 중등 과학교사들은 어떠한 기준에 근거하여 혼합 현상을 용해와 확산으로 구분하는가? 셋째, 혼합 현상을 용해와 확산으로 구분할 때, 용해도의 유무나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변화에 의한 깁스 에너지의 값 등의 개념으로 제시할 때 어떤 반응을 하는가? 넷째, 이러한 사고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연구문제를 통해서 혼합 현상에 관련하여 현 과학교육과정에서 다루는 교과서 등의 내용에 대한 교사의 인식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예비교사교육과정에 대한 제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론적 배경
두 물질의 혼합 현상에 대한 이해. 두 물질이 균일하게 혼합된 용액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다른 혼합 현상을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체끼리의 혼합이 일어날 때, 섞이는 두 물질의 입자 사이에 인력이 거의 무시되므로 혼합 현상은 엔트로피의 증가만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상기체가 혼합될 때나 이상용액이 형성되는 경우에는 혼합이 일어나는 주된 추진력이 혼합 엔트로피의 증가이다. 왜냐하면 이상기체의 경우에는 입자간 상호작용이 없고, 이상용액의 경우에는 입자들 간에 작용하는 인력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즉 엔탈피 변화가 0인 이상적인 혼합이라고 할 수 있다7. 그러나 자연계에서 쉽게 관찰되는 혼합 현상의 경우에는 이상적인 혼합과는 달리 입자들 간의 인력이 존재하므로 △H가 0이 될 수 없다. 다만 입자들 간에 작용하는 인력이 매우 작거나 비슷하다면, △H값이 0에 가까운 값을 가지므로 엔트로피 변화에 비해 그 영향이 매우 작으므로 무시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반응이 일어나는 주된 추진력은 이상적인 혼합에서와 마찬가지로 혼합 엔트로피의 증가이다.16
반면 물과 같은 극성 용매에 이온결합성 물질인 용질이 혼합될 경우에는 이온들 간에 작용하는 인력이 커서 △H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인력의 영향으로 인해 이상적인 혼합의 경우와는 달리 혼합 엔트로피 변화가 음의 값을 가질 수도 있다. 용질이 용매에 녹아 이온화 될 때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반면, 이온 주변에 용매가 배열되는 용매화 과정에서는 용매 분자가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므로 무질서도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양이온과 음이온의 가수가 큰 이온결합물질의 경우, 자발적인 용해 현상이 잘 관찰되지 않는 이유는 두 물질이 혼합될 때 오히려 엔트로피의 변화가 음의 값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두 물질이 섞일 때 계의 엔트로피 변화량은 항상 양의 값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음의 값이 되는 경우 깁스자유에너지 값은 양이 될 수도 있다.16
두 물질이 혼합되는 상황에서 고려하여야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입자간의 인력이다. 두 물질이 혼합되려면, 처음 상태의 입자간 인력(용매와 용매사이 또는 용질과 용질 사이의 인력)은 깨지고 용매와 용질 사이에 새로운 인력이 부분적으로 이를 대체하게 된다.17 Ebbing과 Wrighton18에 의하면 용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은 분자나 이온들 사이의 상대적인 인력이라고 하였다. 용액에서의 입자간 상호작용은 용매-용매 상호작용, 용질-용질 상호작용 그리고 용매-용질 상호작용 세종류가 있다. 용매나 용질들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작용은 용매와 용질의 종류에 따라 크게 이온-쌍극자, 쌍극자-쌍극자, 이온-유발 쌍극자, 쌍극자-유발 쌍극자, London 분산 에너지로 나눌 수 있다(Table 1).
Table 1.Interaction among molecules.16
용해가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인력의 크기가 아니라, 용해가 일어날 때 물질의 자유 에너지 변화, 즉 △G의 값이다. 만약 △G가 음의 값이면 그 과정은 자발적이며, 물질은 균일하게 섞인다. 만약 △G가 양의 값이면 그 과정은 비자발적이며, 물질은 용해되지 않는다. 자유에너지 변화는 일정한 압력과 온도 조건에서 엔탈피와 엔트로피의 두 항으로 표현된다.
엔탈피 항 △H는 용해되는 동안 그 계의 안으로나 밖으로의 열 흐름을 측정하는 것이고, △S는 그 계에서의 입자간 무질서도 즉, 혼란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엔탈피 변화 △H는 용해 전후의 엔탈피 변화, 또는 용해열(heat of dissolution, △Hsoln)이며, 엔트로피 변화 △S는 용해 전후의 엔트로피 변화(entropy of dissolution, △Ssoln)이다. 용해하는 동안 무질서도는 증가하기 때문에 용액의 엔트로피 △Ssoln는 보통 양의 값을 가진다. 예를들면, 물에 소금을 녹일 때 △Ssoln는 +43.4J/K · mol 인데, 이는 고체가 액체에 용해될 때 무질서도가 증가함을 의미한다.
