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신쟝의 타림분지에 있는 롭노르 호수의 위치와 성격은 19세기 말 이래 내륙아시아에 관심을 가진 많은 학자들(프르제발스키, 리히트호펜, 코즐로프, 헤딘, 헌팅톤, 스타인, 천쫑치 등)의 논쟁 사안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중국과학원 고찰대에 의해 롭노르의 위치와 성격이 해명되었다. 롭노르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성격 역시 변함 없이 염호였지만, 그간 위치와 성격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은 하천수의 유입방향과 수량에 변화가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하천의 변화는 역사시기와 현재 모두에 있어서 롭노르 상류부의 물 사용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상류부의 물 사용이 급격히 증가한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롭노르에 물을 공급하는 하천들의 수량이 감소하여 롭노르가 고갈되었고, 하천의 길이마저 축소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에 작용한 인위적 작용의 주요 내용이 신쟝 생산건설병단이라는 대규모 조직에 의한 외부 인구의 유입과 이들에 의한 인공 오아시스의 건설이었다. 이러한 토지형질의 변화와 수자원의 고갈은 사막화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균열마저 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롭노르와 유사한 변화가 중국 서부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Since the late 19th century, the location and characteristics of Lop-Nor lake have been a major theme of debates among the scholars(Prejevalsky, Richthofen, Kozlov, Hedin, Huntington, Stein, Chen etc.) who have been interested in Inner Asia. In the 1980s the problem to find the exact location and characteristics of Lop-Nor lake was finally solved by the investigation group of the Chinese Academy of Sciences. Ironically, it was possible to find the solution by drying up of the lake due to the change of land use and the expansion of irrigation system in Tarim basin. Specially the excessive development of this area for agricultural use by the Xinjiang Production-Construction Army Corps since 1949 must have influenced on drying up of Lop-Nor lake. Furthermore it can be observed to be the very similar situation to Lop-Nor lake in many areas of Chinese Inner Asia Frontier. According to this finding, it may be proposed that human factor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changes of Lop-Nor lake over the previous years too. This study can give an insight on the ecological interpretation of Inner Asian history and the environmental interpretation of the rising nationalism in this a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