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정보학보 (Korean journal of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 제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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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s.30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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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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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3757(pISSN)
개화기의 언론 수용자운동
Audience Movement in the Beginning Period of Modern Newspaper in Korea
초록
이 논문은 개화기의 언론 수용자운동을 분석하였다. 최근 언론 수용자운동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 성과도 적지 않게 축적되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연구들은 한국 언론사에서 언론 수용자운동의 기원을 1960년대의 언론윤리위원회 파동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한국 언론사에서도 우리가 수용자운동이라는 범주로 포괄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입장에서 개화기의 두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박문국 방화사건과 <<황성신문>> 및 <<제국신문>> 살리기 운동이 그것이다. 이 사례들은 언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수용자들의 의견이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언론 수용자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개화기의 언론에서도 수용자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수용자운동의 역사적 뿌리가 그만큼 깊고 오래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며 이는 또한 언론 수용자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This study discusses on the historical origin of audience movement in Korea. Most relevant studies suggest that the audience movement in Korea originated from the struggle against the Press Ethics Committee in 1964. But, this paper attempts to trace some historical cases before that time. This study analyze two historical cases in the beginning period of modern newspaper in Korea. One is the setting fire of Bakmunguk(office building of Hansung-Sunbo, the first modern newspaper in Korea) in 1884. It was caused by the anti-Japan recognition of the public, who thought that the Hansung-Sunbo was influenced by Japan in many respects. The other is the donation campaign by readers to aid the newspapers which were in a financial predicament. It was carried for the Hwangsung-Shinmun in 1903 and for the Jeguk-Shinmun in 1907. This study suggests that we may regard these two historical cases as seminal forms of audience movement, and argues that the historical origin of audience movement in Korea can be traced to the beginning period of modern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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