용해되면서 음의 △Hsoln 값을 가지면 자발적으로 두 물질이 섞이게 되지만, 어떤 고체는 녹으면서 열을 흡수하므로 양의 △Hsoln 값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혼합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혼합 과정에서 용질과 용질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단계나 용매와 용매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단계에서는 항상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양의 △H를 가진다. 그러나 그 후 용매 입자들이 용질입자 주위를 둘러싸 수화할 때 안정해지는 만큼의 에너지는 방출되며 이 때 음의 △H를 가진다. 이러한 세 가지 상호작용의 합인 △Hsoln이 흡열 반응이 될지, 발열 반응이 될지를 결정짓는다. Fig. 1은 발열반응과 흡열반응에서 △Hsoln의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Fig. 1.△Hsoln of (a) exothermic reaction, (b) endothermic reaction.19
소금이 물에 녹는 과정에서 △Hsoln의 값은 대략 +3.9 kJ/mol로 흡열 과정이다. 따라서 엔탈피 면에서 본다면 양의 값이지만, 소금은 물에 자발적으로 녹는데 그 이유는 소금이 물에 녹으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소금이 물에 녹으면서 증가하는 엔트로피 때문에 깁스 자유에너지가 음의 값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흡열 과정(△Hsoln > 0)일지라도 △Hsoln가 너무 크지만 않다면 엔트로피 증가에 의해 두 물질이 혼합되는 현상은 자발적으로 일어난다.20
그러나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은 기체의 혼합과 같이 순수하게 엔트로피의 증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체의 혼합은 일정한 양의 한계 없이 지속되지만,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은 일정한 양만큼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해도 값이 관찰되는 이유는, 소금을 구성하는 나트륨이온과 염소이온의 인력을 끊고 물과 수화되어 안정해지는 정도가 물의 양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물의 양이 일정하기 때문에 새로 형성되는 수화에너지에 의해 안정화되는 정도는 한정적이며, 따라서 아무리 나트륨이온과 염소이온이 물과 혼합될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엔트로피의 증가만으로 혼합 현상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과 같은 경우에는 엔탈피 항의 요인이 혼합현상을 멈추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금이 물에 녹을 때에는 기체의 혼합현상과 달리 용해도가 관찰되는 것이다.
물과 에탄올의 혼합과 같은 현상에서 물과 물입자 사이의 인력, 에탄올과 에탄올 입자 사이의 인력은 기체의 경우와 달리 상대적으로 그 크기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쌍극자-쌍극자 간의 인력이고, 기체 상태보다 입자간 거리가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과 에탄올이 혼합될 때에는 물과 소금이 혼합되는 경우와 달리 일정양의 용해도가 관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물과 에탄올이 혼합되기 전과 후에 인력의 변화 값(△Hsoln)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기 때문이다. 물과 에탄올 사이의 인력은 물과 물 사이의 인력 크기나 에탄올과 에탄올 사이의 인력 크기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두 물질이 섞이는 과정이 자발적으로 관찰되는 이유는 엔트로피의 증가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물과 에탄올의 혼합 현상은 기체의 혼합 현상과 유사하며, 물과 소금의 혼합 현상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두 가지 혼합 현상을 구분하는 용어의 혼란. 관습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용해와 확산은 모두 두 물질이 균일하게 혼합되는 현상을 일컫지만,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두 물질의 혼합 현상은 뚜렷하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지만, 경우에 따라서 다른 유형을 같은 용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끼리끼리 녹인다(like dissolves like)라는 말로 흔히 표현되는 용해의 개념은, 용매와 용질들 사이에 존재하는 세 종류의 상호작용의 크기가 서로 유사할 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체의 혼합이나 물과 에탄올의 혼합과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이러한 현상은 자발적인 변화에 주요한 요인이 엔탈피 변화 항이 아니라 엔트로피 변화 항이다. 또한 무극성 물질이 무극성 물질을 녹이는 현상도 역시 상대적 인력의 크기 변화량이 적으므로 혼합 현상의 주요인은 엔트로피 변화 항이 된다. 따라서 관습적으로 이상 기체의 혼합을 확산으로 구분한다면, 끼리끼리 녹는다는 개념은 엔트로피의 변화 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확산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면 혼합 현상의 일관성 있는 분류 기준이 가능할 것이다.
끼리끼리 녹는 현상을 설명할 때, 극성 물질이 극성 물질에 녹는 경우로 소금이 물에 녹는 것은 물과 에탄올의 혼합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은 앞서 설명한 바처럼 두 물질이 섞이는 과정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주된 이유는 엔트로피 변화가 양의 값을 가지기 때문이며, 일정량의 용해도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혼합이로피 적으로 일어날 때 엔탈피 변화가 양의 값으로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 혼합 현상은 엔트로피와 이유는 혼합변화가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두 물질이 혼합될 때 엔탈피 변화 항이 음의 값을 가지는 발열 반응의 경우에는, 보편적으로 두 물질이 섞일 때 엔트로피 변화 항은 양의 값을 가지므로 자발적인 혼합 현상이 관찰되어야 한다. 그러나 분필과 물이 섞이는 과정은 이론상 발열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분필이 자발적으로 물에 섞이지 않는 이유는 고체 상태의 탄산칼슘이 칼슘 2가 양이온과 탄산 2가 음이온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를 이온화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매우 클 뿐 아니라, 혼합되면서 증가하는 엔트로피보다 칼슘이온과 탄산이온의 큰 전하량 때문에 용액이 되면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물 입자들을 붙들어 물의 엔트로피 감소량이 매우 커지게 되어서 용액이 된 후에 전체적으로 △S < 0이 되기 때문이다.16,21 따라서 이 경우에 혼합 현상은 엔트로피와 엔탈피 항의 변화가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이처럼 자발적 반응이 궁극적으로 Gibbs 에너지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할 때, 자발적인 혼합현상은 그 원인에 따라 크게 두 가지의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G 값이 음으로 되는 과정에서 입자간의 인력으로 인한 에너지 변화와 엔트로피 변화가 모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소금이 물에 녹을 때나 탄산칼슘이 물에 녹을 때 등)가 있고, 혼합 엔트로피 증가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이상 기체나 이상 용액의 혼합, 물과 에탄올의 혼합 등)가 있다.
흔히 확산은 기체에 한정하여 사례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확산은 기체 뿐 아니라 액체 및 고체에서도 일어난다.22 액체와 고체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은 분자간 힘이 작용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확산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사이의 인력이 없을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입자간 인력의 변화가 무시될 만큼 작기 때문에 혼합 엔트로피의 증가가 주된 혼합의 요인이 될 때를 일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엔탈피의 변화량이 완전히 0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엔탈피 변화량은 엔트로피의 증가량에 비해 매우 사소하므로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점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을 때, 단순히 상태가 기체냐, 액체냐, 고체냐에 따라 두 물질이 혼합되는 현상을 확산과 용해로 구분하는 오류를 가질 수도 있다.
관습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용해와 확산은 모두 두 물질이 균일하게 혼합되는 현상을 일컫지만, 경우에 따라 매우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 이러한 혼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안이 가능하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사용하여 온 용해와 확산 개념을 엔탈피와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재정의하여 구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혼합 현상을 엔탈피와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새로운 과학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혼합 현상에 대한 혼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과학 용어로 혼합 현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과, 용해와 확산이라는 기존의 개념으로 혼합 현상을 이해하는 것 사이의 관계 짓기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혼합 현상을 구분하였던 용해와 확산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과학 용어의 등장으로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교육의 전통적 관습의 시각에 비추어볼 때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과학에서는 새로운 개념에 따라 과학 용어를 바꾸기 보다는 전통적인 과학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개념의 변화만 강조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왔다. 예를 들어 물질의 기본이 된다는 의미의 원자 개념은 돌턴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입자라고 정의한 후에 러더퍼드, 보어 등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러더퍼드나 보어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으로 구성된 입자의 개념을 찾아낸 후에 이를 새로운 용어로 정의하지 않았으며, 기존의 원자라는 용어 사용을 선택하였다. 물질의 기본이라는 의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연구에서도 가능한 한 새로운 용어로 새로운 개념 정의를 하기 보다는, 혼합 현상을 설명하였던 전통적인 두 과학 용어인 용해와 확산를 통해 개념의 재정의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관습적으로 사용해 온 용어의 차이를 깁스자유에너지 관점에서 구분하고, 이를 토대로 용해와 확산의 구분을 새롭게 정의한다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혼합 현상을 그 특징에 따라 구분하여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
연구 방법
연구 대상. 조영달23은 심층 면담을 시작 전에 공감대를 형성하여 면담이 생산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여야 하고,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질적 연구에서 연구자와 연구 대상자 간의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연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구 대상자로서 참여를 희망한 화학이나 화학교육을 전공한 과학교사 5인을 연구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이들은 모두 대학교육과정을 통해 일반화학 및 물리화학, 무기화학, 분석화학 등을 이수하였으며, 따라서 두 물질이 혼합되는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화학 원리인 깁스자유에너지나 엔탈피, 엔트로피 등의 개념을 학습한 상태이다. 연구 대상자에 대한 정보는 Table 2에 제시하였다. 그러나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화학을 전공한 경우와 화학교육을 전공한 경우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이를 구분하여 특성을 논의하지는 않았다.
Table 2.Subject.
면담 내용.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다양한 혼합 현상에 대한 사고 특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3차에 걸친 반구조화된 면담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면담은 질문의 형태가 개방적이며, 질문할 내용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확인할 내용에 대한 지시어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면담 진행 중에 짚고 넘어갈 사항을 연구자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면담의 진행 과정에서 질문의 순서나 속도, 질문의 내용이 비교적 가변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질적 연구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면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24
1차면담에서는 NaCl과 물의 혼합, 요오드와 사염화탄소의 혼합, 물과 알코올의 혼합,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의 혼합, 잉크와 물의 혼합, 담배 연기와 공기의 혼합의 6가지 혼합 현상을 제시하고,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인식과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구분 기준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2차와 3차면담에서는 인력, 엔탈피, 엔트로피, 깁스 에너지 등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개념을 이용하여 혼합 현상에 적용하여 사고하는 과정을 알아보았다. 2차면담에서는 기체 혼합의 경우에는 균일해질 때까지 혼합이 일어나는 이유, NaCl이 물에 일정량만 녹는 이유, 알코올과 물이 기체의 혼합처럼 균일해질 때까지 섞이는 이유 등을 중심으로 질문하였으며, 3차면담에서는 발열과정인 탄산칼슘이 물에 녹는 현상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 흡열과정인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이유 등을 중심으로 질문하였다. 마지막 4차면담은 연구자가 분석한 내용에 대한 연구 대상자들의 검토를 위한 면담이었다. 이 때 연구자는 용해와 확산과 관련된 혼합현상에 대한 개념을 연구 대상 교사에게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3차의 면담을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이 애매하거나 더 추가로 알아볼 사항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또한 전반적인 면담 후 사고의 변화나 느낀 점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4차에 걸친 면담은 약 3개월 동안 진행되었으며, 모든 면담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교사별로 차이는 있었으나 면담 시간은 1회에 대략 1시간∼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자료 분석. 양적 연구가 실증주의 전통을 따른다면, 질적 연구는 현상학적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25,26 질적 연구의 지향점은 양적 연구와 대비되며, 상대적으로 볼 때 소극적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27 또한 질적 연구에서는 실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27 유형화된 면담 틀을 사용하지 않고, 자유로운 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자료들을 해석하는 과정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한 연구대상자로 부터 얻은 자료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만한 다른 연구대상자의 자료에서는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면담 과정에서 드러난 연구대상자의 사고유형이 다른 연구대상자와는 다를 경우가 있었기때문이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자료를 선별하고 발췌하는 과정에서는 가능한 한 교사들의 사고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해석을 통한 의미 부여의 과정을 거쳤다. 면담 자료의 분석은 화학교육 전문가 1인, 그리고 화학교육과 석사 과정에 다니는 중등 과학교사 2인과 공통과학교육과 석사 과정에 다니는 중등 과학교사 1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면담이 이루어지는 3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2∼3시간 정도 정기적인 협의과정을 통해 동료 검토(Peer review)를 실시하였다.26
연구 결과 및 논의
용해와 확산의 구분에 대한 인식. 면담을 통해 중등 과학교사들이 용해와 확산을 가르치거나 학습하는 과정에서 두 개념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A 교사를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용해와 확산 개념은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굳이 서로를 비교하여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고 응답하였다. 그 이유를 알아본 결과, 대부분 확산은 공기를 다루는 단원에서, 용해는 물이나 용액을 다루는 단원에서 따로 가르치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응답하였다. 다음은 B, C, D 교사와의 면담 내용 중 일부이다.
이를 통해 면담에 응한 교사들은 대부분 교과서의 진술 형태에 크게 의존하여 지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교사들이 교과서에 대해 가지는 전형적인 태도28이지만,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교사들은 흔히 교육 내용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이제 전통적인 교사의 역할이 변하고 있으므로, 수동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하여 능동적으로 교과를 가르치는 방식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교사들은 가르칠 개념들 간의 관계를 학생들에게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다루는 개념들 간의 유의미가를 높이는 교수 활동을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력29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Table 3.Teachers' thoughts of various mixing phenomena.
문제는 이러한 개념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지도하는 교사들이 있는가하는 점이다. 교사가 가르칠 내용에 대한 교과 지식을 제대로 가지고 있어야 높은 교수실행지식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30,31이다. 교사들이 비록 학생들에게는 용해와 확산을 각기 다른 단원에서 분리하여 가르쳤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교사의 내용 지식을 확인하기 위하여 소금과 물의 혼합, 요오드와 사염화탄소의 혼합, 알코올과 물의 혼합,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의 혼합, 잉크와 물의 혼합, 담배 연기와 공기의 혼합 등 여러 가지 혼합 현상을 제시하고, 용해나 확산 현상 중 어느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면담하였다. 그 결과, 교과서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지도하는 교사들 스스로가 용해나 확산 현상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 현상에 대해 교사들이 판단한 내용을 Table 3에 제시하였다.
Table 3을 보면, 6가지 혼합 현상 중에서 5명의 교사가 구분한 용해와 확산의 결과가 모두 일치하는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교사마다 혼합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름을 알 수 있다. A, C, D 교사는 혼합 현상을 용해나 확산 중 하나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B, E 교사는 보편적으로 혼합 현상을 용해와 확산 두 개념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질문하였을 때, B, E 교사는 용해와 확산을 입자들이 고르게 섞인다는 의미에서 구분이 안 되는 개념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다음은 E 교사와의 면담 내용 중 일부이다.
이러한 면담 결과를 통해 볼 때, E교사는 비록 설문의 응답에서는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을 용해와 확산 모두에 해당한다고 표현하였으나 일정량만 녹는 현상이 관찰되는 경우와 이러한 현상이 관찰되지 않는 혼합은 구분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B교사가 일관성 있게 모든 혼합 현상을 용해와 확산의 두 용어로 모두 표현한 것에 반해, E교사는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의 혼합 현상은 확산의 예로만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서도 그가 용해와 확산 현상을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설명한 바와 같이 두 종류의 입자들이 고르게 섞이는 것이 용해이면서 확산이라면,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의 혼합 현상도 용해와 확산의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해야 사고의 일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기체의 확산은 전형적으로 교과서에 분자 운동에 의한 확산 현상을 설명할 때 제시하는 실험이므로, 이러한 응답도 역시 교과서의 서술방식에 교사의 사고가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서의 진술 형태에 의존하여 그대로 가르치는 방식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B교사의 경우와 사고 유형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B교사가 용해와 확산의 구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에 비해, E교사는 상대적으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려고 시도하였음을 면담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면담과 달리 설문에서 구분한 기준은 일정량만 혼합되는 현상이 아니라 교과서에 어떤 현상의 사례로 제시된 내용인가를 기준으로 구분하였으므로, E교사는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교과내용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질적 연구는 그 특성상 ‘특정 맥락에서 구체적 사건의 의미, 사람들 간의 일상적 상호접촉을 통해 형성되는 의미를 연구하는 것’26이므로, 이러한 결과는 연구자가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의 맥락을 연구대상자가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E교사는 면담 초기에 분자나 입자 모형으로 제시되는 용해와 확산을 같은 현상으로 보고 교과서에서 전형적인 확산의 예로 제시된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의 혼합 사례만 확산으로 보았으나, 면담하는 과정에서 혼합 현상의 두 가지 다른 유형으로 일정량만 녹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인지하고 이를 구분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구분 기준에 대한 사고는 초기에 면담을 이끌어가는 연구자가 의도적으로 연구 대상자에게 제공한 것이 아니다. 연구자는 단지 다양한 혼합 현상을 제시하고 이를 용해와 확산으로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물어 보았으며, 이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연구 대상자가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연구의 이론적 배경에서 두 물질의 혼합현상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 연구자들의 시각은 연구대상자들인 과학교사들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기준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바와 같이 교재에 제시된 과학적 개념은 절대적 지식이라는 논리실증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난다면, 구성주의나 도구주의적 관점에서 우리가 다루는 과학 개념들은 과학자 사회에서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과학 교재에서 다루는 개념이 혼란스러울 때에는 보다 합리적인 새로운 기준을 정해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양한 혼합 현상을 용해와 확산의 예로 제시할 때 혼합 현상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유형, 즉 일정량만 혼합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는 것이 과학교사에게 합리적인 기준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있음을 면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용해와 확산의 구분 기준 1: 교과서 사례나 용어 정의. 앞서 추론한 내용과 같이, 보편적으로 교사들은 혼합 현상을 단순히 교과서에 제시된 사례에 근거하여 구분한다는 것을 추가적으로 이루어진 면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 교육에서 교과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크다고 할 수 있다.32,33 따라서 학교 교육을 위해 교과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중심으로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의 구성 방식은 학습자의 학습 과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단점을 안고 있으며, 교과 내용을 학습자가 내면화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28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지식을 외우도록 하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비판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고등 지식은 장차 학습자가 과학을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28
그러나 교사들 스스로도 교과서에 제시되어 있는 내용을 암기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학생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면담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C교사는 혼합 현상의 유형을 판단하는 근거를 합리적인 기준으로부터 찾기 보다는, 용매와 용질이 존재하면 용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대 일반화학 시각에서 볼 때 용매와 용질의 정의는 균일혼합물에서 양이 많은 것과 양이 적은 것으로 구분하고, 둘 이상의 물질로 이루어진 균일계(액체, 고체, 또는 기체)를 모두 용액으로 정의15 하고 있다. 따라서 용매와 용질의 개념으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것은 타당한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둘 이상의 물질로 이루어진 균일계는 물질의 상태와 상관없이 용액으로 정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들이 용액을 고체와 액체의 혼합 상태만으로 생각하고, 용해는 고체가 액체에 혼합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체 상태의 두 물질이 혼합되는 것은 확산의 사례로 생각하였다. Table 3에서 보면, 용해와 확산을 거의 같은 개념으로 보았던 B와 E 교사와는 달리, A, C, D 교사는 용해와 확산에 대한 구분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은 공통적으로 소금이 물에 녹거나 사염화탄소가 요오드에 녹는 현상은 용해로 보고,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가 혼합되는 현상이나 담배연기가 공기 중에 퍼지는 현상은 확산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근거는 중, 고등학교에서의 학습 내용이나 대학교 교과서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과서 중 일부에서 공기를 용액으로 분류한 경우를 접하면, 사고에 혼란이 유발되었다.
이러한 면담 과정을 통해 교사들이 용해 과정과 용액을 혼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용액은 균일혼합물이지만 확산이나 용해 과정을 통해 모두 형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체가 공기 중에 섞일 때에는 엔탈피의 변화량은 거의 무시할 수 있으므로 엔트로피의 증가가 주된 원인이 되며, 따라서 균일해질 때까지 자발적으로 혼합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확산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확산에 의해 균일혼합물인 용액이 만들어지는 것을 근거로 한다면, 우리는 확산을 엔트로피의 증가가 주된 원인인 현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용해 과정을 통해서만 용액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으며, 이 때문에 기체 용액이라는 용어에 혼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러한 갈등상황에서 쉽게 자신의 본래 구분 기준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 중에서 “녹는다.”는 것과 “퍼져 나간다.”는 문장 표현을 기준으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경우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교사들의 사고는 중등교육과정에서 제시된 내용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으며, 교과서에 제시된 제한된 사례로부터 과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고체를 용질로, 액체를 용매로 사용하는 경우나 ‘녹는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용해로 인식하고, 기체의 경우에 한정하여 확산을 인식하고 있었다.
연구 대상 교사들은 모두 예비교사 교육과정을 통해 일반화학 및 물리화학, 무기화학, 분석화학 등을 이수하였으며, 따라서 두 물질이 혼합되는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화학 원리인 깁스자유에너지나 엔탈피, 엔트로피 등의 개념을 학습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학습한 관련 교과내용지식은 중등과학교육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면담의 초점은 교사들의 지도실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관련 지식의 파악에 있기 때문에, 면담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들은 예비교사 교육의 문제도 건드린다고 할 수 있다. 중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중등학교에서 다루는 내용 수준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사범대학에서는 심도 있는 관련 전공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 대상자였던 교사들은 모두 관련된 교과내용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여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서술된 중등과학 교과서의 제한된 사례들과 중등과학교육과정의 제한된 범위 때문일 수 있지만, 교사들이 교과서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에만 교육적 노력의 초점을 두는 관례 때문에 유발된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교육을 통해 창의력과 사고력을 길러준다고 하는 교육목표를 표방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교과서는 지식전달중심의 단조로운 구성을 피하기 어렵고28, 따라서 교사가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활용하는 시각을 가지지 못하고 교육의 목적을 교과서 내용 전달에 두는 한, 아무리 교과서에 풍부한 사례를 포함시킨다고 해도 교과서 사례나 용어 중심의 사고에 한정하여 사고하는 문제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용해와 확산의 구분 기준 2: 인력의 작용과 자발성. 교사들과의 면담과정에서 용해를 확산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입자들 간의 인력이 고려되는 상황이라는 사고가 분명하게 자주 드러났다.
이러한 사고는 극성은 극성끼리 녹고, 무극성은 무극성끼리 녹는다는 사고(like dissolves like)와 깊은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앞서 ‘이론적 배경’의 두 가지 혼합 현상을 구분하는 용어의 혼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무극성 물질이 무극성 물질과 혼합될 때에는 인력의 변화량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혼합의 주요 원인이 인력이 아니라 엔트로피의 증가이다. 따라서 무극성 물질의 경우에는 인력의 개념을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들 중에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경우를 초기 면담 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용해에서 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전통적인 학습방식(like dissolves like)에 의해 무극성 물질도 무극성 물질에 녹는다는 용어 정의 수준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제시한 구분 기준 1의 용어 정의 수준의 사고와 유사하다. 보편적으로 교사들은 교과서에 진술된 형태의 사고를 벗어나 스스로 개념들을 현상과 관련지어 보고 사고력을 길러보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면담 과정에서 많은 교사들은 무극성과 무극성끼리는 인력이 작용한다고 생각하였으나, 극성과 무극성끼리는 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Table 1에 제시한 표의 내용을 근거로 할 때, 극성 입자와 무극성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크기가 무극성 입자들 사이의 인력 크기보다 크다. 이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을 알아 본 결과, 비록 Table 1과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토대로 무극성 입자 사이의 용해를 생각해 본 경험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과학 교사들이 지식을 수용하는 태도가 매우 수동적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러나 면담 과정을 통해 극성 물질이 무극성 물질과 작용하는 인력의 크기가 무극성 물질끼리의 인력보다 큼에도 불구하고 서로 섞이지 않으며, 무극성 물질끼리의 인력은 더 작음에도 불구하고 섞이는 것을 통해 인력 개념만으로는 혼합현상을 용해로 설명할 수 없음을 B교사는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무극성 입자들끼리 인력이 작용하여 용해된다고 생각하였던 자신의 사고가 문제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교사와의 면담 과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사례로 제공한 기체의 혼합과 액체의 혼합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현상, 즉 어떠한 비율로도 균일하게 혼합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남을 지적한 후에도, A교사는 단지 기체와 달리 액체는 인력이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에 용해라는 관점을 버리지 않았다. 즉 염화수소 기체와 암모니아 기체의 혼합과 같은 기체의 혼합을 확산으로 구분하고, 물과 잉크의 혼합, 알코올과 물의 혼합과 같은 액체의 혼합을 용해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교사의 태도는 인력의 작용이 용해 현상에서 중요하다는 사고의 틀을 가지고 현상을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 자신이 생각하는 용해의 기준이 인력 개념일 때, 이러한 사고가 교과서에 제시된 사례와 충돌하게 되면 교사는 자신의 사고보다 교과서에 더 의존한다는 사실도 관찰할 수 있었다. 즉 용해와 확산의 구분 기준 1이 구분 기준 2보다 훨씬 교사에게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C교사는 B교사가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배운 것을 기억하고 현상을 이에 맞추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배운 내용 중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교과서에 제시된 확산의 사례(잉크가 물에 퍼지는 현상)인 것이다.
과학 개념과 현상을 연결하는 과학 교사들의 사고방식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교사가 자신의 사고 과정의 문제점을 깨닫고 반성적 사고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34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사가 자신의 교수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자신의 앎을 표면화하며, 이를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과정35은 예비교사 교육 및 현직 교사의 연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교사의 전문성을 길러주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36-41
그러나 이러한 교사의 반성적 사고는 훈련이 없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이 연구 과정 동안 이루어진 면담에서도 끊임없이 교사의 반성적 사고를 요구하였으나, 대부분의 교사들은 스스로 반성적 사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의 틀을 점검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쉽게 하지 못하였다. 이는 교사 자신이 학습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반성적 사고를 해 볼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교육의 주체자로서 교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능동적으로 가르칠 내용을 재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34 이러한 교사의 전문성이 길러져야 학생들도 스스로 지식을 구성해 나가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담 과정에서 얻은 몇몇 사례를 통하여, 극성물질인 경우와 무극성 물질의 경우에 인력의 크기가 매우 다를 수 있음을 깨닫는 경우에, 일부 교사들은 용해의 개념으로 고수하였던 사고방식을 스스로 바꿀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E 교사는 무극성 물질끼리 혼합되는 경우에 매우 작은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현상을 용해라고 생각하였던 사고를 확산으로 바꾸었다.
비록 많은 교사들이 무극성 물질의 경우에도 인력 개념을 적용하였으며, 인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혼합은 모두 용해 현상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는 하였으나, 용해를 인력과 연결 짓는 사고는 앞서 언급한 구분 기준 1과는 달리 대학교에서 다루는 깁스자유에너지의 엔탈피 항과 관련지을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단순히 ‘용매가 용질에 녹으니까’, 혹은 ‘소금이 물에 녹는 경우니까’ 등과 같은 사고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깁스자유에너지에서 인력과 관련된 엔탈피 항은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엔탈피의 변화량, 즉 인력의 변화 차이로 고려되어야 한다. 발열반응의 경우에는 엔탈피의 변화량이 음수이므로 깁스자유에너지가 음수값을 가지는 주요 요인이 되며, 흡열반응의 경우에도 엔탈피의 변화량이 작은 양수일 경우 엔트로피 변화량이 크다면 자발적인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소금이 물에 녹는 흡열반응도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소금이 물에 녹을 때에는 담배연기가 공기 중에 퍼질 때와 달리, 일정한 용질이 녹은 후에 더 이상 혼합 현상이 지속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용질과 용매 사이에 새로 형성된 인력에 의해 엔탈피가 감소되는 부분이 더 이상 발생하지 못해서 두 물질이 혼합되기 위해 끊어야 하는 용질간 인력과 용매간 인력에 의해 형성된 엔탈피의 변화량이 혼합되었을 때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변화량보다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제한된 용매(예를 들어 물 100g) 안에서 혼합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인력에 참여하는 물 입자의 수가 한정적이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편, 혼합되는 두 물질의 인력이 유사한 경우에는 용매간 인력이나 용질간 인력과 용매와 용질 사이의 인력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비록 용매와 용질간, 용매간, 용질간에 인력이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다고 해도 섞이는 과정에서 엔탈피 변화량은 거의 0에 가깝다. 따라서 두 물질이 혼합될 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균일해질 때까지 혼합 현상이 일어난다. 물과 알코올의 혼합 현상이 그 사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개념으로 용해와 확산의 정의를 새롭게 구분한다면, 과학교사들이 가지는 사고의 혼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면담 과정에서 E 교사는 물과 알코올이 섞일 때에는 혼합되기 전과 후의 인력 크기가 거의 같다는 사실로부터, 에너지 차이가 자발적인 혼합 현상의 추진력이 아님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인력이 아닌 무작위한 분자 운동을 그 원인으로 보고 용해가 아닌 확산으로 구분을 변경하였다.
교사들 중에는 자발성을 기준으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인위적으로 저어주는 교반활동이 따라오는 경우를 용해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를 확산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교과서에서 전통적으로 분자운동을 지도하는 단원에서 확산 현상을 통해 분자가 스스로 운동하는 증거를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여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교사들이 무작위한 분자 운동을 확산의 전형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속에서 엔트로피에 대한 관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자발성은 깁스자유에너지가 음의 값일 때 나타나는 자연 현상이고, 깁스자유에너지는 엔탈피변화항과 엔트로피 변화항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용해 현상과 확산 현상은 모두 다 깁스자유에너지가 음의 값일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어느 정도 혼합 현상이 진행된 후에 자발성이 멈추는 경우와, 그렇지 않고 균일 혼합물이 될 때까지 반응이 진행되는 두 가지 혼합 유형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발성이라는 기준으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깁스자유에너지에 대한 고려를 하였다는 점에서 앞서 단순히 교과서의 사례나 용어정의 수준으로 사고하는 것에 비해서는 더 깊이있는 사고를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용해와 확산의 구분 기준 3: 모델의 사용. 면담 과정에서 일부 교사들은 물 분자의 빈틈으로 입자가 들어가는 모델을 기준으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C교사는 이 모델을 이용하여 물과 잉크의 혼합을 확산으로 보았으며, E교사의 경우에는 용해로 구분하였다. 즉, 이 모델의 사용은 교사들마다 용해나 확산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의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였다.
이 모델은 전형적으로 과학 교과서에서 확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6차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과학교과서에서 분자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콩과 좁쌀모형을 사용하였으며, 콩 사이의 빈 공간으로 좁쌀이 들어가는 모델을 통해 두 물질이 균일하게 혼합되면서 부피가 줄어드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 설명의 초점은 용해나 확산이 아니라, 물질이 분자라는 입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자연 현상으로 물과 알코올을 섞었을 때 각 부피의 합보다 전체 부피가 더 작아지는 것을 관찰시키고,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콩과 좁쌀 모델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물과 알코올의 혼합을 특별히 용해나 확산의 현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단지 균일하게 섞이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둠으로써 두 물질이 고르게 섞여 균일 혼합물인 용액이 되는 과정과 연결한 것이다. 따라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용해나 확산을 통해 모두 균일 혼합물인 용액이 되므로, 용액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용해나 확산으로 구분하는 것은 판단 기준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6학년에서 다루던 분자 단원이 중학교 1학년 분자운동 단원으로 이동하였다. 여기서는 확산 현상을 통해 분자의 운동을 추리하도록 내용이 구성되어 있으며, 이 때 확산은 잉크가 물속에 퍼지는 현상을 통해 제시하고, ‘기체나 액체 상태의 분자들이 스스로 운동하여 주어진 공간에서 퍼져 나가는 현상’으로 설명42하였다. 중학교 2학년 물질의 특성 단원에서 제시되는 용해의 개념43은 ‘한 물질의 고유한 성질이 변하지 않는 상태로, 다른 물질에 고르게 섞여 있는 것을 용액이라고 한다.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에 녹아서 고르게 섞이는 현상을 용해라고 하고, 이때 녹는 물질을 용질, 녹이는 물질을 용매라고 한다. - 중략 - 황산구리를 20 ℃의 물 100g에 녹일 때 20g 정도는 녹지만, 그 이상이면 녹지 않고 가라앉는다. 이와 같이 용질이 용매에 더 이상 녹을 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 녹아 있는 용액을 포화용액이라고 한다. 일정한 온도에서 용매 100g에 최대한 녹을 수 있는 용질의 질량을 g수로 나타낸 값을 그 용질의 용해도라고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6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서 제시하였던 콩과 좁쌀의 모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담에 참여한 중학교 과학교사들은 대부분 콩과 좁쌀 모형을 이용하여 용액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합의 두 가지 유형을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 1차 면담 과정에서 다양한 혼합 현상을 제시하였지만, 이를 일정량의 용매에 용질이 일정량만 녹는 경우와, 용매와 용질의 양에 관계없이 균일해질 때까지 섞이는 경우로 구분할 필요성을 자발적으로 인식하는 교사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2차면담부터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러한 현상이 관찰되는 이유를 설명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를 통해 교사가 자신이 배운 대학 수준의 과학 지식을 자연 현상의 설명에 얼마나 활용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면담을 통해 교사들이 용해도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가장 강력한 설명 도구는, 앞서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기준 2에서 제시하였던 입자 간의 인력 개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을 적용하는 사고 과정도 거의 처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설명은 인력 개념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인력이 작용하는 물의 양이 한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용질이 일정량만 녹는다는 설명을 제시하였다.
면담 과정에서 용해와 확산의 구분 기준 1(교과서 사례나 용어 설명)이나 구분 기준 3(모델 사용)은 다양한 혼합 현상을 분류할 때에는 교사들이 종종 적용하였지만, 용해도가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때에는 활용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이란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개념들 중에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사고 과정을 겪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반성적 과정을 통하여 교사들은 과학의 본성44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의 과학 개념 중에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것을 선택하여 내면화함으로써 교수 행위의 근거가 되는 실천적 지식45-47을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력 개념만으로 에너지가 안정해지기 때문에 용해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흡열반응을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흡열반응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려면 깁스자유에너지의 다른 항인 엔트로피에 대한 사고가 필수적이다. 자발적 반응에 대한 대학 수준의 설명을 면담 대상 교사들이 인식하도록 이러한 갈등 상황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교사들은 자신들이 예비교사 교육과정에서 배운 엔트로피의 개념을 도입하지 못하였으며, 단지 고등학교 수준에서 설명으로 제시되는 에너지의 안정화 관점으로만 설명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여러 번의 면담과 그 사이에 교사들이 자유롭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교사들은 엔트로피의 개념을 혼합 현상에 도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엔탈피 관점으로 혼합 현상을 설명하려는 관점이 강하여, 엔트로피의 도입이 자연스럽게 혼합 현상을 설명하는데 활용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안정화된다는 개념을 엔탈피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여, 자발적으로 혼합되는 과정에서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였다.
예를 들어, 탄산칼슘이 물에 녹는 반응이 발열 반응이라 엔탈피 면에서 본다면 음의 값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 반응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에도 엔트로피의 변화량이 음의 값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나타내었다.
여러 번의 면담 과정을 통해, 과학 교사가 엔트로피의 관점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혼합 현상에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엔트로피의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들 중 일부는 엔트로피 개념을 혼합 현상에 잘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교과서의 설명 방식을 들었다. 현재 엔트로피의 개념은 고등학교 교육과정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으며, 개정 7차 교육과정에서는 선택중심 교육과정인 화학 II의 화학평형 단원에서 다루도록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엔트로피의 개념을 자발적인 용해나 확산 현상에 도입하는 설명은 대학교 이상의 교육에서만 다루는 내용이다.
B교사의 면담 결과는 용해와 확산을 교과서의 다른 단원에서 다루기 때문에 관련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교사들의 응답과 유사한 면이 많다. 그러나 교과서의 설명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28 또한 교육 현장에서 교과서가 제대로 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운영하는 교사의 전문성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교사들이 사고하는 과학 수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러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가치있는 지식을 외우도록 설명해 주는 일에 힘쓰기 보다는 학생들의 사고력, 창의력, 비판력, 판단력 등 고등 정신 기능으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데 힘써야 한다.28 이렇게 할 때 비로소 학습자도 자기주도적 능력을 개발하고, 지식의 가치를 판단하여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은 흔히 교과서의 내용이나 수능 문제 등을 기정사실화하고 교육 내용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 때문에 교사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내용을 학생들에게 충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기 때문에,28 교육과정과 이를 반영한 교과서에서도 비판력과 판단력 등의 사고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과학 개념들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이 연구에서 제시한 면담 방식과 유사한 형태의 사고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용해나 확산을 설명하는 기존의 설명 방식의 문제를 인식하고, 엔트로피의 관점 등 새로운 설명 방식의 도입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포함된다면, 교사 뿐 아니라 학생들도 교과서를 통해 과학의 본성을 인식47하게 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과학교육과정의 목표에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결론 및 제언
이 연구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꾸준히 다루는 과학 내용 중에서 선행연구를 통해 학생들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난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과학 교사들의 사고 특성을 알아보았다. 이를 위하여 사범계와 비사범계를 졸업한 교사 5명을 선정하여 면담하였다. 이들은 2년∼6년 정도의 교사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 결과, 중등 과학교사들은 교과서에서 분리된 단원으로 다루고 있는 용해와 확산 개념을 관련지어 가르치거나 사고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다양한 혼합 현상을 용해와 확산으로 구분하도록 요구하였을 때, 5명의 교사가 모두 일치하는 혼합 현상은 하나도 없었다. 이로부터 교사들이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기준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교사들이 용해와 확산을 구분하는 기준을 알아보기 위해 면담을 한 결과, 교과서에 제시된 사례를 기억하거나, 용질과 용매의 존재로 구분하거나, 물질의 상태로 구분하거나, 녹거나 퍼져나간다는 표현에 근거하여 구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인력이나 자발성을 근거로 구분하기도 하였으며, 빈 공간 사이로 퍼져나가는 모델을 근거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시한 구분 기준에 맞지 않는 사례를 접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은 부족하였다. 특히 예비교사 교육과정에서 다루었던 깁스자유에너지의 개념을 도입하여 혼합 현상의 자발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매우 어려워하였으며, 이러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교과서의 서술 방식과 엔트로피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었다.
현재 교육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제 7차 교육과정의 첫째 목표는, 기본 개념을 습득하여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때 기본 개념은 단순한 용어 암기나 사례의 기억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근거로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학생을 기르는 것이 과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학생들의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과학 교사들부터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과학교육과정의 목표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를 통해, 중등과학교육과정의 목표를 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과학 교사들조차도 이러한 사고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의 능동적인 참여 없이는 교육과정의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34 아무리 좋은 교과서를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교과서에 제시된 지식은 이를 전달하는 교사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수업 중 이루어지는 교사의 실행적 지식은 교사의 전문성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45,46 그러나 교사 전문성에 대한 해석은 이론적 지식을 외적으로 적용하는 능력 보다는 교사 개인의 내적 경험에 두어야 한다.34 따라서 교육과정과 수능, 교과서에 대한 인식과 학습자로서의 경험 등을 토대로 형성된 교사 개인적인 해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교사의 개인적 해석은 정서적 신념 체계에 가깝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47 이 연구를 통해 밝힌 교사의 인식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교사 전문성에 대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연구 결과는 보다 나은 과학교육을 위해 교사교육, 교과서 개발, 교육과정 개발, 수능 문제 등에 우리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을 말해주는 것이다.
PISA 2006 평가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과학 성취도의 수준이 점차 하락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 이러한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공청회와 여러 학계의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PISA의 평가는 학생들이 실생활에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기본 개념의 이해를 전제로 응용 능력을 알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성취도 하락은 결국 과학적 사고력의 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과학 교육이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원리를 토대로 사고력을 기르는데 초점을 두기 보다는 단순한 현상 중심의 암기 학습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를 통해 드러낸 교사의 인식과 지도 방식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여러 다른 교육 정책적 노력들은 미봉책에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과 관찰된 자연 현상을 서로 관련시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교사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학생들을 위한 과학 교육과정과 교과서 진술에 있어서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과학교사들은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상이나 용어 중심으로 용해와 확산에 관련된 혼합 현상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깁스자유에너지 등을 도입한 사고를 어려워하였다. 따라서 교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중등학교에서 다루는 다양한 자연 현상에 대한 기본 원리에 대한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고, 이를 학생들의 수준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교사를 길러내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일방적인 지식 전달 중심의 교사 교육은 연구 결과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교사는 단순히 교육과정의 전달자가 아니며,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 내는 능동적 주체이기 때문이다.34 따라서 교사 스스로 전문성을 획득하고 확장해 나가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의 반성적 사고를 자극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시도한 바와 같이 교사들이 사고의 충돌을 경험하고, 갈등을 표면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의미를 확인하고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교사의 반성적 사고를 자극하고 그 속에서 내면적 변화를 스스로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중등 과학교육과정에서도 단순한 현상 나열이나 결과 암기 중심의 내용 제시에서 벗어나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원리를 강조하는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개념의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암기 수준으로 과학을 이해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서로 모순된 사고를 드러내고 교정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단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개념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과학교육 입장에서 볼 때 올바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렵고 쉬운 것은 관습적으로 결정되거나 학습자의 수준에 의해 운명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교수-학습 측면에서의 노력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일례로 엔트로피의 관점을 4살 아동에게도 직관적인 형태로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48도 있으며, 이를 확률적인 시각에서 체험적으로 이해시키려는 교수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49-51 따라서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핵심 개념에 대한 학습이 학습자 수준에서 가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및 교수방법을 개선함으로써 교사 뿐 아니라 학생들도 과학 개념과 자연현상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 지어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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